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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살아계신 하나님 경험하기⑥ : 위기 (출 1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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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하나님 경험하기⑥ : 위기 (출 14:1~14)


I. 왜 사면초가로 인도하시나?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내인생 걸음을 인도하시다면 어떤 길로 인도하실가요? 그곳은 빛과 사랑이 넘쳐서 기쁨과 행복이 있는 길, 성공과 축복이 넘치는 승리의 길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 순종하여 나아간 길이 위험한 길이고 실패가 기다리고 있고 무서운 위기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똑같은 햇빛이지만 진흙은 더욱 굳어지고 초코렛은 녹습니다. 똑같은 햇빛이지만 산 나무는 더욱 싱싱해지고 죽은 나무는 바싹 마릅니다. 

위기라는 말은 위험이란 말과 기회란 말이 합쳐져서 된 말입니다. 때문에 위기상황에서 더욱 큰 위험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고 지혜로 놀라운 기회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으로 출애굽을 했습니다. 바로와 애굽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마치 특공대나 된 것처럼 대열을 지어 당당히 출애굽 합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그들을 앞장서 인도했습니다. 안심하고 희망찬 행진을 계속 했습니다. 어디에 도달했는가? 오늘 본문 2절입니다.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로 인도했습니다. 

이 상황 분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나아왔더니 앞에는 홍해바다가 넘실대고 가로막혀 있습니다. 좌우엔 높은 산이 솟아 있는 계곡으로 도망갈 곳도 없습니다. 막다른 골목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입니다. 때마침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기 위해서 진격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면초가, 진퇴양란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입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는 하나님의 전술이 도대체 왜 이런 모양일까요? 이스라엘은 하루아침에 독안에 든 쥐가 되고 말았습니다. 

노예 이스라엘에게 대패하고 자존심이 몹시 상해 있던 바로. 그러면 그렇지 바보같은 놈들, 선발된 병거 600대, 애굽의 모든 병거를 총동원합니다. 애굽의 모든 장수 지휘관들을 시켜서 이스라엘을 추격하게 합니다. 저 노예들을 다시 끌고 오너라. 다시 끌고 올 수 없다면 모두 광야에서 죽여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만난 위기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 경험하기 여섯 번째시간 "위기"입니다. 

이 길은 모세가 선택한 길이 아닙니다. 백성이 원했던 길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입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해안길, 잘 닦여진 도로로 가지 아니하고 다른길을 선택할 때 애굽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런 기대를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여 구름에다가 200만 백성을 몽땅 태워서 둥실 하늘로 띄워 가나안 땅에 척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이토록 어리석은 길을 선택하다니? 바로는 얼마나 비웃었을까요? 일순간에 몰살시킬 수 있을 줄 알고 '저 바보들,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구나!' 쾌재를 불렀습니다. 군대를 보내놓고 이제 조금 있으면 저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끌고 오겠지. 아마 술잔치라도 벌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 믿고 이런 사면초가. 진퇴양란 상황을 만나본 적이 있으십니까? 나는 말씀대로 순종하려 애를 썼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했습니다. 사업이 코너에 몰립니다. 가정에 위기가 옵니다. 인간관계가 깨져버립니다. 시험에 시험이 홍해 앞바다처럼 내 앞에 넘실대며 찾아옵니다.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 믿지 않는 가족들 앞에서, 직장 동료들 앞에서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선언했지요. 난 예수를 믿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술잔을 권유하면 나 교회 다닌다고 술잔 거절하고, 담배 갑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습니다. 금방 신학교 가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위기를 만나도 순교자라도 될 것 같았습니다. 저런 사람 몇 사람만 있으면 세상이 하루 아침에 변화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애굽을 떠났다고 바로가 구경만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애굽의 공격,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완전자유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온갖 걱정근심으로부터 해방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 사실을 모르면 조그만 위기를 만나도 난 예수를 믿었는데 왜 이런 위기를 만나지? 기도하고 예배드렸는데 왜 이런 어려움이 내 앞에 닥쳐오지? 낙심하기 십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당신의 미래 여정을 처음부터 모두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살아가는 방법, 세상으로부터 모두 이해받을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 믿었다고 신앙여정을 시작했다고 만사형통하리라고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경험, 세상적 방법과 원리를 따라 살아갑니다. 당신은 말씀 따라 산다고 얘기합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문제가 생겼을 때 모든 인간관계를 동원합니다. 자금력을 동원합니다. 권모술수를 써서라도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엎드려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돈을 한푼이라도 모으고 투자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먼저 십일조부터 떼고 하나님 나라에 투자한다고 합니다. 납득할 수 있을까요? 한번이라도 착한 일 해야 인정받고 구원받지? 예수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이천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내 죄를 다 담당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부활하셨고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러던 어느날 일은 꼬이지요. 세상과 가족 식구들은 비웃지요. 확신은 모자라지요. 인격이 성숙되지 못해 걸핏하면 부딪힙니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한 것 같습니다. 인생살이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때 고린도후서 4장 8절은 말합니다. 낙심하지 말라구요. 

