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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이더스의 손 (렘 1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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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더스의 손 (렘 18:1~12)


그리스 신화에 프리지아(Phrygia)의 왕 마이더스(Midas)가 등장합니다. 그는 매우 욕심이 많은 왕입니다. 마이더스 왕은 재산이 많아질수록 더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그는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에게 자기의 손에 닿는 모든 것은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디오니소스 신은 실수로 마이더스 왕의 부탁을 들어줍니다. 그날로부터 마이더스 왕의 손에 닿는 모든 것은 황금으로 변합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신이 났습니다. 천하를 모두 가진 것처럼 기뻤습니다. 그런데 점점 불행이 닥쳐옵니다. 그가 밥을 먹으려고 음식에 손을 대는 순간 황금으로 바뀝니다. 이제는 아무 음식도 먹을 수 없는 처지가 됩니다. 실의에 빠진 마이더스 왕은 무심코 사랑하는 딸을 품에 앉습니다. 그 순간 황금 덩어리로 변하고 맙니다. 결국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탐욕의 결과는 불행을 초래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마이더스의 손은 인간의 탐욕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는 마이더스의 손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무엇이든지 손을 대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능력의 손을 말합니다. 최근에 외식업계의 마이더스 손이라고 불리는 오진권 씨의 <맛있는 성공> 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그는 중졸학력이지만 지금은 전주대학교 객원교수로 섬기고 있습니다. 1000개의 식당 가운데 오직 6개만이 성공한다는 현실에서 우리나라 외식업계를 이끌어가는 CEO가 됐습니다. 놀부보쌈을 시작으로 사월에 보리밥 등 외식업계의 마이더스 손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는 ‘밥을 파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시간을 판다’ 말합니다. 
 
이제 그는 크리스쳔 CEO로써 사당 옆 14번 출구에서 매일 아침 노숙자들을 위해 밥을 퍼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는 언제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에 밥퍼 주는 시간과 식당에 줄서서 기다리는 손님을 볼 때 행복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오진권 씨와 같이 성공한 사람들을 가리켜 마이더스의 손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마이더스의 손을 다른 관점에서 보았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손을 마이더스의 손으로 보았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녹로 위에 흙덩이를 올려놓으시고 토기를 빚으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흙덩어리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어떻게 빚으시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결정됩니다. 저는 토기장이신 하나님의 손이 바로 우리 인생을 만들어 가시는 마이더스의 손으로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을 먼저 살펴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의해 남왕국 유다가 멸망당한 주전 586년을 전후하여 약 40년 동안 유다 왕국에서 활동한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눈물로써 하나님의 말씀과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의 눈물의 호소와 애원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습니다. 
 
이 때 예레미야의 마음은 상할 대로 상하였고, 실망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그의 모든 힘은 이제 소진되었고, 그의 앞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조국의 멸망만이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예레미야가 실망과 절망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한 소망의 비전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한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토기장이는 그가 정성을 모아 만든 진흙을 회전 녹로 위에 올려놓고, 그릇을 빚다가 잘 되지 않으면, 그것을 부수고 다시 그가 원하는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바로 그때, 이런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십니다. 6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아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시는 희망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비록 지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만 가고 있고, 그래서 멸망을 당할 것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이 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새롭게 빚어가시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이스라엘을 새롭게 빚어 더욱 아름답게 만드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마이더스의 손이신 하나님의 손에 들려져서 하늘의 뜻을 이루어가는 능력 있는 삶, 축복의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을 오늘 말씀을 통해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코에 생기(living soul)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유일하게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가 됐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흙으로 지으셨을까요? 단단한 쇳덩어리로 인간을 만드셨다면 깨지거나 부러지지도 않고 견고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지으신 이유가 있습니다. 흙의 특성을 알면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될 존재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1)흙은 생명을 의미합니다.  모든 생명은 흙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만일 흙이 생명의 양분을 공급하지 않으면 식물은 물론이고 새나 동물 그리고 사람도 살 수 없습니다. 심지어 바다 속에 사는 물고기조차도 흙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생명인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은 인간은 생명을 서로 나누면서 살아야 할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생명을 나누고, 생명을 살리는 자로 살아갈 때 인간다운 인간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2)흙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흙은 인간들이 버리는 온갖 더러운 오물들을 모두 품습니다. 만약 흙이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를 품어주지 않는다면 이 지구는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흙은 어느 것이든 구별하지 않고 모두 품어줌으로 깨끗하게 정화시킵니다. 흙은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사랑으로 품어 줄 때 나의 존재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사랑하면 사는 인생이 바로 흙으로 나를 지어주신 의미를 깨닫고 사는 삶입니다.

