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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성탄으로 성탄 되게 하는 신앙 (마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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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으로 성탄 되게 하는 신앙 (마 2:1~18)


미국에 있는<카네기 공과대학(C.I.T 대학)>에서 인생살이에 실패한 사람들, 직장생활에, 가정생활에, 그리고 사회생활에 실패한 사람들만 만 명을 표본조사해서 실패한 이유가 무엇일까를 철저하게 연구해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는 지식이 없어서 실패할 것 같고, 기술이 부족해서, 혹은 무능해서 실패할 것 같은데 조사 결과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전문적 기술과 지식이 결여되어서 실패한 사람은 15%밖에 없고, 85%가 인간관계에서 실패 했더랍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인간관계에서 실패했느냐를 심층 연구해 보니까 이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부정적 의식, 부정적 생활 자세를 가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그렇고, 사물에 대한 생각이 그렇고, 사건에 대한 이해가 그렇고, 역사에 대한 이해도 항상 부정적이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은 언제나 양면에 지배받는다고 합니다. 사랑이냐, 미움이냐, 부정이냐, 긍정이냐, 오늘도 우리는 이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서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불행보다는 행복이 사람을 살만한 가치로 이끄는 것이고, 부정적인 사람보다는 긍정적인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살 확률이 많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나라는 시끄럽습니다. 하루도 여당, 야당이 안 싸우는 날이 없습니다. 정부의 정책이 마음에 안 든다고 야당은 떠들고, 무조건 반대만 하는 야당이 문제 있다고 여당은 질책합니다. 물론 쉽게 끝나는 싸움은 아닙니다. 정치라는 구조가 존재하는 한은 이 싸움은 끝나지 않습니다. 다만 바라고 싶은 것은 누구든지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어느 것이 나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을 위한 것이냐를 생각하는 사람의 주장이 통해야합니다.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 하거나 대중 앞에 인기나 얻으려고 하는 순간적인 욕망으로 떠들고 있다면 참으로 가슴 아프게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죄인 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어 춥고, 더럽고, 냄새나는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낮아지셨습니다. 작아지셨습니다. 냉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벌레만도 못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속물인간들을 위하여 스스로 맞이하신 고난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기쁨과 감격이 되겠지만 이 사실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시기하고 방해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던 당시 기뻐하며 주님을 맞았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 오심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나섰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헤롯왕입니다. 그는 태어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위선과 거짓으로 예수님을 찾아 살해하려고 음흉한 흉계를 꾸민 사람입니다.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못할 짓이 없다고 하지만 헤롯처럼 악랄한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헤롯을 보면 천하에 몹쓸 사람이요, 한편으로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우울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이 기쁜 날이지 어떻게 우울한 날이 될 수 있습니까? 

1968년 6월 미국<컬럼비아대학교>심리학 교수팀은 매주 흥미로운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길거리에 지갑을 떨어트린 후 그 속의 신분증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를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약 45%의 신분증이 주인에게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습니다. 6월 5일 단 하나의 신분증도 주인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답니다. 그날은 바로 미국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가장 유력했던[로버트 케네디]가 괴한에게 암살당한 날이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한 가지 나쁜 소식이 사람들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소식은 전염성이 강해서 금방 전체 분위기를 침울하게 만듭니다. 반면에 좋은 소식은 사람들을 확연하게 달라지게 합니다. 불행과 행복은 항상 연쇄 반응을 일으키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신 사실은 기쁜 일입니다. 그 좋은 소식은 아름답게 전파되어야 옳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그 기쁜 소식을 슬프게 만드는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헤롯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지만 오늘 이 헤롯이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하고 성탄을 슬프게 합니다. [안톤 시나크(1892-1961)]라는 유명한 수필가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 가를 왔다 갔다 하는 그 동물의 번쩍이는 눈, 무서운 분노, 괴로움에 찬 포효, 앞발에 서린 끝없는 절망감, 미친 듯한 순환,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더없이 슬프게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기쁘고 즐거운 성탄을 더 슬프게 한 헤롯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우리는 성탄을 성탄 되게 하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헤롯처럼 성탄을 슬프게 만들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성탄이 성탄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몇 가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먼저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 주님의 오심이 성탄 되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3절에“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왕과 백성이 함께 마음이 요동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서로 달랐습니다. 먼저 헤롯왕이 소동한 이유는 이것입니다. 유일한 유대인의 왕은 헤롯 자신이었고 또 로마로부터 이 칭호를 수여 받았는데, 또 다른 유대인의 왕인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소문은 과대망상증에 시달리던 70세의 늙은 헤롯왕에게 실로 엄청난 충격을 던져 주었습니다. 특히 이때는 헤롯왕의 정권 말기였고, 그가 폭군인데다가 집권 욕이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왕권교체에 따른 정변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은 마음을 소동케 하기에 충분한 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거민이 소동한 이유는 이런 헤롯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적대감을 느낀 헤롯의 잔인한 학정이 또 다시 시작되리라는 불안감 때문에 소동케 된 것입니다. 

