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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충성과 진실 그리고 믿음 (눅 1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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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과 진실 그리고 믿음 (눅 16:9~13)


아주 오래전에[알랑 들롱]주연의<태양은 가득히>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유명한 영화가 있습니다. [맷 데이먼]과[기네스 펠트로]가 출연한 영화<리플리>라는 영화입니다. 리플리는 주인공의 이름인데 낮에는 호텔 종업원, 밤에는 피아노 조율사로 별 볼일 없는 삶을 살고 있던[리플리]에겐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만 기회도 없고 행운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려한 파티석상에서 피아니스트 흉내를 내다 선박 부호[그린리프(Herbert Richard Greenleaf: 제임스 레본 분)]의 눈에 띄게 됩니다. 그는 믿음직해 보이는[리플리]에게 자기의 망나니 아들[딕키(Richard 'Dickie' Greenleaf: 쥬드 로 분)]를 이태리에서 찾아오라고 부탁하게 되고 돈을 받은[리플리]는 이태리로 가서 그 아들[딕키]에게  프린스턴 대학 동창이라며 거짓말을 하고 서서히 접근하며 뛰어난 위장술로[딕키]의 삶을 모방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딕키]에 대한 깊은 선망과 동성애적 감정을 떨치지 못하던[리플리]는 자신의 감정이 거절당하자[딕키]를 살해한 뒤 그의 행세를 하기 시작하면서 가짜[딕키]의 인생을 대신사는 이야기입니다. 

그 영화에서[리플리]가“보잘 것 없는 나 자신이기보다는 뛰어난 다른 누군가인 척하는 게 낫다.”고 말하는 장면은 현대인의 비뚤어진 가치관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거짓인생은 결국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거짓인생은 항상 불안합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거짓을 위장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을 저지르게 되고 맙니다. 거짓말은 한 순간만 통할 뿐이기 때문에 그 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거짓말로 모면해야합니다. 

한때 유명인들의 학력 위조 사실이 계속 터지면서<리플리 효과>라는 말이 회자되었는데 이 영화에서 나온 말입니다. 
영화 뿐만 아닙니다. 그저께 뉴스를 보니까 전직 보험설계사가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이 밤 낚시하러 갔다가 실족사로 죽었다는 신고를 내고 11억 7천 400만원의 보험금을 타서 외제 승용차 2대를 구입하고 부산 수영구에 3억3천만 원짜리 아파트를 샀고 서울 강동구에 5억짜리 상가도 가지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공소시효를 6개월 앞두고 7년 만에 붙잡혔습니다. 7년 동안 다른 사람의 면허증을 위조해서 사용하고 다른 사람 명의의 휴대폰을 가지고 완전히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인간의 인간됨의 문제는 이 진실에 있는 겁니다. 얼마나 진실하며 어디까지가 진실이냐가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진실해야합니다.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충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충성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는“피스티스”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원래 믿음이라는 단어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면 믿음과 충성은 어디로부터 시작됩니까? 바로 진실입니다. 이렇듯 믿음이란 충성과 진실로 완성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자면믿을 수 있다는 그것이 진실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를 보면 주인이 종에게 하는 말 중에“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그랬습니다. 누구에게 맡긴다는 말입니까? 지식이 있는 자? 능력이 있는 자? 경험이 있는 자? 아닙니다. 충성하는 자 즉 진실이 있는 자에게 맡긴다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충성이 없는 자의 것은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도 다 빼앗겼습니다. 

