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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자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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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자 (눅 5:1~11)


[증자]가 한 말 중에<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에 세 번 자신을 반성한다는 뜻의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매일같이 세 가지를 반성한다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세 가지의 반성 중에 그 첫째의 반성은<남을 생각하고 내가 행동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중에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거나 행동하고 자기 이익을 생각하고 자기 기분을 우선으로 여기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하는 것을 매일 돌아보고 반성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친구와의 교제에 있어서 신의를 저버린 일은 없는가>를 반성합니다. 사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인간관계 가운데 친구관계란 신의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그런데 인간관계의 근본인 믿음을 주지 못하고 내가 먼저 그 신의를 저버린 일이 없는가를 늘 반성한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나는 배우지도 않고 그래서 자기도 모르면서 남을 가르친 일은 없는가>를 반성한답니다. 모르면서 자칫 아는 척하는 위선으로 살아가지는 않는가를 반성합니다. 

늘 이 세 가지를 매일같이 반성하며 살아간다는 의미가<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늘 실수를 하고 실패도 하며 살아갑니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의 말을 잘해야 훌륭한 인격이 세워진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 두 마디의 말이 무엇이냐 하면 “Thank you!” 라는 말과 “I'm sorry!”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고맙다”는 말을 몇 마디나 하고 삽니까?  

그리고 우리가 참 못하는 말 중에 하나가 또 “내가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잘할 줄 모른다는 말입니다. 내 상황을, 내 처지를, 내 실수를 인정할 수 있어야 되는데 우리의 전통적인 양반문화의식 속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나면 왠지 모르게 나라는 존재가 초라해진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사과를 하고 나면 마치 인생의 실패자인양 스스로 실망하고 의기소침해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신앙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면 그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을 보면 베드로가 분명 사랑받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죄인 된 모습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순간이 바로 주님의 택함을 받는 순간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8절 말씀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있습니다. 주님과 처음만나는 순간부터를 봅니다.

사실이지 무슨 일이든지 한번 끝낸 다음에 다시 시작하는 것은 귀찮은 일입니다. 더군다나 그 일이 실패한 일이라면 더 더욱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는 밤새껏 물고기를 잡느라고 수고하다가 실패를 하고 이제 그물을 씻고 있습니다. 그물을 씻는다는 의미는 그날의 일은 끝이 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지금 다시 그물을 내리라는 겁니다. 

그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그의 동업자 야고보와 요한은 조상들로부터 고기 잡는 기술을 물려받아 오랜 세월동안 고기잡이를 해오면서 어부로서 갖추어야할 풍부한 경험적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유일한 재산은 고기 잡는 기술과 그동안 익힌 바다에 대한 지식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그들의 생존을 지탱해주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뛰어난 고기잡이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물고기들의 생리는 물론 바다의 자연적 특성에 대해서도 거의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밤새 고기잡이에 허탕을 친 베드로는 그 시간 이후로 다음 고기떼가 몰려드는 시간까지 피곤한 몸을 쉬겠다고 생각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셔서“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다짜고짜 말씀하십니다. 다소 황당한 상황이지만 이것 저 것 다 접어두고 베드로가 순종했더니 결과는 엄청난 물고기를 잡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 이야기의 내용입니다.

자, 그런데 예수님께서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 하신 데에는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할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것을 알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찾아 가신 그 시간이 시몬 베드로에게는 체념의 시간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제발 자기를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싶은 심정이요, 순간입니다. 아마도 고기잡이 인생 중에 오늘같이 철저하게 실패한 날은 처음이었는지 모릅니다. 분명히 자신감을 가지고 바다에 나갔을 것입니다. 이 정도의 날씨에, 이 정도의 시간이면 가장 많이 잡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 분명히 자신의 경험상으로는 그게 맞습니다. 

지금까지 베드로가 경험한 유일한 세계는 오랜 세월동안 잔뼈가 굵어오면서 알게 된 고기잡이에 관한 지식의 세계가 전부였습니다. 더 이상 고기잡이라는 그 세계를 넘어서 다른 어떤 영역의 세계를 알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경험 세계를 넘어서 보려 하지도 않았던 그것 밖에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자신의 전문가적인 지식을 다 동원하였어도 실패한 그 허탈하고 지친 시간에 찾아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을 때 상식선에서 그 다음 상황은 뻔합니다. 

