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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마 20: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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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마 20:20~28)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어김없이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다가왔습니다. 대림절만 되면 이렇게 보라색 초를 매 주일 하나씩 켜면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설레임과 두려움 또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원치 않은 사람이 방문한다고 한다면 마음이 좀 불편하겠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이 우리 집을 방문한다고 했을 때에는 우리는 커다란 기쁨과 기대를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매년 이 맘 때쯤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기 위해 다가오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한 사람, 예수님을 맞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만 예수님은 다가오십니다.

요즘 성탄절은 완전히 세속화, 상품화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성탄절을 더 좋아합니다. 이렇게 축제의 날이고, 쉬고, 음식을 먹고, 선물을 나누는 세상적인 축제로 성탄절이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가운데서 더더욱 성탄절의 참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김없이 예수님이 오시고 계시는데 정말 그 예수님이 삶의 한 복판에 여러분의 영혼에 오실 수 있도록 여러분은 무엇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준비하지 않은 사람! 영혼과 마음과 몸에 준비를 하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성탄절에 오신다고 할지라도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곁을 지나가지만 하시지만, 가진 것이 없고 보잘 것이 없는 사람이지만 마음과 영혼과 몸을 준비한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반드시 찾아오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첫 번째 대림절을 맞아서 예수님이 왜 오시고 계시는가? 

예수님의 오신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오시는지 잘 모르니까 어떻게 준비해야 될지 모르니까 준비가 미비해 오고 계시는 예수님을 맞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통해 예수님은 왜 세상에 오시고 계실까요? 

첫 번째로, 오늘 우리가 읽지 않았지만 우리가 읽은 본문의 앞부분에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수난과 죽으심에 대한 예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시기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체포 되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며칠 혹은 몇 주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세 번째로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죽음에 대한 예언을 하십니다. 내가 이제 예루살렘에 가게 될 텐데 가게 되면 그곳에서 내가 체포 되고 신문을 당하고 배반을 당하고 고난을 받고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예언을 하셨을까요?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런 예언이 없던 상태에서 갑자기 체포당하고 죽게 되면 3년 반 동안 따라다녔던 제자들은 굉장히 당황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미리 예수님의 수난을 이야기하심으로 제자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예수님의 수난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 자신이 죽어야만, 예수님 자신이 희생되어야만, 예수님 자신이 목숨을 내 놓아야만 낮아지셔야만,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모든 것들을 내어주고 섬기셔야만 예수님이 살아날 수 있고 부활할 수 있다는 이런 아름다운 진리를 전파하시기 위해서,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이 수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면 우리 같으면 아,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셔야 해, 고난의 의미가 뭘까? 그러면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삶을 본받을까? 나도 고난을 당하고 나도 어려움을 당하고 나도 내려놓고 나도 섬기고 나도 죽어야 되는 것 아닌가? 아마 이렇게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이런 예수님의 생각과 의도와는 정 반대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수난에 대한 이야기를 한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살로메라고 하는 오늘 우리가 본문에는 세베데의 아들의 어머니라고 표현이 되어 있는데 이 사람의 이름은 살로메였습니다. 이 살로메가 자기의 두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에게 와서 부탁을 합니다. 그러면 이 살로메는 누구일까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친 자매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게는 이모가 되는 것입니다. 이 살로메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면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이종 사촌 지간입니다. 이 살로메 이모가 자기의 두 아들, 예수님의 사촌 동생을 데리고 와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경배하면서 뭐라고 이야기 했냐하면, 주님,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면 내 큰 아들 야고보는 예수님의 우편에 앉게 해 주시고 내 작은 아들은 예수님의 보좌 좌편에 앉을 수 있도록 명령해 주십시요. 라는 부탁을 한 것입니다. 

제가 모두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예수님께서 이런 수난에 관한 예고를 하셨다고 한다면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예수님처럼 살려고 했을 텐데 정 반대의 청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 살로메라고 하는 여인이 생각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 이 여인이 생각하고 있는 오른편 보좌와 왼편 보좌, 이 여인이 생각하고 있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살로메가 예수님께 간청한 내용과 그것의 의미는

