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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에로의 회복과 축복 (겔 36: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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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에로의 회복과 축복 (겔 36:22~31)

 
18세기 독일의 유명한 조각가 요한 하인릭 다네커(Johann Heinrich Von Dannecker 1758-1841)가 있습니다. 그는 주로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많은 조각상을 남긴 분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인생의 절정기에 주님과의 깊은 사랑에 빠집니다. 주님을 만난 후에 다네커는 멋진 예수님 상을 조각하기를 열망합니다.
 
2년 동안 작업한 후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시험하기 위해 한 어린 소녀에게 작품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소녀는 그 조각상이 예수님인 줄 모릅니다. 실망한 그는 다시 혼신의 힘을 다해 6년에 걸쳐 새로운 작품을 만듭니다. 그리고 다시 소녀에게 보여줍니다. 단번에 소녀는 “아, 예수님이시군요”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그때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 직후 나폴레옹 황제로부터 루브르 박물관에 비너스상을 조각해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그때 다네커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남깁니다. 
 
“나의 주님, 그리스도의 상을 조각한 이 손으로 더 이상 나는 이방의 신상을 조각함으로 내 마음을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그가 세상의 명예와 권세 앞에서 이런 고백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그리스도가 그의 모든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주님만이 그의 사랑, 그의 소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맛본 자들은 더 이상의 세상의 명예와 부귀영화를 좇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며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추구합니다.

거룩의 반대 개념은 세속입니다. 세속의 속성은 혼합입니다. 세속은 화려함이요 쾌락이요 인기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세속적인 속성을 좋아합니다. 
 
거룩의 속성은 구별입니다. 거룩은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순결하고, 새롭고, 완전한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산다는 것은 세속적인 삶의 가치와 방식으로부터 구별되게 산다는 뜻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믿음의 성도들은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세상이 불의할수록 거룩한 삶이 필요합니다. 왜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세세토록 받으실 분이십니다. 
 
누구를 통해서요? 바로 거룩한 자녀로 택함을 받은 주의 성도들을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성도라고 부릅니다. 성도라는 말은 거룩한 무리입니다. 이것은 성자(saint)라는 뜻입니다. 옆에 분에게 말씀해 보시죠. “당신은 성자이십니다” 부담스러우신가요? 우리는 주님께서 피 값을 지불하시고 사주신 거룩한 주의 자녀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거룩한 성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2-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아멘!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로운 존재(new-being) 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 성도들이 모여 있는 교회 역시 거룩한 곳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거룩함입니다. 교회는 거룩함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거룩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주의 백성들이 거룩에로의 삶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14절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아멘!
 
모든 주의 백성들과 함께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지 않으면 누구라도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믿으십니까?

이 시대의 위기는 바로 거룩함의 상실입니다. 우리 안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거룩함으로 충만해야 할 교회마저도 세속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거룩함을 상실하면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없습니다. 거룩에로의 회복이 바로 부흥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힘은 바로 거룩함입니다. 순결함입니다. 깨끗함입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순결한 자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시는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왜 그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지 설명하십니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우상숭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품을 떠나 패역한 길로 걸어갑니다. 그 결과 거룩한 땅에 피를 쏟고, 더럽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함을 상실함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수치를 당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더럽혀진 거룩하신 이름을 다시 회복시키시겠고 선언하십니다. 더럽혀진 하나님의 땅을 새롭게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온 땅에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회복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주기도문을 고백할 때 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라고 기도합니다. 그 말씀의 의미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입니다. 즉 하나님은 탕자처럼 아버지의 품을 떠나 패역한 삶을 사는 우리들을 통해서 더렵혀진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다시 회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되어서 지존하신 주님 앞에 나아와 영원토록 영광과 존귀와 경배와 찬양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패역한 이 시대에 거룩함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 하라(25절) 
 
다같이 25절 말씀을 읽습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여기서 ‘맑은 물을 뿌린다’는 것은 정결예식을 말합니다. 신약에서는 세례로 표현됩니다. 맑은 물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입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민족들 가운데 그들을 택하셔서 거룩한 교제를 원하십니다. 그들을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타나내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통하여 스스로를 더럽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이방인들 가운데서 욕되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피조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만왕의 왕으로 섬기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은 하나님보다는 피조물을 더 사랑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큰 죄입니다. 

따라서 죄를 품고 있는 자들은 결코 거룩하신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케 된 자만이 아버지의 품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다는 성철 스님을 압니다. 그분은 12년 동안 누워서 잠을 자지 않고 수행을 한 분입니다. 고기한번 드시지 않고, 솔잎을 뜯어먹고, 채식을 했습니다. 수많은 불자들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열반송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뱉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인간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죄의 욕망으로부터 해탈할 수 없습니다. 그처럼 인간의 욕망을 극복하려고 치열한 삶을 산 성철스님의 죄업이 수미산보타 커서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진다면 우리들의 인생은 어떠하겠습니까?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은 오직 하나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다시 정케 하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정결케 된 자만이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습니다. 금번 부흥성회를 통해서 우리가 은혜를 받으려면 먼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죄를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야 합니다. 더러운 그릇에는 음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정결한 모습으로 준비되지 않으면 아무리 귀한 말씀을 주셔도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손이 짧아서 우리를 건지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직 너희의 죄악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사59:1-2) 
 시편 24편3-4절에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아멘!
 
