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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성경으로 돌아가자 (느 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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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돌아가자 (느 8:1~12)


오늘이 종교개혁 492주년 기념주일이다. 1517년 독일인 신부 마틴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당시 교회는 성경 진리에서 멀리 떠나 구원을 돈으로 사고 파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면죄부 사건은 당시 교회가 복음 진리에서 얼마나 멀리 벗어났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었다. 당시 교회는 세속 정부를 간섭할 만큼 힘이 있었고 조직화되어 있었다. 교회당 건물은 오늘날까지 보존될 만큼 아름답고 견고하게 지어져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진리에서 떠났고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때 종교개혁의 선봉에 선 사람이 바로 마틴 루터였다. 그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성경으로 돌아가자!’라고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했다.

딤전 3:15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진리가 없는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니다. 올바른 교회의 지표는 말씀의 바른 선포에 있다. 그러나 당시의 교회가 성경 말씀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타락을 가져온 것이다. 마틴 루터의 주장은 분명했다. 교회가 진리로부터 멀어져서 타락했으니,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서 교회를 다시 새롭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이 개신교 운동이 시작이다. 개신교는 천주교의 작은 집이 아니다. 개신교는 성경적 토대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그래서 개신교는 의식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교회이다. 

그럼 오늘날 개신교회의 모습은 어떤가? 과연 종교개혁 당시의 참신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가? 새 것은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고 헌 것이 되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 한국의 개신교회는 말씀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1)무속화 - 기복주의 은사주의 신비주의 성공주의 신앙. 
2)신학의 변질 - 자유주의 진보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성경의 권위가 실추.
3)세속화 - 도덕성, 윤리성 상실, 편의주의. 일부 성직자들의 교회 세습, 교권주의, 비윤리적 행동으로 인해 교회의 신뢰가 떨어졌다. 

그 결과 사람들이 개신교 신앙을 등지고 천주교로, 불교로 개종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그리고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이 줄어들고 있다. 맛을 잃은 소금이 길가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밝히듯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이 이런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책은 모두 가지고 있지만 펴서 읽지 않고, 배우기를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느헤미야가 주동이 되어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한 것과 관련이 깊다.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그들의 최대의 숙원사업은 성전 건축이었다. 반대파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천신만고 끝에 성전 건축을 이뤘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진 상태로 있었다. 그때 느헤미야의 헌신으로 52일 만에 기적처럼 성벽 건축을 완공하였다. 성벽의 완공은 이스라엘 백성의 큰 기쁨이었고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비로소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들에겐 말씀이 없었다. 그래서 학사겸 제사장인 느헤미야에게 부탁을 했다. 

느 8: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에스라가 높은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낭송하였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정오때까지 서서 그 말씀을 들었다(3절). 말씀을 들은 백성들에게서 어떤 반응이 나타났는가? 놀랍게도 “다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느 8: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다 울었다’는 말의 의미는 그들이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의 말씀을 듣고 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자연스럽게 민족적 대각성 회개운동의 시발점이 되었고, 예배의 회복과 철저한 회개 운동으로 연결되었다(9장). 

오늘 본문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떤 자세로 임하였는가? 주목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1.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1-2절)

느 8: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 날자를 정했다. 일곱째 달 초하루 
유대력으로 7월은 속죄일이다. 일년에 한 차례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대 속죄일이다. 그들은 완성된 예루살렘 성에서 말씀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했다. 

둘째, 모든 백성들이 일제히 모였다. 
2절 말씀에는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 만한 회중”이 모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말씀은 어른들만 들을 것이 아니라 들은 만한 사람은 모두 듣게 해야 한다. 

셋째로, 자발적으로 에스라에게 찾아갔다. 
에스라는 제사장이자 율법학자였다. 에스라는 백성들을 가르치고 말씀을 들려주기 위해 백성들을 모으지 않았다. 백성들이 그를 찾아 간 것이다. 가서 율법책을 자기들 앞에서 읽어주기를 요청했다. 

은혜받으려면 이와 같은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듣고 읽고 배우는 일에 적극적이 되기를 바란다. 구원은 은혜로 베풀어진 것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여러분 하기에 달려 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과 친밀해질 것이요, 말씀을 멀리하면 하나님과도 멀어질 것이다. 

2.하나님 말씀에 대한 진지함(3절)

느 8: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3절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백성들의 진지한 모습 두 가지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새벽부터 오정까지 무려 6시간 동안을 꼼짝 않고 말씀을 들었다. 
새벽녘에 글씨가 보이는 시간부터 점심 때가 되도록 에스라는 정성껏 읽었고, 백성들은 꼼짝않고 들었다.

