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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찾으면 만나리라 (렘 2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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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으면 만나리라 (렘 29:11~14)
    

시작하는 말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대림절 두 번째 주일에도 모여 예배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혜와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서 큰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후쿠사이라고 하는 사람은 1800년대 일본의 대표적인 유명한 화가였습니다. 그에 얽힌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떤날 한 친구가 찾아와서 “내가 수탉을 좋아하네. 수탉그림 하나 그려주게나”했습니다. 했더니 이 화가는 “그럼세. 자네가 부탁하는데 내가 안들어주겠나. 하나 잘 그려줌세”하고 약속하면서 일주일 후에 오라고 했습니다. 일주일 후 친구가 큰 기대를 품고 찾아갔더니 이 화가는“그림이 잘 안됐네. 

일주일만 더 있다 오게나”했습니다. 일주일 있다 또 갔더니 또 일주일 더 있다 오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한 달 있다 오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달 또 한 달… 이렇게 하기를 3년이나 했습니다. 끝내 이 친구는 화가 났습니다. “자네, 나를 어찌 이렇게 우롱하는 건가? 그 얼마나 대단한 그림을 그린다고 이렇게 사람을 골탕먹이는가?” 버럭 화를 냈더니 “이 사람 진정하게나. 화내지 말고 여기 앉아 있게나”하고 화가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종이하고 붓하고 물감을 가지고 나와 친구 보는데서 순식간에 수탉 한 마리를 잘 그려냅니다. 

얼마나 잘 그렸는지 그림 속의 수탉이 당장에라도 뛰어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아주 잘 그린 만족할 만한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오히려 화를 냅니다.“아니, 이렇게 쉽게 그리는 걸 가지고 말이야 3년이나 날 골탕먹여?”화가는“화내지 말게나”하고 친구의 손을 잡고 자기 작업실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보니 이 무슨 놀라운 일입니까. 온 작업실이 수탉그림 천지였습니다. 밤낮으로 그려놓은 수탉의 습작그림이 온 방안에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3년을 두고 그리고 그려놓은 그림들이었습니다. 친구는 크게 감동을 받고 말문이 막혔다고 합니다. 수탉 한 마리가 화가의 손으로 그려지는데 그것이 우연한 것입니까. 그게 순식간에 될 수 있는 일입니까. 그의 마음속에, 그의 재능 속에 한동안, 3년 동안을 쌓이고 쌓여서 한 폭의 그림이 그려졌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것, 찾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어떤것 하나 우연히 혹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없습니다. 기다리며 참으며 노력하면 바라는 소망이 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오늘도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펼쳐지는 고통을 소망으로 승화시키는 믿음을 보면서 그 믿음을 배우고 따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몸 말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는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셔서 재앙과 저주가 임하게 될런지 모르니 하나님을 섬겨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부정적인 마음에서 무서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고, 또 하나는 나를 지금까지 지켜 주시고 사랑해 주셨으니 앞으로도 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하는 적극적인 생각에서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가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벌이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찌기 유대 백성들은 자기들에게 고난과 역경과 시련이 닥쳐올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채찍질을 하신다는 생각에서 하나님을 늘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바로 이때에 예레미야 선지자는‘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심판 대신에 구원을 주시고, 절망 대신에 희망을 주시고, 회의와 의심 대신에 확신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바라는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유대백성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습니다. 엄연한 범죄입니다. 엄연히 하나님 앞에 잘못해서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유대백성을 바벨론에 포로되게 하십니다. 예루살렘성전은 다 진멸됐습니다. 그 거룩한 성은 무너지고 쓸만한 사람들 수만 명은 바벨론으로 잡혀갑니다.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갔습니다. 포로 되어가서 어떠했겠습니까. 낙담하고 절망하고, 그리고 불안하고 또한 초조하고…‘언제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려나? 언제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스라엘을 향하신 은사는 여기서 끝나는가? 

이 민족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아주 고통스럽습니다. 이때 예레미야를 통해서 전해주신 메시지입니다. 놀랍습니다. 초조해하지도 말고 불안해하지도 마라, 여기서 결혼하고 살라, 여기서 생업에 종사하고 자식을 낳으면서 아주 살아라 하십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을 좀더 거슬러 올라가서 4-7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집을 짓고 정원을 만들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기르라.’포로 되어가서 바벨론에 있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것만이 아닙니다. 

더 놀라운 말씀이 7절에 있습니다.“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다른 말로 하면 바벨론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 되어간 백성이 가서 모진 고생을 하고 있는데‘너희는 바벨론을 위해서 기도하라. 그리고 평안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날을 기다리라. 초조해하지 마라. 그리고 현실에 충실하라’ 말씀하십니다. 

A.W. 토저라고 하는 분이 이런 말을 합니다. ‘현대인이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집착에 매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생각을 버리고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여러분, 바벨론에 포로 되어간 이 사람들이 자기생각, 자기감정에 매인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 되어간 이 사람들에게 ‘여기에 당분간 머무를 생각을 하라. 그리고 이 성을 위하여 기도하라’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분명히 오늘 본문에서 해답을 줍니다. 이 사건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고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간 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 하십니다.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잘 이해가 되십니까. 

