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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보시는 우리의 가치 (출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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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보시는 우리의 가치 (출 19:1~6)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싶었던 한 청년이 현자를 찾아가서 물었답니다. “사람의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되는 것입니까?” 청년의 물음에 현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서랍에서 보석 하나를 꺼내주며 말했답니다. “이 보석을 갖고 시장에 가서 값을 물어 보시오. 단, 팔지는 말고 이곳저곳을 돌면서 값만 물어 보시오.” 청년은 그의 말대로 시장에 나가 보석 값을 물어 보았답니다. 먼저 과일가게에 들렀더니 그 주인이 5천원이라고 했답니다. 채소가게에 가서 물어 보니 만원이라고 했고, 철물가게에서는 3만원이라고 했답니다. 가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시장 곳곳을 돌며 물었는데 물을 때마다 그 값이 달랐답니다. 마지막으로 보석가게에 가서 물었답니다. 그 보석을 감정한 보석상은 놀라서 말했답니다. “당신에게 솔직히 말하겠소. 이 보석은 참으로 귀한 것이어서 금액으로 말하기조차 어렵소. 당신이 요구하는 금액을 모두 다 줄테니 이것을 나에게 파시오.”라고 했답니다.

현자와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청년을 팔지 않고 현자에게 돌아와 그 동안의 일들을 그대로 얘기했답니다. 청년의 말을 듣고 현자가 조용히 말했답니다. “이 보석은 정말 귀한 보석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그것을 5천원이나 만원의 가치로 보고, 누구는 무한대의 가치로 보고 있소. 그것은 곧, 이 보석이 아무리 훌륭한 가치를 지녔다 해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이오. 

사람의 가치도 이와 다를 게 없소. 그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가치가 될 수 있는 것이오.”라고 말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 따라 다른 가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얼마 정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치를 어떻게 부여해 주고 있을까요? 
노예에서 탈출하여 가나안 땅을 가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나님은 어떤 가치를 부여해 주고 있습니까? 

5절 6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 지 3개월이 되었을 때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올라갔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 계약을 합니다. 본격적으로 시내산 계약을 하기 전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계약의 한 당사자인 이스라엘 사람을 어떻게 보시고 계시는가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첫째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제사장 나라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셋째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미래형입니다. 지금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그렇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그 조건을 만족하면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조건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첫째가 “내 말을 잘 듣고” 둘째가 “내 언약을 지키면”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동일하게 베드로 전서에 나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라는 말씀입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미래형이 아니라 완료형입니다. 이미 그렇게 한 것입니다. 조건이 붙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택하신 족속이라는 말이 하나 더 들어 가있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소유된 백성으로 만들어 주신 이유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바로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기 위해 그런 신분으로 바꾸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보시는 우리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미래형이 아닙니다. 완료형입니다. 행위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해야만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요구를 다 이루심으로 그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 언약으로 말미 이미 신분이 바뀐 사람들입니다. 율법의 청종과 순종에 의하여 신분을 바꾸어 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그리고 그 사실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선물을 주심으로 우리의 신분을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십자와 부활을 통하여 택한 백성,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자아상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1.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었다는 소속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조건이 좋지 않고 부족하게 보여도 폐물이 아니라 보물 같은 존재입니다. 
피카소의 작품 `꿈'이 4천 8백 40만 달러(5백71억 원)에 팔린 기사를 보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피카소가 그렸기 때문입니다. 가치라는 것은 누구의 소유냐가 중요합니다. 소속이 어디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모든 민족 중에 내 소유가 되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소유(세굴라)라는 말은 가치 있는 어떤 것, 어떤 물건이나 대상을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따로 구별한 것 등의 뜻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소유된 것으로 관계 개념입니다. 이스라엘 자체의 가치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가지므로 특별한 보물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는 말입니다. 

전도서는 보배(전2:8)로, 말라기에서는 특별한 소유(말3:17)로, 신명기에서는 보배로운 백성(신26:18)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시135: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의 소유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단의 소유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노예민이 아니라 자유민이라는 것입니다. 시내산 언약을 통하여 시내산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궁극적으로 시내산 언약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앗수르에게 망하고 바벨론 포로가 되었습니다. 시내산 언약을 완성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다 행하시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였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킨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와 보혈이라는 특별한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신 것입니다. 사단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분명한 소속감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4-6)”

우리는 분명한 소속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석같은 존재로 우리를 대해 주십니다. 세계의 주인, 전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해 주었습니다. 존귀한 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시 16:3)"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존귀한 자로 가치를 부여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이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우리 민족은 별수 없이 엽전이야, 우리 교회는 어쩔 수 없어, 우리 아이는 구제 불능이야. 당신이 뭐 안다고, 우리 집은 별수 없어" 

이런식으로 자아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출신이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아름다우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가정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소유가 문제가 아닙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 

사람이 무엇이라고 해도 우리 하나님이 위대한 걸작품으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시22:10)" 시편기자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오래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스코틀랜드의 숲 속 한 동네에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답니다. 그 강아지는 오랜 동안 길을 잃고 헤매어 굶주림에 거의 죽어가고 있었답니다.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어떤 사람이 강아지를 보니까 이름표가 붙어 있었답니다. "밥스"였답니다. 그리고 그 밑에 "나는 이 나라 왕에게 속했습니다."라고 쓰여있었답니다. 왕의 강아지였던 것입니다. 왕의 부처가 에딘바라성에 휴가를 왔다가 그를 잃었답니다. 수백 킬로나 멀리 떨어진 왕과 강아지를 연결시켜준 것은 바로 이 이름표였습니다. 

