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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인 산수 계산 법,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창 26: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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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산수 계산 법,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창 26:12~22)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제일 먼저배우는 셈이 덧셈입니다. 그 다음에 뺄셈을 배우고 고학년이 될수록 곱하기 나누기를 배웁니다. 오늘은 신앙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받는 영적인 산수 계산법 4단계 원리를 배우기로 하겠습니다. 

첫 번째 원리 / 더하기 이야기
신앙 생활의 덧셈의 원리는 예수 믿기로 작정하고 맨 처음 교회에 나오면 시작되는 원리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에 빠저 자신도 모르게 영원한 지옥 형벌에 빠질 존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행16: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요1: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얻고 누리는 모든 것들은 천국의 덧셈 법칙에 의해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입니다. 
이 때부터 인생의 덧셈이 시작됩니다. 

아주 전혀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계획을 알게 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믿던 신앙이 깊은 영적 체험을 하게되고 주님과의 새로운 만남과 교제가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단계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원리 / 빼기 이야기
신앙의 뺄셈 원리는 하나님을 믿고 난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끊을 것 끊고 버릴 것 버리고 잊을 것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신앙생활의 뺄셈 공부를 빌 3:7-9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빌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예수 믿기 전에 유익하게 생각되었던 것들 하나님 알지 못할 때 가장 소중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이제는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여겨 버렸다는 것입니다. 
고전 13:11절에서도 비슷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신앙이 성장하면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철 없는 아이일때는 실수와 잘못도 귀엽게 보여지지만 장성한 다음에는 그것이 큰 흉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초보 때에는 용납되던 것들도 신앙이 성장하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스스로 느끼고 교회의 직분을 가진 분들이 아직도 술이나 담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까?
신앙의 덕을 위해서 버릴 것을 과감히 버리십시오. 신앙의 뺄샘을 하라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비만으로 인해 죽는 사람들이 일 년에 3천 만명 정도라고 합니다.
현대 사회는 소득의 증대로 인해 먹고 사는 것이 풍부하여 먹는 대로 비만증에 걸리고 살진 사람들은 건강한 생명 유지에 지장을 주는 군더더기 살을 빼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육체도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면 빼야합니다. 

영적으로도 빼기 신앙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죄를 끊고 갖가지 잘못된 과거의 것들을 자신의 삶 속에서 빼내는 것입니다.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자기 중심적인 생각들을 과감히 빼내야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삶을 소유하는데 있어서 군살 군더더기는 빨리 뺄수록 좋습니다. 뺄 셈의 삶은 후퇴나 정체가 아닌 전진과 성장입니다.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영생에 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좇으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재산이 많아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뺌셈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사단은 뺄셈의 신앙생활을 잘하는 자 앞에서 힘을 잃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걸을 때 걷지 못하고 뛰어야 할 때 뛰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영에 덕지덕지 붙은 비계덩이 때문입니다. 

늘그막에 기독교인이 된 어떤 여인이 손녀와 함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거지가 와서 엄살을 부리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서슴치 않고 10,000원을 주었습니다. 조금 가지 구세군의 자선 남비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여인은 거리낌없이 20,000원을 자선 남비에 넣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손녀가 물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가 기독교인이 된 후로 잃어버리신 것이 많지요?” 
“그럼 그렇고 말고 정말 많은 것을 잃어버렸지. 조급한 성격 남을 헐뜯는 버릇, 아무 의미 없는 오락, 무익한 생활로 인한 시간 낭비, 나 혼자만 잘살려고 하던 이기적인 욕심, 등이 내게서 없어졌으니 참 많이 잃어버린 셈이구나. 그러나 모두 내가 버려야 할 것들만 잃어 버린거란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의 뺄셈공부는 영원한 것을 소유하기 위해 세상 것 육신의 것을 포기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빼는 것은 손익 계산상 손해 보는 것 같으나 사실상은 새로운 흑자의 시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뺄셈 공부는 육적인 삶의 파산 선고요 새로운 영적 삶의 창업 선포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아직 술을 끊지 못한 교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교인은 술집으로 전화를 한다는 것이 자신이 다니는 교회 사택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마침 담임목사님이 받으셨는데 교인은 술집으로 착각하고 “여기 누구누구 집인데 술 한 상자만 빨리 배달해주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교인이 자신을 알아보고 무안해 할까봐 모른 척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그 교인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니 
목사님 술집은 왠일이세요?”
황당하고 썰렁한 이야기입니까? 예수 믿고 신앙생활하면서 끊을 것 끊어야 합니다. 그래야 곱하기의 복이 임합니다. 

