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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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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 2:8~14) 
 
 
이미 고인이 되었습니다만, 영국의 소설가 '존 프리스트리'라는 사람은 "내가 젊었을 때는 젊은이가 찬밥신세였다. 내가 늙으니까 이젠 늙은이가 찬밥신세다. 내가 줄을 잘못섰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줄을 잘못 섰다고 느낄 만큼 사는 것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는 시대가 오늘의 시대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샌드위치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위아래로 눌린 시대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더 많은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는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이 되면 신문을 보고, TV 뉴스를 봅니다. 라디오 뉴스를 듣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오시려나보다 하며 기다리기도 합니다. 지난밤 꿈을 되새기기도 합니다. 막연하하지만 어떻든 우편함을 들어다 보게 되고, 이메일을 열어보기도 하고,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열어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소식을 기다립니다. 오늘도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다  애꿎은 아이들이나 마누라한테 화풀이를 한바탕하고 초조하게 밖을 내다보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시험을 보고 결과를 디라리는 사람, 결혼식을 가디라는 사람, 입사할 날을 기다리는 사람, 군대에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놓고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 이들의 기다림은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춘향전에보 보면, 춘향이가 한양간 이몽룡이를 기다리면서 향단이를 향해 한탄하는 내용이 있는데 "오동추야(梧桐秋夜) 달 밝은 밤은 어이 그리 더디 새며 녹음방초(綠陰芳草) 빗긴 곳에 해는 어이 더디 가는고!"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은 동서양 가릴 것 없이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일 것입니다.  

성서의 땅, 성서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남달리 간절하게 기다리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이어지는 저희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야가 오시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메시야의 소식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천사들이 전해준 예수님의 탄생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주가 생긴 후에 들려온 가장 크고 기쁘고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은 

1. 큰 소식입니다.
  
세상의 소식들은 작은 소식들 투성이입니다. 그런 소식은 있으나마나한 소식들입니다. 그런 소식들은 세상에 어떤 영향력도 미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은 소식들을 전하느라 분주한 세상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빅뉴스를 쫓습니다. 그것을 충족하려는 사람들은 빅뉴스를 만들어보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그래서 파파라치가 활동을 하고 자극될만한 뉴스거리를 쫓아다닙니다. 그리고 더 강한 자극을 주기 위해서 성역을 넘나들고, 확대하고 과장하고 부풀립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식들이 빅뉴스라고 해서 귀를 기울여보면 우울한 소식이고 나쁜 소식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소식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소식보다 큰 소식입니다. 모든 인생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소식입니다. 모든 나라와 민족의 문화와 생활을 바꾸어 놓을 그런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버리시고 인간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 이것이 바로 큰 소식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를 구원하시고 새 생명을 주시려고 예수께서 오셨다는 소식이 바로 큰 소식입니다.  

2. 기쁨의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나시던 때는 그 어느 때보다 기쁨이 없고 여러 여러 세대 동안 슬픔과 혐오와 절망으로 가득차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한 천사가 목자들에게 임하여 말하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한 것입니다.
무서워 떨수 없에 없는 소식에 몸서리를 치고 살던 백성들에게 무섭지 않는 소식, 기쁨의 소식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소식입니다. 

이 세상에는 기쁨의 소식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슬픈소식이 있습니다. 
기쁜 소식은 전해주는 사람조차도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슬픈소식은 전해주는 사람까지도 싫어집니다. 그만큼 사람은 기쁜 소식을 소원합니다. 누구에게나 마음 설레게 하고 기다려지는 기쁜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기다리는 기쁜 소식이 다르겠지만 예수 오심의 소식은 만민에게 누구에게나 다 기쁨의 소식입니다. 

큰 소식이지만 결코 무섭지 않는 소식이 바로 성탄소식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기쁨의 소식이 되신 것처럼 "내가 기쁜 소식이 되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최종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3. 좋은 소식입니다.

 "복음" 즉 유앙겔리온이란 "Good News"입니다.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이란 뜻입니다. 
성서시대에 있어서 좋은 소식이란 첫째는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전쟁에서 승리는 포로된 것으로부터 자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금이 탕감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당시에는 백성들에게 높은 세금이 부과되었습니다.세금내는 것조차도 어려워서 스스로 자유인에서 종이 되는 길을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파산자들의 운명은 노예의 운명입니다. 그런데 빚이 탕감되었다는 것은 자유인으로 복권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웃지못할 일이지만 장모가 오신다고 했는데 오시지 않는다고 하는 소식이었다고 합니다. 

성서시대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소식이 바로 좋은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예수오심이 곧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결이 된다는 의미에서 바로 좋은 소식입니다. 기독교의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것이 "죄"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문제의 족쇠로부터 풀어진다는 것입니다.

사52:7에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했습니다. 그리고 롬10:15에서도 보면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하셨습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아름다운 발을 가진 성도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입을 가진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큰 소식, 그러면서도 기쁨과 좋은 소식이 기다려지는 시대입니다. 금번 성탄의 소식이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가장 크고 가장 기쁘고 가장 좋은 소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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