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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수아의 유언 (수 2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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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유언 (수 23:6~13)


옛날 옛날에, 엄마 개구리와 아들 개구리들이 살았다. 아들 개구리들은, 항상 말썽만 피웠다. 엄마 말씀은 아예 듣지 않았다. 엄마가 ‘동쪽으로 가라’고 하시면, 그들은 ‘우리 서쪽으로 가자’고 하면서, 서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가라 하시면, ‘싫어요, 우린 동쪽으로 갈래요’하고는, 동쪽으로 갔다. 

엄마가 오늘은 산에서 놀라고 하시면 ‘싫어요, 강가에서 놀 거예요’하고 말했다. 아들 개구리들은, 언제나 반대로만 행동했다. 엄마 말씀은 절대로 안 들었다. 엄마 개구리는 매일같이, 아들 개구리들 걱정만 하다가, 어느 날 병이 나고 말았다. 

엄마 개구리는 자신이 얼마 못 살 줄 알고, 아들들을 불러, 자신의 마지막 유언을 하였다. “얘들아 엄마가 죽으면, 언덕에 묻지 말고 강가에 묻어다오.” 그렇게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엄마 개구리는 사실은, 언덕에 묻히고 싶었다. 

그러나 아들 개구리들이, 반대로 할 것이라 생각해서, 강가에 묻어달라고 부탁했다. 엄마 개구리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아들 개구리들은 엄마에게 정말 미안했다. 그래서 엄마 주검 앞에서, 아들들은 엉엉 울고, 더 이상 말썽을 안 피우기로 작정했다. “엄마 잘못했어요”하며 아들들은 빌었다. 

우리가 엄마 말씀을 들었어야 했어요. 우리들은 세상에서, 제일 못된 아들들이었어요. 이제부터는 제일 좋은 아들들이, 되기로 맹세할게요. 그리고 엄마의 유언대로 강가에 묻었다. 그런데 비가 올 때마다, 강물은 넘쳐흘렀다. 개구리들은 엄마 무덤이 걱정되어, 강가에 모여 울어댔다. 

“비야 제발 좀 그치렴, 우리 엄마무덤이 떠내려간단다.”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유언’이다. 말썽꾸러기 개구리들도, 마지막 유언은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하물며 자신이 사랑했던 부모님과 예수님의 유언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개구리만도 못한 사람이다. 

언제 우리에게 죽음이 찾아올지 모른다. 따라서 바른 믿음과, 바른 신앙을 전수해야 한다. 우리도 일정한 시점에서, 생애를 정리하고 유언장을 남길 필요가 있다. 유언장을 미리 남기면, 2가지 유익을 준다. 첫째, 지금까지 살아온 내 생애를 점검할 수 있다. 

둘째, 나의 자손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줄 수 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모든 땅을 분배한 후, 20여 년 간 태평시대를 보낸 다음, 이제 인생 말년에 백성들과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유언한 내용이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처음에는 열심히 순종했지만, 그 신앙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는 실로 두려운 일이다. 모세도 다윗도 솔로몬도 예외가 아니다. 모세는 가데스에서,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교만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승승장구하던 다윗 왕도 말년에 교만하여 인구조사로,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말았다. 일천 번제를 드려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주 흡족하게 만든 솔로몬도, 말년에는 우상 숭배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앞에 순종한 인물이다. 

여호수아는 모세와 비교할 때, 화려하지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시종일관 그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우리도 마지막 말년이, 멋진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진짜 아름다운 신앙은, 끝까지 성실한 사람이다. 여호수아의 유언을 통해, 우리는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1.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는 삶을 살라(3, 5, 8, 10, 11…). 

23장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는 구절이다. 여호수아는 문자 그대로, 가나안 정복의 주인공이지만, 자신이 그 일을 이루었다 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했다. 

내가 용맹스럽고, 지혜가 출중하고, 능력이 뛰어나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너희를 위해 싸워주셨고, 현재도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미래에도 우리를 위해 승리하게 만들어 주신다고 고백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공이요, 나는 다만 무익한 종이라는 고백했다(3, 5). 그러나 인간은 언제든지 기회만 주어지면, 자신의 잘남을 드러내고 싶은, 교만한 마음이 있다. 이스라엘은 이 지역의 승자로, 가장 강대한 민족을 이루었기에, 교만의 위험 가운데 처해 있었다. 

사람은 물질이 많거나, 지위가 높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탐심이 가득하여, 총명한 기운을 잃게 된다. 마음이 교만하여진다. 기도 없이 물질을 누리거나, 고침을 받으면, 주님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의 은혜를 인정하라.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있다면, 겸손하시기 바란다. 

