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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마음의 성탄 준비 (눅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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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성탄 준비 (눅 3:3~6)


주일 학생들이 부르는 복음송 가운데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예수님 맞을 준비됐나? 진정 거듭 났나요 예수님 피로, 내 옷은 흰 눈보다 더 희어졌나요? 예수님 맞을 준비됐나?♪ 역사의 종말에 이 땅에 재림하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됐느냐는 노래입니다. 국가적으로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인한 경제 불황, 민주 정신이 투철했던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상실감과, 북한의 두 번째 핵실험과 제 3차 서해 교전으로 인한 남북 간의 긴장 고조, 교회적으로는 중직자 투표와 교육, 그리고 126명의 임직식 등으로 정신없이 지내는 가운데, 어느새 성탄절이 3일 후로 박두하고 말았습니다. 

성탄을 3일 앞둔 오늘 이 시간, 우리는 과연 예수님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를 살펴보면서, 지금부터라도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마음의 성탄 준비’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한 나라의 국가 원수가 다른 나라를 방문하려고 할 때에는, 소위 선발대라는 것을 보내서,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나라 안의 어떤 도시를 방문할 때에는, 반드시 비밀 요원을 보내서, 사전 점검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사람들 중, 가장 위대한 선발 단원을 보내셨는데, 그가 곧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세례 요한은 만 주의 주가 되시고 만왕의 왕이 되시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훌륭한 선발 단원이었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보라 차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고, 또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도 예언하기를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의하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선발 단원으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 또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도 하였습니다. 

‘광야의 소리!’ 이를 다른 말로 야성이라고 합니다. ‘광야의 소리’라는 말을 본떠서 교계 신문 가운데는 ‘들 소리 신문’이란 것도 발행되고 있습니다. 광야의 소리는 궁중의 소리와는 다릅니다. 궁중에는 ‘지당하옵니다.’ 또는 ‘황공하옵나이다.’ 무슨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는 등의 교활하고 간사한 아첨꾼의 말은 많아도, 올바른 직언은 찾아보기 힘든 곳입니다. 그러나 野聲에는 귀에 거슬리고 비수같이 날카로운 면이 있긴 하지만, 거기엔 바른 소리가 있고, 참된 민의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슬기로운 통치자라면, 인의 장막에 쌓여, 아첨꾼들의 말하는 것만을 들을 것이 아니라, 야당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재야의 목소리도 경청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나 장로는 야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는 가를 알아야 하고, 또한 성도들은 야성적인 설교를 잘 들을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한 선발 단원이었던 세례 요한은, 그 자신이 ‘광야의 소리’ 즉 ‘野人’인지라, 그의 말 역시 아주 단도직입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광야의 소리, 세례 요한의 첫 마디는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회개하라!’ 이 말은 전도자의 입에서 처음 나와야 할 마땅한 소리입니다. 세례 요한이 전도하며 처음에 외친 소리가 ‘회개하라.’는 말씀이었으며, 예수께서도 천국 복음을 전하실 때, 제일 첫 마디가 ‘회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렇듯 복음 전도자가 무엇보다도 먼저 전파해야 할 것은 회개의 복음이며, 따라서 말씀을 듣는 자가 먼저 할 일은, 무엇보다도 회개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개야말로 구원의 입문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한 선발 대원으로서의 세례 요한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지금은 아스팔트다 고속도로다 해서 길들이 무척 좋아졌지만, 어디 옛날이야 그러했습니까? 그래서 옛날 왕들의 행차가 있으면, 의례히 많은 백성들이 동원되어 길 닦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옛날만 그러합니까? 강원도 같은 곳은 아마 지금도 비포장도로가 많을 것입니다. 저의 군대 생활 경험을 회고해 보면, 그 당시 군수품 보급로나 작전로는 대부분 매우 험한 비포장도로였습니다. 그래서 사나운 폭우라도 쏟아진 후면, 그렇지 않아도 험한 길이 얼마나 험악해지는지 모릅니다. 도로 곳곳에 깊은 골이 패이고, 울통불통한 돌멩이와 바위가 드러나며, 차량 통행이 두절되다시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형편에 사단장이나 사령관이 통과하게 되면, 모든 군인들이 동원되어 도로 보수 작업을 하고 평탄 작업을 하게 됩니다. 물론 군수품 보급로나 군사 작전로 확보의 목적도 있겠지만, 일면 상관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보수 도로 작업임도 부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 기억 가운데 오래 동안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아주 불쾌한 기억이 한 가지 있습니다. 화순에서 처음 목회를 할 때인데, 그 때 능주에 정부에서 지원한 의료 병원 개원식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불도저가 동원되어 울통불통한 비포장도로를 고르게 하고, 물 뿌리는 차가 동원되어 먼지가 나지 않도록 하고, 도로변의 미화 작업을 하는 등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흙으로 쌓은 담벼락에다가 페인트칠까지 해댔습니다. 