이스라엘 백성이 위기상황에 빠지자 곧바로 바로는 군대를 보내 공격합니다. 틈만 보이면 곧바로 공격한다고 바로왕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비판합니다. 비웃고 조롱하고 공격합니다. 내 허점만 보이면 마귀는 곧바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상황을 허락합니까? 이스라엘 역사 자체는 메시지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했지만 위기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했지만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길을 잃고 방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귀가 함부로 공격하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들은 공격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공격받은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린양 보혈의 피로 그들은 구원받은 백성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바로가 욕심과 자만으로 공격하면 자신이 죽는 겁니다. 내 백성 건드리면 너 죽는다. 내 백성을 축복하는 자를 나는 축복할 것이고 내 백성을 저주하는 자를 나는 저주한다. 이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습니다. 요즘은 훨씬 더 빨라져서 속도 시대이기 때문에 욕심은 곧 사망으로 이어집니다. 

이 위기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것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 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예수 믿고 살아가는 신앙여정 광야의 여행도 모두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평생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어떤 위기를 만난다 할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II. 위험은 기회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첫 번째 만난 위기는 홍해 위기였습니다. 
얌숲(yam-suph)은 지금 수에즈운하 북서쪽의 한 지점을 말합니다. 
원문이름으로는 홍해는 붉은 바다(red sea)인지 갈대 바다(reed sea) 인지 하는 신학적인 논쟁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홍해는 얌숲(yam-suph)이라 합니다. 얌숲은 홍해라는 말보다는 갈대바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 원문을 연구한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렁이는 큰 호수나 바다을 건너간 것이 아니라 갈대 숲을 헤치고 지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이 갈대바다인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70인역으로 번역하면서 영어로 번역하면서 reed sea가 red sea 붉은 바다로 번역이 되어졌습니다. 가끔은 산호초가 붉은 빛깔을 띠었기 때문에 아마 붙여진 이름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갈대바다든, 홍해든 성경의 맥락을 보면 물이 얕은 또랑은 아니었습니다. 애굽 군대를 몰살시킬만한 큰 바다, 호수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바닷길을 조사하던 영국의 탐사팀들이 홍해 산호초 더미 속에서 애굽 병사들의 바퀴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 홍해의 위기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11절 12절입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애굽에 공동묘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로 이끌어 죽게 하느냐? 평생 자손대대로 애굽에서 종살이나 하다가 죽게 내버려두지..."
이 태도? 어린양 피로 구속받은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얘기입니까? 10가지 재앙을 보고 나온 하나님의 자녀들이 할 말이냐는 것입니다. 당당히 폼잡고 출애굽한 이 사람들이 할 말이었습니까?

작은 시험 앞에서 걸핏하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는 모습 - 어디서 본 듯하지 않습니까? 우리 모습입니다. 신앙생활하고 싶지 않다. 교회 안가면 그만이지. 가끔 교회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무기가 있습니다. "나 교회 안 나가!" 교회 사역을 포기해 버립니다. 직분을 집어던져버립니다.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사단의 공격에 노출되어집니다. 다른 사람을 실망시킵니다. 실족케 하는 죄를 범합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를 보더라도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실망합니다. 비전을 상실합니다. 축복을 잃어버립니다. 우리 아버지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나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기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홍해로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말씀대로 살았는데 내 삶이 코너에 몰렸다. 여기에 분명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다가 망하면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여 살아가다가 내가 어려움을 겪으면 그 어려움 겪는 자체에 분명한 이유가 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목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홍해의 위기? 나는 아직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나 불평을 멈추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섭리는 나타나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할렐루야.