먼저, 이 살로메라고 하는 여인은 주님의 나라를 오해 했습니다. 이 살로메라고 하는 여인과 그의 두 아들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면”이라고 하는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불행하게도 살로메와 이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게 되면 그곳에서 정치적인 왕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모든 로마사람들과 유대 관원들을 물리치고 예수님께서 왕이 되셔서 정치적인 나라를 건설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이 여인은 “주의 나라가 임하게 되면”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나라가 이런 정치적인 나라였을까요? 왕이 있고 국무총리가 있고 정치적인 조직이 있는 예수님이 그런 의도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3년 반 가까이 따라다녔던 이 두 명의 제자와 그의 어머니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주의 나라를 이렇게 정치적인 세상적인 물질적인 나라로 해석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믿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있는 나라입니까? 예수님이 그런 정치적인 메시야가 정치적인 왕이 지도자가 통치자가 되려고 이 세상에 오셨나요? 가관인 것은, 이 살로메는 큰 아들을 예수님의 보좌 우편에, 작은 아들을 보좌 왼편에 앉도록 명령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통치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권력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우편과 좌편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오른팔 왼팔, 즉 대통령이나 왕의 분신과도 같은 권력으로 치면 최고의 권력과 최고의 서열에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살로메는 자기의 두 아들을 그렇게 출세시키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이 여인이 꿈꿔왔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이 여인은 예수님을 수단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의 두 아들이 예수님이 세우실 지상적인 세상적인 왕국에서 출세하고 권력과 명예와 부귀영화와 명성과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세상적인 직분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향을 갖습니다. 우리가 교회 나오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요? 혹시 우리가 예수를 내 믿음과 삶의 목적으로 여기지 않고 예수님을 잘 믿게 되면 출세하고 건강해 지고 돈 많이 벌고 높은 지위를 얻게 되고 권력을 얻게 되고 명예를 얻게 되는 것으로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살로메와 그의 두 아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꿈꿔 오신 왕국은 이렇게 세상적인 힘과 부귀영화와 그리고 세상적인 권력이 지배하는 이런 정치적인 왕국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생각하고 예수님이 꿈꿔 오신 왕국은 사랑과 의와 진리와 섬김과 봉사와 희생이 지배하는 영적인 왕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살로메와 두 아들은 예수님을 3년 반 가까이 쫓아다니면서도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이 엄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며, 라는 표현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본문이 다른 본문에서는 똑같은 내용인데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라는 단어로 해석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살로메와 두 아들은 예수님께 경배했습니다. 예수님께 몸으로 예배는 드렸습니다. 

그런데 속생각은 숨겨진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 두 아들이 오늘 본문에 보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왔고 어머니가 예수님에게 부탁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같은 본문을 기록한 마가복음에서는 야고보와 요한이 직접 예수님에게 찾아와 이 부탁을 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3년 반 가까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의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세상적인 정치적인 나라로 전락시킨 이 두 사람! 혹시 우리가 이 두 사람이 아닐까요? 

이 엄마는 두 아들을 출세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에 예수님께 와서 청탁을 했던 것입니다. 잘못된 모성애가 발동이 된 것이지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유가 예수 잘 믿어서 권력 얻고 명예를 얻고 높은 지위를 얻게 되고 부귀영화를 얻기 위하여 예수님을 따라 다니게 된다면 우리는 본문에 나와 있는 야고보와 요한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자판기처럼 생각을 해서 내가 열심히 믿고 따르면 이 공적을 예수님께 집어넣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부귀영화를 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면 우리는 잘 못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관심은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예수님께 예배하고 예수님을 경배했지만 속생각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빨리 왕이 되세요.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저와 제 동생이 예수님의 오른팔과 왼팔이 되어 부귀영화와 권력과 명예와 명성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의도였던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그 두 아들에게 직접 대답하신 대답과 그 의미는

예수님이 정말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그것일까요? 예수님이 오고계시는 이유가 우리에게 부귀영화와 권력과 명예와 재산을 주시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까? 이런 그들의 질문에 대하여 오늘 본문 22절에는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주님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예수님은 그들이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몰라서 엉뚱한 것을 구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을 잘 믿어서 부귀영화와 권력을 얻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잘 못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정말로 구해야 할 것은 그것이 아니고 잔을 마셔야 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셔야 한다고 마실 수 있어야 한다고 예수님은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여기에 두 제자가 원하는 것은 부귀영화였습니다. 인정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남들에게 높임을 받고 섬김을 받고 존경을 받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관심은 잔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잔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 때 무슨 기도를 하셨나요? “아버지여, 내가 이 잔을 마실 수가 없습니다. 너무 너무 힘이 듭니다. 이 잔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까? 아버지여 이 잔을 마시지 않을 수는 없습니까?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의 잔은 고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잔은 희생을 섬김을 낮아짐을 자기 자신을 거부하고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내어주는 희생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늘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관심은 크라운 영광이었습니다. 면류관이었던 것입니다. 

워렌 위어스비라는 목사님이 부분을 해석하시면서 예수님의 관심은 계속해서 크로스, 십자가였는데 제자들의 관심은 영광 면류관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마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이 가져다주는 지위나 권세나 재산이 아니고요, 우리가 마셔야할 잔은 예수님과 함께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예수님과 함께 내 것을 내어주는 예수님과 함께 낮아지는 희생과 헌신과 죽음의 잔! 이것이 우리가 마셔야 할 잔일 줄로 믿습니다.