“당신 누구냐?”로부터 시작해서“누굴 놀리느냐!”,“귀찮으니까 사람 괴롭히지 말고 가라!”는 말로 끝날 법한 상황 아닙니까? 더 심각한 상황은 어쩌면 베드로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실망을 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어부 인생을 이제 그만둬야하나!’,‘저 배를 팔고나면 무엇을 해야 되나!’나름대로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우리에게도 실패는 있습니다. 실수도 있습니다. 자랑할 만한 내 경험이 통하지 않을 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모든 것을 체념하고 돌아서려할 때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내 경험을 뛰어넘는, 내 실패를 건드리는 말씀을 하실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늘 베드로는 놀랍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앞에 거부할 수 없는 뭔가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상식과 자기 경험을 다 접어두고 일단은 순종합니다. 5절입니다.“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합니다. 예수님이 지금 지시하시는 말씀이 수십 년 고기잡이 경험에서 볼 때 도무지 이치에 맞지도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배를 가지고 예수께서 지시하는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랬을 때 얼마나 많은 고기가 잡혔던지 그물이 찢어질 정도에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까지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었습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평생 처음 이렇게 많이 잡았을 것입니다. 날마다 물고기 한 번 실컷 잡아봤으면 좋겠다는 그것을 소원으로 꿈꿔왔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베드로는 지금 어부로서의 평생소원을 이룬 겁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그 순간에 베드로는 좋아서 펄쩍 펄쩍 날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인됨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릎아래에 엎드려서“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베드로가 이러고 있는 겁니까? 지금까지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물고기 잡는 실력에 있어서는 보란 듯이 자랑할 만큼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당신이 하라는 대로 해보기는 하겠습니다만 이건 백퍼센트 못 잡습니다. 내가 괜히 어부 인줄 아십니까?’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과를 봤을 때 충분히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너진 것입니다. 이 불신앙과 교만이 예수님 앞에 지금 완전히 허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때로는 그렇습니다. 신앙 아닌 것을 신앙이라고 고집하면서 자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워서 고개조차 들 수 없을 것을 신앙이라고 우기며 살아가고 있는 부분들이 없습니까? 많은 사람들 앞에는 자랑하며 살아가는 이것이 주님 앞에 서서 보여드렸을 때 여지없이 무너진다면 그 창피함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님이“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하시는 말씀 속에는 우리의 불신앙과 교만을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생존을 위한 기술과 삶의 방식을 나름대로 익혀갑니다. 거기에 경험적지식이라는 것이 하나 더 쌓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싶을 때 자만과 자기 의가 형성됩니다. 나중에는 그러한 것들이 거의 절대적인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익힌 기술과 경험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공허와 허탈이 우리를 지배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의 말처럼“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을 때”가 바로 호숫가로 돌아와 빈 그물을 씻는 우리 자신의 영적 위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시는 말씀에 담긴 깊은 영적 의미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너의 자아 중심적이었던 삶을 떠나서 새로운 중심의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아 중심적인 삶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면 갈수록 거기에서 경험되는 것은“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지만 잡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허망함뿐입니다. 그때 다른 깊은 곳을 가리키면서 저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시는 그 음성을 거부하면 우리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그 순간 밤이 새도록 수고한 것보다 훨씬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살아가는 방식에는 나름대로 독특성이 있습니다. 지성적인 사람은 심리학, 철학, 사회학, 경제학, 법학과 같은 사회 과학 체계에서 밤이 새도록 수고하며 무엇을 얻으려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종교적인 사람은 자기 의에 기초한 경건의 생활에 몰두해서 열심히 살아갑니다. 윤리 의식이 강한 사람은 철저히 윤리적인 삶을 통해 자기를 실현해 가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돈 버는 일로 밤이 새도록 수고하며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녀에게 기대를 걸고 밤이 새도록 수고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밤새도록 게임하는 일로, 노름하는 일로....그렇게 해도 당장은 먹고사는데 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어지는 허탈감은 어찌합니까? 무엇인가 생명적인 열매가 없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지만 언제나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빈 배로 돌아오는 느낌입니다. 

이제 작년2009년까지 우리들의 삶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고도 잡은 것이 아무것도 없이 살아가는 삶을 경험했다면 이제 2010년 새해에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는 해가 되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2010년 새해 우리교회의 표어가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을 의지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자>입니다. 어제까지의 불신앙과 교만, 그리고 실패의 체념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그리고 즉각 순종하는 믿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물이 찢어지는 영적 부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새해 첫 주일에 주시는<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주의 음성이 여러분 개인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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