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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씨뿌리는 마음 (막 4: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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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뿌리는 마음 (막 4:14~20)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막4;14-20)

본문은 모두가 잘 아는 유명한 말씀,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의 바로 앞인 막3장을 보면 우리는 씨 뿌리는 비유를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3장에서 예수님은 큰 난관에 봉착하셨습니다. 안식일에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을 고쳐셨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이 연합하여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고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막3;6)      

또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을 건다는 말도 있는데 예수님은 가족조차 예수님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였으며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3;21)  예수님은 정말 아무도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외로운 분이셨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서기관들조차도 예수님을 귀신들의 왕에게 사로잡혀서 신성을 모독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3;22)     

당시 권력자들, 가족들, 신학자들과 종교지도자들에게서 예수님은 위협(威脅)과 오해(誤解)와 비난(非難)을 받고 있었습니다.    피땀을 흘리며 복음을 전하시던 예수님과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고 큰 위기를 만났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입니다. 복음을 받는 자와 거절하는 자에 대해서, 또 이런 어려움 중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장차 어떻게 되는지를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판단하기 어렵지만 결실을 거두는 날에 기뻐할 자와 슬퍼할 자가 누구인가를 그 마음 밭을 보면 알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어떻게 보면, 복음은 참 힘이 없고 무기력한 것 같습니다. 교회는 참 별 볼일 없는 것 같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 이런 무서운 사단의 공격, 세상의 권력 앞에서 아무 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강한 힘을 가진 것도 아니요, 단합이 잘되는 것도 아니요, 무슨 강력한 힘을 가지지도 않았습니다. 치면 치는 대로 맞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나 인류역사 수 천년에 교회를 핍박하던 그 많은 절대 권력자들과 사자 같은 정권들은 다 사라졌지만 지금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교회입니다. 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5-18)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교회를 세우시나요? 사람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십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죽음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성경이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살인의 위협과 미쳤다는 오해와, 귀신의 왕이 들렸다는 비난을 받는 예수님은 자신을 씨를 뿌리는 분으로 스스로 말씀하십니다. 성도여러분, 씨가 있고, 씨를 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옛날 어른들이 가장 싫어하고 가장 무서워했던 소리 중의 하나가 뭔 줄 아세요?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였습니다. 굶어 죽어도 씨는 지켰습니다. 올해가 아닌 내년, 또 내년을 바라본 것이지요. 나는 지금, 올해 굶어 죽어도 내 자식들이 계속 살려면 씨앗만은 지켜야 했습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신 예수님은 밭이 네 가지가 있다고 하십니다. 길가 밭은 새가 와서 씨를 먹어버리는 밭입니다.  새가 무엇인가요? 사단이 겁을 내고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말씀입니다. 말씀이 우리 마음 밭에 떨어져 ‘아멘’하고 은혜 받는 것을 제일 두려워합니다. 사단은 어떤 존재일까요? 사단은 말씀을 빼앗아가는 존재입니다.   잠 마귀. 장난 마귀.
  
돌이 가득한 밭이 있습니다. 돌이 무엇인가요? 고집입니다. 고집이 뭡니까? 들어도 들어도 깨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굳어버린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대로 다 어떻게 사나?  하나님도 이건 안 될거야, 이것은 양보 못해’ 이런 분들이 잘하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특히 교회 출석을 잘합니다. 교회는 아주 모범생입니다.    

또 예배시간에 집중합니다. 은혜 받고 눈물 흘리며 ‘아멘, 아멘’합니다. 젊은이들은 찬송을 잘합니다. 너무 너무 은혜스러운 찬송을 하면서 스스로 감동하고 감격합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입니다. 교회 안에서만 은혜스럽고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교회 문을 나서면 예수 안 믿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차이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을 뭐라고 말합니까?   ‘너는 정말 나하고 다르구나. 예수 믿으면 다 그렇게 바뀌냐? 나도 교회 좀 데리고 가줄래?’ 합니까? 아니면  ‘너는 교회 다닌다는 사람이 어째 안다니는 나보다 더 하냐?’ 라고 합니까?  대한민국의 부자동네인 강남의 그 많은 술집의 주인이 상당수가 교회 중직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돌밭의 마음을 가진 신자들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은혜를 받아도 돌 같은 제 고집을 버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돌 때문에 뿌리를 깊이 내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아멘, 아멘 하는데 신앙 때문에 어려움이나 환난이 오면 바로 배신합니다. 