기독교인이 무엇입니까.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시험을 시련으로, 시련을 축복으로 받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불행이 결코 저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어떤 고난도 그것은 저주가 아니요 재앙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것은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걸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 현실에 불만스럽습니까?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도 절대로 아닙니다. 잠시잠깐 내 생각에 집착한 나머지 주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눈을 떠야 합니다. 명심하십시오.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1장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도들아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 시험은 하나님의 약속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우리가 어려운 사건에 부딪힐 때면 조용하게 우리 인간의 생각, 자기 집착에서 떠나 그 높은 의미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큰 사건이요 모순적인 사건이요 부조리한 사건일지언정 그 속에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경륜이 있고, 깊은 곳에 평안이 있습니다. 평안으로 지향하는 오늘의 시련이요 사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앞에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복잡한 문제들 마음에 안듭니까? 이제 cool down합시다. 냉정함을 되찾읍시다. 이것이 재앙이 아니라 평안으로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런 긍정적인 면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현실을 봅시다. 놀라운 역사가 조용하게 벌써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능히 감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기다림으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소망을 주려 함이니라 - 현실보다 무서운 것은 소망입니다. 현실보다 강한 것은 소망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그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사느냐에서 물을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있는 소원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내 소원이 무엇이냐?’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입니다. 

형통할 때는 소망이 세속적입니다. 잘살고 평안하고 행복하면 소원자체도 아주 추잡합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십시오. 환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게 되면 소원이 정리가 됩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았던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인생이 무엇인가? 도대체 사랑이라는 게 무엇이냐? 묻게 됩니다. 이렇게 고통의 날에 소망이 순수해집니다. 병 걸리고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아주 임종이 가까워오면 더 달라집니다. 

임종에 이르면 사람마다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이제 생각합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좀더 베풀고 살 걸 너무 인색했었다. 그 많은 욕심이 아무 소용 없었는데...’ 또한 ‘좀 더 참을 걸.’ 참지 못한 것들이 이제 막 후회로 몰려옵니다. 마지막은 ‘나는 누구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고는 오직 하나님께만 의존하게 됩니다. simple mind로 말입니다. 그래서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다가오는 죽음, 이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입니다. 절망이 아니라 보다 나은 소망에로 나를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아시는대로 욥이 얼마나 어려운 고난을 겪었습니까. 그러나 욥이 그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갑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나를 단련하신 후에 - 그 모든 사건으로 내 영혼을 단련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단련 후에 정금같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은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토마스 칼라일은 말하기를 ‘인간은 희망에 기초를 둔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내 소유를 다 빼앗긴대도 나는 오직 한 가지 희망만을 가지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소망의 삶입니다. 어떤 직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조사해 보니까 활기있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과, 맥이 빠지고 의욕없이 피곤하게 일하는 사람으로 나눌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활기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 그들은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행복한 가정이 있고, 무엇인가 계획을 갖고 이루려는 미래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긍정적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시편 42:5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결코 불안해 하거나 피곤해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시련과 역경을 겪을수록 더 큰 소망을 가지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망의 약속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12-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하셨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되었던 사람들은 이 편지를 보고 감격에 겨워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때부터 생각을 다시하고 신앙과 용기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일하는 것은 결코 남을 위해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다. 우리가 부지런히 일함으로써 원수가 살찌며 또한 우리 조국을 위한 것이다. 

집을 짓자. 황무지를 개간하자 그리고 소산을 내자,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우리는 우리 수고의 열매를 거두어 가리라’ 이렇게 그들의 가슴은 새롭게 부풀고 그들의 팔뚝에는 새힘이 솟구쳤습니다. 예언자 스가랴의 말대로 소망을 마음에 심은 그들은 70년 후에 고국으로 돌아갈 때, 그들이 수고한 것 뿐아니라 갑절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헛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찾으면 만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무리 하는말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혼다 켄이라는 사람이 쓴 재미있는 책이 있습니다. 책 제목이 재미있습니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 어떻습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 아닙니까? 점심 얻어먹어야 할 주제에 점심을 사다니요. 뭘 말하는 것입니까. 부자 미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부자 미워하고 비판하면 그 사람 부자 못됩니다. 마음을 열고 부자에게 점심을 사고,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자세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점심을 사면서 한 번 들어볼까요? 

이제 내가 부자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고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일을 나도 기뻐하게 되고 내가 삶의 현실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거기서 삶의 변화가 온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생활. 이 현실, 이 모순된 현실을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요 메시지입니다. ‘오늘 이것은 재앙이 아니라는 걸 잊지 마라. 이것은 절망이 아니라 소망이란 걸 잊지 마라.’ 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현실이 마음에 안듭니까?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봅시다. 이것은 저주가 아니요 이것은 소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기도하라, 들어주리라. 찾으라, 만나리라.’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바른 자세입니다. 그리고 찾으라 - 행동으로 바로 이 말씀 속에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변에 왔을 때 홍해가 가로막혔다고 해서 아우성입니다. 그때 주어진 유명한 메시지가 있지 않습니까.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조용하여 내가 하나님됨을 알지어다 - cool down, 제발 들끓지 말고 쉽게 절망하지 마라, 조용하여 내가 하는 것을 보라,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모든 생각을 잠깐 멈추고 이 현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가의 문제, 교단의 문제, 교회의 어려움, 나 개인의 아픔과 답답함. 

이 현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시는지 조용히 들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재앙이 아니요 평안이요 이것은 절망이 아니라 소망이라고... 많은 사건을 통해서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하시는 주님의 약속을 다시 확인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이 대림절에 이런 믿음으로, 이런 모습으로 다가오는 내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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