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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시므온과 안나 (눅 2: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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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온과 안나 (눅 2:25~37)  


오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 스토리를 잘 아실 겁니다. 주인공 ‘짐’과 ‘델라’는 가난한 부부였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 델라는 남편 짐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꼭 해주고 싶었습니다. 시계가 있지만 시곗줄이 없어 차고 다니지 못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안쓰러웠는데, 이번에 꼭 시곗줄을 선물하고 싶었던 겁니다. 돈이 없는 그녀는 궁리 끝에 금발 머리를 잘라 팝니다. 짧은 머리를 남편이 이해해 주도록 기도하며 남편 짐을 기다립니다. 퇴근한 짐은 아내를 보는 순간 맥이 빠졌습니다. 

아내의 금발을 위해 시계를 팔아 빗을 사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정을 모르는 델라가 짐에게 시곗줄을 내밉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된 거죠. 두 사람의 선물 모두 필요 없어졌지만, 그날은 그 가난한 부부에게 가장 행복한 크리스마스이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선물을 주고 받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런데 간혹 상대방이 준 선물을 뜯어보지 않고 방치해 두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준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무례한 행동이고, 받은 사람 자신에게도 큰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그런 경험 없으십니까? 저는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부목사님 한 분이 제게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바쁜 와중에 포장된 상태 그대로 책장 한쪽 구석에 얹어두고는 새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책장을 정리하다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포장을 뜯어 목차를 훑어보고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 단숨에 읽었습니다. 큰 감동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읽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네. 진작 읽을 걸 ... ”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성탄절이 이와 같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2천 년 전 예수님을 선물로 주셨건만, 무관심하게 방치함으로 성탄절의 유흥은 있어도 진정한 성탄절의 기쁨을 놓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결코 그래서는 안될 줄 압니다. 모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성탄하신 예수님이 뜯지 않은 선물이 아니라, 뜯어보고 체험하는 선물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오랜 세월 약속된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아기 예수에게서 그 메시아를 발견하고 그를 맞이한 두 사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은 시므온이라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여선지자 안나입니다. 이들은 오늘 본문에서만 언급되며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중에 30년 후에나 사람들이 알아볼 메시아로 오신 아기 예수를 미리 만나고 알아보고 품에 안기까지 하는 예외적인 특권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까? 첫째, 시몬과 안나는 예수님을 ‘믿음과 희망 중’ 기다렸습니다. 

두 사람이 바라본 당시 시대 모습은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들이 처한 현실 속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흔적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몬은 자신의 마음속에 평안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안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주야로 금식하며 탄식의 세월을 보냈던 것입니다. 먼저 시몬과 안나의 나이를 보십시오. 

어떤 학자들은 이들이 100살 혹은 적어도 90살은 넘겼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나이가 들면 희망을 노래하기보다 포기에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일을 하기 두려워합니다. 희망보다는 절망하기가 쉽습니다. 안나는 남편과 단 7년을 함께 살고 무려 84년이라는 시간을 홀로 살았습니다. 요즘 과부와는 다르게 당시 과부에게는 대외적이고 정치적인 지위를 주지 않았습니다. 

환경으로만 보면 오로지 절망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시대상황을 보더라도 지도층인 사두개파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로마 권력층에 붙어 평민들을 박해했습니다. 바리새파는 자신들만 경건하다고 자랑하면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아예 상종도 않았습니다. 에세네파는 이것저것 보기 싫다며 은둔생활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버려진 사람들, 아무도 위로하지 않는 소외 계층, 밟으면 밟히고 찍으면 찍힐 수 밖에 없는 그 그들에겐 그들을 대변해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간 희망의 메시지는 들려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희망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희망이란 무엇입니까? 

불행이라는 터널을 지날 때 터널 끝에 비추이는 빛과 같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두려울 때 이길 수 있는 용기가 되기도 하고, 현실을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 주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버림 받았다고 생각될 때 혼자가 아니며 반드시 일어날 것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리고 희망은 현실의 슬픔을 이길 수 있게 합니다. 

얼마 전에 남아공에서 내년에 열릴 월드컵 조 추첨을 하는데 영상에 제가 보고 싶던 한 인물을 보고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 여러분도 아시는 만델라 전 대통령이 나와서 축하 메시지응 전하더라구요.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습니다. 만델라 대통령이 감옥에 있을 때에 딸이 아이를 낳아 아버지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아버지,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딸의 요청에 만델라는 아이의 이름을 ‘Hope’ 곧, 희망이라고 지었습니다. “너는 희망이야. 감옥에 있는 동안 희망이 나를 떠난 적이 없었지. 그리고 앞으로도 희망은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 그 당시 제가 충격을 받은 것은 그가 석방되던 날 전 세계 매스컴에 비춰진 만델라의 모습이었습니다.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참 자유자의 표정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습니다. 대권을 이어 받은 만델라 대통령은 한 맺힌 사람의 모습이 아닌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하는 사람으로 또한 세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평화의 상징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만델라에게서 희망이 떠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가운데 그동안 품어왔던 희망이 부서지고 깨져 절망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안나와 시몬은 그 희망을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사람에게 두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늙었어도, 남편이 세상을 떠나 희망이 없다 할지라도 여태껏 약속을 지키신 신실한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그들은 희망 중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둘째, 안나와 시몬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흔들림이 없이 기다렸습니다.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를 메시아인줄 알아본 사람은 두 사람 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메시야가 올 것을 알고 있었고, 오시면 맞이하리라 생각하며 수동적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두 사람의 기다림을 나타내는 동사는 수동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다림’이란 단어의 모양은 수동형입니다. 그러나 여기 두 사람이 기다린 기다림은 수동형이 아닌 능동형입니다. 메시야가 오실 것을 능동적으로 준비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 이는 성령의 인도를 받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25-27절에 보면 "--성령이 그위에 계시더라.---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성령의 감동으로--"라고 기록합니다. 그는 성령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성령이 기억하시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성령에 감동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당신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신 안에는 성령이 거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 성령을 근심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성령의 인도를 소멸치 말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열쇠는 거룩함입니다. 죄가 우리의 삶 안에 들어오면 성령이 근심하십니다. 더 이상 우리를 인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의 조건은 깨끗함입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깨끗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했다고. 안나는 84년 동안을 과부로 살면서 깨끗한 삶을 살았습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그는 거룩한 그릇,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산다는 것, 상식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못한 인생이 너무 많습니다. 인생길에는 희망을 무너뜨리는 사건이 참 많습니다. 절망의 늪을 만나 혼자 허우적거리며 나오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좌절의 골짜기를 걸어야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좌절의 골짜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좌절과 절망의 골짜기에서 빠져나와 훌훌 털고, 바라보는 그 약속의 나라로 갈 수 있었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서 오늘 내 삶을 살아가는 백성은 환경의 어려움 속에 휩싸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시몬과 안나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감사와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예수를 만났을 때, 무엇이라 고백합니까? 