가시밭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반드시 다가오는 것이 있는데, 염려(念慮)와 유혹(誘惑)과 욕심(慾心)입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19) 많은 사람들이 끝내  염려(念慮)와 유혹(誘惑)과 욕심(慾心)을 선택합니다. 자녀 교육에 대한 염려,  미래에 대한 염려를 떨쳐 버리지 못합니다.   

사업을 하고, 장사를 하면서 유혹이 올 때 슬그머니   그 유혹을 잡아버립니다.  욕심이 마음에서 일어날 때 그 욕심을 굳이 뿌리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아도 됩니다.  자녀의 미래와 노후문제 염려도 안하고, 유혹이란 유혹은 단호하게 뿌리쳐서 남들에게 미움을 자초하고,   욕심 없이 가난을 벗 삼아 무소유로 사는 것을 꼭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결실을 하지 못합니다.  가을에 아무 거둘 것이 없습니다. 천국에 빈손으로 갑니다.   아니 천국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염려하고 유혹에 빠지고, 욕심껏 살아왔기에 하나님앞에 아무 드릴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밭이 넷 중에 3개입니다. 3/4입니다. 75%가 헛일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1/4에서, 25%에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4개 뿌려서 30이면 7배요, 60이면 15배요, 100이면 25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이고 이것이 씨 뿌리는 사람의 믿음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은 ‘운명론’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의 3/4은 다 열매 맺지 못하는 분인가요? 성경에 그렇게 적혀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농부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무엇을 수고합니까? 길가 밭을 기경하는 일을 하고, 돌밭에서 돌을 골라내고, 가시밭의  가시와 잡초를 제거하여 옥토로 만드는 일을 합니다.  옥토를 만드는 것이 농부의 일입니다. 밭도 변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겠습니까?  길가 밭 같이 굳어버린 마음은 갈아엎을 수 있습니다.  돌같은 고집스러운 마음을 골라내어 내 버릴 수 있습니다.  염려와 유혹과 욕심의 가시도 다 제거되어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다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에게 이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기경(起耕)은 묵은 땅이나 황무지를 일궈 논이나 밭을 만드는 일입니다. 즉 기경(起耕)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결실을 거두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 밭을 성령의 쟁기로 갈아엎는 작업을 말하는 것입니다. 단단히 다져진 길가의 땅처럼 강퍅한 마음을 성령의 쟁기로 갈아엎어야 합니다. 가시떨기 밭과 같은 마음을 성령의 능력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황무지 같은 마음을 성령의 쟁기로 갈아엎어 옥토로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는 좋은 땅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땅은 큰 기쁨 속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려서 삶 속에서 향기를 발하는 성도의 삶을 말합니다. 이 땅만이 구원에 이르는 밭입니다. 이 땅만이 풍성한 결실을 얻게 하는 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척박한 땅을 옥토로 고쳐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첫째, ①말씀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 중심이라는 말은 내   고집. 내 가치관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또 교회 중심의 삶을 말합니다. 모든 일을 결정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기쁠 때나 슬플 때도 성전을 찾고 기도하며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둘째, ②악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살인하고 도둑질하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것도 분명히 악한 길입니다. 돌같이 굳은 내 마음의 고집을 기경(起耕)해야 합니다.
 
셋째, ③냉정하게 자기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옳은가?  이것이 내 기쁨, 내 만족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영광인가? 내 욕심, 내 정욕을 따라구하는 것은 아닌가? 항상 물어보면서 어떤 일이든지 결정해야 합니다. 염려와 유혹과 욕심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④인내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은 죄를 슬퍼하는 마음입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두려워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숨는 사람은 평강이 없습니다. 근심과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오늘 말씀을 믿는 마음으로 씨를 뿌립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금의 위협과 오해와 공격에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해 주실 것입니다. 고통의 상처를 씻어주시고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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