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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삼손의 마지막 기도 (삿 16: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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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의 마지막 기도 (삿 16:18~31)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와 당나귀가 한 집에 살고 있었는데, 유독 주인은 개만 좋아했습니다. 당나귀는 생각하기를 '왜 주인은 개만 좋아할까?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렇게 곰곰이 생각하던 차에 어느 날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개는 주인이 밖에서 돌아오면 꼬리를 치고 마구 뛰면서 주인을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저거로구나' 당나귀는 이렇게 생각하고 다음날 주인이 밖에서 돌아오자 우리를 뛰어넘어서 주인 앞에서 팔짝팔짝 뛰면서 소리를 지르고 주인의 주변을 뱅뱅 돌면서 재 깐에 재롱을 떨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본 주인은 당나귀를 칭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당나귀에게 화를 벌컥 내면서 기둥으로 끌고 가더니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 회초리로 마구 때렸다는 이야깁니다. 
  
이 이솝우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본분을 바로 깨닫지 못하면 어리석은 당나귀와 같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당나귀는 자신의 본문을 망각하고 주인 앞에서 날뛰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지켜야 할 본분이 있습니다.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바로 깨닫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때, 그 직분을 맡겨준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엉뚱한 일에 정신이 팔려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사람은 마치 이솝우화에 나오는 당나귀와도 같이 칭찬은커녕 도리어 화를 당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삼손이 나실 인이라는 본분을 잃어버리고 날뛰다가 두 눈이 뽑히고 지하 감옥에서 연자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기도를 통하여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제목소개!▶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원하지 않은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실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지적해 볼 수 있지만, 일차적인 원인은 뭐니뭐니 해도 인간의 연약함과 부족함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실패는 지극히 인간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실패의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사회는 점점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 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패의 가능성도 점점 높아가고 있는 현실 앞에 자신의 능력이 위축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패에도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섭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에겐 절대로 우연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의 실패 뒤에 더더욱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모세도 자기 힘으로 조국 이스라엘을 독립시켜보리라는 야무진 꿈도, 그가 사람을 죽임으로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쫓김을 받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모세는 이 또한 광야 40년의 훈련이 그를 위대한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로 탈바꿈하는 그런 계기가 된 것입니다. 
  
실패가 새로운 성공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도 합니다. 모든 실패의 배후에는 하나님 없이 살겠다는 교만이 나타날 때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크고 작은 일들에 실패를 주셔서 그 실패 속에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고 '그래! 나는 부족한 인간이야!' 자신을 발견하고 전능 자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십니다. 
  
본문의 삼손도 하나님을 잃어버렸다가 실패자가 된 뒤 다시 하나님을 찾아 간절한 기도를 드린 후에 능력을 얻어 신앙의 위대한 성공 자가 되는 모습을 봅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은 우리들에게 신앙의 깊은 교훈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성공을 통해서 교훈을 주는 사람도 있고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악한 자는 그 악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고 있고 실패한 자는 실패한대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므로 말미암아 실패한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습니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남다른 용모와 탁월한 지혜와 힘, 이런 것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실패한 인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그 당시 배경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을 때는 부강하고 평안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을 따라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자 '모압과 암몬과 블레셋' 등의 주변의 적군들이 나타나서 그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재산을 빼앗고, 농작물, 가축을 빼앗아 가는 등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겸손하게 기도하고 도움을 청했고, 하나님께서는 약 300년 동안 사사를 세워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게 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지키고 보호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에 사사가 세워지면 대군을 무찌르고 민족을 구원하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이 세워지기 전, 다윗 왕조가 세워지기 전 시대를 사사시대라고 합니다. 총 13명의 사사가 세워졌는데 삼손도 그 사사들 중에 한사람입니다. 
  
그 당시도 약 4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족속은 민족이 많은 큰 나라이고 군사력도 강하여 시시각각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찾아와 압제를 가하여 빼앗아 가고 탈취를 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중국과 일본에게 여러 가지 고통을 당하고 빼앗기고 침략을 당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도 40년 동안 블레셋 족속에게 고난을 당하고 빼앗기고 지배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받으시고, 나라를 구원할 지도자를 보내기로 약속하셨는데 그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의 삼손입니다. 

 
2. 나실 인으로 출생한 삼손! 

하루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어서 괴로워하던 삼손의 어머니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삿13:3-5)라고 말합니다. 
  
