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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 만능 (출 17:8~16, 빌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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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기도 만능 (출 17:8~16, 빌 4:6~7)

   
8.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인생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신약성경을 기록한 헬라어에는 “삶”이란 말이 세 가지로 단어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푸쉬케”의 삶으로 생물학적인 신진대사를 의미하며, 밥을 먹어 소화하고 숨을 쉬어 몸이 활동할 수 있게 하는 모든 움직임을 말합니다. 

둘째로 “비오스”의 삶인데 이것은 몸속에 신진대사를 하기 위한 자신의 활동 즉 의식주를 추구하는 모든 활동을 말합니다. 

셋째로는 “죠에”의 삶으로서,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활동을 의미하며 사랑이나 미움의 표현으로 우리의 영적인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체를 쉽게 설명하여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돈을 벌어 쌀을 사다가 밥을 지어 먹고 힘을 얻어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었다’면 이 속에는 세 가지의 삶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돈을 벌어 쌀을 사다 밥을 지어 먹는 것은 ‘비오스의 삶’이요.

이 밥이 들어가 소화가 되어 힘이 나는데 까지는 ‘푸쉬케의 삶’이요,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사랑의 행위는 ‘죠에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푸쉬케’와 ‘비오스의 삶’은 자신의 생존을 지키는 것이요. ‘죠에의 삶은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삶은 바로 이 죠에의 삶입니다. 

또 “인간의 행복이 사랑하는 인간관계 속에서 얻어 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 죠에의 삶이 더 중요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확해 집니다.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전쟁과 가난과 배고픔 속에서 생존하는 것 자체가 너무 절박해서 사랑이니 낭만이니 하는 말들이 너무 사치스럽게 들리는 시대를 살아오면서 생존을 위한 호구지책(means of living)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대한민국은 경제의 대국에 들어가는 시대가 되었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세끼 밥은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이제는 생존보다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생존의 질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자기의 학문에 충실하고 돈 버는 직업에 충실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삶의 수단이지 목표는 될 수 없습니다.> 

즉 “생존은 수단이요. 행복한 삶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약 시험을 잘 보려고 밤을 꼬박 새우며 공부하다 지쳐서 다음날 시험을 볼 때는 머리가 혼미해져 죽을 쑨 학생이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수단만 열심히 확보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것은 결국 헛수고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을 살 때 세 가지의 삶을 잘 조화된 행복한 삶을 바로 살기 위해서는 지혜도 필요하고, 능력도 필요하고, 건강도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마음도 필요하고 그로 인하여 얻은 것을 가지고 사용할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든 일, 인생을 위한 모든 일을 위해서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도 필요하고 어떤 시대에도 필요하고, 어떤 문제와 상황에서도 필요한 것은 바로 모든 좋은 것을 공급해 주시는 응답을 받는 기도생활입니다. 인생사에 모든 일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기도생활(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입니다.

1.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야합니다. 

오늘 읽은 빌립보서 4:6 말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인생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모든 일에 약방의 감초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전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 

대단히 중요 말씀입니다. 여기서 기도와 간구는 어떻게 다른가? 

우리 언어로 뜻이 거의 같은 것 같지만 우리 성경에는 '기도(prayer)'와' 기원(supplication)'의 번역을 영어성경에는 전혀 다른 단어입니다. 앞의 ‘기도’는 'prayer'이라는 단어이지만 ‘간구’는 'supplication'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원어적으로 보면 쉽게 설명이 됩니다. ‘기도’는 ‘프로슈케’로서 단어로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가 하나님을 향해 있음’을 나타냅니다. 반면에 ‘간구’의 단어는 ‘데에세이’로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뜻합니다. 

