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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칭찬듣는 종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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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듣는 종 (마 25:14~30) 


2010년 첫 주일 저녁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새 해가 큰 축복의 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 여기 맛있는 사과가 있습니다.  이 사과 속에는 씨가 몇 개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씨 속에는 몇 개의 사과가 들어 있을까요?  “사과 속에 있는 씨는 헤아려 볼 수 있지만, 씨 속에 있는 사과는 하늘만이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과를 자르면 씨는 보입니다. 그러나 씨 속에는 얼마나 많은 사과가 들어있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달란트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중의 하나입니다.   

달란트는 본래 금속의 무게 단위였는데, 약 32kg입니다. 본문에서는 화폐 단위로, 당시 1 달란트는 대략 6천 데나리온에 해당됩니다. 1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품삯이니까, 1 달란트는 아주 큰 액수입니다. 노동자 한 사람이 거의 20년 동안 꼬박 모아야 만질 수 있는 큰돈입니다.   

그러면, 달란트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단순히 돈만 의미하지 않죠. 성경의 이 말에서 영어의 talent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재능’ 혹은 ‘은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흔히 달란트라 하면 󰡔자기의 재능󰡕 이라고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즉 자기가 갖고 있는 <끼>, 또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14절에 “그 종들을 불러 ‘자기의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달란트를 주인의 소유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의 것을 각각 그 종들에게 맡겼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달란트는 '나의 것' 이 아니라 '주인의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식입니까?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시간, 물질, 재능, 건강, 지위, 직분 등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것이 내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인데 왜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느냐? 라고 말한다면 주인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 것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우주만물의 주인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사는 우리들입니다. 생명도, 자녀도 내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생명이 내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누가 천년 만년   살지 않겠습니까?  또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키 크고, 잘생긴 미남 미녀에, 천재만이 이 세상에 가득할 것입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자녀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낳아서 키울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내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고, 외모도, 자녀도 주시는 대로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다 우리에게 맡겨 준 선물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마치 자기의 것으로 착각하고들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것을 나에게 맡기신 것이라는 사실을 잘 깨달으면 우리의 삶의 모습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2010년이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달란트 비유에서 우리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배웁니다. 
여러분, 인생은 어떤 것입니까? 어떻게 살아야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하나님에게 칭찬을 듣나요?  그리고 또 어떻게 살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고 책망을 들을까요?  인생은 개발(開發)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내 속에 달란트가 있다는 것을 믿고 열심히 그것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질문을 두개 드립니다. 

① 각 사람 속에는 달란트가 있나요? 없나요?  있습니다. 달란트가 없는 사람, 즉 주인이 자기의 것을 맡기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입니다.   

② 내가 내 속의 달란트를 열심히 사용하면 그 달란트는 어떻게 변하나요?  늘어납니다. 처음에 없던 것이 새로 생깁니다.  한 고등학생이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본문의 달란트 비유를 보면서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말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차별하느냐고 불평을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성경을 보면 ‘각각 그 재능대로’ 라고 합니다.  여러분 재능대로 맡기는 것이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평한 것입니다.  중학교 학생에게 그 학생이 학교를 사랑한다고 하여도, 학교를 운영하는 교장의 자리를 맡길 수 있나요? 또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녀이지만 이제 대학생에게 회사의 모든 운영을 맡기는 부모는 없지 않겠습니까? 회사가 잘될 확률보다 망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나중에 능력이 갖춰지면 그때는 당연히 맡깁니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람에게 많이 맡기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부담이고 저주입니다.  맡은 본인도 행복이 아니라 고통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불공평 하거나 인색한 분이 아니십니다.  그

리고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2달란트 받은 사람이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4달란트가 되었습니다. 5달란트 받은 사람이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11달란트가 되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받은 것에 최선을 다하니...처음에는 없는 재능이 생겨난 것입니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손재주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목소리를 살리려고 최선을 다했더니 어느새 손재주도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성도여러분, 달란트는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한 번 받으면 끝이 아니라,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나중에라도 자꾸 더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불공평한 분이 아니라 주시고 또 주시는 분입니다.  혹시 나는 왜 이럴까? 왜 하나님이 나를 이런 부족한 모양으로 만드셨을까?  왜 나에게 저런 자녀를 주셨을까? 

