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는 행복하다 (마 5:10~12)

by 운영자 posted Jul 0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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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는 행복하다 (마 5:10~12) 


팔복은 천국으로 시작해서, 천국으로 끝을 맺는다. 그런데 “의를 위해 박해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다. 7번째는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이다. 그런데 어떻게 화평하고, 의를 위해 사는데, 박해를 받을 수 있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의를 위해, 박해받았음을 알 수 있다. 

침례 요한은 바른 말을 하다가, 목이 잘려죽었다. 헤롯이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차지하자, 헤롯에게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함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가, 결국 목이 잘리고 말았다. 우리의 현실 에서도, 관행적으로 주는 뇌물수수가 없으면, 사업이 어려워 질 수도 있다. 

군대나 직장에서,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박해받을 수 있다. 학생들이 담배나 술을 권하는 친구들이나 선배들에게 거절하면, 박해를 받을 수 있고, 왕따 당해서 힘들어질 수 있다. 우상 앞에 절을 할 때, 절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 

이처럼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바보같이 보일 수 있다. 세상은 선하게 사는 사람을 시기하고 싫어한다. 자신의 악함이 드러나기 때문에, 죄인은 의인을 싫어한다. 따라서 올바로 행동할 때 당하는 박해를, 성도들은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사랑하지만, 세상과 타협하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성도가 불의와 타협하지 않을 때, 세상은 우리를 박해한다. 예수님은 화평하게 하는 분이셨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음으로 박해 당하셨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평화를 사랑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박해를 받았다. 

박해를 받을 때, 지하 무덤 밑에, 산 속에 굴을 파고 숨었다. 로마의 카타콤과, 터키의 갑바도키아 괴뢰메 골짜기에 가면, 박해의 현장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박해를,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이상하게 여기면 안 된다. 사도들은 박해를 당연하게 여기고, 고난을 즐거워했다(행5:41). 

성경은 의를 위해, 박해를 받으라고 여러 곳에서 말한다. (딤후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박해를 받게 된다. 

(롬8:17-18)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장차 나타날 영광을 위해, 고난도 기꺼이 받자. 

1. 무엇이 박해가 아닌가?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기에 먼저, 의를 위해 당하는 박해가 아닌 경우를, 몇 가지 알아야 한다. 

(1) 엉뚱하게 당하는 어려움 
옆집에 난 불이, 옮겨 붙어서 당하는 박해나 고통은, 축복이 아니다. 술 먹고 중앙선을 넘어온 차에 받혀 죽어도, 박해가 아니다. 

(2) 우리의 실수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 
(벧전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했다. 

(벧전4: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라고 했다. 남의 일을 간섭하거나, 죄를 범해서 당하는 어려움은 박해가 아니다. 또한 학생들이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공부를 하지 않아서, 부모님에게 혼날 수 있다. 

성도가 새벽기도회나, 철야기도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밥해놓고 빨래를 안 해서,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자신이 박해를 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성경이 말하는 박해가 아니다. 처벌이다. 우리는 종종 처벌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박해로 간주하려 하려고 한다. 

(3) 무지한 전도 방법이나, 광신적인 태도 때문에 받는 어려움 
주님은 제자들을 전도하려 보낼 때 (마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고 가르치셨다. 

시주하는 승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한다든지, 돈에다가 주 예수를 믿으라는 도장을 찍어서, 전도하는 경우에 욕을 얻어먹는다. 이렇게 우리가 지혜롭지 못한 방법을 사용함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때, 박해라고 말할 수 없다. 

(4) 순교적 쾌감 때문에 받는 어려움 
순교를 위한 순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전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다. 

교회 역사를 돌이켜 보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더러는 종교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순교를 했다. 무엇인가 보여주기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지 않고, 복음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박해가 아니며, 의미가 없다고 한다. 

(5) 대의명분을 위해 받는 어려움 
정치적인 신념으로 인하여, 특정한 사람이나 정당, 또는 어떤 주장을 반대하기에, 감옥에 투옥되고, 죽음을 자처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을 인용한다. 

