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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를 버릇처럼 (골 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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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버릇처럼 (골 3:12~17)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사실 1년 52주 모두가 감사주일이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감사의 의미를 특별히 되새기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감사주일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은 미국의 청교도들로 인해서 생긴 국가적 명절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험난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에 건너가 첫 번째 추수를 한 뒤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얻은 농작물이라는 것이 보잘 것 없었지만 그 추수를 가능케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미국은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해서 전 국가적인 명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 추수감사절만큼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고 아무리 바빠도 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 칠면조 요리를 비롯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밤새도록 담소를 나눕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11월의 셋째 주일이나 넷째 주일에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는 것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추수 감사주일을 맞으면서 우리는 먼저 받은 은혜를 깨닫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영어로 감사한다는 'Thank'는 생각한다는 'Think'와 어근이 같습니다. 감사는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도 깨달음도 없는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금년 한 해 동안도 너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신종 플루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많고 각종 사고로 죽거나 다친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은데 우리는 이렇게 다 건강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사랑스러운 가족이 있고 다정한 친구들이 있고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전쟁이나 기근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우리교회에 다니고…. 생각해보니 감사할 이유와 감사할 조건이 너무도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감사하기 보다는 원망하고 불평을 더 많이 하며 삽니다. 왜 그럴까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가 있겠지요.

첫째로, 우리는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내가 가진 것을 생각할 때 시작됩니다. 없는 것을 보면 자연 원망과 불평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기에 가진 것들보다는 못 가진 것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한 사람이 100% 다 누리며 살기는 불가능합니다. 

부자이면서 가정도 행복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머리가 좋은 이가 얼굴도 잘 생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런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습니다. 세상은 어차피 어떤 것을 갖추면 다른 것은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가진 것보다는 못 가진 것을 더 크게 보기 때문에 감사하기 어렵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 부족함이 없는 에덴동산을 만드신 뒤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단 한 가지,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만큼은 금단(禁斷)의 열매가 되게 해서 함부로 따먹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는 0.001%도 안 되는 아주 작은 부자유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자기들이 누리는 99.999%의 자유함보다는 선악과라는 그 지극히 작은 부자유함이 영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못 가진 것, 선악과에 의해서 눈이 가려졌습니다.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렸습니다. 가진 것들이 훨씬 더 많았지만 그 못 가진 것 하나를 갖고자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했습니다. 결국 선악과를 따먹었지만 그 결과는 너무도 참담한 것이었습니다. 영원한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우리에게 왜 감사가 없습니까? 있는 것은 보지 않고 없는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있는 것은 망원경으로 작게 보고 남에게 있는 것은 현미경으로 크게 보며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여러분이 가진 것들부터 먼저 생각해보십시오. 가족 건강 직장 교회 친구 하나님이 주시는 햇빛과 단비 등등, 우리는 수없이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것들을 우리는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 사는 한 과부가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아저씨 한 분을 보았습니다. 다른 곳은 다 멀쩡한데 한 쪽 발목에 의족을 차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의족을 차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 쪽 바짓단을 걷어 올린 채 조그만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구걸했습니다. 그 때 이 과부 여성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이 남자가 왜 구걸하며 인생을 살게 되었는지 아느냐? 다른 일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자기에게 없는 한 쪽 발목만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에 구걸하는 인생을 살게 된 것이란다. 너도 마찬가지다. 너도 내게 받은 것들이 그토록 많건만 남편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아니냐?" 

그렇습니다. 감사는 가진 것을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가진 것들을 생각해보면서 그것들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해봅시다.

둘째로,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잘 안 되는 것은 '내 탓'이 아니고 모두 다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이지요. 사업이 망하게 된 것도 대학 입시에 실패한 것도 질병에 걸린 것도 이혼한 것도 다 누구누구 때문이라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삐뚤어진 마음을 가지게 되면 이웃도 불행하게 만들지만 가장 먼저 내 자신이 불행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누구 때문이라고 남을 탓하지 말고 누구누구 덕분에 내가 잘 되었다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 인생도 행복해질 수가 있습니다. 직장 생활하는 분은 우리 사장님 덕분에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사해야 합니다. 거꾸로 고용주가 되신 분은 사원들 덕분에 회사가 잘 굴러간다는 사실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을 탓하는 대신에 누구누구 덕분에 건강하고 잘 살고 모든 일이 잘 된다는 사실을 감사하면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됩니다. 

