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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아름다운 것을 지켰는가? (딤후 1: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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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을 지켰는가? (딤후 1:13~18) 
 
  
[죄와 벌]이란 장편소설을 쓴 도스토예프스키는 28살 때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5분만지나면 총살형에 처하게 되엇는데 어떻게 이 남은 시간을 보낼것인가, 고민하다가,  2분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 2분은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면서 반성하고 회개하며, 나머지 1분은 아름다운 대자연을 둘러보고 떠나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순간 실탄을 장전하는 소리가, "털거덕" 들리니 소름이 쫙 끼칩니다, 그런데 갑자기 멀리서 황제의 특사령을 받아가지고 오는 병사의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사형을 중지하고 시베리아로 보내라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그는 시베리아로 보내졌는데 그때의 5분을 생각하면서 시간이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깊이 깨닫고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2009년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금년도 남은 날은 4일뿐입니다. 4일이 지나면 21세기 첫 10년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빨리 흘러갑니다. 2000년이 되려고 할떼 얼마나 호들갑들을 떨었습니까? 막연한 두려움과 설레임을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21세기의 100년 중 10년이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바울사도는 그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너는 내가 네게 부탁한 것을 잘 지키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름다운 것을 지키다"에서 '지키다'의 헬라어 '퓔락손'은 '잃어버리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어떤 것을 지키다'라는  의미로 거짓 교사들이 복음을 변형(變形)시키고 오염시키는 것을 방지하고 경계함을 시사하는 말입니다.다.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 우리는 우리가 지킬 아름다운 것을 잘 지켰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아름다운 것은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많습니다. 아름다운 자연풍경, 수준높은 예술품, 진위한 보석 등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이런 것으로는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지는 않습니다. 이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복음인 것입니다.  생명을 주는 것, 구원을 누리게 하는 것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말씀한 여기서 '부탁한 것'은 생명에 이르게 하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복음을 가리킵니다. 복음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되기 때문에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롬 1:16;고전 4:14).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것으로 이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맡긴 것이기도 합니다.

송명희 시인의 시 중에 [복음은 아름다운 것]이란 시가 있습니다. 

복음은 아름다운 것
죄악의 사슬에 얽매인 사람
슬픔에 잠기어 울부짖는 사람
마음의 가난을 채울 수 없는 사람
변하여 기쁘게 아름답게 하네

복음은 아름다운 것
메마른 땅이 촉촉이 되고
광야에 샘물 흐르며
사자 어린양이 뛰노는 
새하늘과 새땅이 이루어지는
복음은 아름다운 것

인간은 역사, 문화, 철학, 사상, 신학, 신앙, 이념, 유전, 전통 등등의 것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러한 것들로 인하여 묻혀 있게 되거나 감추어져 있거나 변형되거나 변질되어져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덧입혀 놓은 옷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마구지어 놓은 집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두어 놓은 그릇들이 있습니다. 덧입혀 놓은 누더기 옷들은 벗겨야 하며, 마구지어 놓은 집들은 헐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가두어 놓은 그릇들은 아끼지 말고 깨뜨려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지켜햐 할 것은 옷이나 집이나 그릇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교회나 성도들이 복음이 아닌 것을 가지고 목숨 걸 때가 많습니다. 

과거에는 옷 상표가 안에 들어가 있는데 요즘 패션들을 보면 상표가 밖에 나와 있습니다.  어떤 것은 옷 뒤에 상표가 큰 것이 떡 붙어 있습니다.  가슴팍에도 상표가 딱 붙어 있습니다.  상표로 다 장식한 옷도 있습니다.  미국 흑인들의 모자 보면 가격표도 상표도 안 뗍니다.  옆에 줄줄 가격상표까지 붙이고 다닙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상표 자랑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상표 자랑할지 몰라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슨 자랑을 해야 합니까?  예수 자랑해야 합니다. 복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찌했습니까? 참으로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였습니까? 아니면 어전히 인간들이 세워놓은 전통이나 자신의 고집이나 성질이나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발버둥을 치지는 않았습니까?

2. [주님을 의뢰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한해 동안 우리가 절실하게 의뢰한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의뢰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의뢰했습니까? 
  
카자흐스탄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김삼성선교사가 쓴 "당신도 영적 카라반이 될 수 있다"라는 책을 보면 카자흐스탄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선교 현장에서 일어난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시대에 우리에게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희귀한 것이 되었습니까?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주님을 의뢰하기보다는 재물이나 권력이나 자기 재능을 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물질과 힘이 있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재물과 재능을 더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을 의뢰하면서 사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을 의뢰하면서 사는 것, 그것을 간증하는 것, 그것을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것입니다. 주님을을 의뢰하는 자를 평강에서 평강으로 인도하십니다. 

3. [화평을 지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유능하면 좋습니다. 달란트가 있어서 무엇을 잘 하면 얼마 멋이 있고 좋습니까? 그러나 유능하다는 이유로 화평을 지키지 못거나 화평을 깨는 자의 역할을 한다면 차라리 무능한 편이 훨씬 낫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생각하면서 얻은 결론입니다. 가룟유다는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12명의 제자들 중에 그가 제일 유능한 사람이었고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화평을 깬자였습니다. 배신자이며 배교자였습니다.
화평을 위한 것이 아니면 생각지도 맙시다. 화평을 위한 것이 아니면 말하지 맙시다. 화평을 위한 것이 아니면 행하지도 맙시다. 

약 3:16~18에 보면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했습니다. 그리고 골 3:15절에서도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하셨습니다. 

4. [자신의 직분]을 지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흘리는 땀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입니까? 수문장이 다른 장수들과 병졸들은 나 살자고 다 도망가보린 성에서 그 성문을 지키다고 장열하게 전하는 모습은 어떤 영웅의 모습보다 더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자리를 떠나서 품어내는 향수보다 더 향기로운 것입니다. 
  
우리는 일제식민지 생활도 겪였고, 6,25전쟁도 겪였으며, 군사독제도 겪었고, IMF 구제금융을 받고 IMF 관리체제하에 있는 경험도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된 것은 우리 민족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겪는 우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 때 돌아오는 결과가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귀중한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엉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영웅들은 자신의 직분을 잘지키는 사람입니다. 내년 2010, 2, 18일은 우리교회가 2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20년을 한결같이 교회를 지켜온 사람들의 수고가 있어서 오늘 우리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공과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 저런 것 다 무시하고서라도 20년을 한결같이 한교회를 지켜왔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는 일평생 섬길 수 있는 교회, 우리의 자녀와 우리들의 손자들까지도 섬길 수 있는 그런 교회를 만들어가야 하고 그런 건강한 교회관으로 믿음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지킨자와 지키지 않는 자의 대표적인 모델이 나옵니다. 지키지 않는 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였습니다. 잘 지킨자는 오네시보로였습니다.  

어찌 아름다운 것이 이런 것들 뿐이겠습니까만은 한 해를 살아오면서 복음 아닌 것, 주님을 의뢰하지 아니한 것, 화평을 지키지 아니한 것,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지 못한 것은 철저하게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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