3)흙은 정직을 의미합니다. 흙은 어떤 경우에도 거짓을 행하거나 속이지 않습니다. 콩을 심으면 반드시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납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합니다. 흙은 정직함의 특성을 지닙니다. 인간은 정직한 자의 삶을 살 때 자신의 존재 의미를 깨닫습니다. 남을 속이고, 거짓을 일삼는 자는 스스로 속는 인생을 삽니다. 결국 불행한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정직할 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삽니다.

4)흙은 도구됨을 의미합니다. 흙은 불에 타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을 부어 반죽을 한 뒤에 불에 구우면 단단한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흙은 결코 자기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토기장이가 빚는 대로 자기를 맡길 뿐입니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따지거나 항의할 수 없습니다. 다른 도구와 비교해서 불만을 품지도 않습니다. 오직 토기장이의 뜻에 자신을 내려놓고 순응할 뿐입니다. 그러면 토기장이의 손에 의해 아름답게 만들어지고, 쓰임 받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지으신 이유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도구됨의 특성을 인정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흙덩어리 존재임을 인정하고 살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흙덩어리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무엇이 되겠다고 토기장이에게 주장하거나 말할 수 없습니다. 나의 모든 삶은 오직 토기장이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나의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확실하게 믿습니까?” 아멘!
 
그렇다면 여러분의 입술에 어떤 열매가 있어야 할까요? 원망과 불평 있을 수 없습니다. 남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것 있을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9:20-21) 
 
우리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결코 어떻게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 나를 이렇게 대우하시느냐고 따질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는다면 오늘 주어진 삶에 더 충실해야 합니다. 

비록 때로는 아픔이 있고, 고통스런 시련의 터널을 통과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묵묵히 인내하며 나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언제나 하나님의 신비로 채워져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상식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난해한 방정식과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우리는 제자대학 3기 아웃리치 시간에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기는 언제였는지, 그리고 가장 춥고 힘든 시기는 언제였는지를 서로 나누며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떤 분도 시온의 대로를 달려온 분은 없었습니다. 남모르는 아픔과 고통이 배어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때로는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이기 조차 힘든 아픔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간임을 고백하셨습니다.
 
인생의 행복은 멀리 있는 환상의 파랑새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손에 들려있는 진흙 같은 존재임을 먼저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겸허하게 인정할 때 우리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으로 살 수 있습니다. 원망이나 불평이 아닌 기쁨과 감사로 채울 수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과 자녀와 건강을 잃은 욥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욥10:8-9) 
 
욥은 고난의 터널을 지나면서 흙으로 만들어진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아직도 내 인생이 영원할 것처럼 사는 것은 교만입니다. 언제 우리 인생이 티끌처럼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질지 모릅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모든 것이 티끌처럼 날아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직도 내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 시간 겸손하게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한 덩이 진흙 같은 존재임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나를 만들어 가시도록 자신을 내어 드리십시오. 내가 만들어 가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당신의 뜻에 따라 빚어 가실 때 더 아름답고, 복된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리는 삶입니다.
 
토기장이가 녹로를 돌릴 때는 분명한 계획이 있습니다. 지금 눈앞에는 흙덩이가 놓여 있지만 그 마음속에는 작품이 그려져 있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녹로를 돌리는 토기장이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하여 우리를 지으신 분명한 목적을 계시하십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여기서 ‘만드신 바’ 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포이에마(poiema)’입니다. 여기서 영어로 시(時)를 의미하는 ‘poem’이란 단어가 나왔습니다. 시는 인간의 언어를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압축해서 만들어내는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한 생명 한 생명을 이 땅에 보내실 때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아름다운 작품으로 지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13-14)
 
개역성경에는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다’ 고 표현됐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함과 신비로움이 담겨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신묘막측하게 지으셔서 ‘보시기에 심히 아름답다’고 감탄사를 연발하시면서 이 땅에 보내셨을까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라”고 미리 모태로부터 예정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행하며 살라고 보내신 줄 믿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알고, 행할 때 우리 인생은 의미 있고, 행복합니다.