세 번째 원리 / 곱하기 이야기
곱하기는 신앙생활의 복을 의미합니다. 
이삭은 흉년을 피해 그랄 땅으로 내려갔던 이삭이 그곳에서 농사하였는 데 100배나 거두었다고 했습니다. 이삭은 양떼를 기르는 유목민입니다. 정착하여 농사하는 농부가 아닙니다. 농사의 전문가가 아닙에도 불구하고 농사하여 백 배나 거두었습니다. 그것도 모두다 흉년이 들 때 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곱하기의 복”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배” 라는 말이 곱하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곱하기의 복이 오는 것은 뺄셈 공부를 잘한 사람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뺄셈 공부를 잘한 사람들에게 곱하기로 복을 베풀어 주신 이야기가 오병이어의 기적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소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신의 양식을 주님에게 드렸습니다. 
자기의 것을 주님께 드렸으니 빼기 원리를 실천한 것입니다. 혼자만 먹겠다는 이기심을 빼낸 것입니다. 욕심을 버린 것 즉 빼기의 원리를 실천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 아이의 헌신을 통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 오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 남게 거두었던 것은 어린아이의 욕심의 주머니가 열려졌을 때 하나님의 축복으로 나타난 기적이었습니다. 
12광주리 남은 것을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성경에는 없지만 아마도 주님은 오병이어를 바친 소년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어린 소년이 다 가지고 갈 수없으니까 제자들을 통해서 집에까지 배달애 주셨을 지도 모릅니다. 

곱하기식의 복은 행동하는 믿음이 먼저인 사람들에게 다가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으로 끝날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나타나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하나님은 행동하지 않는 자를 돕지 않는다” 라고 했고 세익스피어는 “행동이 웅변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에게 곱하기 식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네번째 원리 / 나누기 이야기
하나님께서 곱 셉의 복을 주심은 쌓아놓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누기를 잘하라는 뜻이 숨어있습니다. 나눔은 분배가 아니라 베품입니다. 나눔의 삶은 내 소유가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시인하는것이며 그러한 내 믿음은 베풂을 실천함으로서 입증되는 것입니다

나눗셈은 덧셈 뺄셈 곱셈보다 더 높은 차원의 수학입니다. 
곱셈에서 나눗셈으로 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성장입니다. 나눗셈의 원리는 예수님의 원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잡은 사람만이 나눗셈의 생활을 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교제와 섬김은 나누어주고 나누어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고 사랑 위로 슬픔 소망 고통 기쁨... 등등 모두가 이에 포함되는 것들입니다. 

나누기 삶은 하나님께서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시는 구체적 행동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 는 나눔의 행위로 판명됩니다. 영적인 나눗셈을 잘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짝이 되고 동행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홀로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서로 나눔으로 내게 임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흘러들어가게 하여야 합니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집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강도가 “손들엇” 하고 권총을 겨누었습니다. 그런데 집주인은 왼손만 번쩍들었습니다. 강도는 “오른쪽 손도 들어”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집주인이 “오른 쪽손은 신경통이 심해서 들수가 없소”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신경통요 사실은 나도 신경통이 심해서 고생을 했는데.....”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경통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아픈지 통증이 심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등.... 둘이는 신나게 신경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강도는 자신이 강도라는 사실도 잊고 신경통 얘기에 열을 냈습니다. 집주인 역시 자기 집에 강도가 들었다는 사실도 잊고 둘이는 너무 친한 친구처럼 밤새도록 이야기하였다고 합니다. 
슬픔을 나누면 기쁨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너와 내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복음을 나누면 우리 모두가 영원한 복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 수학의 가장 높은 수준은 나누기입니다. 이 나누기를 통해서 영원한 행복과 축복을 소유하게 됩니다. 
왕상 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의 기적은 신앙생활의 뺄셈공부를 잘하는 사람에게 어떤 복을 주시는지를 잘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먹을 마지막 양식을 하나님의 종을 위해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오랫동안 먹을 양식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왕상 17: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왕상 17: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나누며 삽시다. 베풀고 바치면 복이 옵니다. 
잠 11:24절에 보면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눅 6:38절에도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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