여러분, 헤롯의 감춰진 자기 욕심이 자기뿐만 아니라 백성들까지 성탄을 즐겁게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감춰진 내 본심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혹시 이것들 때문에 늘 마음이 소동하느라 성탄마저도 즐겁게 맞이할 만한 준비도 되지 못한 채 이 자리에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물질 때문에 마음이 늘 소동합니까? 명예 때문에 요동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살지는 않습니까? 권세욕 때문에 예수님을 늘 내 마음 바깥에 세워두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이번 성탄절에는 이 욕심을 다 내려놓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성탄을 성탄 되게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주님 오심이 성탄 되게 하는 데는 진실이 필요합니다. 

본문 7-8절을 보십시오.“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여러분, 정말 헤롯이 예수님께 경배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거짓입니다. 헤롯은 정치적 술수와 음모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죽이려는 사악한 행동을 성경은 그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르긴 해도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동방박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극진한 대접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이 하나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방박사들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사람이 진실하지 못하여 남을 속이다 보면 어느 샌가 자기가 속게 되어 있는 법입니다. 남을 속이고 있을 때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처지를 모르는 것이 사람입니다. 

헤롯왕은 자신의 추한 음모를 은폐하기 위하여 경건을 가장하여“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위선을 부려봅니다만 그 속을 하나님께서 모르실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와 벅찬 감격을 안고 드리는 동방박사들의 경배와 어두운데서 웅크리고 앉아 살인을 계획하는 거짓경배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거짓은 언제나 설 곳이 없습니다. 거짓은 모두를 불행하게 하고 멸망으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헤롯의 거짓과 음모와 위선은 다 벗겨지고 말았습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의 거짓, 위선을 모두 벗어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성탄이 기쁨이 됩니다.

그 다음,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더불어 사는 마음입니다. 

본문 16절에“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그랬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고 떠나 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헤롯은 무너진 자존심과 배신감에 몸서리를 치며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답게 펄펄 뛰었을 것입니다.  [알퍼드]라는 학자에 의하면 그 당시에 죽임을 당한 2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의 숫자는 대략 14,000명 정도로 추산합니다. 

헤롯은 자기감정의 불쾌, 분노, 불안, 정권유지, 욕망 때문에 살인을 서슴없이 저질렀던 몹쓸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게 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가정을 아프게 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어머니를 울게 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했겠습니까? 얼마나 잔인하게 백성들의 행복과 기쁨을 모조리 빼앗았겠습니까?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또 어디 있단 말입니까? 

어떤 술주정뱅이가 있었습니다. 술이 만취 된 그는 두 귀가 물집이 생겨 진물이 줄줄 흐르는 채로 의사를 찾아 왔습니다. 의사가 물었습니다. "아니, 두 귀가 어쩌다가 이지경이 되었습니까?"그 사람이 대답합니다. "글세 내가 술이 취해서 자고 있는데 내 친구 녀석이 전화를 했는데 우리 마누라가 뜨거운 다리미를 전화기 옆에다 둔 걸 모르고 다리미를 귀에 댔지요."하는 겁니다. 기가 막힌 의사가 다시 묻습니다. "그럼 다른 쪽 귀는 왜 그렇습니까?"했더니 "아 글쎄, 바보 같은 친구 녀석이 10분 뒤에 또 전화를 했지 뭡니까? 멍청한 친구와 바보 같은 마누라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고생합니다."하더랍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환경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다면 어떤 문제도 해결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형편은 점점 더 어려워 질 뿐입니다. 대부분의 원인은 남에게 있지 않고 나에게 있으며, 나 자신의 미련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나친 내 욕심으로는, 진실하지 못한 내 신앙으로는, 마음으로든 행위로든 남을 살인하는 헤롯 같은 마음으로는 성탄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비뚤어진 모든 것을 고쳐 이번 성탄은 정말 성탄 되게 하는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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