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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늘 감사하십시요 (시 1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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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하십시요 (시 136:1~4) 

 
[지그 지글러(Zig Zigler)]라는 사람이 75세에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쓴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 자서전의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 말이 이것입니다. "모든 것은 감사뿐이었다. 감사 외에 다른 할 말이 없는 그러한 일생이었다."

여러분, 과연 우리 중에 몇 사람이나 생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적어도 우리의 인생이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또한 특별히 가족들에게 "나를 참으로 행복하게 해준 귀한 동반자였다"고 감사할 수 있다면 더더욱 행복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이웃들을 생각할 때 "내가 사는 동안에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정말로 내게 고마운 분들이다."하고 인생을 감사로 결론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 결국 인생의 성공이 어디에 있느냐를 생각해 봅니다. 많이 가진 것도, 많이 배운 것도, 권세를 누렸다고도 아닙니다. 문제는 얼마나 감사할 수 있고 어디까지 감사할 수 있느냐 입니다. 여러분의 생을 점검해 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충만한 감사 속에 살고 있고 또 이대로의 감사 속에 생을 마감할 수 있습니까?

프랑스가 낳은 전원화가인 [밀레]의 <만종>이라는 그림을 잘 압니다. 그 그림은 밀레가 부모님이 생전에 기도한 기도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입니다. 밀레의 부모님은 그 누구보다도 신앙이 뜨거운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시골교회에서 찬양대 지휘자로 봉사할 정도였습니다. 

밀레의 부모님이 들판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마치는 시간을 늘 일정했습니다. 교회의 저녁종소리가 들려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즉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건강한 몸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남편이 기도하면 부인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또 신앙이 독실한 농부를 남편으로 주셔서 늘 함께 농사일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밀레의<만종>은 이러한 부모님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려진 그림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자란 밀레는 자연스럽게 전원화가가 됩니다. 당시로서는 상품이 되지 않는 전원풍경화만을 고집하면서 팔리지 않는 그림에 궁핍한 살림을 꾸려야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외면했을 때 유일하게 밀레를 격려했던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던 [루소]뿐이었다고 합니다. 

밀레가 <만종>을 그리던 당시 일기장에 "날씨는 추운데 땔 나무는 없고 아내는 곧 해산을 하는데...."라고 쓸 만큼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형편이었지만 부모님들의 감사 기도하는 모습에 믿음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그 그림이 이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감사와 원망은 공히 전염성이 강합니다. 내가 감사하면 아들이 감사하고, 또 그 아들이 감사를 배우게 되지만 원망을 하면 대대로 원망하는 것입니다. 

별로 배운 바가 없는 무식한 어떤 유대 어머니가 자식은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 있었느냐 하면 늘 세 가지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하나는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그저 항상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원망하는 사람하고는 놀지 말라는 당부였습니다. 세 번째가 감사하는 사람과 친해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 마디로 자녀들을 훌륭하게 양육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까? 오늘 우리가 감사를 알고 감사하기를 원한다면 감사는 어디에서 오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첫째 감사는 받은 바를 아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받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주신 은혜를 안다는 것입니다. 받을 때는 분명히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받은 바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쟁취한 것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공산주의가 망해가는 정말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감사가 없어서 망하는 것입니다. 빼앗은 것에 무슨 감사가 있겠습니까? 

 
두 번째 감사는 깨달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다. 많이 받았다고 많이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깨닫는 부분만큼만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진 부자여도 하나님 앞에 내 놓는 것은 없습니다. 반면에 사람들이 볼 때는 소위 쥐뿔도 없는 사람인 것 같은데 하나님 앞에 내 놓는 것은 늘 풍성합니다. 무엇의 차이입니까? 깨달음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깨닫느냐 하는 것이 곧 그 사람의 감사로 이어진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특별히 우리가 깨달아야 할 부분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깨닫고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을 깨닫고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어떤 좋은 여건에서도 미래가 없는 일에는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 속에서는 결코 감사할 수 없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이제 상식을 뛰어넘어서 신앙적으로 봅니다. 이상한 것은 감사하는 순간에 미래가 열립니다. 감사를 먼저 하고 보니까 믿음이 생깁니다. 우리가 오늘 신앙인이라면 현재로부터 미래로 향하는 그것이 바로 감사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오늘 현실에 매여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소망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감사가 먼저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나 한사람의 감사가 가정의 미래를 보게 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감사가 나라를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감사는 선택의 요소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요소입니다. 즉 이 말은 먼저 감사하고 나면 그 결과는 반드시 감사의 결과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살아 있는 생선보다 죽은 생선에서 비린내가 더 많이 납니다. 그 이유는 생선의 신선도가 떨어지면서 생기는 [트리메틸아민(trimethylamine)]이라는 물질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선 중에 유독 비린내가 많이 나는 생선이 고등어입니다. 지방산 때문에 나는 비린내인데 이 지방산을 없애려면 단백질이 풍부한 감자와 같은 식품을 많이 넣고 요리하면 된다고 합니다. 

 마른 멸치는 프라이팬이나 냄비에 넣고 살짝 마른 상태로 한번 볶아낸 다음 음식을 하면 특유의 비린내가 안 난다고 하고요. 국물을 만들 땐 찬물로 끓여야 하며 일단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뚜껑을 연채로 잠깐 더 끓여야 국물 맛이 좋아 진다고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여러 가지 불평과 원망으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우리마저 더욱 오염된 냄새를 풍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오염된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와 찬양과 예배가 세상의 비린내를 없애준다면 여러분은 매일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조용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감사가 이 모든 오염을 씻어 낼 수 있다면 오늘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음 주 감사절을 맞이하여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면서 살다가 감사절이기 때문에 마지못해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감사의 절기를 맞이하는 것입니까? 살아가는 동안에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늘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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