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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눅 3:7~20)

    
설교내용       

예수님께서 공생애 들어서면서 첫 번째 외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풀어서 보면 천국에 들어가려면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예수님보다 먼저 외친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광야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은 철저하게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광야길 40년을 통해 바라본 광야는 보통 생각하는 단순한 광야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계셨고 그들을 보호하셨고 그들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 하셨고 만나로 먹이셨고 돌보아 주셨던 곳입니다. 

광야는 과거에 그들이 지나 왔던 곳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그분이 누구신가! 를 경험하고 체험 한곳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언제나 자기편이 되어주신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알게 된 곳이 광야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단순한 광야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곳이요 하나님을 추억하는 장소입니다. 후대 랍비들은 그래서 광야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밀월 여행을 하던 장소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세례요한이 광야에 있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을 기다린 것이지요. 그래서 말씀이 임합니다. 그의 외치는 소리가 광야의 소리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소리입니다.

그가 외치는 소리에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광야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소리가 무엇입니까? 주의 길을 예비하라 주의 길을 평탄케 하라는 것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고 평탄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회개 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했습니다. 마3:5-6은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와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를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하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독사의 자식은 마귀의 자식입니다.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는 자식은 마귀의 자식입니다. 요한은 그것을 지적 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 없이 세례만 받으려는 자들이지요. 마3:7에 보면 요한이 이 말을 한 것은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한 것입니다. 이들은 회개가 안 되는 자들입니다. 

자기들은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말처럼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찾아 온 부자 청년처럼 내가 계명을 다 지켰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회개 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만한 자는 회개를 못합니다. 회개는 겸손해야 회개가 되는 것이고 은혜를 깨달아야 회개를 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을 들어도 회개를 안하쟎아요. 나는 아니라는데 회개가 되겠습니까? 

이러한 자들에게 다시 한번 촉구하는 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조상이라 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8절)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아마도 그들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인이니까? 심판 날이 와도 문제가 없을거야 그러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요한은 "어림도 없는 소리.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신다는 거예요..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을 혈육상 조상으로 갖고 있는 그 족보 하나 가지고 하나님이 내리시는 진노와 심판과 멸망을 피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9절을 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인생은 찍혀 불에 던져 집니다. 심판이요 재앙입니다. 

천국에 가면 알곡과 죽정이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비슷합니다. 줄기도 같습니다. 잎사귀도 같습니다. 똑같이 꽃을 피웁니다. 열매 생김새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속이 다릅니다. 하나는 가득 차 있고 하나는 텅 비어 있습니다. 그래서 알곡은 주인에게 기쁨이요 그 집에 유익이요. 가족들의 양식이 됩니다. 그래서 곳간에 들이는 것이지요. 죽정이는 손해만 나게 만든 것이지요. 주인을 죽도록 고생만 하게 한 것이고 시간낭비, 비료 값 낭비, 인건비 낭비등 그래서 아궁이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집에 알곡 인생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알곡과 쭉정이는 바람에 날려 보면 구분이 됩니다. 알곡은 두두둑 하고 아래로 떨어지지만 죽정이는 다 날아갑니다. 날아가는 것이 요란 합니다. 빈 깡통이 소리가 요란 한 것처럼 죽정이가 그래요 오늘 요한 이 바리새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는 말씀 속에 담겨 있는 것이 뭐예요 열매는 없고 소리만 요란하다 하는 말씀 아닙니까? 

어느 사진관을 하는 성도의 말에 의하면 고객 중에도 세리 고객과 바리새인 고객이 있다고 합니다. 세리 고객은 사진이 잘못 나와서 주인이 미안해하면 “제 모습이 원래 그래요.”라고 하면서 그냥 사진을 찾아갑니다. 반면에 바리새인 고객은 자기 모습 그대로 사진이 나와도 “왜 이렇게 잘못 나왔느냐? 다시 찍어 달라.”고 트집을 잡는다고 합니다. 자기가 본래 그렇게 생긴 것을 모르는 거지요. 이런 사람 만나면 사진관주인도 답답 한거예요.