이렇게 당하는 어려움은, 박해가 아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일반적인 의의 개념과 다르다. 물론 성경은 사회정의를 말한다. 그러나 본문의 의는, 사회적 정의를 가리키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의는, 도덕적인 의가 아니다. 예수님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민주화를 위해 분신자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의를 위해 박해를 받음이 아니라, 단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희생된 것뿐이다. 어떤 사람은 대중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희생당하고 죽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리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의 진리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안중근 의사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영웅이다. 그러나 일본사람에게는, 기분 나쁜 사람일 수 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일본이 나쁘지만,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내가 노동자로 있을 때의 입장과, 사업자의 입장으로 있을 때는, 다른 입장이다. 우리는 항상 자기 입장에서 말하게 된다. 따라서 좋은 것이라고, 모두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지만, 사랑이 모두 다 하나님은 아님과 같다. 하나님은 선하시지만, 선이 하나님은 아님과 마찬가지다. 

2. 진정한 박해는 무엇인가?(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복이 있나니” 성경이 말하는, 의를 위해 받는 박해는, 나(예수 그리스도)를 인한 박해를 말한다. 

따라서 정확하게, 예수님을 위해 받는 박해를 말한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를 이루기 위해, 자기 영광을 위해, 고난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팔복이 말하는 박해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감으로, 당하는 고난을 말한다. 

성경은 이런 고난을 받을 때는, 복이 있다고 말한다. 순순하게 예수님을 위해 박해를 받을 때만, 박해라 할 수 있으며, 이런 박해에만 하나님의 상급이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위해 받는 고난이 찾아온다면, 피하지 말고, 기쁘게 고난을 받아라. 

예수님은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어둠은 빛을 싫어했다. 사람들은 자기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빛이 하늘로부터 내려왔을 때, 어둠은 빛을 핍박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빛이다. 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에서, 어두움은 정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기에, 박해를 당한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 때, 그렇게 살지 못하는 불신자들의 삶과,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게 된다. 오늘 주님을 믿기 때문에, 가정에서 내쫓김을 당하고, 또한 우상 앞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 자라고, 가정을 파괴하는 자들이라고 멸시를 당한다. 억울한 말을 듣게 된다. 

의로운 사람이, 악한 무리 속에 끼어들면, 악한 자의 행위가 들어 나게 된다. 이때에 박해가 나타난다. 교회사는 박해의 역사이다. 세속사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역사이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임을 보여준다. 

가인에게 박해를 받아 죽은 아벨에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은 시작된다. 보디발의 집에서, 여주인의 유혹을 거절한 요셉은, 감옥에 갇혔다. 모세는 애굽에서의 화려한 삶보다, 광야에서의 고난을 택했다. 

금 신상 앞에 절하게 만들었을 때, 다니엘의 친구들은 지방장관 자리를 내놓고, 목숨을 걸고 우상 앞에 절하지 않아, 평소보다 7배나 뜨겁게 만든 풀무불 속에, 결박되어 던졌다. 다니엘이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 기도하지 못하게 조서를 꾸몄다. 그러나 다니엘은 기도함으로, 사자 굴에 던져졌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은, 사울에게 모진 박해를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예레미야는 구덩이에 처박히는 수모를 겪었고, 쫓겨나는 수치를 겪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찬식에서 “이는 내 살이요, 내 피라.”고 하니까,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이라고 모함했다. 

초대교회 당시는 향락문화가 주류였다. 고대 올림픽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음란하고, 무절제한 그런 문화에서, 그리스도들이 함께 하지 않으니, 당시 세상 사람들이 화를 냈다. “너희만 잘났냐? 너희만 깨끗하냐?”하면서, 왕따를 시켰고, 결국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기독교인은 성적으로 부도덕한 로마인의 삶을 거부했다. 절대적 가부장제도 하에서 실시되는 각종 부도덕한 악행, 예를 들면 여자아이를 낳았을 때, 가장이 그를 싫어서 내다버리는 관습이나, 아내를 마음대로 버릴 수 있는 관습들을 거부했기에 핍박을 받았다. 

바울은 (딤후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마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박해를 받을 때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을 위하여 당하는 순교에는, 2가지가 있다. 영원한 순교가 있고, 매일 순교가 있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자기 십자가는 자기 죽음이다. 그러므로 매일 순교는, 매일 자신이 죽는 것이다. 가정과 직장에서 자기감정을 죽이고, 예수님의 뜻을 따르면, 작은 순교가 된다. 또한 예수님을 위해 순교하는 영원한 순교도 있다. 이런 순교가 있을 때, 상급이 크다. 선지자들도 이런 상을 받았다. 

