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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혼잡하게 하지 않는 향기(고후 2: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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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잡하게 하지 않는 향기
(고후 2:14-17)

여러분은 향수를 어디에 뿌리거나 바르세요?  어떤 사람들은 냄새를 없애고 좋은 향기나라고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곳에 집중적으로 뿌립니다.  겨드랑이에 말이죠.  그리고 ‘모든 것이 완벽해!’ 하면서 보부도 당당하고 신나게 팔을 크게 휘저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꽝입니다.  땀 냄새와 뒤범벅이 되어서 어지러워 쓰러집니다.  향수와 땀 냄새가 뒤섞여서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이상 야리꾸리한 냄새가 납니다. 
향수 뿌리는 에티켓은 너무 진하지 않은 데 있습니다. 은은한 향기입니다.  그리고 몸에는 맥박이 뛰는 양 손목에 뿌리거나 발라줍니다. 맥박이 뛸 때마다 향기가 뿜어져 나갑니다.  옷에는 스커트나 바지단 안쪽에 살짝 뿌려줍니다. 그러면 움직일 때 향기가 일어나면서 위로 올라옵니다. 
아주 좋은 향수도 혼잡하게 쓰면 오히려 둘 다 버립니다.  그래서 혼잡하지 않은, 순수함이 진짜 좋은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잡하게 하는 세상에서 하나님께 받은 예수 향기의 순전함으로 승리하십시오. 

1. 십자가 복음의 정수로 하나님께 받은 순전한 향기를 내십시오.   
향수를 잘못 뿌리는 것은 부끄러운 것을 가리고 덮으려고 하는데서 기인합니다. 그래서 향수를 겨드랑이에 직접 뿌립니다.  우리 생각에 그러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향수는 가리는 용도가 아닙니다.  자신의 독특한 향기를 발산하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믿고 살지만 육신으로 있는 우리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여전히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인으로 여김을 받았습니다. 비록 연약해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한 것을 더 이상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 이상 거기에 연연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을 덮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놓아 두십시오.  그리고 당당히 나에게 주신 것을 발산 하십시오.  내안에 성령으로 오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십시오.  그러면 자연히 단점과 부끄러움은 극복되어집니다. 
17절 중간에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완전합니다.  주님이 나를, 당신을 흡족해 하고 계십니다.  가장 높고 위대하신 분이 만족하다고 했으면 된 것입니다.  그렇지요!  할렐루야입니다.  

향기 중에는 썩음을 방지하고 해충도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향나무가 그렇습니다.  향나무는 벌레도 없고 오래갑니다.  우리 주님의 보혈의 향기는 사단이 얼씬도 못합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의 생명의 향기로 인하여 영원히 썩지 않을 신령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향기는 방향도 안내합니다.  벌과 나비는 향기를 좇아 방향을 잡습니다.  예수님의 향기는 우리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향기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향기, 복음의 향기는 완전합니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른 것으로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 부족한 것 같아 다른 것으로 그 위에 또 덧 뿌리거나 섞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단의 특징은 복음에 다른 것들을 섞는 것입니다.  문선명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마 27:46)라고 십자가에서 말해 예수님의 구원이 부족하여 50%만 구원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나머지 구원을 채우기 위해서 온 하나님 이라는 것입니다. 
죄는 멸망입니다. 버림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실지로 버림받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마지막으로 운명하실 때 그래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 죄에 대한 심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만약 여기서 끝났다면 정말 구원의 반만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일 후에 다시 사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요 11:25-26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

여러분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향기는 가장 위대합니다.  그 예수님 한 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다른 것으로 끌어들여 혼잡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예수님으로 만족하고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께 받은 것, 곧 순전한 향기로 세상을 이기십시오.  
본문 14절을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내는 자”라고 했습니다. 어찌됐건 우리에게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6절에서는 그 향기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좋은 게 좋은 거다, 식입니다.  하나님이 마냥 좋으신 분으로 알고요, 자기들 관점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만 인정하려고 합니다.  

어느 목사님하고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지역을 위해 아주 많은 섬김과 좋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전문 사서까지 두면서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하고 서울시에서 모범 사례로도 선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좋은 혜택을 다 누리면서 “교회만은 나오지 말라고 하세요.”라고 말을 하면서 복음 듣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냥 좋으신 분이 아닙니다.  마지막 때에는 그 하나님의 향기가 어떤 이들에게 사망의 냄새가 됩니다. 

노아의 때도 그랬습니다. (눅 17:26-30, 개정)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방주를 지었습니다.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손가락질을 해도  받은 말씀의 순전함을 지켰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의 좋아하는 것들만을 여전히 즐겼습니다.  노아가 왜 방주를 짓는지 말을 해도 거기까지만  더 이상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오해 받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때로는  자기도 세상을 즐기고 싶었을 터인데,  그 때도 외롭고 답답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해하고 답답해도 하나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유혹을 받아도 순전함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복음만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노아는  하나님 말씀의 순전함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드디어  노아가 간직했고 지켰던 것이 진짜 생명의 향기라는 것이 판명 되었습니다.  훙수가 나서 살던 곳에 물이 덮혀 갔을 때,  방주 밖에서 아우성치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웠을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참 돕고 싶은 심정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진작 방주를 같이 만들고 방주에 같이 탔어야 했습니다. 

요즘 새벽 큐티에 빕립보서를 읽습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 쓴 편지입니다.  얼마나 극심한 고통이 있는지, 차라리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으니 죽는 것도 유익하므로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낫겠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사이, 바울의 공백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빌 1:17-18을 이해하기 쉽게 잘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내가 사라지자, 이 일에 뭔가를 얻으려는 탐욕스런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그들은 악한 동기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를 경쟁자로 여기고, 나의 상황이 악화될수록 자신들의 상황은 더욱 나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겠습니까? 나는 그들의 동기가 순수하지 않든 악하든 분명치 않든 간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누구라도 입을 열 때마다 그리스도가 전파되니, 그저 박수를 보낼 뿐입니다! 나는 일이 어찌 될지 알기에 계속해서 그들을 응원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때로 더 좋은 방법을 찾느라고 순전함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방법론 가지고 싸우다가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복음을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전할까 옥신각신하다가 마음 상하고, 삐져 주저 앉는 경우도 있습니다.  믿는 우리들에게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비 본질적인 것에  목숨 걸지 말고 삽시다.  밥이 조금 질게 되도 괜찮습니다.  찬양하다가 조금 음이 틀려도 축복합시다.   내 생각과 방법대로 안 되었다고 삐지거나  기분 상하지 맙시다.  하나님께 받은 가장 본질적인 것,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뻐합시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빌 1:27-30을 유진 피터슨의 번역에 제가 더 쉽게 푼 것을 더해서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복음에 어울리는 향기로운 삶을 사십시오. 내가 직접 가서 보든 멀리서 소식만 전해 듣던 간에 여러분의 삶은 변함없이 한결같아야 합니다. 한 비전을 품고 한 마음으로 굳게 서십시오. 그렇게 해서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협력하여 하나가 되십시오. 어려운 일이 있고 때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적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을 두려워하거나 저들 때문에 조금도 위축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복음에 어울리는 여러분의 향기로운 삶이 저들에게는 멸망의 증거가 될 것이요, 우리에게는 구원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확실하고 분명합니다.  여러분은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어떻게 싸웠는지 보았고, 지금도 이 편지를 통해서 계속 듣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여러분이 세상에서 싸우는 싸움에도 그리스도의 향기로 멋지게 싸우십시오. 하나님께 받은 순전함으로 승리하십시오.”
(이명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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