오늘 본문 4절에서 이 사건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얻고, 애굽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위기를 만났다고 한다면 그 위기 상황속에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받으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로운 분이신지,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 분이신지 나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 같지만 반드시 역전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넘어지는 듯 하지만 역전승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 있어서 최악의 상황은 하나님의 최선을 도움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새벽이 가장 어두워요. 칠흙같은 새벽이 걷히고 나면 찬란한 아침 햇살이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어두운 새벽에 어둠과 찬란한 아침 햇살은 맞물려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잠시 잠깐만 인내하고 기다리면 어두움 뒤에 찬란한 아침은 밝아 오게끔 되어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에스더서"가 나옵니다. 이 에스더서는 정경으로 자리 매김을 할 때에 대단히 논란이 많았던 책입니다. 왜냐하면 에스더서 첫장부터 마지막절까지 우리가 읽어보더래도 "하나님"이란 단어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 성령님은 말할 것도 없고 야훼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란 단어가 한번도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이것을 과연 성경에다가 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 가장 많이 기도하게 만들었고 가장 많이 격렬한 논쟁을 만들었던 책이 에스더서입니다.

그런데 에스더서를 앞에 놓고 성경학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기도할 때에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되는 것입니다. 이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란 단어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지만 신구약 66권 가운데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역사를 몰아가는 하나님의 손을 맛볼 수 있는 책이 에스더서란 말이예요. 하나님이란 단어가 안 나옴에도 불구하고 성령이란 단어가 안나옴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강력한 맛을 볼 수 있는 책이 에스더서입니다.

하만이란 장군이 유다민족을 다 몰살시키려고 철저하게 작전을 세웠어요. 그리고 그에 괴수인 모르드개를 매달기 위해서 높이 나무를 매달았어요. 저기에 매달고 자기는 임금이 타고 다니는 마차에 타고 온 성을 돌아다니며 임금 다음 자리를 자기는 노리고 있었단 말이예요. 그런데 유다 민족이 망했습니까? 하만의 족속이 망했습니까? 모르드개를 매달기 위해서 높이 높이 세웠던 장대 끝에 모르드개가 매달렸습니까? 하만이 매달렸습니까? 여러분 임금이 타고 다니는 버금수레에 하만이 앉으리라고 계략을 세웠지만 거기에는 모르드개가 앉아있게 되더라. 할렐루야!

이게 우리가 당하는 위기상황의 대답입니다. 위기상황 때문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넘어져도 일어나는 오뚜기입니다. 실패하는 듯하지만 반드시 역전승합니다. 


III.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당하는 위기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것이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역사 하신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할 때 이스라엘은 몹시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언제나 우리 앞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두려움의 대상을 볼 것인가?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외치는 진정한 리더가 될 것인가? 두 길이 있게 마련입니다. 

앞에는 홍해가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뒤에서는 애굽군대가 추격해 옵니다. 그러나 본문을 잘 살펴보면 오늘 본문 이어지는 14:15절에 홍해는 갈라졌습니다. 출4장 19절이하에 보면 구름기둥이 뒤로 물러가 애굽 군대가 달려오는 것을 막아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에 가려 달려오는 애굽군대를 잘 볼 수 없었습니다. 희미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달려와 우리를 칠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두려움에 떨었던 것입니다. 대신 구름기둥, 불기둥은 선명히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임재, 백성들과 함께 하심 구름기둥을 보지 못하고 잘 보이지도 않는 원수, 애굽만 보고 두려워했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14장에 보면 "두려움"이란 단어가 여러번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10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군대를 두려워했다" 13절 모세의 설교 가운데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이 나옵니다. 또 마지막절에 가서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 경외한다는 말이 두려움과 같은 말이예요.