3. 하나님은 왜 그리스도인들에게 박해를 허용하는가? 

(1) 진정한 성도를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박해는 진짜 성도와, 거짓 성도를 구별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토마스 왓슨은 “가짜 성도들은 예수님을 따라서, 감람산까지는 갈 수 있다. 그러나 갈보리까지는 갈 수 없다”고 하였다고 했다. 용광로에 들어갈 때, 불순물은 타서 없어지고, 금은 정금으로 나온다. (욥1장)을 보면, 사단이 주님의 보좌 앞에 나와, 순결하고 정직했던 하나님의 사람 욥을 참소한다. 

“욥이 하나님을 열심히 경배하는 것은, 물질적인 축복 때문이다. 자기가 많이 가지고 있고, 살기가 편하니까 하나님을 섬긴다. 아무것도 없으면,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신앙의 사람은 고난을 당해도, 주를 버리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욥에게 시련을 허용한다.  

박해는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키질을 하면, 알곡은 안으로 들어오지만, 쭉정이는 바깥으로 나간다. 환란이 있을 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 앞에 나와 엎드리지만, 가짜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떠난다. 우리는 알곡인가? 쭉정인가? 

(2)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성품을 완성하기 위해서이다(히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고 하셨다. 

(단12:10)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라고 말씀하였다. 박해는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인격과 성품을, 완성하는 하나님의 방편이다. 박해를 받을 때, 초대 성도들은 신앙이 뜨겁게 살아났다. 하지만 부요해 졌을 때, 타락했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박해를 통해 은혜를 주신다. 박해가 올 때 그리스도인들의 인격은 훈련된다. 

그래서 (시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했다. 또 (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어려움을 통해, 주님의 거룩한 성품을 드러내시기 바란다. 

(3) 주님을 체험하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단3장)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우상숭배 강요받았지만 거절했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져졌다. 그렇지만 느부갓네살 왕은, 풀무불 속에서 4사람이 다님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고난 당함을 방관하지 않으시고, 그 현장에 찾아오셨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맛보았다. 고난을 통해 주님을 만났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혔지만, 주님은 그들과 함께 해 주셨다. 

오늘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종교개혁 일(1517, 10, 31)이다. 루터는 천주교회로부터 핍박당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욱 경험할 수 있었다. 본훼퍼와 루터는 “교회는 복음을 위해 박해를 받고, 순교를 당한 공동체”라고 했다. 

(4) 박해는 상급이 있다. 
참된 사랑은 그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헌신하게 한다. 믿음의 사람은 주님을 위해, 고난을 즐거움을 받는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친히 자기 몸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채웠다고 고백했다(골1:24). 

결론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을 때, 받는 하나님의 축복은, 2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1) 현재 받는 축복으로, 고난을 당할 때, 그 고난의 현장 속에서,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런 점에서 고난은,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주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삶을 약속한다. 

성도는 은혜로 사는 존재다. 박해는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박해보다, 더 큰 은혜가 있다. 하나님이 현재 우리와 함께 하심을 경험하자. 박해가운데 낙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엎드려 “하나님 능력주세요”하고 은혜를 구하는 백성이 되라. 

(2) 미래의 축복은, 천국에서 놀라운 보상을 약속한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급이 큼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은가? 천국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큰 상급을 받기를 원하는가? 이 예화로 마치겠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사자 굴에 던져 죽이고, 불태워 죽였다. 네로는 자기 정원 기둥에다, 신자들을 묶어서, 기름을 바르고, 불을 붙였다. 그래서 신자들은 네로의 정원을 밝히는, 불기둥이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박해를 받으면서도, 찬송을 부르면서 죽었다. 