삼손의 어머니는 너무 좋아서 남편에게 가서 그 얘기를 했습니다. 남편이 그 얘기를 듣고 '과연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고 여호와께 기도했더니 또 그 천사가 나타나서 그대로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네가 낳을 아들은 나실 인이다. 너희들은 그 아이를 잉태하고 태중에 있을 때 포도주나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삼손은 이런 감동을 받고 태어나게 됩니다. 
  
'나실 인'은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특별히 하나님께서 성별한 자녀인데 날 때부터 머리를 깍지 아니하고, 독한 술을 마시지 않고, 죽은 시체를 만지지 않는 특별하게 성별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삼손은 태어나기 전부터 나실 인으로 구별된 자였습니다. 
  
'나실 인'은 '성별 되다, 하나님께 구별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실 인은 보통사람과는 달리 지켜야 할 생활규범이 엄격했습니다. 민6장에도 나와 있고, 삿13:4-5절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실 인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너무 사랑해서 어느 일정한 기간 동안을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합니다. 특별히 이 기간에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하나님만을 기쁘게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자기 몸을 구별해서 거룩하게 이 기간을 보냅니다. 
  
⑴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습니다. 술 취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성령에 충만하게 있겠다는 표현입니다. 
  
⑵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습니다. 머리를 깍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머리카락을 기른다는 것은 나실 인의 기간 동안 '하나님이 나의 대장이 되시고 머리가 되신다'는 표현입니다. 
  
⑶절대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부정한 것을 만지거나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자신을 구별해서 거룩하게 드리는 표현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율법으로서가 아닌 자원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인 바로 '나실 인의 서원'입니다. 
  
이렇게 삼손은 하나님께 택함 받는 구별된 자였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을 일컬어 성도라 합니다. 성도(聖徒)란 거룩(聖), 무리(徒)로서 '거룩한 무리'란 뜻입니다. 무리란 '한 떼' 즉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무리 속에 끼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즉 신앙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헬라 원문에 성도란 '하기오스'인데 '깨끗하게 씻겼다'는 뜻입니다. 제물을 받칠 때 먼저 깨끗하게 씻기는 것처럼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씻겼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면에서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나실 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하는 일들을 우리는 자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부정한 것은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고, 잘못된 것 그릇된 것은 버려야 합니다. 
  
살전5:22절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악한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또 고전6:19절 이하에 보면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3. 삼손의 타락을 보자! 

'삼손'이라는 뜻은 '강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우리가 잘 알듯이 장사였습니다. 힘이 엄청났습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13명의 사사들 중 한사람인 삼손은 가장 무섭고 놀라운 힘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힘을 소유한 사람이지만 그 큰 힘을 의미 있게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힘이 '얼마나 컸느냐!'하면 나귀 턱뼈 하나를 손에 쥐면 1000명의 블레셋 사람들을 혼자서 쓰러뜨릴 만큼 대단한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힘 가지고 나실 인으로써의 삶을 바로 살아야 하는데 삼손은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고 독주에 여인들의 치마폭에 쌓여 살았습니다. 
  
어느 날 삼손이 딤나에 내려갔는데 거기에 아름다운 블레셋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 여인을 보고 첫 눈에 반해서 부모에게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 하고 말합니다. 
  
그때 삼손의 부모는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하고 꾸중을 합니다. 그래도 삼손은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블레셋 여인을 그의 아내로 삼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블레셋 여인의 아버지는 삼손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는지 삼손이 사랑하는 딸을 삼손의 친구에게 출가시키고 둘째 딸을 주려고 합니다. 그때 삼손이 화가 나서 여우 삼백 마리를 잡아 꼬리를 묶어서 그 가운데 불을 질러 블레셋 곡식밭을 전부 불태웁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화가 난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삼손이 유대 땅으로 들어가 굴속에 숨어 있는데 블레셋 군대가 유대 땅을 점령해서 그들을 침략하니까 유대 사람들이 삼손을 굴에서 잡아다가 꽁꽁 묶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내어줍니다. 
  
그런데 삼손이 힘을 한번 쓰니까 묶였던 줄이 동아줄이 끊어지듯 끊어졌습니다. 또 삼손이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삼손은 힘이 세긴 센데 그 힘을 다 쓸데없는 곳에 낭비합니다. 다 하나님이 시키지 않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에 나가라고 해서 나간 것도 아니고 순전한 자기감정과 분노에 의해서 힘을 씁니다. 결국은 나중에 블레셋 한 여인에게 포로가 됩니다. 
  