우리에게는 확실한 이름표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인쳐 주셔서 하나님의 아들 딸로 삼아 주셨습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이름표가 확실하게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는 것은 십자로 인치신 이름표를 보는 것입니다.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소속의식을 가지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경우도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9절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8-39)”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히 5:5)”고 말씀하십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힘 전혀 없을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 잡아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너는 내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언제나 변함없이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 고통 해산의 그 고통으로 내가 너를 낳았으니 보배같은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신분의식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한 소유로 삼아 주실 뿐 아니라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은유적인 차원에서 고대의 극히 높은 위치를 점하였던 제사장처럼 이스라엘이 그렇게 놓은 위치를 점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행하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위해 특별히 선택된 민족으로서(4:22) 하나님과 열방 사이를 중재하는 제사장이 됨과 동시에 그들을 다스리는 왕권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이러한 특권을 상실하였습니다(롬 11:20) 하나님과 열방 사이에서 열방을 대신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축복을 열방에게 전달하는 나라로서의 특권을 상실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영적 특권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벧드로 전서 2장 9절에 보면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의 특권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직위를 제사장 나라 즉 왕같은 제사장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노예가 아닙니다. 이제는 사탄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왕"이자 "제사장"입니다(히10:19). 실제의 왕이나 제사장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왕권으로부터 비롯된 왕적인 기능과, 그의 제사장직으로부터 비롯된 제사장적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왕 중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산 왕 같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 주는 제사장적 직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문제가 있어도 우리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청와대에 누가 마음대로 출입하겠습니까? 대기업 회장실을 누가 마음대로 출입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피값으로 왕자가 된 것입니다. 예배의 특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특권을 주시고 있습니다. 능력없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 말씀합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우리는 자녀로서 삶의 특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죄의 노예, 물질의 노예, 아름다움의 노예, 명예의 노예, 환락의 노예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종"의 멍에가 아니라, "왕"으로서의 통치권이 있습니다. 계시록 5장 10절 말씀입니다.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이제 우리는 왕노릇 해야 됩니다. 

우리는 영적이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노예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 19절에서 말씀합니다. “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예수님 부활 승천하시면서 마가복음 16장 17절로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우리는 영적 권세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축복해 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에게 축복권이 있는 것처럼(민 6:22-27),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에게도 이제 축복권이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사람들은 돈이라는 경제적 재산과 건강이라는 신체적 재산, 그리고 지식, 인격, 양심, 기술과 같은 정신적 재산이 없으면 초라하게 생각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마른 막대기같은 농부 삼갈을 사용하여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백명을 물리쳤습니다. "나는 할 수 없어 우리 가정은 어쩔 수 없어, 우리 교회는 뻔해, 우리 민족은 앞날이 막막해" 이런 식으로 자신을 과소평가하며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매사 돈이 없어, 실력이 없어, 가진 것이 없어, 권력이 없어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목동 다윗을 통해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렸을 때 어린아이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배를 채웠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지팡이를 사용하여 홍해를 가르시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였습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고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이가 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실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건강을 잃어 이제 끝이났다고 포기하지는 않습니까? 우리 가정, 우리 아이들은 희망이 없다고 주저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영국의 심리학자 J. 하드필드 박사가 자신감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넌 틀렸어. 이젠 끝났어!"라고 자괴감을 줄 때 우리는 실제 가진 능력의 30%도 채 발휘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넌 할 수 있어! 넌 특별한 사람이야! 저 사람은 하는데 왜 니가 못해!"라고 자신감을 줄 때, 우리는 무려 능력의 500%까지 발휘할 수 있고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자신감을 회복시켜주신 예수님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우리는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예 근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거룩하지 못한 백성들입니다. 작은 문제만 생기면 불평하고 원망하는 백성들입니다. 문제만 생기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구별된 백성답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노예 근성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마귀의 자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홍해 앞에서 애굽 군대가 추격하자 모세에게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우리를 이곳으로 끌고와서 죽게 하느냐고 원망했습니다(14:11-12). 마라의 쓴물 앞에서도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15:22-27). 르비딤에서 먹을 물이 없을 때도 원망하였습니다(17:1-7).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불신하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은 어떻게 대우해 주었습니까? 4절 보십시오.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인도하였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32장 11절로 12절에서는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새 중의 왕인 독수리가 새끼를 기를 때 높은 바위산 벼랑에다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밑에는 가시로 위는 부드러운 것으로 집을 만들고 새끼가 자라면 집을 흔들어 새끼를 밖으로 나오게 한다고 합니다. 새끼가 떨어지면 시속 180km로 달려 날개를 펴 새끼를 받아 위로 올린답니다. 이렇게 반복하여 나는 훈련을 시켜 독수리를 만든다고 합니다. 어미는 독수리로 독수리답게 사는 법, 사냥하는 법, 높은 곳에 집을 짓는 법 등을 새끼에게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구별된 새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새의 왕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수리 비유를 들어 하나님의 구속사를 설명한 것입니다. 