또 알곡과 쭉정이는 심어 보면 구분이 됩니다. 알곡은 땅에 묻히면 곧 싹이 나고 성장하지만 쭉정이는 아무리 기다려도 싹이 나지 않습니다. 결국 다 썩어서 없어지고 마는 것이지요. 알곡 신자는 생명을 잉태하는 신자입니다. 그로 인하여 구원 받는 자가 날마다 늘어 가는 것입니다. 30배, 60배, 백배가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 나기를 바랍니다. 열매가 맺어져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여러분에게 축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리들은 요한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렇구나. 우리가 잘못 살았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만으로 구원이 있는 줄 알았구나. 회개하고 거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10절)” 세리들도 물었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12절)” 군병들도 물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14절)” 

첫 번째 무리들에 대한 답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11절). 나눔의 삶이지요. 무엇이나 소유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나눔에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물질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 물질이 돈이 없는 심장병을 앓는 어린이에게 가면 한 생명을 건져 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개안 수술비용으로 사용이 되면 밝은 세상을 보게 합니다. 장애우들의 장구비로 쓰이면 발이 되기도 하고 손이 되기도 합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우리가 천국에 가면 하나님이 세 가지를 묻는다고 했습니다. 

1)너의 시간을 어디에 사용했나?
2)너의 재물을 어디에 사용했나?
3)너의 자녀를 어떻게 양육했나?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소유는 축복도 아니요 저주도 아닙니다. 어떻게 쓰이느냐가 중요 합니다. 아름답게 쓰임 받아 축복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두 번째 세리들에 대한 답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세리들이 묻습니다. 요한이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13절)고 합니다. 말씀 속에 담긴 것은 정직하게 살라는 것이지요. 정직하게 산다는 것이 쉽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정직이란 헬라어로 -카이로스 라고 하는데 4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사랑스럽다, -사람이 정직하면 사랑을 받으며 살게됩니다 
둘째--훌륭하다, -정직은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셋째--매력이 있다. -정직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넷째--좋다라는 뜻으로 -정직은 내 인생을 좋게 만들어가는 태도입니다 

영국 격언에 -하루를 행복하게 살려면 이발을 하라 -일주일을 행복하게 살려면 옷을 사라 -한 달을 행복하게 살려면 말을 사라 -일년을 행복하게 살려면 집을 사라 -평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정직 하라 했습니다 

하나님 은 정직한 자를 기뻐하십니다 (대상 29:17)"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하나님은 정직한자를 축복 하십니다. 욥8:6절 정직하면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시84:11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 정직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군인들에 대한 답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14절). 이에 요한은 답하기를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14절) 했습니다. 자족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개인적 탐욕을 채우기 위해 힘을 과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자족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빌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 자족의 비결을 어디서 배웠습니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입니다. 

바울의 능력은 그에게 모든 능력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실 것이며(19절)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다른데로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자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자족의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에게 그의 삶의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께 맞추었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 그리스도의 전령사로 그는 말합니다. `그는 흥해야겠고 나는 쇠해야 하리라`(요3:30) `나 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눅3:16) 그리스도의 천한 종이 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 세례요한은 큰 자였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여인이 낳은 자 중 그 보다 큰 자가 없었다`(마11:11) . `선지자 보다 더 나은 자며`(마11:9)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라`(마11:14) 그는 사자처럼 외쳤고 반짝이는 빛을 비추었으나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 앞에서는 빛이 없다고 스스로 낮아지셨습니다. 그리고 엎드렸습니다. 그것으로 만족하였고 기뻐하였고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자족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성육신 하여 오신 계절입니다. 겸손의 왕으로 오신 주님 앞에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성령의 답을 듣고 순종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짧은주소 : https://goo.gl/9ZcL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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