“기도와 간구로 하라”는 뜻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구할 것을 간절하게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구하기를 <‘모든 일’에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모든 일”이란 ‘인생살이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각종 시험과 위기와 고통과 실패와 염려와 걱정을 퇴치하는 방법은 감사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걱정은 어떤 것들 입니까? 염려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마 열손가락으로도 다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당장에는 나이가 드신 분들은 여러분의 건강이 제일 걱정이 될 것이고, 노후걱정이 있을 것이며, 죽음의 문제가 심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의 세상걱정, 죽은 후의 수의걱정과 무덤걱정, 죽은 후 매장으로 할 것인지 납골로 할 것이지의 걱정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젊은 분들은 대부분  결혼걱정, 직장의 걱정이 있거나 또는 하시는 사업이 염려가 가득할 것이며, 자녀를 두신 분들은 교육걱정, 자녀진학과 취업 걱정이 있을 것이고, 결혼 후에도 가족관계를 비롯한 인간관계 걱정을 비롯하여 생활가운데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자동차 사고 걱정, 애국하는 마음을 가지면 대통령걱정, 나라걱정 등등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가운데 70인의 제자가 전도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와 보고하는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바꾸어 생각하면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지 않을까 염려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염려하고 걱정해야 할 것은 ‘나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하셨을까’를 생각하며 염려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우리가 이 세상의 일뿐만 아니라 영원히 살아야 하는 영적 세계, 사후의 문제까지 모든 사항을 두고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바울의 기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특징은 그의 기도가 정규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유대인으로서 그의 관습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유대인들은 기도의 시간을 하루 세 차례 정해서 드렸습니다.

바울은 기독교인이 된 후에도 이런 전통을 지켜서 정해진 기도 시간에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통들을 우리가 다 버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이 주님을 섬기는 일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 중에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는 실로 신앙의 호흡과 같아서 거룩한 교리에 대한 지식이 내 몸에 살아 움직이는 징표가 되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게 하시고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는 특별히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이며,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인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기도하는 전통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새벽기도의 전통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런 정한 기도시간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서 사랑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연히 생각나면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규칙적으로 그들을 위해 감사했고 정해진 기도 시간에 그들을 언급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의 실상은 어떠합니까? 정해진 기도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까? 교회는 만민의 기도하는 집입니다. 계획부터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아니 거둔 열매를 관리하기 위해서도 염려보다 계획보다 노력보다 우선적으로 기도가 필요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우리 인생 전반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께 염려와 위기와 실패를 이길 수 있게 해 주는 기도생활을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전쟁에 관한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에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승리하였는데 배후에 모세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전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전쟁, 민족과 민족이 치를는 국지적 전쟁과 세계전쟁은 항상 발발할 가능성이 있으며, 남북 분단으로 휴전선을 가지고 대치하는 대한민국은 전쟁의 위협이 항상 있는데 평화적 통일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북한은 핵무기로 무장하고 대남적화통일 목표를 가지고 있기에 국가적인 대책인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하지만 동시에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구국 기도의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전쟁까지도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7:47에 보면 다윗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이스라엘 최초 왕정 국가로 사울왕이 통치할 때 블레셋이 침공해 왔습니다. 블레셋은 막강한 군사력을 등에 침략할 때 이스라엘에는 골리앗과 블레셋의 병력을 이길 방법이 없었고, 두려워하여 숨기에 바빳습니다. 향들이 전쟁터에서 생존해 있는지 알아보라는 이새 아버지의 마씁에 순종하여 전쟁에 갔다가 하나님을 욕하고 이스라엘을 침공한 거대한 몸집과 강력한 병기로 무장한 골리앗을 보고 전쟁에 자원하여 참가합니다. 그 때 다윗이 손에 칼과 창을 의지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사나운 짐승을 쫓던 물매와 호주머니속에 들어 있는 돌맹이 다서개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동램이 하나만 사용하여 사울 왕도 두려움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블레셋 대장 골리앗을 넘어뜨렸습니다. 이것은 칼과 창을 의지하는 무기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다윗의 충만한 믿음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였습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국가적으로 북한의 핵위기와 남북관계를 생각할 때 구국기도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되지 못하면서도 된 줄로 착각하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압잡이가 된다”고 잠언 16:1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국방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미국과 우방의 도움이 없이 어덯게 북한의 핵무기 위협을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성경에 내용 중에서 국가 안보와 자주국방한 사건의 중요한 내용이 출애굽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이 400여년 만에 애굽으로부터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온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하신 것 같지만 백성들이 고통을 호소했고 하나님은 그 고통의 신음소리를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고 지도자로 세우신 후에 출애굽한 자주국방이 든든한 민족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켜 나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일제치하에서 해방시킬 때 하나님은 세계 전쟁을 일으켜서 일본을 끌어드린 후 미국을 비롯한 유엔연합군으로 하여금 일본을 패하게 함으로서 대한민국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때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분파가 되고 감옥에 갇혔던 자들과 그렇지 않는 자들 간의 신앙이 갈라지는 등 혼잡 된 상황에서 민족 대 전쟁인 6.25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때도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국가로 세워 경제적 성장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기도하던 맥아더 장군을 앞세워서 인천에 상륙하게 하시고, 그로 인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미국을 절대적으로 사용하셔서 우리나라를 이만큼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실은 워싱턴에 가면 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에 가보면 한국동란에 참여했다가 전사한 자들의 명단을 적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왜 한국전쟁에 와서 목숨을 잃어야만 했습니까? 하나님의 평화를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을 우리나라 국민들은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는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살 길과 든든한 국방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우리의 역사적 교훈을 통해 힘과 외부의 힘의 세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과거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가 든든해야 우리의 삶이 안전합니다. 나라가 든든하고 잘 살아야 복음도 제대로 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후진국가가 복음을 전한 것 봤습니까? 

