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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례 요한 (막 6: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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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 (막 6:14~29)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의 순교에 관한 이야기다. 
세례 요한의 출현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대단한 기대를 갖게 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출생부터가 특별했다. 누가복음 1장에서는 그의 출생 기사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는 유명한 제사장 가문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친이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천사를 통해 예고 받았다. 

눅 1: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요한복음 1장에서는 세례 요한의 사역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당시 유대 사회는 세례 요한으로 인해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의 설교를 듣고 요단강으로 나와 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세례 요한이라 부르게 되었다. 당시에 그가 어느 정도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었었는가? 그를 메시야로 오해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요 1: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그는 한 마디로 기인과 같았다. 광야에 살면서 약대 털옷을 입고, 그의 양식은 석청과 메뚜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였고, 그를 두려워했다. 그는 분명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위대한 선지자였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여준 그의 죽음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죽음이었다. 그렇게 위대한 선지자가 일개 분봉왕의 생일잔치에 흥을 돋구기 위한 희생 제물로 바쳐졌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다. 

헤롯왕의 부인인 헤로디아아는 왕의 정식 부인이 아니었다. 헤롯왕은 자기 이복 동생의 부인을 아내로 삼았던 것이다. 세례 요한은 왕의 부도덕한 패륜적 행동을 묵과하지 않았다. 

막 6: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세례 요한은 왕에 대하여 직언하였다. 세례 요한 말을 듣고 헤롯왕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세례 요한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에 대하여 한을 품었다. 헤롯은 부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요한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뒀다. 

그러던 중 헤롯왕의 생일날 갈릴리의 방백들과 귀족들을 초청하여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그때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의붓 아버지 헤롯왕 앞에서 춤을 추어 흥을 돋구었다. 기분이 좋아진 헤롯이 살로메에게 물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다 말하라. 나라의 반이라도 떼어 주겠노라!’

이 소녀가 자기 모친 헤로디아에게 그 얘기를 전했다. 세례 요한에게 한을 품고 있던 차에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의 목을 요청하라고 딸에게 말하였다. 

막 6:25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그 말을 들은 헤롯왕은 심각한 근심에 빠졌으나 체면 때문에 결국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 춤 춘 댓가로 내어주었다. 악한 음녀의 한풀이로 위대한 선지자의 목숨이 희생됐다는 것에 이 글을 읽는 독자들마다 분노하고 안타까와 하는 것이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세례 요한은 그 때 33살이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그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쓰레기 같은 인간 저질 헤롯왕이나 음난하고 악한 여인인 헤로디아 같은 인생들은 도리어 베불리 먹고 쾌락을 누리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산다. 그래서 세상이 모순되게 보이고 사람들은 불공평하다고 불평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보통 말하는대로 세상은 불공평하고 모순되는가? 의인 세례 요한의 죽음이 헛되었는가? 그는 비록 짧은 33년의 세월을 살았지만 그는 아직도 살아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1.불의 앞에 용감하라

그는 헤롯왕 앞에서 분명하게 말했다. 18절에서,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자기 보다 힘이 센 사람에게 바른말 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권력자 앞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용기가 없이는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단순히 헤롯왕의 불륜을 비판하고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를 회개시키려는 선한 의도에서 행한 것이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은 도리어 분쟁을 가져온다. 그러나 선한 목적을 가지고 비판할 때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자신의 허물을 들추고 지적하는 것을 달게 받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헤롯은 세례 요한의 지적에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리고 달게 받았다.

막 6: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그러나 그의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세례 요한을 풀어주지도 않았다. 마음으로는 갈등하고 있었으나 그의 탐욕적이고 허영적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날의 생일잔치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는 여전히 죄악의 낙을 누리고 있었다. 그에게 회개하고자 하는 진실한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하다’는 핑계로 스스로 합리화하고 자신에게 관대하므로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요한의 멧세지는 간단하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이 그 맛을 잃으면 더 이상 죄악에 대하여 불의에 대하여 책망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언젠가 연말정산을 위해 기부금 증명서를 부풀려 발급해줄 것을 요청해온 교우가 있었다.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그후 그분은 교회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일부 사찰에서 기부금 영수증을 남발하다 발각되어 매스컴에 보도되었던 일이 있었다. 