그는 나실 인으로서 지켜야 할 규례를 범하고 이방 여인과 불륜에 빠집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 힘이 어디에서 솟아나는가에 대한 비밀을 폭로합니다. 그 여인이 누구입니까? 드릴라입니다. '들릴라'의 이름의 뜻은 '속임과 모략에 능한 여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삼손을 죽일까 하고 드릴라를 내세워서 계략을 찾아내는데 삼손은 그것도 모르고 자기 힘의 비밀을 공개합니다. 드디어 삼손이 드릴라의 무릎에 잠들어 있을 때 삼손의 머리를 깎았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 올 때 '블레셋 사람이 쳐들어 왔다'고 외쳐도 삼손은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이미 떠났기 때문에 삼손의 힘이 다 빠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삼손의 착각을 볼 수 있습니다. 삼손의 착각이 우리들의 착각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꼭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삼손이 자기 자신을 아직도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17절에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 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삼손은 이때까지도 자신을 '나실 인'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큰 삼손의 착각입니다. 삼손은 아직도 자기가 나실 인이라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긴 머리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그가 '나실 인'입니까?  나실 인이 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그 당시 여러 번의 혼인잔치를 했습니다. 그 당시 블레셋의 문화에서 술 없는 잔치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삼손은 늘 술을 마셨던 사람입니다. 
  
또한 나실 인은 자기 몸을 구별해서 거룩하고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삼손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가까이 하지도 말았어야 할 이방여인과 결혼하였고 기생과도 지냈습니다. 
  그리고 나실 인은 절대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죽은 사자 시체에서 꿀을 보고 손으로 만져서 먹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죽은 사자의 시체에 손을 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것을 퍼서 부모님께 갔다가 드렸습니다. 
  
오직 그가 잘 지킨 것은 하나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아직도 나실 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들은 다 안 지키고 오직 머리만 안 잘랐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큰 착각이고 영적인 교만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목사라고, 권사라고, 집사라고, 성도라고 자랑하면서도 주님 앞에 충성하고 살고 있습니까? 바른 신앙생활도 못하면서 천국백성이라고 직분자라고 우기지는 않았습니까? 생각해 보고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아멘!/ 
  
▶우리는 세상의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될 때에는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세상의 재미에 빠지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앙의식도 모두 잊어버리고 맙니다. 삼손은 여자에게 약했지만 우리들 각자는 자신에게 특히 약한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무엇에 약합니까? 물질입니까? 명예입니까? 도박과 술 때문입니까? 정의롭지 못하고 거짓말을 잘 합니까? 다른 사람들 도와줄 줄 모르고 늘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 때문에 늘 시험에 빠집니까?   
  
여러분! 성령의 갑옷을 입고 재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안되고 또 넘어가면 또 도전하고 또 실패하면 또 도전하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문제를 두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4. 삼손의 타락의 결과는 무엇인가?(21) 

"블레셋 사람이 그를 잡아 그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잡아서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로 지하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했습니다. 
  
그는 초라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삼손의 말로였습니다. 삼손이 힘없이 잡히자 저들은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붙였다'하고 다 모여서 그들의 신상인 다곤에게 큰제사를 드리면서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감옥에서 삼손을 불러내어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했습니다. 삼손이 나타날 때 수많은 사람들은 환호성을 칩니다. 그리고 '저 자가 정말 사자를 찢던 자인가? 여우 삼백 마리에 꼬리를 묶어서 불을 지른 자인가? 나귀 턱뼈로 천명을 물리친 자인가?' 하면서 삼손을 비웃습니다. 

   ▶타락의 결과가 무엇인가? 
  
⑴하나님의 은혜가 떠난 삼손은 눈이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눈이 빠졌다는 말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기 영적인 눈이 멀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은혜를 상실하면 눈이 어두워집니다. 미래의 환상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합니다. 
  
성경에서 모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눈으로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눈으로 똑똑히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하나님의 은혜와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시야가 상실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삼손의 비극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은혜를 상실하고 볼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지, 눈은 떴으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섭리를 보지 못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⑵놋줄로 묶임을 당합니다. 
  
이것은 세상 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인간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습의 노예가 되고, 허탄한 생각의 노예가 되고, 세속의 줄에 매여서 움직이지 못하는 존재, 마치 나사로가 무덤 속에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 하니까 나오기는 나왔는데 손도, 얼굴도, 발도 묶여서 걷지 못하는 것'과 같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는 믿지만 세속의 줄에 묶여서 영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포로가 된 자들이 많습니다. 혹시 내가 그런 존재가 아닌지 이 시간에 우리 모두 성찰해야 합니다. /아멘!/ 
 
⑶연자 맷돌을 돌리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연자 맷돌은 원래 나귀나 소가 돌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짐승처럼 인생이 불행해졌습니다. 
  