어느 시대든지 전부 선진국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120년 전에 복음을 받아들인 나라입니다. 오랫동안 복음을 수출하지 못하고 국내적으로만 감당했습니다. 이제는 나라가 잘 사니까 개교회적으로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하면서 이제는 선교사를 제일 많이 파송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경제성장이 없이는 될 수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아직도 자원이 빈약한 나라로서 현명한 판단을 하여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남북문제가 항상 심각한 현실 앞에서 기독교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이런 위기를 불러오는 정치하는 사람들에게만 맡겨놓고 불평과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전쟁도 주관하시고 승리를 이끄시고 평안하고 안전한 국가로 든든히 세우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악의 세력을 몰아내고 이기기 위해 항상 쉬지 않는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지 모릅니다. 모세의 기도가 끊어지지 않도록 했을 때 여호수아를 통해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1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무슨 의미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는 길에 가로 막아 방해를 하면 하나님이 그냥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는 약속입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는 길에 장애물이 등장합니다. 안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장애물을 극복하려고 기도하는 자들에게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셔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아울러 방해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물리치실뿐만 아니라 멸절을 하십니다. 실제적으로 아말렉이 언제 멸망하는가 하면 사울 왕 시대에 가서 없어집니다. 역사상에서 사라집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를 괴롭히고 넘어지게 하는 악한 마귀 사단의 세력과 아말렉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그 대대로가 이스라엘 역사속에 보면 사울 왕이 통치하던 시기까지 이어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 가는 곳마다 장애물이 되어 등장했습니다. 그들을 괴롭혔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말렉과 같은 장애물이 우리 앞에 항상 놓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인생에서 이런 장애물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 막을 때가 많습니다. 

사업의 길도 막히고, 선한 길도 막히고, 성공의 길도 막힙니다. 때로는 믿음의 길도 막힙니다. 전도의 길도 막힙니다. 봉사의 길도 막습니다. 심지어 기도의 길도 막습니다. 끝까지 따라다니면서 영적인 아말렉과 같은 사단의 세력과 세상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마치 스토크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 우리는 승리하는 방법인 다른 하나의 전선을 펼쳐야 합니다. 그것이 곧 ‘기도의 전선’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삶을 살 때, 인생살이를 할 때, 삶의 전선과 함께 항상 같이 형성되어야 할 전선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기도의 전선입니다. 오늘 읽은 출애굽기 17장의 말씀 내용의 개요를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광야’를 지나 ‘르비딤’에 도착했으나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때 ‘모세를 통해서 지팡이로 반석을 지시하여 물을 내어 마시게 하라’고 하였으나 불순종과 하나님을 믿지아니하는 그들을 보고 화가 나서 반석을 지팡이로 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하여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를 확인하자고 했던 것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그래서 반석을 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셔서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함으로 하나님이 계심을 믿게 하였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다음에 아말렉이 이끄는 군대가 와서 시비를 걸었습니다. 