이런 고민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있습니다. 내가 나를 보면 너무 한심하고 너무 부족해서 이런 모습으로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한때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달란트는 32kg입니다. 6,000데나리온입니다.  20년을 아무것도 안하고 놀 수 있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깨닫고 보니 하나님은 내게 인색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십자가에 예수님을 죽이실 만큼, 예수님 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은 너무 커서 나의 오해를 저 멀리 날려버렸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시지요?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다 기록 할 수 없다는 찬송은 올바른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달란트비유의 마지막을 주의해 보아야 합니다. 주인이 주신, 주인의 소유였던 그 달란트들이 어떻게 되나요? 주인이 다 거두어서 창고에 보관합니까? 아니면 종들이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까? 다 종들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신 것을 도로 가져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받은 달란트는 이제 ‘내 것’ 입니다.  그리고 잘했다는 칭찬과 함께 더 많은 것으로 맡기신다고 하시고.. 또 주인의 잔치에 참석까지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오해 했던 것처럼  우리 주인이신 하나님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인색한 분이 아닙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이 말은 주인이 수전노, 구두쇠, 지독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종에게 일을 시키고 자기는 놀다가 나중에 종이 일한 것을 다 가져가는 그런 분이라고 불평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정말 하나님은 그런 분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며,   우리에게 자기의 것을 주시고 또 주시시며, 나중에라도 가져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인색한 분이 아닙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도록 우리를 속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열심히 우리의 잠재력을, 달란트를 개발해야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웃나라 왕으로부터 사냥개 두 마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아주 기뻐해서 그 사냥개 두 마리를 데리고서 사냥을 나갔는데 눈앞에 있는 토끼를 보고도 잡지 않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이 ‘아… 낯선 곳에 오니까 익숙하지 못해서 사냥을 안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조금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 또 두 마리 개를 데리고 사냥을 하러 나갔는데 또 토끼를 사냥할 생각조차 안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화가 나서 “이 사냥개들을 죽여버려라! 살아있을 필요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선물을 준 이웃나라 왕이 알렉산더 대왕을 방문을 했을 때 알렉산더 대왕이 그 이야기를 하니까 무릎을 탁 치면서 “대왕님! 대왕님이 그 사냥개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 두 마리 사냥개는 사자나 호랑이를 잡도록 훈련받았지 토끼를 잡도록 훈련 받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귀중한 개인데 대왕께서 그 소질을 몰라서 죽이셨군요”라고 말했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의 잠재력, 우리의 달란트는 반드시 개발되어야 됩니다. 이 귀하고 귀한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허무하게 보내서는 안 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파묻어 놓아서는 안 됩니다. 지혜와 총명과 재능과 지식을 개발해야 됩니다.  그래서 교육(敎育)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우리도 평생을 교육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교육을 통해서 우리에게 감추인 달란트가 개발이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4절, 15절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성경도 배워야 됩니다. 그냥 단순히 읽기만 해도 좋지만 체계적으로 배우면, 더 지혜로워지고 더 하나님 앞에 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기회만 있으면 배우십시오. 그리고 기회만 있으면 봉사하십시오. 쇠가 쇠를 날카롭게 하는 것처럼 사람이 사람을 더 힘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고 말씀합니다.  성도여러분, 구하면... 내게 없는 것을 주십니다. 찾으면... 간절히 바라던 것을 소유하게 됩니다.  문을 두드리면...  닫힌 문이 열리면서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내게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 말은 능력이 지금 내게는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 내게는 없는 능력이지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기에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과는 단위가 틀리기 때문입니다. 수준이 다릅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강력하고 무한한 능력을 주실 줄을 믿고 우리는 나가는 것입니다.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이 ‘줘야 하지’입니다.  

그러나 성도여러분, 손에 잡혀야 하고, 눈에 보여야 한다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손에 잡은 것이나 지금 은행에 있는 통장금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우리를 부요하게 합니다.  

물론 오늘 본문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줘도 안합니다.  이미 받았지만 주인을 오해하고 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인을 믿는 사람은 ‘행동(行動)’합니다. ‘노력(勞力)’합니다.   우리에게 재능을 주신 주님께서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능력도 주시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고, 애쓰지 않고 일을 이루는 사람은 없습니다. 뼈가 으스러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말씀했습니다. 충성했다는 것은 자기 일에 대해서 전력(全力)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서 충성했기 때문에 많은 성취를   이룰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2010은 충성하시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달란트가 있습니다. 저는 달란트를 잠재력(潛在力)이라고 이해합니다.   어느 분이 은퇴하여 농촌에 들어가 처음으로 젖소를 사서 기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를 산지 얼마 안 되어 소의 젖이 마르고 말았습니다. 먹이를 많이 주고 잘 돌보아도 젖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이웃 농부에게 어쩐 일인지 물어 보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농부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당신의 젖소가 젖이 마른 것은 젖을 다 짜주지 않았기 때문이요." 젖소는 젖을 최대한도로 짜내야 계속 더 많은 신선한 젖을 생산하는 법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자기가 필요 한만큼만 젖을 짰습니다. 한 병이 필요하면 한 병만큼만 짜고, 우유생각이 나지 않는 날은 아예 젖을 짜지 않았습니다. 짤 수 있는데 짜지 않은 것이 젖을 마르게 하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 짜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충성 할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충성해야 합니다. 쓸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사용해야 합니다.  건강과 물질, 능력은 쓰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안 쓰면 그냥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 쓰면 사라집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사용하지 않은 그 달란트는 그 사람에게 그대로 남아있지 않고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옮겨지지 않았습니까?   쓰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로 갑니다. 있는 자에게는 더 주시고, 없는 사람은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본문 26절입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성도여러분, 충성의 반대는 반역이 아니라 게으름입니다. 여기에 주님의 관점이 있습니다.    김남준 목사는 '거룩한 삶의 은밀한 대적 게으름' 이란 저서에서 "비전의 사람, 사명의 사람들에게 이 땅의 삶은 너무나 짧다. 그러므로 시간을 선용하는 것이 충성이다.  게으름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성향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불충성이요, 맞서 싸워야 할 내 속의 악이다. 게으름은 충성하기 위해 제거되어야 할 대표적 악" 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맞서 싸워야 할 대적 중 하나가 바로 게으름입니다. 
  