문제는 위기상황을 두려워 할 것이냐?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이냐의 갈림길입니다. 문제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위기상황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이냐? 우리가 결정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루즈벨트의 말처럼 "문제를 문제시하는 그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를 문제시하면 문제는 문제가 되는 거예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두려워하지 않고 나는 승리한다. 나는 성공한다. 다시 일어난다. 도전한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은 나를 붙들고 계신다. 성령이 나와 함께 계신다. 이 사실을 믿고 선포하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어릴 때 팽이를 곧잘 돌렸어요. 팽이를 다듬어서 어름짱에서 팽이를 돌리면 팽이가 뱅글뱅글 돌아갑니다. 팽이가 돌다가 중심을 잃어버릴 때가 있어요. 그냥 뛰뚱뛰뚱하면 이건 쓰러집니다. 그런데 팽이가 돌아가면서 갈똥갈똥하면서도 중심을 잡고 있으면 팽이가 쓰러지지 않아요.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다시 꼿꼿이 일어납니다. 이게 돌아가는지 안돌아가는지 모르게 똑바로 서 있습니다. 어쩔땐 죽었나 싶어서 보면 그대로 돌아가고 있단 말이예요.

위기상황에 부딪힐 때에 중심을 잃어버리고 비틀거리면 쓰러집니다. 그러나 말씀에 뿌리를 박고 예수님의 손 붙들고 교회를 꽉 붙들고 믿음 붙들고 성령에게 붙들려서 중심잡고 있으면 쓰러질 것 같지만 다시 일어납니다. 의인은 오뚜기! 할렐루야. 넘어졌다가 벌떡 일어나는 중심잡는 오뚜기 말입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이 공산치하에서 죽을 고생을 합니다. 죽을 고생을 하면서 지금 옆에서 모진 고난을 겪으며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처절한 소리가 매일밤 들려옵니다. 그러니 언제 끌려가서 고문을 당할는지, 언제가서 피를 토하고 죽을는지 알길이 없을 때 성경말씀을 조용히 펼쳐듭니다. 

그때 성경속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도대체 몇번이 나오는가를 세어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성경에 365번 나오더래요. 왜 365번 나오는가 생각했더니 일년 365일 두려워하지 말라. 매일같이 두려워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지만 일년 365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데 한번 더 읽었어요. 한번 더 읽다보니까 366번 나오더래. 한번 빠뜨린 거예요. 하나님 일년 365일 매일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받아들였는데 왜 366번 나옵니까? 그랬더니 윤년도 있다 그러더랍니다. 금년은 2월달이 29일이라 366일이예요. 아하 하나님께서는 이걸 빠뜨렸다가 윤년인줄 알고 366번을 기록했구나. 렘브란트 목사님이 책에 보면 그런 기록이 나옵니다.

심리학자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인간의 마음 속에는 포비야 - 두려운 감정이 75가지가 된다고 합니다. 이 두려워하는 감정, 괜히 불안해 하고 근심하고 염려하는 이 감정이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심장질환과 정신질환의 원인이 된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동네 앞을 지나가다 보면 동네 개가 유난히 짖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개가 짖을 때에 어린아이가 지나가면 더 짖어대요. 왜 그러냐 하면? 개를 두려워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요. 그러면 가슴 뛰는 소리를 강아지가 듣고 신나서 짖는 거예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태연자약하게 걸어가면 강아지가 짖지 못한다는 거예요. 두려워하는 사람을 향하여 짖는 겁니다.

마귀도 어떤 사람을 덤비는고 하니 위기상황이 부딪혔을 때 괜히 두려워 떠는 사람들, 그냥 불안해서 안달하는 사람들, 자기를 들볶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자기가 신이 나서 왕하고 짖는 다는 거예요.

마귀가 우리를 삼킬 듯이 덤빌 때에 두려워 떨면 마귀가 재미있어서 사방에서 물어뜯어 삼키려 한단 말이지요. 그때 여기에 와서 엎드려야 돼요. 하나님 앞에 딱 엎드리면 일단 마귀는 기가 죽습니다. 그리고 일어나면서 몽둥이를 딱 드는 거예요.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몽둥이를 딱 들고 일어서면 사탄은 물러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두려움이 생기면 사람은 초라해지고 비굴해 집니다. 사태를 직시하고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담대한 결단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생기면 모든 생각이 부정적으로 바뀌어집니다. 만사가 귀찮아 집니다.

어떤 아가씨가 결혼하여 신혼첫날밤을 보내려고 하니까 괜히 두렵더랍니다. 주례 목사님이 호텔에 전보를 보냈습니다. 

요한1서 4장 18절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느니라"
그런데 우체국 직원이 요한복음 4장 18절을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요한복음이 아니라 요한 1서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느니라. 