그래서 무슨 대통령 행차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웬걸 그게 아니고,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양이 지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작태들입니까? 이렇듯 한낱 대통령의 딸만 온다고 해도, 그렇듯 야단법석을 떨고, 생각만 해도 구역질나는 아부와 아첨을 하며 영접하는 인간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의 아들이요, 왕 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성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어떠합니까?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선발 대원으로 왔던, 하나님의 특사 세례 요한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칩니다. “이제 곧 왕중 왕이신 메시야가 오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길을 보수할 것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고치고, 너희 심보를 고치고, 너희 삶을 고쳐라.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라!” 세례 요한은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본문 말씀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습니다.    

1. 모든 골짜기가 메워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도로를 개설하려고 하면, 불도저로 밀어서라도 골짜기를 메워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탄의 예수님을 모시려면, 마음의 골짜기를 메워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냥 골짜기라 하지 않고, ‘모든 골짜기’가 메워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골짜기가 너무나 많습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의 골짜기가 메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골짜기가 생기면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어두운 곳이 있으면, 주님을 영접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이 악을 행하므로, 빛을 미워하고 어둠을 더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어두움은 빛을 미워하는 까닭에, 빛 되신 예수님을 영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에 골짜기가 생기면, 그만 우리 마음에 균열이 생겨 버립니다. 그래서 두 마음이 생깁니다. 두 마음이 생기면, 두 주인을 섬기는 무서운 죄를 범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골짜기가 생긴 두 마음으로는, 결코 성탄의 주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안의 골짜기도 다 메워져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골짜기가 하도 많아서, 주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시게 했는가 모릅니다. 고린도 교회는 아볼로파, 바울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등의 많은 골짜기가 생겨났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애통하는 마음으로 고린도전. 후서를 써 보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계 안에, 아니 우리 교회 안에 이렇게 나위어진 골짜기들이 없습니까? 골짜기처럼 이리 저리 나뉘어진 상태에서, 어떻게 기쁨으로 성탄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가정의 골짜기도 메워져야 합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의 골짜기가 날마다 벌어지는 상태에 있는 분은 없습니까? 부모와 자녀간의 골짜기는 없습니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골짜기는 없습니까? 형제간의 골짜기는 없습니까? 이러한 골짜기들이 다 메워져야 합니다. 지역감정 같은 아주 나쁜 골짜기도 다 없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히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2.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산들은 산처럼 높은 교만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산과 작은 산은 낮아져야 한다고 했으니, 큰 교만 작은 교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은 낮아지고 겸손해야, 주님을 영접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교만은 굉장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실 때, 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고 반박하였습니다. 

그러한 유대인들을 향하여, 세례 요한은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만을 꺾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쓸데없는 우월감과 교만으로 가득 차서, 예수님을 영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탄에 오신 주님은 자기를 낮추시었습니다. 

얼마나 낮추셨습니까? 빌 2:6-8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보좌에서 저 낮은 마구간까지 낮아지고, 무덤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주님의 ‘卑下’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모시려면 겸손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풀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 신앙 인격이 천박하여서, 무슨 직분만 있어도 교만하고, 재물만 있어도 교만하고, 지식이 있다고 교만하고, 또는 신앙이 좀 있다고 교만하고, 무슨 공로만 조금 있어도 교만하기를 잘합니다. 꼭 남보다 더 배우고 가진 자들만 교만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위치도 분수도 모르고 천방지축 교만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지식이 없고 교양이 부족한 사람이 도리어 더 나서서 잘난 체하고 떠든다는 속담입니다. 실수와 착각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우스갯소리로 실수는 ‘고기를 먹다가 자기 혀를 씹는 경우’이고, 착각은 ‘자기 혀를 고기인 줄 알고 씹는 경우’라고 말합니다. 비슷한 말 같지만 실제 의미고 말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실수는 다시 고쳐서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착각은 구제되기 힘든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실수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착각에 빠져 자신의 분수나 위치를 망각하거나 이탈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탄의 주님을 영접하려고 하면 산처럼 교만한 마음이 낮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만 흐르듯, 하나님의 은혜도 그러합니다. 이슬도 낮은 곳에만 내립니다. 마찬가지로 이슬 같은 성령의 은혜도, 겸손한 심령에만 임하는 것입니다. 성탄의 주님을 모셔 들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산처럼 높아진 모든 교만을 버리고, 겸허하게 자기의 분수와 위치를 지킬 줄 아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3. 굽은 것이 곧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굽거나 꾸부러져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이 굽다는 것은, 교활하고 간사한 것을 뜻합니다. 꾸불꾸불한 것이 뱀의 특성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슨 일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항상 악하게, 나쁘게만 비비꼬아서 생각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꾸불꾸불한 마음 때문에 그러합니다. 진실치 못한 언행, 이중인격 등이 다 굽은 마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편견이나 선입견 역시 굽은 생각입니다. 이렇듯 마음이 굽고 바르지 못하면, 주님을 영접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여자 교수의 간증입니다. 이 분이 어렸을 때 6.25사변이 일어나서 아버지는 전사하고 어머니가 혼자 남대문으로, 서울역으로 다니면서 떡 장사를 해서 자식을 공부시켰습니다. 이 분이 대학원을 졸업하고 공부 잘하는 남편을 만나서 함께 외국 유학을 갔다가 돌아와서 대학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둘이 대학 교수하면서 수입이 좀 넉넉하니까 이 분이 남편을 설득시켜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함께 살다가 어머니 생신이 되어 생일잔치를 하면서 딸이 어머니에게 묻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소원이 뭐에요.” 그때 어머니가 조용히 대답을 했습니다. “딸아, 네가 내가 다니는 교회에 다니면 소원이 없겠다.” “알았어요. 제가 어머니 다니는 교회에 나갈게요.” 그전에는 어머니 혼자 먼 길을 버스 타고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런데 딸이 교회에 나오면서부터는 자가용으로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첫날 그 권사님의 딸이 교회에 나왔다고 하니까, 새 가족에서 박수치면서 환영해 주었습니다. 