전기 한 가지만으로 570개 계열사와 13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일본의 세계적인 경영인이 있습니다. 마쯔시다 고노스케(松下幸之助)는 자전거 점포의 점원으로 출발해서 대기업가가 되었습니다. 마쯔시다는 사업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세 가지 감사할 조건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왔습니다. 첫째는, 11살에 부모님을 잃었기에 남보다 일찍 철이 들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초등학교 4학년이 제 학력의 전부였기에 평생 남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셋째는, 어려서부터 늘 몸이 약했기에 자연 건강에 신경을 썼더니 이렇게 건강하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마쯔시다 회장이야말로 남들이 보기에 억세게 불우했지만 그 책임을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지 않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만 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인생을 살아왔다면 이 시간 깨끗이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과 이웃과 사회 환경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왔음을 인정하고 감사한 마음을 품어야만 하겠습니다. 찰스 스펄젼 목사님의 말처럼 "우리가 받은 축복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 우리가 받은 축복은 연장되고, 우리가 당한 불행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 우리가 당한 불행은 끝이 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항상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항상 감사할 줄을 모르고 어떤 특별한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할 때에만 감사합니다. 예를 들면 암에 걸리기 전, 건강할 때에는 전혀 감사할 줄 모르다가 암에 걸려 치유될 때 비로소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애당초 우리를 암에 걸리게 하시지 않고 건강 주신 하나님께 더 감사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오늘 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모든 선물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힘써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옷을 입듯이, 감사를>

그런데 이와 같이 감사하는 것도 어려서부터 우리가 습득하게 되는 버릇의 문제입니다. 서양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아주 작은 일도 감사하는 버릇을 기르도록 교육을 받습니다. 그래서 늘 입에서 나오는 말이 "Thank you!"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감사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의 버릇이 되게 해야만 합니다. 

불평과 원망도 그렇지 않습니까? 나도 모르게 작은 일도 불평하고 원망하다 보니 우리의 입술도 삐뚤어지고 우리의 마음과 삶도 다 함께 일그러지지 않습니까? 이제부터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이웃에게 감사하고 자연에게 감사하는 삶이 우리의 버릇이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골로새서 3장 12절부터 17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된 사람이 살아야 할 삶의 자세를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그 옛날 선택받은 민족 이스라엘이 그러하듯이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12절).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이제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으로 갈아입어야만 합니다. 여기 옷을 입는다는 비유를 쓰고 있는데 옷을 입는 행위는 당연하고 익숙합니다. 가장 오래된 습관처럼 자연스럽습니다. 그렇지요.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면 제일 먼저 아무 생각 없이 으레 옷부터 갈아입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역시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옷을 입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이 생활 속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지요. 옷을 입는 것이 아주 당연하고 익숙한 습관이 되듯이 이렇게 사는 삶 자체를 옷이 몸에 베이게 하는 것과 같이 생활화하고 습관화하라는 당부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할 여러 가지 미덕들을 쭉 열거하다가 맨 마지막 17절에 가서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권면합니다. 말을 하든지 행동을 하든지 모든 것을 예수님과 결부시켜 하라는 부탁과 함께 예수님을 통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마치 옷을 입듯이 익숙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오래된 버릇처럼 감사해야 하는데 이와 같이 습관적인 감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교제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하나의 버릇처럼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교부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이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돼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주님,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 전도하라고 이곳에 저를 보내셨으니 감사합니다." 감옥에서 쉬지 않고 전도하다가 사형 당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순교라고 했는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자의 반열에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사형집행 중지 명령이 내렸습니다. 그 때에도 크리소스톰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이 종에게 할 일이 더 남아 있어 이렇게 살려주시니 감사합니다." 

크리소스톰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어떤 처지에서든지 항상 감사할 준비가 되어 있던 사람입니다. 옷을 입듯이 자연스럽게 버릇처럼 감사했던 사람이지요.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마치 아침이 되면 옷을 입듯이 자연스러운 버릇과도 같이 감사하는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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