박해로 유명한 네로황제의 밑에는, 황제의 싸움꾼 투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로마의 세계에서 가장 힘세고, 용감한 청년들을 모아, 싸움꾼 투사로 훈련시킨 사람들이다. 투사들은 원형극장에서,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황제 앞에 서서 손을 들고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황제폐하의 투사! 우리는 폐하를 위해 싸워서 이기고, 폐하가 주시는 면류관을 받나이다!” 이렇게 외치고, 나가서 싸우는 자들이었다. 로마의 군대가 프랑스 지방의 고을로 보내져서 전투를 할 때, 베스파시안이 지휘하는 이 투사의 부대는, 가장 용맹을 떨치며,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시대에는 신자가 됨은, 죽음을 의미했다. 아무리 황제에게 가까운 사람이라도 예외가 없었다. 드디어 네로 황제의 칙령이, 베스파시안 백부장에게 보내졌다. “너의 부대원 중에 예수 믿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죽여라.” 황제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 날은 매우 추운 겨울날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연못가에 야영을 하고 있던 이 부대의 지휘관 베스파시안은, 황제의 칙령을 받고 심히 고통스러웠다. 자기 부대원들을 처형해야 하는 장군, 그러나 군인은 명령에 복종하는 수밖에 없었다. 백부장 베스파시안은, 자기의 부대원을 전부 집합시키고서 말했다. 

“너희 중에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한 걸음 앞으로 나와라!” 무려 40명이나 되는 군인들이 한 발씩 앞으로 나와, 차려 자세로 서있었다. 베스파시안은 그렇게 많은 부하들이 나올 줄 몰랐다. 

“황제께서 명령하셨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죽는다. 너희들은 나라와 전우들과 너희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그 거짓된 믿음을 버리기 바란다!” 그러나 한 사람도 믿음을 버리는 군인이 없었다. “해질 때까지 다시 잘 생각해라. 그 때까지 시간 여유를 준다!” 

해질 때가 되어서, 다시 40명을 집합시켜 물어 보았으나, 한 명도 믿음에서 양보를 하지 않았다. 40명이 모두 한 걸음씩 앞으로 나왔다. 베스파시안은 오래 동안 신앙을 버리도록 호소했으나, 그들 중에게는 한사람도 변화가 없었다. 베스파시안은 말했다. 

“황제 폐하의 명령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나는, 같은 전우들에게 너희 피를 흘리게 하고 싶지 않다. 이제 너희는 저 호수의 얼음판에 나가서, 너희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그러나 부대 천막 앞에는 큰불을 피워 놓을 터이니, 누구든지 예수를 버리고 살기를 원하는 자는 나와라!” 

40명의 군인들은 옷과 신발이 벗겨진 다음, 꽁꽁 얼어붙는 살인적 추위에, 호수 위로 내보내졌다. 40명의 투사는 네 사람씩 굳게 잡아, 그룹으로 모이더니, 맨발로 얼음 위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에서는 다음과 합창이 터져 나왔다. 그들이 황제 앞에서 부르던 노래였다. 

“우리는 40명의 투사! 주 예수를 위하여 싸우고, 주님이 주시는 면류관을 받아 쓸 40명의 투사!” 베스파시안은 부대 천막 앞, 큰 불 옆에 온밤을 서서 기다렸으나, 그들의 노래가 점점 약하게 들려질지언정, 아무도 나오지를 않았다. 

새벽이 가까워 왔을 때, 한 명의 군인이 고통에 참지를 못하고, 나오고 있었다. 약하게 들려오는 노래 소리는, 다음과 같이 들려왔다. “우리는 39명의 투사! 주 예수를 위하여 싸우고, 주님이 주시는 면류관을 받아 쓸39명의 투사!” 

이때 베스파시안의 눈은, 저 호수의 한 가운데에 남아서, 믿음으로 죽음을 맞는 숭고한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열렸고, 하나님의 천사가 면류관 40개를 가지고 오다가, 1개의 면류관이 다시 올라갔다. 물어보니, 순교자를 위한 면류관인데, 한 사람이 포기해서, 다시 올라간다고 했다. 

베스파시안은 제가 그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며, 두 손은 투구로 올라가더니, 투구를 벗어서 땅에 놓고, 지휘관의 옷을 벗었다. 그리고 얼음판을 향하여 걸어가면서, 입으로부터는 큰 노래 소리가 나왔다. 

“우리는 40명의 투사! 주 예수를 위하여 싸우고, 주님이 주시는 면류관을 받아 쓸 40명의 투사!”  호수 가운데는, 다시 40명의 노래로 바뀌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믿음으로 승리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커다란 면류관이 있다. 이것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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