이 분이 환영을 받고 친교실에 앉아 있는데 한 성도가 오더니 “아이고 교수님, 제 아들이 실력이 시원치 않아서 대학에 번번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들어가는 길이 없을까요?”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조금 있다가 저쪽에서 여 집사들끼리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휴 저것은 새로 와가지고 너무 설쳐” 하면서 흉을 보며 험담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또 건넛방에서 남전도회 무슨 회의를 한다는데 “혼자 해먹으라고 그래” 하고 삿대질을 하면서 서로 싸움을 합니다. 그것을 보고 이 분이 “이 교회 두 번 다시 안 온다.” 각심을 하고, 어머니를 강제로 끌다시피 해서 집으로 갔습니다. 친정어머니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딸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오늘 교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딸은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면서 두 번 다시 교회에 안가기로 작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눈을 지그시 감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날 평생 교회에 다녔어도 하나님 한분 좋아서 다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불평하는 소리를 하나도 듣지 못했는데, 너는 어쩌다가 그렇게 교회에 와서 불평하는 소리만 들었니?” 이 말에 대학 교수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면서 살기도 인생이 부족한데 너는 어찌해서 불평할 것만 봤니?” 자기는 대학원도 나오고 박사가 되었기에 속 깊고 생각 있는 인생으로 자부해왔는데,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자신이 얼마나 속 좁은 사람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보니 어머니가 어떻게 위대한지 자신이 그렇게 왜소할 수가 없었습니다. 박사라고, 대학 교수라고 목에 힘주고 살았는데, 너무 작고 왜소한 자신을 본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큰 사람이 누구입니까? 큰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제발 좁쌀처럼 작은 마음이 아니라, 큰마음을 갖고 살고, 넓은 마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멋지고 매력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험한 길이 평탄하여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험한 길은 굴곡이 심한 길을 말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굴곡이 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굴곡이 심해서는 주님을 영접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 동안에도 몇 십번씩 마음이 변하고, 우리의 신앙생활 자체가 너무나 변태적이어서, 온도계처럼 환경과 형편을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믿음직스럽고 지속성이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역자가 바뀌고, 구역이 바뀌어도, 굴곡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성탄절이 며칠 후로 박두한 오늘 ‘마음의 성탄 준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독교는 마음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축복은 마음에 있습니다. 기독교의 보화는 마음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죄 사함 받고 천국 가고 하나님의 자녀 되고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고 다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기도해도 마음이 청결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교회를 봉사해도 마음이 깨끗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이태리의 문인 빠삐니는 말하기를 “오늘날 세계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이며, 인간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다.” 라고 했습니다. 또한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뀌어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깎듯이 우리 마음을 다듬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마음들은 돌보지 않아서 너무 황폐해졌습니다. 병들었습니다. 더러워졌습니다. 우리 마음에 원망과 불평과 교만과 악한 마음이 가득 차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고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하는데, 예수님의 마음을 전혀 닮은 데가 없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한 마디로 “주님께서 너의 마음과 삶에 들어가시는 길에 놓여 있는 모든 장애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제거하라. 곧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 모두 나의 심성, 나의 마음, 나의 심보를 돌아보고, 한 해를 돌아보고,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나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고,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골짜기처럼 주님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누어진 것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신앙 공동체를 나누고 분리시키는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높은 산 작은 산처럼, 큰 교만 작은 교만 할 것 없이, 모든 교만한 마음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뱀처럼 꾸불꾸불하고, 이중 인격적이고, 정직하지 못하고 순수하지 못한 마음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교역자만 바뀌고 환경만 조금 바뀌어도 굴곡이 심한, 신앙생활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흰 눈이 하얗게 덮인 대지처럼, 희고 깨끗한 여러분의 마음의 왕좌에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모셔 들이고 맞이하는, 참으로 기쁘고 복된 성탄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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