딤후 1장 7절 말씀에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얘기했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모세는 출애굽기 14장 13절에서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제가 은혜의 동산이나 영성훈련, 교회 치유수양회 마지막 시간이 되면 예언을 합니다. 제가 예언을 잘 안하지만 예언을 하면 신통하게 잘 맞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첫 번째 예언은 오늘 이곳에서 교육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여러분들 가운데 100년 후에 이 자리에서 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두 번째 예언은 은혜를 많이 경험한 사람일수록 집에 갔을 때 틀림없이 시험당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출애굽했습니다. 구원받았습니다. 은혜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IV. 이겨놓고 싸운다

하나님의 구름만 바라본 모세의 외침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너희는 가만 서라! 가만히 있으라! 그리고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추격하는 애굽군대 앞에서, 분노하며 소리지르는 백성들을 향하여 외친 모세의 말은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어떻게 이 모세는 이처럼 담대한 외침을 할 수 있었을까요? 
모세는 달려오는 애굽의 600 승 병거를 보지 아니했습니다. 
분노와 혈기로 넘치는 백성들의 눈빛도 보지 아니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을 보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였습니다. 

백성들은 넘실대는 홍해를 보았습니다. 뒤에서 추격하는 애굽의 병거소리를 들었습니다. 좌우로 도망갈 수 없는 높은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언제나 문제는 무엇을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보지 못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말씀이 보이고 하나님의 능력이 보이면 이깁니다. 

인생 살아가다 보면 어려움을 만납니다. 문제가 당연히 보이지요. 그러나 문제 뒤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하면, 내게 임재하시는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고 치료하시는 영광의 구름 세키나를 보지 못하면 우리는 어려움에 빠질 수가 있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더란 말입니다. 

환경이 어렵기 때문에 내가 실패했다고 얘기합니다. No. 신앙생활은 언제나 환경의 위기가 아닙니다. 인생의 위기는 환경의 위기가 아니라 심령의 위기요 믿음의 위기요 시선의 위기입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고 봐야 할 것은 보는 위기란 말입니다. 시선의 위기. 

같은 13절 14절에 "가만히 서라"는 말이 나오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 말로는 비슷합니다. 그러나 히브리 원문에서 전혀 다른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서라"는 말은 몸가짐, 신앙적 자세를 말합니다. 서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마음가짐, 말, 입술을 말합니다. 입을 다물라. 떠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연속극에 황후로 나오는 여배우가 입만 열만 "입 다물라" 그러는데 이게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라. 입 다물고 그분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실 것으로 믿고, 하나님이 간섭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입 다물고 엎드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이 얼마나 놀라운 말입니까? 

이스라엘의 전쟁은 언제나 하나님이 싸우셔서 이기는 전쟁이었습니다. 
영적 전쟁은 언제나 하나님의 싸움입니다.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 이스라엘 백성이 하늘에 매달았습니까? 
여리고를 무너뜨린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사자의 입을 막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창조이후 지금까지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땅을 만드시고 하늘을 만드실 때 인간이 무엇을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그분이 십자가에 매달리실 때 그리고 부활하실 때 그분이 승천하실 때, 그분이 천국을 만드실 때 무엇을 했나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00%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인생 살아가다가 어려움에 부딪히고 위기를 만난다 할지라도 100% 하나님의 도움과 사랑과 능력으로 이 문제 해결된다. 믿고 기다리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대신 싸우시리라. 할렐루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나서기만 하면 반드시 이긴다는 사실을. 

베이징 올림픽 때에 야구에서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땄습니다. 있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대만 하나 상대하기도 벅찼을 텐데 우리팀이 어떻게 일본을 이깁니까? 쿠바를 이깁니까? 더구나 미국을 이기다니 있을 수 없는 기적입니다. 쉽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매 게임마다 아슬아슬하게 이깁니다. 9회말 풀 베이스에 찹니다. 1아웃입니다. 안타 한방이면 끝납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 병살타를 쳐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금메달을 땄습니다. 얼마나 조마조마하게 가슴 졸이며 봤던지요. 요즘 어떤 케이블방송에서 그때했던 것을 보여주더라구요. 9회말 풀 베이스 한방이면 끝나는데 조금도 조마조마 하지 않고 느긋합니다. 왜요?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싸움에, 영적인 싸움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기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다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뚜기처럼 일어난다. 역전승한다. 이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인들의 싸움은 싸워서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이겨놓고 싸운다. 