깊이 생각해 봅니다. 혹시 우리가 빼앗긴 것이 있다면 바로 진실이 없었기 때문이요. 다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으려면, 복을 받으려 한다면 그 근거는 충성과 진실입니다. 자기충성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고 자기 진실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하나님의 은혜도 복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충성과 진실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진실이 어디에서 나타나느냐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먼저는 재산을 통해서 우리의 진실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대부분은 물질 앞에서 그 진실이 무너지기 쉽습니다. 돈이라는 것이 우리의 진실을 묻는 중요한 시금석이 됩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돈과 사람 중에 어느 쪽이 중요합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매사를 그렇게 판단하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돈만 생각하고 사람을 보지 못한다면 그에게는 이미 진실이 없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특별히“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불의한 재물이라는 말은 내손에서 떠나 갈 세상의 것들을 의미합니다. 없어질 재물이요, 부득불 빼앗길 수밖에 없는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남은 기간만이라도 내 것으로 누리고 싶지요. 내일 죽더라도 오늘 실컷 쓰고 죽자는 심리가 있을 법도 하지요. 우리 같으면 그런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재물로 오늘 친구를 사귀라고 합니다. 이 말은 재물보다 친구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돈 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옛 어른들이 이런 말을 자주 썼습니다.“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는 속담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사람을 잃어버린 다음에 돈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가만히 보면 돈에 인색한 사람에게는 친구가 없습니다. 돈을 바로 쓰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사람이 없어서 늘 고독합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야 합니다. 돈이란 마지막에는 누구도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 날아가고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그 돈으로 사람에게 잘하고 사는 게 훨씬 명예로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평소에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회범죄 중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빼앗는 행위를 강도짓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돈을 빼앗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것을 살인강도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돈을 사람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이미 그 마음은 강도입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재물보다는 인격과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그런 수준의 기본적인 진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또 오늘 본문에 말씀합니다. 10절을 읽었습니다만 다시 한 번 봅니다.“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사실 작은 것, 큰 것의 구분은 인간적인 시각입니다. 하나님은 그 충성과 진실만을 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철저하게 작고 큰 것을 구분합니다. 작은 일이라고 무시합니다. 큰일이라고 교만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은 위대한 일이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진실이 아닙니다. 충성도 아닙니다. 오히려 작다고 느끼는 그 일에 더욱 충성하는 사람이 더 진실합니다. 바로 믿음 안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들을 돌아보면 작은 일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일들이 많습니다. 
저는 운전하면서 참 화가 날 때가 언제냐 하면 앞에 가는 운전사가 담배를 피우다가 차창 밖으로 꽁초를 휙 던질 때입니다. 그것도 불이 붙은 그대로 던지고 갑니다. 정말 멀쩡한 사람이 그러고 있습니다. 참 화가 나고 한 마디 해주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 뿐 입니까? 주중에 권사님이 김치를 주셨습니다. 보니까 김장김치 겉절이 같아서 새벽에 벌써 김장을 하셨냐고 여쭤 보았더니 길옆 밭에다가 배추를 심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포기씩 한 포기씩 뽑아간다는 겁니다. 이러다가 김장할 배추도 없겠다 싶어서 얼른 뽑아다가 하셨답니다. 뽑아가는 사람은 한 포기쯤이야 작은 것인데 하지만 죄다 그런 생각으로 한 포기씩 뽑아간다면 어떻게 견딥니까? 이게 우리 사회의 문화요, 인식 수준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사람들에게 절대로 당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답니다. 한참 지나간 이야기입니다만 한국은 구두닦이가 성행했고 미국은 구두 수선이 성행했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백 불짜리 구두 밑창이 떨어졌다고 50불을 주고 수리를 한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구두를 50불 들여서 수리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50불 보태서 새것 삽니다. 이런 것이 한국이 미국을 당할 수 없는 이유라고 합니다. 작은 일 같지만 바로 그 자세가 복 받는 그릇입니다. 작은 일도 우습게 여기지 않고 성실하게 생각하는 거기에 진실이 있고 충성이 있고 이것이 곧 신앙인의 정신입니다. 