⑷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습니다. 
  삼손이 불신앙에 빠지자 하나님의 영광이 그에게서 떠나 버린 것입니다. 사울에게서 성신이 떠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버린 것은 비극 중에 비극인 것입니다. 
  
⑸이방인의 노리개 감이 되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 사람들의 노리개 감이 되었습니다. 멸시를 받고 있습니다. 옛날 삼손은 전 국민으로부터 두려움의 존재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보면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경외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교회, 능력 있는 성도가 되면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합니다. 안 믿는 사람이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을 상실하면 비난과 비웃음과 조소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을지언정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당당하게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권세를 가질 때는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놀라지만 그 은혜를 상실하면 바로 조롱거리가 됩니다. 
  
과연 '내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남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되는 삼손처럼 되어버린 사람이 아닌가?'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힘이 있습니다. 재능도, 건강도, 물질도, 학식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을 위해 쓰지 못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감정대로 탕진하고 소모하고 이제는 아무것도 없는 존재가 되어 세상으로부터 웃음거리가 되고 있지는 않는지 자기 자신을 성찰해야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만 참석하면 참 그리스도인입니까? 내 생활 전부가 드려지지 않는 삶이라면 그것은 아닙니다(롬12:1). 성경지식만 있으면 참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는 것과 믿는 것에 하나가 되지 못하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엡4:13).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있다고 참 그리스도인입니까? 죽도록 충성하는 모습이 없다면 아닙니다(고전4:2/계2:10). 
  
교회가 커지고 숫자가 많아졌다고 참 교회입니까? 교회 안의 성도들의 삶이 변화되지 않고 있다면 참 교회가 아닙니다(행2:37). 또 믿음의 성장이 없다면 참 교회가 아닙니다(엡4:16). 삼손을 보면서 오늘 우리가 성찰해 보아야할 문제들입니다. 

 
5. 삼손의 회개와 마지막 기도를 보자!(28)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에게 온갖 재주를 부리게 해서 희희낙락거리고 즐거워할 때 삼손은 마음속에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조롱거리가 되다니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생각하면서 슬퍼 탄식하고 회개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바로 가는 지름길은 회개입니다. 회개는 하나님 편으로 하나가 되어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니느웨의 회복도 회계요, 탕자의 회복도 회계입니다. 다윗의 회복도 회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회복도 바른 회계가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한 소년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나로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서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그리고 그가 기둥 곁에 서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⑴여기 삼손이 '이번 만'이라고 말합니다. 
  
'한번만'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삼손이 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야 자신의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그는 깨닫고 그의 비참한 실패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을 깊이 느끼면서 '오, 주여, 지나온 날을 후회합니다. 회개합니다. 다시 기회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러분, 지나온 날의 생애를 한번 돌아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인생을 다 낭비해 왔습니까? 나에게 준 그토록 많은 은혜를 세상에 다 탕진했습니다. 쓸데없는데 써 버리고, 빼앗기고,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 앞에 서서 할 말이 있다면 '다시 기회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회개하는 것입니다. 
  
삼손은 자신의 실수로 하나님께서 멸시 당하는 처지가 된 것에 대하여 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실 인으로 태어나 부모님의 기도에 어긋나게 눈 빠지고, 맷돌 가는 노예가 되어 이방 신전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니 오, 주여 용서하소서.' 이렇게 그는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뉘우치는 죄인에게는 한 번의 기회를 다시 주십니다. 요나에게도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셔서 승리자로 세우셨습니다. 
  
욘2장에 보면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니느웨 성으로 가라는 말씀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을 치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다 버려도 되지 않자 제비를 뽑게 되었고, 결국 요나가 뽑혀 물에 던져지고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면 소화가 되어야 하는데 요나는 기도함으로 물고기가 소화를 시킬 수 없었습니다. 기도하면 죽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망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십니다. 하나님은 제2의 기회를 우리에게 준비하고 계십니다. 기도하면서 회개하는 사람에게 분명히 기회가 오고 있습니다. 
  