우리 장로교 요리문답 첫 번째가 바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을 정의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영화로우신 분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예배를 통해 경배와 찬양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기쁨이 될 때 행복한 삶이 됩니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거나, 자기 이기심의 노예로 사는 자는 불행합니다. 후회하는 인생을 삽니다. 그러나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구속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로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자는 환경을 초월한 기쁨과 행복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할 우리는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나는 열심히 인생을 사는데 삶의 의미가 없고, 왠지 자신이 불행하게 여겨지십니까? 삶의 목표를 다시 정조준하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의 목표가 하나님 중심이 아닌 나 중심으로 맞춰져 있으면 그 인생은 방황하게 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흔들리게 됩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한 뜻이 무엇인가를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주시고, 가정을 주시고, 일터를 주시고, 교회를 허락하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모든 것이 결코 나만의 유익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나를 하나님의 창조의 작품으로 지으시고, 나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인생을 살 때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나의 이기적인 목적에 이끌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리는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빚으실 때는 용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대로 적재적소에서 아름답게 쓰임받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왜 이렇게 만들어서 보잘 것 없는 일을 하게 하시느냐고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게 주신 능력과 은사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아멘! 

 집에 가면 그릇의 용도가 정해져 있습니다. 귀한 그릇도 있고, 그렇지 못한 그릇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귀하지 않은 그릇을 모두 없앨 수는 없습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 졌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임 받느냐는 더욱 중요합니다. 아무리 귀한 금으로 만든 그릇이라도 더러우면 쓰일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그릇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능력과 지식이 있어도 깨끗하지 못하면 주님께 쓰임 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이 언제 쓰시고자 하셔도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정결함으로 지켜야 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주님의 쓰심에 예비 된 믿음의 삶이 바로 의미 있고, 칭찬받는 복된 삶이 됩니다.

여기 토기장이와 진흙에 대한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든 진흙덩이가 그렇듯이 질그릇으로 최고의 작품이 되어서 왕궁의 식탁이나 부잣집의 장식장에 올라가는 것이 최고의 꿈이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들의 토기장이가 이 나라 최고의 장인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만든 그릇들은 거의 다 왕궁이나 부잣집으로 팔려나갔다. 어느 날 토기장이가 내 앞에 앉아서 나를 반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작품으로 태어날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토기장이가 빚는 나의 모습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주둥이에 유난히도 넓은 손잡이, 나를 지켜보는 다른 진흙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난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를 이런 흉측한 모습으로 빚은 토기장이의 손길이 밉고 또 미웠다. 마지막으로 불가마에서 나온 내 모습은 정말 절망적이었다. 
 
토기장이가 날 왜 이런 모습으로 빚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토기장이는 내가 완성되자마자 나를 품에 앉고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가난한 농부의 집이었다. 아무리 나를 이렇게 가난한 농부에게 팔려고 했어도 이런 모양으로 만든 토기장이가 나는 생각할수록 미웠다. 차라리 바닥에 떨어져 내가 깨어 없어지기를 바랄뿐이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온 농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난 너무 놀라고 말았다. 그 농부는 농사일을 하다가 두 손이 잘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평범하게 생긴 그릇을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토기장이는 이 사실을 알고 이 농부를 위해 손이 아닌 팔로 사용할 수 있는 나처럼 생긴 그릇을 만들었던 것이다. 나를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농부에게 토기장이가 말했다. “더 고마운 것은 나요. 내가 질그릇을 만들면서 이렇게 기뻤던 적은 처음이요. 이 그릇은 나의 최고의 작품이요.” 토기장이가 만든 최고의 작품이 나라는 사실을 난 그 때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빚던 토기장이의 그 따스한 손길을 그제야 느낄 수가 있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감사하는 삶, 그것이 바로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모든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능력의 손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모든 병든 자를 치유하는 회복의 손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모든 슬픔당한 자를 보듬어 주시는 위로의 손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오늘도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비록 보잘 것 없고, 미련한 인생이지만 마이더스의 손이신 하나님의 손에 터치가 이루어지면 우리들의 삶은 새롭게 변화되고,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걸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시기를 기대하십니다. 먼저 나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있는 한 덩이 흙과 같은 존재임을 겸허하게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사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채우십시오. 그 속에 마이더스의 손이신 하나님이 임하셔서 더 의미 있고, 행복한 인생으로 채우실 줄로 믿습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 주셨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잠잠히 누워 계시오 
그분께서 그대를 빚으시도록!
오 주님, 내가 자복하오니 능숙한 토기장이 되시고
나를 잠잠한 진흙 되게 하소서.
나를 빚으소서 오, 당신의 뜻대로
나를 빚으소서.
나는 묵묵히 엎드리며 기다리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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