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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가서 전파하라 (막 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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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 전파하라 (막 6:7~13)


2차 세계대전 중, 미 해병 중대가 어느 해안에 상륙을 했는데 중대원들이 야자수 쪽으로 낮은 자세로 걸어가더니 바닥에 앉아 멋진 화환을 만들기 시작했다. 중대장을 제외한 모든 병사들이 전투에 나가지 않았다. 중대장은 한 쪽 어깨에 소총을 걸치고, 다른 쪽 팔로는 소형 경기관총을 끼고, 탄띠는 수류탄으로 가득 장식하고, 군화는 가죽끈으로 단단히 동여 매고 번뜩이는 칼을 이빨로 물고 정글 속을 향해 홀로 돌진해 갔다.

일주일 뒤 중대장은 상처 투성이가 되어 야자수가 있는 해변으로 돌아왔다. 전 중대원이 화환을 씌워주면서 그에게 격려를 보냈다. ‘중대장님을 다시 보게 되어 기쁩니다. 계속 분투하십시오!’ 그들은 그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하고 정성껏 상처를 싸매 주며, 탄약을 보충해 주었다. 중대장은 서둘러 다시 전투에 나갔다.

이 이야기는 네비게이토선교회의 복음전도자인 리로이 아임스가 쓴 ‘이렇게 전도하라’는 책 중에 있는 이야기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는 전쟁을 할 수도 이길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비슷한 광경을 오늘날 여러 교회들 안에서 보고 있다. 목사는 영적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사탄에게서 영토를 빼앗기 위해 새벽부터 초인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교인들은 뒤에서 그들의 지도자가 잘 되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있을 뿐이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영적전투에서 승리할 수가 없다.

어느 목사님이 말하길 ‘그리스도인은 모두 전도자다. 전도자가 아닌 사람은 없다. 단지 전도하는 전도자와 전도하지 않는 전도자가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 대다수의 신자들은 전도하지 않는 전도자로 지내고 있으면서 부흥을 기대하고 있다.

여러분! 복음이 정말 기쁜 소식이라면 반드시 전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을 듣고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이미 전도자인 것이다. 복음을 전할 책임과 의무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미 전도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면할 길은 오직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명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저절로 확장되어 지지 않는다. 
전도자들의 복음 전파를 통해서 세워지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자로 보내셨고,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신 후에 그들을 또 보내셨다. 오늘날 복음이 전세계적으로 전파되고 곳곳마다 교회가 세워진 것은 복음전도자들의 순종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자란 고향 동네에 먼저 복음이 전파되길 원하셨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다. 안타깝고 불편한 심기를 안은 채 그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나사렛을 떠나신 예수께서는 여러 마을들로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셨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사역, 곧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제자들을 전도 사역에 투입시킨 내용이다. 이때에 제자들은 제자로서 완벽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미숙했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셨다. 그들을 보내는 예수님의 마음은 조심스러우셨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의 내용을 통해 전도에 관한 중대한 정보와 지혜를 얻을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실 때 어떻게 하셨는가? 2천년이란 시간의 격차가 있으나 오늘날 교회는 이 사실들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의 내용을 살피기 전에 유념해야 할 사항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함께 계셨던 사도시대와 오늘날과 같이 교회가 제도적으로 정착된 시대와는 구별된다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와 사도시대에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장을 위해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 즉 많은 이적과 기사를 동반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도 이적의 사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차이가 난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예수님의 전도사역을 살펴보고자 한다.

1.공동체적이었다.

막 6:7상,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기 위한 최초의 공동체는 12명의 제자들이었다. 그리고 제자들을 한 사람씩 보내신 것이 아니라 둘씩 둘씩 짝지어 보내셨다. 여기에 비밀이 있다. 둘이란 숫자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최소의 단위이다. 

전 4: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또한 둘이란 숫자는 법정에서 증거를 요구할 때 필요한 숫자이다. 확실한 증거를 위해 증인이 두 사람이 필요하다. 전도에 있어서도 확실한 효과를 얻기 위해 둘씩 짝을 짓는 방법은 탁월한 전도방법이라 할 수 있으며, 서로를 의식하며 충실하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뿐아니라 견제하면서 서로의 인격적 영적 성숙을 이루는데 효과적이다. 예)상호책임

물론 혼자서도 얼마든지 전도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전도의 방법들이 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개인전도가 아니라 공동체 전도를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가 전도의 효과를 높이려면 둘씩 둘씩 짝을 지어 나가는 공동체적인 방법이 효과적이다. 

2.특별한 능력을 주시면서 보내셨다.

막 6:7하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제자들은 나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13절 말씀에서 보면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고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나가서 실제로 귀신을 쫓아냈으며, 많은 병자들을 고쳤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니까 오늘날도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전하면 그런 기적과 능력의 역사들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런 역사들이 우리가 전도하는 현장에서 번번히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예수님 당시처럼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 전하는 현장에서 나타난 역사들이 오늘날도 전도의 현장에서 나타난다면 모든 사람이 다 전도대로 몰려 올 것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한대로 사도시대와 제도적 교회시대와의 연속성의 문제가 있는데 오늘날과 같은 교회시대에는 그런 역사들이 흔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도자로서 마땅히 그런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행할 때 복음전파의 효과가 더 많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나가서 전할 때 귀신이 쫓겨 나가고 병자들이 치유되는 현상은 복음 전파의 통로가 되는 것이지 그것이 주목적은 아닌 것이다. 그 시대에 효과적인 복음 전파를 위해 제자들에게 그와 같은 능력을 주신 것이다. 

오늘날 전도자들에게 그와 같은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해도 전도자들이 복음으로 확실하게 무장하고 자신이 만난 주님을 확신 있게 간증하며 전한다면 복음을 듣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복음 전파의 결과는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 믿는다. 방법은 다르지만 구원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3.검소한 전도여행을 명하셨다. 