네 번째, 이방인 집권자들의 통치방식과 하나님의 나라 방식과의 차이

요한복음 18:11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대 제사장의 귀를 칼로 쳐서 귀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붙여 주시면서 베드로에게 이야기 합니다. 칼을 칼집에 꽂아라. 그렇게 이야기 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 예수님의 관심은 늘 잔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관심은 늘 밥상위의 먹을 거리였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섬기고 누군가를 위하여 희생하고 누군가를 위하여 나 자신을 내어주는 삶의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예수의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는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온 이유는 남들에게 섬김을 받고 권세를 누리고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온 것이 아니라, 나눠주고 섬기고 나를 거부하고 낮아지기 위해 오셨다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의도였습니다. 

지난 수요일 11월 25일, 한국 근대역사의 중요한 획을 긋는 하나의 사건을 접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24번째 가입국이 된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두 번째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외국의 원조를 받는 수해국에서 이제는 원조 공유국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가슴 벅찬 일이 아닙니까? 왜냐하면, 우리나라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일제 강점기를 거쳐서 광복과 정부수립을 하자마자 동족상단의 비극을 경험해왔습니다. 

우리는 그 때까지는 전 세계 최고로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오늘날 이제는 수해를 받아 왔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원조를 해 주는 공유국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를 섬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은혜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짧은 시간에 우리가 이렇게 경제 대국이 될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는 교회가 존재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기독교인의 땀과 희생과 헌신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받는 사람에게서 나눠주고 섬기고 원조해 주고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자긍심이 있는 것입니까? 만약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내가 세상에 온 이유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온 것이라는 주님의 의도를 100% 깨닫는 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열 사람이 모였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그 중에 두 세 사람이 매일 자기가 최고라고 자기가 제일 높은 자리에 가야 한다고, 자기가 권력과 명예와 모든 것들을 다 자기가 받아야 한다고 서로 이야기했다고 한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매일 싸움이 있겠지요? 왜냐하면, 내가 제일 놓아지려면 누군가를 무시해야 합니다. 

내기 제일 높아지려면 누군가를 흠을 내야 합니다. 내가 제일 높아지려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싸움밖에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두 제자가 자기 엄마와 예수님께 와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해 달라고 하는 이야기를 나머지 열 명의 제자가 듣고 분개했다고 했습니다. 높아지려고 하는 것, 받으려고 하는 것,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곳에는 늘 사람들 간에 갈등이 생기지만, 만약에 이 열 명 가운데 두 명 정도의 사람이 섬기고 낮아지고 희생하고 죽으려고 하고 베풀려고 한다면 아마도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을 받고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섬기는 곳에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낮아지는 곳에는 갈등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곳에는 늘 위로와 격려만 있을 뿐입니다. 

끝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분명한 이유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얼마나 많이 남들에게서 인정과 존경과 대접을 받으려고 합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낮아져서 섬기며 베풀려 오셨다고 한다면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계절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분명해졌습니다. 바로 섬기는 것입니다. 낮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내 목숨을 내 생명을 누군가의 구원을 위하여 대속 물로 주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지역 뿐 만아니라, 고양시 전체를 섬기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간 혹 가다 기독교 신문을 보면 어는 교회가 지역 주민들에게가 쌀을 몇 백 가마 나눠주고 김장을 나눠주고 했다는 그런 기사가 많이 나와요. 보면은 쌀 나눠주는 것이나 김장 나눠주는 양을 보면 우리교회 보다 적습니다.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지난 9년 동안에 쌀을 나눠주고 김장을 나눠주고 사랑의 독감예방 주사 접종을 하고 지역 주민들을 위하여 무료로 건강 검진을 해 주고 얼마나 많은 봉사를 했습니까? 그런데 저는 한 번도 기독교 신문사에 연락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와서 취재해 달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랑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없이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자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아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섬김의 삶을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랑하기보다 말없이 누군가를 섬기고 희생하고 도와준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더 아름답게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을 비껴가지 않도록 예수님의 삶처럼 섬기고 희생하고 낮아지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가정과 이웃과 누군가에게든지 여러분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내려놓고 낮아진 자세로 누군가를 섬길 때 그곳에는 아름다운 화합과 일치가 있게 될 줄을 믿습니다. 저도 이런 것을 잘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낮아지고 겸손해 지고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희생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힘을 모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섬기고 낮아지는 삶을 잘 살아서 이번 예수님이 오시는 이 계절에 예수님을 가슴 속 깊은 곳에 우리의 삶에 깊은 곳에 예수님을 모셔 들일 수 있는 그런 귀한 성탄절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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