오늘 문제가 되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일단,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을 오해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을 비판하기에 바빴습니다. 주인을 일 시켜서 자기가 다 빼앗아 가는 굳은 사람, 즉 수전노(守錢奴), ‘구두쇠’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열등감을 드러내기에 바빴습니다.  그리고 그는 게을렀습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어놓았으며 남들이 일할 때에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도여러분, 게으름이란 엉뚱한 일에 바쁜 것입니다. 자기 일에 바빠 하나님의 일을 멀리 하는 것이 게으름입니다. 게으름을 포기하지 아니하면 영적 거인이 될 수 없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달란트를 받고 바로 가서 장사를 하였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 역시 그같이 했습니다. 즉 불충성한 종은 게을렀고, 충성한 종들은 부지런했습니다.  묻어두고 있다면 이미 게으른 종입니다. 사용하고 있다면 부지런한 종입니다.   

혹시 나는 받은 것이 너무 작다. 하나님이 나에게는 너무 안 주셨다. 라고 생각을 하시는 분이 있나요? 아니 여기 계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실 지도 모릅니다. 좀 전에 말씀 드렸지만, 저도 그랬습니다. 남과 비교하니 내가 너무 초라했습니다. 나는 너무 가진 것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왜 나를 이런 모양으로 만드셨나 원망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오해 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나를 괴롭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주시고 또 주시는 분,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 나중에는 자기 아들의 생명조차 십자가에 죽이시는  아낌없이 다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천국 가는 그날까지, 아니 영원토록 나와 함께하시고, 내 속에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할 분이십니다.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다고 고백한 찬송이 우리의 찬송이 되고 나의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1920년대 미국에 ‘아더 배리’라는 뛰어난 보석 감정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보석이든 한 눈에 진품을 알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가격까지 판정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명한 보석 도둑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저명인사들의 저택만을 골라 값비싼 보석을 훔쳐냈습니다.  그는 결국 경찰에 체포되어 18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형기를 모두 채우고 출감한 그는 작은 도시에 정착하여 이제는 착실하게 살면서 이웃사람들의 신망을 얻어 마을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마을의 대표가 된 그에게 기자들이 앞 다퉈 모여들어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은 정말로 보석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까?”   “과거에 훔쳐놓은 보석 중에서 가장 값나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유명 인사나 부호들의 재물만을 노렸는데, 그 중에서 누구의 것을 가장 많이 훔쳤나요?”  한동안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그가 긴 한숨을 뱉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가장 많은 재산을 훔쳐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오. 나는 좋은 머리로 성공적인 사업가도 될 수도 있었고, 뛰어난 심미안으로 예술가도 될 수 있었으며,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결국 도둑이 되었고, 그 때문에 감옥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허비하고 말았다오.”
  
하나님을 믿고 그 분께서 자신에게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충실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한창 의욕에 넘쳐야 할 젊은이가 방탕하고 게으른 것은 모두 자기 인생을 훔치는 도둑입니다.  또 자신의 삶의 가장귀한 부분인 ‘청춘’을 함부로 쓰레기통에 내다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고 하였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시간은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특히 청년여러분,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젊음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금방 30이고, 금방 40입니다. 이런 말하는 나는 지금 50입니다.  전에 나의 아버지께서 나에게 ‘너도 금방 50이 된다’ 라고 말씀하실 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어디 먼 나라이야기 인줄 생각했습니다.   세월은 정말 빠릅니다. 내게 있는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지 맙시다. 주어진 삶을 열정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2010년 새해는 우리의 달란트를 마음껏 사용하는 그런 한해가 되시기를 바라면서,  ‘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열심히 최선을 다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일 년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오늘 말씀을 나눕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는 칭찬을 듣는 사람, 주인의 즐거움에 참석하는 존귀한 사람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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