구속사의 세과정 애굽에서 행한 일(애굽), 독수리 날개(광야 여행), 나에게 인도함(시내산)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만약 내 말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시내산 언약을 통하여 언약을 맺으시면 그 언약을 한 후에는 구별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19장부터 24장까지 언약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출애굽기를 주일 마다 묵상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들을 생각해 보았는데 아시다 싶이 출애굽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부터 18장까지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애굽에서 구속하시는 장면으로 애굽에서 시내산까지의 기록입니다. 1장에서 애굽의 노예 생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구속을 요청하였습니다. 2장에서 4장까지는 구속을 준비시켰고 5장부터 15장 21절까지 열가지 재앙을 통하여 구속을 성취하였습니다. 그리고 15장 22절부터 18장까지 광야에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하심에 따라 승리의 행군을 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이제 19장부터 40장까지는 택한 백성과 언약을 체결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장부터 34장까지는 언약을 체결하시고 율법을 수여하시는 내용입니다. 35장부터는 언약의 증표인 성막을 건립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핵심적으로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이 바로 출애굽기 19장부터 24장까지 나오는 시내산 언약입니다. 이 언약 체결을 통해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하게 살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징계하십니다. 이 계약 체결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제 잘못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합니다. 계약 체결이 끝난 후 24장 이후에는 거룩하게 살지 못하면 징계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갈 때 백성들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징계하십니다. 결국 3천 명정도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출32). 디베라에서 백성이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불로 징계하십니다.(민11:1-3, 4-35)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원망합니다.(민13-14장)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합니다. 

출애굽기 19장 이전의 범죄와 내용도 유사하지만 심판을 하십니다. 구별된 백성 거룩한 백성으로 살지 못할 때 시내산 계약으로 말미암아 정죄를 당하고 심판받습니다. 이스라엘 여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시내산 언약입니다. 출애굽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벌리는 일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를 부르실 때 하나님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 3: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시내산으로 그들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계약을 정식 체결하기 전에 시내산 계약을 잘 지키면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행위 계약이라고 합니다. 율법에 의한 계약입니다.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못하면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을 이 계약을 지켰습니까?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위 계약을 십자가에서 다 지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습니다. 이것은 은혜 언약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행위로 잘 지키어 거룩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와 피값으로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 13:12)”

사단은 오늘날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너가 거룩한 백성이냐? 말씀을 지키지 못하였지 않느냐? 거짓말 하지 않았느냐? 말씀대로 살지 못하지 않았느냐?” 신앙인으로 자부심을 갖지 못하도록 합니다.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가치와 능력을 인정하지 못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담대하게 외쳐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나를 거룩하게 하였다. 나는 구별된 사람이다.”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현재 모습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자신을 신뢰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국제여론조사지(IJPOR)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자부심이 비교적 낮다고 합니다. 세계 33개국을 대상으로 민족 자부심(national pride)을 조사한 결과 한국민은 노르웨이와 함께 공동 22위를 차지했답니다. 베네수엘라가 1위, 미국이 2위로 높았습니다. 가끔보면 "이 땅에 태어난 게 싫습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게 창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한 민국 국민된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쇄국정책으로 근대화가 늦었던 나라, 36년간 식민지지배를 받았던 나라, 그리고 6.25사변으로 철저히 파괴되었던 나라가 지금 이 정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보면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 않습니까? 전 세계 2백여 국가 중 국토 면적으로는 1백 9위 밖에 되지 않는 나라가 GDP와 교역 규모로는 13위, 외환 보유액으로는 4위인 것을 보면 자부심을 가질만하지 않습니까? 전 세계 68억 인구, 2백여 국가 중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반도체, 핸드폰, IT기술, 조선 등 21세기를 이끌 산업에 있어서 최선두에 서 있는 것을 보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국은 결코 소국(小國)이 아닙니다. 1인당 소득이 세계 최고 수준인 룩셈부르크의 인구는 43만 여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싱가포르는 나라 전체가 하나의 도시에 불과합니다. 인구 500만명의 핀란드, 400만명의 뉴질랜드나 아이슬란드 비하면 대국입니다. 한국경제 규모는 러시아보다 큽니다. 한국은 미국의 6대 교역대상국, 4대 식량수출국의 하나입니다. 지금 한국인이 유엔 사무총장을 하고 있습니다. 2010년 11월 우리나라에서 제5차 G20 정상회의를 개최됩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살만하지 않습니까?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연약할 수 있습니다.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구별된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가치있게 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남은 것은 성숙, 성화입니다. 성화의 기본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의 열매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열매는 자신이 맺고자 한다도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기본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포도나무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포도가 많이 맺히려면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구별된 백성으로 사는 것의 기본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우리는 부족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화의 완성을 향해 달려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악이 관영하는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거룩한 시민이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천국 시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의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파송하셨습니다.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었다는 소속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신분의식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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