엔젠가 교회 부동산을 매각하는데 매입하는 분이 계약서의 금액을 줄여서 써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웃으면서 ‘제가 목사입니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작은 이익을 위해 불의와 타협할 때가 종종 있다. 

그때 세례 요한의 말을 기억하기 바란다. ‘옳지 않습니다.’ 옳지 않은 일에 용기를 내지 말고, 옳은 일에 용기를 내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2.사명에 충실하라

막 6: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15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16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아직 잘 모르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라,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했다. 그리고 헤롯왕은 자기가 죽인 요한이 살아났다고 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죽은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라고 말했던 것은 두 분 사이에 관계성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한창 인기가 상승할 때 세례 요한의 정체성을 물었다. ‘당신이 누구뇨?’ 그때 세례 요한은 이렇게 대답했다. 

요 1: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소리는 전달하면 그 사명이 끝나는 것이다. 그 소리의 내용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곧 주인이 오시는데 마당 쓰는 일을 하인이 하듯 자신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자라는 뜻이다. 또한..

요 3: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세례 요한의 사명은 예수님 만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을 ‘주흥아쇠’라고 한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정신이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어떤 모습으로 죽는가에 관에서는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창에 찔려 죽든, 칼에 베어 죽든 상관 없다. 자신을 통해 그리스도만 증거되어지면 되는 것이다.

예수 믿고 폼나게 살고 싶다면 사명과는 관계가 없다. 세례 요한의 정신과는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주흥아쇠가 아니라 아흥주쇠가 되기 때문이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세례 요한의 죽음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표한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과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에 의해 체포되고, 구금되고, 죽임을 당하고, 무덤에 장사되어졌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까지 사명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사람이었다. 

사람이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는가는 더욱 중요하다. 세례 요한은 비록 짧은 생애를 살다간 사람이지만 자신의 사명에 충실했기에 그의 이름이 아름다운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있었던 일이다.한 어린 영국 군인이 적군의 총에 맞아 죽어가고 있었다.군목은 군인의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하며 유언을 물었다. 
"제 어머니에게 전해 주십시오. 아들은 고통 없이 기쁘게 죽었다구요." 어린 군인은 짤막하게 말했다. 

잠시 후 어린 군인은 무슨 중요한 것이 생각난 듯 숨을 헐떡이면서 간곡하게 말했다. 
"목사님, 한 가지 부탁이 더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학교 선생님께 이 말을 전해 주십시오.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구요. 그리스도인으로 편안하게 눈을 감게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한다고 전해주세요."

군목은 어린 군인의 유언에 따라 교회학교 선생님을 찾아가 마지막 유언을 들려주었다.여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한 참 동안 눈물을 흘리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 교회학교 교사가 아닙니다. 교회학교 교사라는 직분이 대단치 않게 생각돼 그만 두었습니다. 
그러나 제자의 유언을 들으며 결심했어요. 다음 주일부터 다시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겠습니다."
사명을 위해 사는 것은 좁은 길을 가는 것이다. 그 길은 불편해서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길은 생명길이요 영광의 길이다. 성도의 직분과 사명을 소중히 여기기 바란다. 

히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오늘날 사람들은 헤롯이나 헤로디아처럼 살기를 원한다. 정의나 윤리는 걸레 조각처럼 무시해 버린다. 탐욕과 허영심과 체면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 간다. 그러나 불의하게 쌓은 재물과 권력은 무너진다. 헤롯왕은 결국 첫 번째 부인인 아라비아 공주의 아버지 아랩다왕에 의해 살해 당하고 만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비록 33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으나 그는 굵고 멋있게 살다간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오늘날과 같이 불의와 부도덕이 팽패한 세태에 믿음을 지키며 의롭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성도 여러분! 
세상은 불륜, 패륜, 음란과 방탕과 한탕주의, 그렇게 흘러가도 너희,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말하고 말한다. 불의에 대항하며 바른 길로 가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은 자기를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지만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손해가 되고 힘이 들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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