여호수아는 이런 사실을,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간절히 당부하고 있다. 우리가 겸손으로 무장한 신앙고백을 하면, 우리 미래는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맛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 3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돌리는 마음이 있는가?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항상 감사가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여호수아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모세, 바울, 다윗…,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맛있는 음식을 나눠줄 때, 받는 사람들의 반응이 똑같지 않다. 어떤 사람은 주는 사람을 보지도 않고, 그냥 입에 넣고, 어떤 사람은 ‘주는가보다’하며, 인사 한번하고 간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고맙다. 잘 먹겠다’면서, 정말 고마워한다.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에도 “그때 그 음식 참 맛있었다” 

이렇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이 은혜를 아는 사람인가? 진정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은혜를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온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주신 복을 인정하고, 기뻐할 때, 그 복보다 더 큰복을 주신다. 

(2) 충성스러운 사람이 된다. 
마리아는 귀신들렸지만, 자유롭게 되었다. 창녀의 몸으로 구원받는 은혜를 체험했다. 그래서 그녀는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아낌없이 깨뜨려, 주님의 발에 부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섬기는 봉사, 바치는 시간, 드리는 예물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사람,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일꾼들의 공통점은, 먼저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다. 은혜 받지 않고 일을 하면, 그것처럼 어색한 일이 없다. 

은혜 받지 않고 헌금하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헌금과 같다. 속일 수밖에 없고, 풍성할 수 없다. 모두 다 부을 수 없다. 인색할 수밖에 없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없다. C.T 스터드는 캠브리지 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한 수재로, 크리켓 챔피언이었다. 장래가 총망되는 청년이었다. 

그런데 교내수양회에 참석하고 난 다음에,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지나친 헌신이 아닌가?” 그때 스터드는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심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를 위해서 바치는 그 어떤 희생이라 할지라도, ‘지나친 희생’일 수 없다”고 말했다. 

(3) 용서하는 사람이 된다. 
요셉은 자신을 애굽 땅에,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만났을 때, 근심하지 말고 한탄하지 말라고 하였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냈다고 형들을 위로했다(창45:5). 

요셉이 형들을 용서할 수 있던 이유가 어디에 있나?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흘러 넘치는 은혜를 받으면, 용서하는 자가 된다. 다윗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자기를 저주하는 자들을 용서했다. 

왜 용서하지 못하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처는 치유되지 않으면 독이 되고, 치유하면 약이 된다. 상처는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받고,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 

2. 여호와를 사랑하라(11).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어떻게 하는 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여호수아는 구체적으로, 여호와를 사랑하는 법을 말하고 있다. 

(1)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8)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가까이(ק󰔨󰕏)는, ‘굳게 결합했다, 힘써 좇아간다’는 말이다. 아담과 하와가 연합하여(קבד) 한 몸이 되었다. 주님과 하나될 때, 주님을 사랑하게 된다. 

부부도 사랑하면, 가까이 한다. 거리를 두고,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이 함으로 하나되어야 한다. (요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고 하셨다. 나무를 떠난 가지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성도들은, 주님을 가까이해야 한다. 가까이 하면, 그를 닮게 된다. 삶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에 젖고, 자포자기하고, 원망, 불평, 한숨만 쉬고, 중상모략을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하면, 그를 닮아서, 혐오할 만한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링컨의 어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부정적인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 그들은 병균이다” 부정적인 사람은 병균이다. 그들은 우리 영혼까지 썩게 만든다. 삶을 긍정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 하면, 삶이 달라지게 된다. 

우리나라 볼펜의 대명사로 알려진, 모나미 153볼펜은 1963년 출시한 그 당시, 한 자루에 15원했다. 이 볼펜이 나온 다음에, 잉크병도, 철필도 사라지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관공서, 학교, 회사에 널리 사용되어, 곧장 KS마크를 획득한, 국민적인 볼펜이 되었다. 

너무 잘 팔려서, 짝퉁들이 많이 나왔다. 몬나니(Monnani)와 모라니(Morani) 등이 등장해서, 부도 위기에 몰렸다. 채권자들의 빛 독촉에 갈 곳이 없어, 기도원에 올라갔다. 송삼석 회장은 살려달라는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살 수 있는 길은 보여주지 않고, 지금까지 지은 죄만 보여 주셨다. 

“너 돈 잘 벌 때, 주일 제대로 지킨 적이 있느냐? 도대체 한 달에 몇 번이나 주일을 지켰느냐?” 하나님! 살려만 주시면, 앞으로는 주일을 철저히 지키고, 하라는 봉사들은 모조리 다 하겠다. “너 돈 잘 벌 때, 십일조 제대로 해 본 적이 있느냐?” 

“주님 부도 위기만 넘기고, 다시 일어서면, 그때는 작든 크든 따지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며 밤을 지샜다. “네가 잘 될 때, 너는 나를 얼마나 생각했느냐? 부도 위기에 처하고 나서야, 며칠 밤을 새우고 기도했지, 평상시에 제대로 기도해 본 적이 있느냐? 

성경을 읽은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나 하느냐?” 생각해 보니, 제대로 기도한 적도, 성경을 읽은 적도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약속했다. “하나님 살려만 주시면, 하나님의 제단 앞에 몸과 마음을 드리고,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을 생활화하겠다.” 

이렇게 기도하고 성경 읽다가, 요21:장이 눈에 들어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제자들이 사명을 잃어버리고, 다시 갈릴리 호수로 돌아가 물고기를 잡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와 말씀대로 배 오른쪽에 그물을 던져서, 많은 고기를 잡았다. 그 고기를 세어보니, 모두 153마리였다. 