막 6:8-9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는 소수의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여행의 목적에 따라 준비물이 다르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분의 얘길 들은 적이 있는데 한국여행객들의 관광하는 모습은 다른 관광객들의 주목거리 구경거리가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가지고 다니는 짐이 워낙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국인들의 모습을 보면 필요한 것을 배낭에 딱 짊어지고 지도와 지팡이 하나 정도 들고 있는데, 한국인들은 양어깨에 매고 바퀴 달린 가방 끌고... 그 모습이 이민가는 사람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한 벌 옷과 신은 신발 외에 다른 것은 허락지 않으셨는가? 그것도 가장 중요한 영혼을 건지는 전도여행인데... 

그것은 영혼을 건져내는 전도사역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짐이 많으면 힘과 생각이 분산된다. 입은 옷 한 벌, 신은 신발로 족해야 한다는 말은 전도자들의 양식, 써야 할 돈, 묵어야 할 숙소, 안전을 위한 도구들을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뜻이다. 오직 전도하는 일에 만 집중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예)대학생선교회의 거지전도

선교사님들의 짐은 대부분 가볍다. 그들이 복음 전도를 위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실 것을 믿는 것이다. 그것을 훼이스 미션(믿음선교)라고 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 더욱 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예)최광규선교사 

어느 스님이 말하길, ‘죽을 때 가져 갈수 있는 것이 아니면 어느 것도 자신의 소유가 될 수 없다’란 말을 했다고 한다. 하물며 천성을 향해 여행을 떠난 성도들이 이 땅에 너무 많은 짐을 가지고 있으면 주의 명령에 순종하기가 어렵다. 

복음전도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가능한 단순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소망을 주께 두면 주님께서 우리의 여정을 책임져 주실 것이요 우리의 인생여정을 통해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4.고난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막 6:10-11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전도하는 사람만이 겪는 희노애락이 있다. 
이집 저집 두드리며 다닐 때 8-90%는 거절당한다. ‘바쁘다. 시간 없다. 귀찮다, 싫다’등등... 그러나 간혹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는 사람들도 있다. 

10절 말씀을 보면, 어디서든 누구네든 문을 두드렸을 때 영접하는 집이 있거든 그 집에서 유하라고 말씀하셨다. 마10:12에 보면 그 집에 평안을 빌라고 하셨다. 
그러나 오늘 본문 11절 말씀에 보면, 듣기를 거부하고 박대하고 몰아내는 집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가?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하셨다. 전도자를 받아들이면 그 집에 복이 되지만 거부하면 하나님의 은총을 거부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복음을 거부한 것이 화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박대당한 것에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 복음을 받지 않은 사람이 손해보는 것이고, 아직 그 사람의 때가 되지 않았으므로 불쌍히 여기면 되는 것이다.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전도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심정을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전하지 않는다면 박대 당하거나 자존심 상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훗날 상급도 없을 것이다. -너는 이 세상에 살면서 몇 명이나 구원했니?

이상과 같은 지시 사항을 받은 제자들은 둘씩 둘씩 짝을 지어 전도여행을 떠났다. 

막 6:12-13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오늘 본문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우리가 유념해야 할 중요한 교훈들이 있다. 

1)제자들 만이 전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완성되지 못한 미숙한 상태의 제자들이었으나 영혼을 구원하는 귀한 복음 사역을 위해 제자들을 보내셨다. 그것은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다 해야할 책임과 의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열심있는 사람들만이 하거나, 시간이 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대장만 전투에 보내고 자신들은 중대장의 무사귀환을 빌고 있다면 다 군법재판에 회부감이 될 것이다. 

2)전도는 교회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것이다. 
교회가 해야 할 일 중에 전도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일도 없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전도하는 일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많다. 전도는 영적전투와 같은 것인데 영혼구원에 대한 관심과 열심이 약화되고 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교제하는 것도 중요하고, 구제사업과 사회봉사도 중요한 일이지만 전도하는 일보다 앞설 수는 없다. 

3)성도는 항상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벧전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자신의 간증을 만들어서 언제든지 전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복음 전도자로서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전도할 대상자를 물색하여 기록하고 기도해야 한다. 나의 전도대상자를 품고 기도하고 관심을 가지고 만나야 한다.

4)전도하며 고난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영국의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 목사, ‘전도하지 않는 죄’라는 책에서 신자가 전도하지 않는 이유 4가지를 말하였다. 
1)복음전도의 동기 부족 - 하나님의 영광
2)복음전도를 위한 메시지 부족 - 어떻게 전해야 할지를 모른다.
3)복음전도의 대리자로서 교회에 대한 인식 부족
4)성령의 의지하지 않음 - 복음전도의 능력은 오직 성령.

어떤 사람이 불치의 병인 암에 걸렸다.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던 어느날 이웃으로부터 좋은 소식을 들었다. 어느 곳에 가면 암전문 의사가 있는데 그 의사를 찾아가면 십중팔구는 낫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즉시 달려갔다. 그 의사로부터 치료를 잘 받은 암환자는 6개월 만에 암병에서 치유되었다. 

그 이후로 그는 암 전도사가 되었다. 암에 걸린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자기를 치료해준 그 의사를 소개해 주었다. 그 소식을 들은 암환자들이 그 의사에게 찾아가 치료를 받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죄악의 암병으로부터 우리를 치료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값없이 거저 받았다면 더 더욱 그 분을 알리고 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전도자이다. 전도자로서 가정과 동네로, 직장과 학교로 보냄을 맏았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의 구원자되신 분의 관심, 목적에 함께 동참하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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