누가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오를 수 있습니까? 손이 깨끗한 자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입니다. 하나님께 뜻을 두고, 진실한 자입니다. 누구라도 죄와 허물을 용서받지 않고서는 거룩하신 보좌로 나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은 자만이 은혜의 보좌로 언제든지 담대하게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크고 작은 죄는 없습니다. 모래를 물에 던져도 가라앉습니다. 바위를 물에 던져도 가라앉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큰 죄, 작은 죄가 있지 하나님 보시기에는 도토리 키 재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죄라도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먼저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아직도 내 안에 해결되지 못한 죄의 모습이 있다면 온전히 하나님 앞에 드러내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용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죄가 아무리 크고, 용서받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용서하십니다.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설 때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는, 성령의 능력으로 새 마음을 품으라(26절) 
 
다같이 26절 말씀을  읽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속에 새로운 영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본래 죄로 인해 마음의 생각이 악합니다. 마음의 쌓은 악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아무리 거룩해보여도 마음이 부패하면 악취가 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 우리 안에 새 영을 부어 주십니다. 

우리의 속에 있는 죄로부터 정결함을 받았으면 그 안에 성령님으로 채워야합니다. 불교에서는 수행을 통해서 마음의 욕망을 끝임 없이 비워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공(空)’의 상태를 만드는 것이 해탈의 방법입니다. 기독교는 비워내는 종교가 아니라 채우는 종교입니다. 바로 성령의 능력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함을 얻은 자에게는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은 날마다 우리를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날마다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케 만들어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영입니다. 따라서 우리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나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고, 주장하실 때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의지와 결단만으로는 거룩한 삶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내 속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나를 온전히 사로잡을 때 가능합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성령님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육체의 욕망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성령님의 인도와 다스림을 받지 못하면 육체의 소욕을 따릅니다. 
 
바울은 성령을 거스리는 육체의 일을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19-21)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이 말씀에 비추어 보십시오. 내 삶 가운데 이런 모습들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령님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즉 성령님의 능력을 덧입고, 날마다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과나무가 사과열매를 맺듯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성령의 사람은 반드시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아직도 우리 안에 이런 열매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면 성령의 충만함을 구해야 합니다. 날마다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합니다.(갈5:24) 성령님을 따라 살 때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 되고, 성령의 사람이 되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부흥을 이루는 비결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27절) 
 
다같이 27절 말씀을 읽습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와 다스림 가운데 사는 사람은 말씀을 지켜 행합니다. 우리들이 거룩한 삶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거룩함의 출발은 바로 진리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중보기도를 드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바로 진리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진리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하늘의 기적을 일으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죽은 나사로가 살아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풍랑이는 바다도 잠잠하게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병든 자가 치유됩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는 말씀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삶을 가리키는 나침반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만드는 촉매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거룩한 삶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말씀 앞에 순종할 때 역사가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100세에 이삭을 낳습니다. 마리아는 주의 천사가 장차 오실 예수를 잉태할 것이라고 예언할 때에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순종합니다. 그때 비천한 여인의 몸을 통해 메시야가 오십니다.
 
우리들이 세상의 소리를 따라가면 거룩과 점점 멀어집니다. 그러나 주님 말씀 따라가면 승리합니다. 죄와 세상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고백합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추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에로의 회복을 이루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거룩에로의 회복을 이룰 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28절에 보면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29절에서는 모든 더러운 곳에서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황폐한 땅을 기름지게 하셔서, 땅의 소산을 풍성하게 하십니다.(29,34절)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게 하시고, 백성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십니다.(35-36절) 황무한 땅을 에덴동산으로 바꾸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십니다.(35절) 

새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날게 됩니다. 돛이 아무리 무거워도 배는 그 돛으로 인하여 항해합니다. 거룩함에로의 회복은 바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누리는 새의 날개와 같습니다. 배의 돛과 같습니다. 

 시편에서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110:4) 
 
마지막 때, 주님께서 권능의 주로 임하실 때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거룩에로의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쳐도 내 힘과 의지와 뜻으로는 안됩니다. 거룩함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성으로 인한 절망을 발견한 자들에게 거룩함의 능력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의 절망은 곧 새로운 희망에로의 출발점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처절한 부서진 마음을 부둥켜안고 6명의 제자와 함께 디베랴 바닷가로 돌아갑니다. 밤새 헛 그물질하고 있는 절망의 밤에 주님께서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사랑의 식탁을 준비하시고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저주했던 베드로, 주님은 그에게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의 사랑의 힘 앞에 베드로는 완전히 부서집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함에로 나아가는 힘입니다.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억지로 하는 봉사나 섬김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할 때 그 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미련하고 부족한 모습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주시고자 가을 부흥성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은 매년 하는 연중행사가 아닙니다. 금번 성회가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처럼 생각하시고 사모하십시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헐떡이는 것처럼 타는 목마름으로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기도하십시오. 거룩함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이 시간 함께 찬양하며 주님께로 나갑니다. 하나님은 거룩함에로의 회복이 이루어질 때 하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주님 이 시간 나를 정결케 하옵소서. 나를 새롭게 하옵소서. 나의 심령 속에 정한 마음을 주시고,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하옵소서.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우리 함께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찬양하며 하나님 품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 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님 앞에서 멀리하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그 구원의 기쁨 다시 회복 시키시며 변치 않는 맘 내 안에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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