이 고기의 숫자 153을 따서, 모나미 153을 붙여서, 볼펜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하나님 전 세계 모든 사람의 손에, 이 볼펜이 다 들려지길 바란다. 50억 자루가 팔리게 해 주시옵소서. 정말로 간 큰 기도를 했다. 결국 50억 자루를 팔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이요, 사랑이다. 

(2)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7). 
“너희 중에 남아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12-13)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하나님의 법도를 버리고, 우리가 세상에 빠지게 되면, 우리 영은 죽게된다. 내 사명이 죽고, 능력은 사라진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아주 용맹스러운 전사들이었다. 그 중에 아파치 종족은, 가장 용맹스러웠다. 아파치족이 총을 갖게 되자, 그들은 신출귀몰하는 게릴라 전투의 거장으로 자랐다. 그래서 백인들은 아파치족이 나타나면, 꼼짝없이 당해야만 했다. 미국정부는 그들을 회유하기 위해, 2가지 정책을 썼다. 

① 저들에게 거대한 땅을 주고, 평화롭게 마음껏 살도록, 인디언 보호구역을 만들어 주었다. 
② 저들에게 매달 먹을 것을 제공하고, 보조금을 지급하였다. 가족 당 1,500달러씩 무조건 지급했다. 그 뒤로 아파치 인디언들은 무력해졌다. 저들은 일할 필요가 없었고, 무장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면서 마약과 술독에 빠져 버렸다. 강력한 아파치 종족도, 삶아놓은 호박처럼 완전무력화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오늘날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나약한 술주정뱅이, 생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사람이 되었다. 타협은 이렇게 무섭다. 살진 오리가 되어서, 날지 못하기에 결국 잡아먹히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과 타협하면, 생명을 잃고, 능력이 사라진다. 머리 깎인 삼손이 되고 만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면, 스스로 사악한 욕망에 사로잡혀 패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난다. 

(3) 말씀을 떠나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라(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는, 단순히 성경지식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했다. 여기서 가장 강조된 부분은, 지키는 부분이다. 듣지만 말고 듣고 지키자. 

예수님은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셨다. (요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인생의 열매는, 하나님이 맺게 해주셔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관계를 막는 대상이 바로 우상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어떤 것도 들어가면 안 된다. 

인류 역사상 전성기를 누린 나라와 교회를 보면, 성공의 비결은 한 가지다. 철저하게 그리스도께 붙어서 순종하였다. 마르틴 루터 이후에 독일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순종했다. 주님께 철저하게 하나되었기에, 독일문학이 성경을 통해 이루어졌다. 독일음악은 찬송을 통해 이루어졌다. 

독일의 법학과 철학이, 하나님의 탐구가 되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 결과 독일의 문학과 음악과 철학이, 유럽과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왜 말씀을 떠나지 않아야 하나? 지켜 행하기 위해서다(6). 말씀을 지킴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표현하자. 

3. 바른 신앙을 남기자(수24:14-15).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일생을 살았던 여호수아는, 내 평생을 통해서, 그리고 나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과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는 사랑하는 동지들에게, 바른 신앙을 가지라고 유언을 남겼다. 

사람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많이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잘생기고, 못생긴 사람이든, 지위가 높은 사람이든, 미천한 사람이든, 사람은 다 죽는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죽을 때는 순서가 없다. 

늙은 사람이 더 일찍 죽는다고 할 수도 없고, 건강한 사람이 더 오래 산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죽음을 먼저 준비하는 삶이다. 우리가 죽으면 반드시 천국과 지옥이 있다. 죽음 뒤에는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 심판이 있다. 

사람들이 어리석은 이유는, 죽는다는 것은 다 인정하면서,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순교자들의 유언’이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받던 시절, 하루는 로마군인들이 카타콤을 습격했다. 카타콤에 숨어 있던 기독교인들을 모두 잡아 끌어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광장의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하기 시작했다. 순교자들은 서서히 십자가위에서 숨졌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지면서, 로마군인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람들이 서서히, 십자가 주변에 모여들었다. 십자가에 처형된 성도들의 자녀가, 부모를 찾아 왔다. 

그들은 십자가에 매달린 자기 부모를 향하여 “엄마! 아빠!”부른다. 십자가에 달린 부모들은 “얘야 얼른 도망가거라. 나처럼 예수님을 믿다가 붙들려 죽으면 안 된다. 어서 도망가거라!” 이렇게 외친 줄 압니까? 아니다. “얘야 무슨 일 있어도, 예수 믿는 것은 포기하지 말아라. 

비록 나는 먼저 죽지만, 천국 간다. 거기서 다시 만나자…” 부모들은 십자가에서 죽어 가면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유언을 남겼기에, 그들의 자녀들도 예수님을 믿고, 또 그 자녀들도 신앙을 가지게 되어,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오늘 우리는, 내 사랑하는 자들에게, 무엇을 남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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