무엇을 하던지 그렇습니다. 진실한 성실성을 보여야 됩니다. 그것이 곧 작은 일에 충성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는 수요일 저녁 삼일기도회 때마다 해당 기관장이 기도 하고 기관별로 돌아가면서 찬양을 합니다. 그런데 찬양은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지만 사실은 가끔 제가 심기가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기관은 미리 주보에 광고보고 주일에 모여서 연습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기관은 순서가 있는 예배시간에 와서야 앞으로 나오면서 부를 찬송가가 몇 장이라고 서로 가르쳐주면서 나와서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 찬양을 받으시겠지만 그 불성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제11월 셋째주일은 추수감사주일이면서 오후에는 가족 찬양 잔치를 한다고 광고했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보면 여러 모양입니다. 미리 참가신청을 하고 바쁘지만 가족들이 모여서“무슨 찬양을 할까?”를 의논하고“어떻게 부를까?”,“옷은 어떻게 입을까?”하면서 그 한곡을 위해서 정말 애를 써서 하는 것과, 즉흥적으로 찬송가 들고 나와서 부르는 것 하고는 천양지차입니다. 잔치자리를 아주 망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게 바로 성실이 없는 겁니다. 마음이 담기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큰일을 맡기신다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올해에는 정말 성실과 진심으로 준비하는 가족찬양 잔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 믿음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진실에 대하여 묻습니다. 본문 12절을 봅니다.“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여러분, 남의 것과 내 것 중에 누구의 것이 더 중요합니까? 선뜻 대답하기 곤란하겠지만 진실은 남의 것이 더 중요합니다. 주인의 것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 종입니다. 그렇다고 내 것이 아니라고 얼렁뚱땅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럴 수는 없는 것이거든요.

열왕기하 6장에 보면[엘리사]선지자의 제자들이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하다가 도끼가 물속에 빠지고 맙니다. 그런데 그 도끼는 빌려온 도끼입니다. 그래서 당황해합니다. 이 상황 속에는 내 도끼면 하나 없어지면 그만이지만 빌려온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찾아야한다는 절실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안타까워할 때[엘리사]가 그 도끼를 건져줍니다. 빌려 온 도끼라는데 그 핵심이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내 물건과 빌려온 물건 중 어느 쪽이 소중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진실은 무엇입니까? 내 것과 남의 것 어느 쪽이 소중합니까? 통상적으로는 내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것을 지키려고 하고 내 것으로 더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열왕기하의 사건처럼 남의 것을 빌려서 잃어버렸습니다. 그때에 진실이 무엇이냐를 생각하게 합니다. 내 것은 잃어버려도 괜찮지만 남의 것은 반드시 돌려 주어야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그 사건이 참으로 교훈적이다 생각합니다. 

물론 열왕기하의 원래의 의도는 택한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말씀하고자 함이지만 부분적으로는 이런 의미도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거듭 생각해 봅니다. 내 기분과 남의 기분 어느 쪽이 소중합니까? 내 명예와 남의 명예 어느 쪽이 소중합니까? 남의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실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어떤 유대인이 랍비에게 물었습니다.“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 하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서 서로 도와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자들은 여유가 있으면서도 서로 도와주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랍비가 말합니다.“창밖을 보십시오. 무엇이 보입니까?”,“어떤 사람이 어린아이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고 시장으로 자동차가 한 대 들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랍비가 묻습니다.“이제 벽에 있는 거울을 보세요. 무엇이 보입니까?”,“제 얼굴밖에 안 보이는데요.”,“그렇지요. 거울이나 창이나 모두 유리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은으로 칠을 하면 자기만 보이는 법입니다. 은이나 금 같은 귀중품을 가지고 나면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 법이지요.”하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깊이 생각하면서 스스로 진단해 보십시다. 진실을 잃어버린 지식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성실함이 없는 열심이 무슨 진실입니까? 충성 없는 부지런함이 있을 수 있습니까? 진실을 가지지 못하고 돈을 가지면 무엇하고 충성하지도 않고 명예를 얻으면 무엇 하겠습니까? 다시 돌아가서 우리는 작은 것에 충성하는 진실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큰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직접 나에게 유익을 주는 내 것이 아니라 여기는 일에도 충성할 수 있는 신앙적 자세로 우리의 진실과 믿음을 다시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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