⑵중요한 것은 삼손이 이제 기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삼손의 실패는 기도하지 않는데 있었습니다. 삼손은 날 때부터 나실 인으로 하나님의 큰 능력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삼손을 망친 것입니다. 
  그런 삼손이 이제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가 소생하는 비밀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상실하면 삼손처럼 완전히 폐인이 됩니다. 예수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에서 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이미 힘을 잃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가대는 찬양이 죽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목사는 이름만 있지 능력이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머리 깎인 삼손처럼 세상에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에 와서 은혜 받을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우리는 모두 다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됩니다. 눈 빠진 자가 누구입니까 사슬에 묶인 자가 누구입니까 맷돌 가는 자가 누구입니까? 조롱거리 된 자가 누구입니까?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이렇게 됩니다. 
  
⑶거룩한 힘이 무엇입니까? 삼손의 힘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삼손은 힘의 근원이 되신 여호와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합3:19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시18:1절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⑷삼손의 기도는 죽음까지도 불사한 기도입니다.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죽어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것에 노예가 되어 살았기에 이제는 내가 죽음으로 자유 하는 존재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삼손의 위대한 승리를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살았다면, 나만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이기적인 나를 버리고, 육신의 정욕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서겠다는 단호한 결단입니다. 신앙은 결심과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때문에 살고, 예수 때문에 일하고, 예수 죽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하늘의 신비한 능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믿/ 이제 우리는 제2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희생을 각오해야 됩니다. 
  "생명을 얻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와 복음을 위해 생명을 버리면 얻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제 우리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내가 죽어서라도 주님의 영광을 돌려야 되겠다는 이 각오가 서기만 하면 우리 모두 기적의 주인공들이 될 줄 믿습니다. 
  
▶미국의 존경받는 16대 대통령 링컨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 '당신의 성공과 존경받는 삶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링컨은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실패를 많이 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롬8:28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을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실패와 또 실패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성공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실패가 성공이 됩니다. 불행이 행복이 됩니다. 또 여러 가지 세상의 고난과 환난이 축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서 새롭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6. 삼손의 마지막 기도의 위력을 보세요! 

 말년에 참담하게 실패한 삼손도 참으로 웅장하고 장렬하게 인생을 마감하는 최후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잔치를 행할 때에 삼손을 불러다가 재주를 부리게 했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실패와 조롱과 치욕을 마지막 승리로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눈먼 그는 소년의 손을 잡고 성전 두 기둥 사이에 섰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에게 호소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기도하고 난 뒤 힘을 다하여 두 기둥을 밀어 쓰러뜨렸습니다. 그리하여 지붕이 무너져 삼천 명 이상의 사람이 죽었습니다. 본문 30절에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문을 닫으시면, 다른 문을 열어 주십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삼손은 마지막 그의 죽음으로 지난날의 모든 자기의 부끄러운 수치를 청산했습니다. 
  
⑴삼손은 다시 한 번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그의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가진 것도 아니고 부모님께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아닙니다. 블레셋 사람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 우리가 가진 능력, 우리가 가진 건강, 심지어는 우리가 가진 자녀들까지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자기 마음대로 남용하며 살아가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귀하게 사용합니다. 
  
⑵원수를 이기고 승리의 깃발을 꽂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힘을 공급받음으로 여호와의 깃발을 날리게 한 것입니다. 
 
⑶우상의 신전은 왕창 무너뜨렸습니다. 
  한마디로 우상들의 허상을 보여 준 것이요 거룩한 힘을 가진 성도가 있는 곳에는 이런 역사가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⑷큰 업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30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은혜로  마지막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린 것입니다. 

 
7. 우리도 기도하면 승리자가 됩니다. 삼손의 기도/다니엘의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단6;10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여기서 우리는 다니엘의 7가지의 기도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⑴'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이 기도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의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가 역사를 일으킵니다. 이런 기도가 기적을 만듭니다. 
  
⑵'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기도는 지정된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있는 그 곳이 바로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⑶'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이는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기도의 전당입니다. 
  
⑷'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의 습관화입니다. 예수님도 습관을 쫓아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⑸'하루 세 번 씩'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 다윗도 저녁과 아침과 정오 이렇게 세 번 기도하였음을 시55:16-17절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⑹'무릎을 꿇고' 피눈물나는 기도요, 부르짖는 기도요, 겸손의 기도입니다. 
  
⑺'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기도할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입니다. 대통령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까요? 대통령이 내 사정을 들어 준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요? 그런데 기도는 만 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기회요, 하나님이 우리의 내 하소연을 들어 주시는 기회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모두 기도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본문의 삼손처럼, 다니엘처럼 기도해서 응답 받고 승리하는 위대한 참 행복한 성림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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