30절에 보면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30절). 그의 말은 하나님께서 죄악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주신, 예수그리스도 메시아를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신앙고백입니까? 우리는 구원자 메시야 예수님을 고백했기에 성도의 반열에 설 수 있습니다. 또한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이방을 비추는 빛’이라 고백했습니다(32절). 빛이 있어야만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있을 때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불빛 하나의 소망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왔습니다. 

우리의 참된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가 떠나버린 곳에는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습니다. 그러나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초가삼간에도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는 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합니다. 이들은 주님에 대한 신앙 고백이 분명했습니다. 고백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는 장면입니다.그리고 그는 고백합니다. “주재(主宰)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29절). 이 말은 평안 가운데 눈을 감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평안은 완전한 평화(perfect peace)를 의미합니다. 크리스마스의 축복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평화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누가복음 2:14).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기전까지는 부분적인 평화를 맛볼 수는 있어도 완전한 평화를 맛볼 수가 없습니다. 일시적인 평안은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속적인 평안은 예수님을 만날때에만 체험됩니다.이제 그들은 다른 사람을 축복합니다(34절).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34절). 시므온이 축복하는 대상은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들, 일가친척들, 직장 동료들, 지역 시민들, 대한민국 국민들, 지구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축복을 하려면 먼저 축복의 원천을 알아야합니다. 만복의 근원은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 성령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축복을 주는 것처럼 말합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죄성이 있는 존재이기에 우리가 축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을 빌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평화와 소망, 능력과 은혜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진정 다른 사람을 축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축복해야 축복의 반응이 돌아옵니다. 여러분은 이미 받은 축복을 알고 누리며 타인을 축복하기를 기뻐하십니까? 38절을 보면 안나도 아기 예수를 바라보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구속되기를 바라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예수님은 이 높고 높은 곳에서 이 낮고 천한 곳에 골짜기를 넘어서 올 수 없는 환경을 넘어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오셨듯이, 넘어져 있고, 지쳐있고, 쓰러져 있는 나를 향해서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나를 잊어버리고 살지는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잊어버리지 않고 그 약속대로 나를 찾아오심으로 내 삶을 의미있게 만드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유일한 구원의 희망입니다. 그분을 만나면 삶의 고통은 사라지고 위로받고 평안을 체험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정말 구원받을 수 없는 죄로 말미암아 허무와 저주 가운데 죽어갈 영원히 멸망할 우리 자신들을 주님은 자신의 아들 독생자를 죽여서까지라도 구원하시고 사랑하십니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않고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따라서 아들까지 죽이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하지만, 아들을 보내는 그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 아들이 내려가면 반드시 죽을 것인데, 그것도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을 것인데, 죄의 저주를 뒤집어쓰고 죽을 것인데, 그 아들을 보내는 하나님의 마음은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날이라는 것을 우리는 한 번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두 축복에 익숙해지면 축복을 축복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족하고 불편한 가운데서도 이미 주신 축복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고난을 넘어서는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정부에서 이무 조건 없이 신종풀루 치료제 50만명 분을 북한에 전달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나누어야합니다. 세상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두 가지 유형의 인생이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가 어려서는 주로 받는 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숙해 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주는 것, 나누는 것의 중요성을 배워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숙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사도도 친히 그가 전도하고 양육한 에베소교회 지도자들에게 주는 마지막 말씀에서 행전20:35절에서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경험한 최대의 사건은 요한3:16에서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의 사건일 것입니다. 이 소중한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그들이 바로 여러분과 제가 아닙니까? 그런데 요한3:16을 경험하고 이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얼마나 요일3:16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로날드 사이더(Ronald Sider)라는 신학자는 요한3:16을 체험한 모든 성도들이 요일 3:16에 순종하고 있지 않는 한 아직 그의 믿음의 삶은 온전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요일3:16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어지는 1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나누라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과 구원의 복음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들끼리 말 먹고 잘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울타리를 벗어나 이웃과 세상을 향해 복을 나누는 사명을 감당해야 됩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부르실 때의 목적이 바로 복의 근원(=복의 통로)이 되게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축복의 웅덩이가 아닙니다. 흘려보내는 축복의 시냇물입니다. 

이렇게 사명을 감당할 때 그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이 더욱 풍성하게 축복하십니다. 잠11:24-25절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구제하고 나누는데 신기하게 더욱 풍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 성탄의 계절에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납시다. 희망의 노래를 다시 부릅시다. 희망이 없다고 하는 이야기는 모두 덮어두고 하나님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갑시다.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희망의 노래가 여러분의 가슴 깊이에서부터 시작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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