모두를 삼킬 듯 홍해가 넘실대고 있지만 이스라엘에겐 구원의 길이요 애굽에겐 멸망의 길입니다. 십자가가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십자가 우리에겐 구원의 길이요 불신자에겐 멸망의 길입니다. 십자가 고난이 와도 나는 이긴다!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이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앞에서 넘실대는 홍해는 갈라 길을 내시고 뒤에서 쫓아오는 애굽군대는 구름기둥으로 막아주셨습니다. 드디어 동풍이 불어서 홍해를 갈라주셨습니다. 동풍은 열풍입니다. 
불어라 열풍아 동풍이 불어와 바다를 갈라 대로를 만드셨습니다. 이 사건을 신약성경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절 2절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바다에서 세례 받았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종이었습니다. 430년동안 애굽의 종노릇했습니다. 바다를 건넌다음 뒤돌아보니 자기를 지금까지 지배하고 있던 애굽군대가 모두 시체가 되어 떠오르고 있는 것을 보며 그들은 얼마나 커다란 해방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얼마나 놀라운 자유를 맛볼 수 있었을까요? 지금까지는 애굽의 명령에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리라. 세례가 이것입니다. 이 바다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를 지배하고 있던 정욕, 지금까지 나를 지배하고 있던 가시덤불들, 지금까지 나를 지배하고 있던 악한 권세들, 세상의 무서운 욕심들, 쾌락들, 일락들 이런 모든 것들이 바다 위에 둥실 떠올라 시체가 되어있을 때에 이제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어요. 주 없이 살 수 없어요. 주 없이 살 수 없네 

이제는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워도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돌아가겠다 그러면 죽는 길 밖에 없어요.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는 그 바다를 건너지 못했습니다. 한번 구원받은 사람, 세상으로 돌아가도록 하나님이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이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은 죽는 길입니다. 다리 꺾어서라도 하나님 곁에 두십니다.

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은 한 길 밖에 없어요.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겁니다. 하나님이 마련해 놓으신 그 계획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앞에서 도와주십니다. 구름기둥이 갈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길이 보이지 않으면 불기둥이 인도해 주십니다. 뒤에서 하나님께서 밀어주십니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200만 백성이 홍해 한 가운데로 난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또다른 역사를 행하십니다. 
19절, 20절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 즉 삼위일체 하나님 중 제 2위되신 성자께서 구름기둥과 함께 백성들 뒤를 돌아가 진격을 막으십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은 광명한 아침같이 밝은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애굽군대는 칠흑같이 어두운 길을 헤매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먼저 추격 당하고 공격을 받으면서도 밝은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혼란 중에 애굽군대는 홍해 길로 뛰어 듭니다. 새벽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들이 바다 가운데서 헤매고 있습니다. 큰일났다 싶어 도망치려하는 순간 모세가 다시 지팡이를 들어 바다를 가리키자 홍해가 다시 합쳐졌습니다. 그토록 자랑하던 애굽 특공대와 병거들이 몰살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은 한방에 날리십니다. 

우리가 어떤 추격을 받아도, 어떤 위험한 공격을 받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한방에 원수를 격퇴하십니다. 원수의 접근을 막으십니다. 빛 가운데로 걸어가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뒤를 돌아보니 바다에 애굽군대의 시체만 떠 다니고 있습니다. 오늘 출애굽기 14장 결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지막 31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위기 상황이 다 끝나고 나면 언제나 위기의 결론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위기 상황을 통하여 예수 잘 믿는 사람으로 변해 있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는 분들도 신앙의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노련한 신앙인들도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영광스럽게 감당하다가도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인들도 위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망하고 불평하면 망합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나를 대신해서 하나님이 싸워주실 기회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회입니다. 내 신앙이 자랄 기회입니다. 더 큰 복을 받을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인생 여정을 마치고 뒤를 돌아다 보면 그때 위기 때문에 내 믿음이 자랐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 환란 때문에 내가 기도하고 겸손하고 믿음 좋은 사람으로 바뀌어 졌음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위험한 상황, 위기는 기회입니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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