두 번째로는 귀를 기울여 들었다. 
“귀를 기울이다”라는 말은 귀가 말씀이 들리는 방향으로 향해 있다라는 뜻이다. 들으려는 열심을 가지고 들으면 은혜가 된다. 에스라의 말씀은 부흥회 설교가 아니다. 모세의 율법을 한 장 한 장 읽어나간 것이다. 한 구절도 놓치지 않고 들으려 하는 그들의 열심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는 30분 설교, 한 시간 예배에 길들여져 있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설교가 길다 느껴지면 그때부터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고 산만해지기 쉽다. 

여러분, 그 옛날에 무슨 마이크가 있었겠는가? 그들은 에스라의 입술 놀림까지 유심히 바라보면서 말씀을 빨아들이려는 열심을 가지고 진지한 자세로 들었다. 나의 말씀을 듣는 자세와 비교해 보시기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진지하게 듣는 자에게 은혜 주신다.

3.하나님 말씀에 대한 겸손함

느 8: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에스라가 백성들 앞에서 책을 펼 때 모든 백성이 일어섰다. 어느 교회에서는 설교하기전 본문을 읽을 때 회중들로 하여금 모두 일어나게 하고 인도자가 성경을 봉독하기도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고자 하는 존경심의 발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에스라가 하나님을 향하여 송축할 때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머리를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형식이 아니다. 일어섰다는 것은 외적인 행동만 가리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존귀함을 가장 겸손한 자세로 표현한 것이다. 

시29:2,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예)청평 강동석장로님, 어린 사무엘, ‘주여 말씀하옵소서, 이 종이 듣겠나이다. 30년 동안 은혜 받지 못한 날이 없었다고 간증했다. 복장도 단정해야 한다. 

4.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함. 

느 8: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이것은 말씀을 전하고 설교하는 자의 책임이다. 에스라는 백성들로 하여금 말씀을 잘 알아 듣게 하기 위해 두 가지 일을 병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로는 통역을 해 주었다(8절). 
율법의 말씀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었고, 백성들은 아람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알아 듣도록 아람어로 통역해 주는 일이었다(8절). 

두 번째로는 해석해 주었다. 
율법의 말씀을 잘 알아 듣도록 레위인들을 동원하여 구역별로 나누어 해석하여 가르쳤습니다(8절). 

여기서 중요한 목적은 말씀을 낭독하는 것이 아니다. 낭독한 말씀을 깨달아 알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 중에, 옥토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하셨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 아는 것이다. 말씀의 능력은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늘날 목회자의 직무 중에 가장 중요한 기능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잘 전달하고 깨달아 알게 하는 것이다. 다른 일에 분주하고 말씀을 준비하고 가르치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된다. 강단에서 바른 말씀이 선포되어질 때 교회가 바로 서게 되며 성도들이 바른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중세 천주교의 타락은 성직자들의 말씀에 대한 무지의 결과이다. 마틴 루터를 중심으로 일어난 종교개혁의 핵심 주제가 “말씀으로 돌아가자”였다. 바른 말씀이 선포될 때 성도가 서고 교회가 바르게 서게 된다. 우리가 항상 설교자를 위해서 기도해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내 영이 살고 교회가 사는 길이다. 

5.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

느 8: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말씀을 들은 백성들이 다 울었다. 그들이 운 이유는 지금껏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회개의 눈물이었다. 눈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눈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앞에서 회개하는 눈물일 것이다. 어느 주석가는 이 눈물에 대하여 3가지로 분석하였다. 

첫째는 자책과 후회의 눈물이요, 둘째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요, 셋째는 새로운 결심의 눈물이다 
느 8: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심령의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인격적으로 만날 때 사람은 진정한 회개와 변화가 이뤄지게 된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완악한 심령이 깨어질 때부터 시작된다. (변화된 모습 8-9장)

간증, 나는 25살 되던 해, 성결교회의 유명한 부흥사인 임영재목사님의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말씀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다. 그 때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된 것을 고백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교회에 출석한 지 얼마 되지 않았었던 때였지만 5일 동안 계속되는 부흥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 일이 제 생애에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는다. 오-랜 세월 동안 말씀을 듣는다. 그러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멀리했던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건축해놓고 다시 모였다. 왜 모였는가? 그렇게 살아서는 또 망한다는 각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 소득 2만불 시대는, 타락의 문에 들어서는 시대다. 서구 역사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외형적인 것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멀리하면 망한다. 그것이 역사의 증언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성도가 새로워지는 방법은 무엇인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교회의 회복, 성도의 신앙회복은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오늘 말씀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세에 유념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 깨달아 알고자하는 진지함, 말씀 앞에서의 겸손한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말씀을 듣고 깨달아 알기 위해 노력하라. 한 귀로 듣고 나갈 때 잊어버리는 사람은 믿음의 집이 세워지지 않는다. 매일 매일 1장 씩이라도 성경을 읽기 바란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읽으라. 말씀 앞에서 자신의 잘못한 것들이 드러날 때 회개하라. 내가 잘못 살았구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라. 심령의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결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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