아말렉은 누군입니까? 창세기36:12 절에 보면 ‘에서’와 아내 ‘아다’가 낳은 ‘엘리바스’가 그의 첩 ‘딤나’를 통해서 낳은 자녀가 ‘아말렉’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아말렉의 자손은 <출애굽 시대부터 사울 왕 시대에 걸쳐 유다의 남쪽 지경에서 애굽의 국경과 시내 반도에 걸쳐 배회>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에 대해서 “멸절시키겠”다고 하셨습니다. 

민수기24장에 보면 발락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초청한 발람을 통해서 오히려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백성들에 대하여 예언을 할 때에 아말렉에 대해서도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아말렉은 민족들의 으뜸이나 그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그런데 그 아말렉이 제대로 정비가 안 된 오합지졸과도 같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가운데 공격해 오면 이스라엘은 백전백패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호수아를 최고 지휘관으로 삼아서 전쟁을 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9절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모세는 여호수아와 약속한대로 산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모세는 지팡이를 잡고 손을 높이 들고 기도했습니다. 유대인들의 기도 손은 오늘 한국 교회가 기도하는 모습인 손바닥을 모아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두 팔을 벌리며 하늘 높이 올려서 합니다. 그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항복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 만이 필요합니다’라는 간절히 기도하는 뜻이 담긴 자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니 이상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11절 말씀에 보면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패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기도하기를 쉬면 아말렉이 승리하였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전쟁터를 바라보면서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때 지혜로운 아론과 훌이 아주 좋은 방법을 착안했습니다. 모세의 팔이 높이 드니까 피곤하여 손이 내려오고 기도의 손이 내려오니 이스라엘이 밀리게 되는 것을 본 ‘아론’과 ‘훌’이 모세의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하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큰 돌을 하나 가져다가 놓고 모세를 앉힌 후에 자신들은 옆에 서서 모세의 팔을 떠받쳤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그 도움으로 해가 질 때까지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13절 말씀에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단순히 비교해보면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워서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꾀를 부려야 했습니다. 전쟁에 휘말리지 말아야 했습니다. 시비를 걸어오더라도 협상을 해서 위기를 모면해야 하는데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전쟁을 하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보내놓고 자신은 처소에서 쉬고 있었거나 전선의 상황보고만 받고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고 했던 안일한 그런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도 그 전쟁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자리는 영적 전쟁의 현장입니다. 이 현장은 누구나 다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현장, 인생의 삶의 자리를 바라보면서 그 자리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는 인생이 됩니다. 삶의 현장이 무너져갈 것 같고 패할 것 같고 실패할 것 같고 불합격할 것 같은 현상이라 할지라도, 모세처럼 기도의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가 되어 기도의 전선을 항상 펴고 있으면 반드시 역전합니다. 역전의 인생으로 하나님께서 바꾸어놓습니다. 여러분이 그 삶을 승리하도록 능력을 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을 삶의 현장에 보내놓고 부족한 목사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여러분은 삶의 자리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삶의 자리인 학교에서 학업을 하고 혹시 유혹의 전선에서 싸울 때, 엄마가 아빠가 기도하면 승리하여 개가를 부르며 귀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내 생각대로 내 멋대로 하고 중보기도하지 않으면 자녀들과 가족들은 유혹에 넘어진 채 고개를 숙이고 패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싸울 대상은 혈과 육이 아니라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영작인 역사는 기도로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 때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나의 삶이요 인생입니다. 그 삶의 자리는 한결같지 않습니다. 심한 격랑이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잔잔할 때도 있습니다. 추울 때도 있고 더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삶이라 할지라도 인생의 모든 삶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오직 “기도”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붙잡는 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로 모든 것을 붙잡을 수 있고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삶의 상황에서 여러분은 누군가가 싸우고 있습니다. 당신의 부모나 형제들이 싸우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아내가 싸우거나 남편이 싸우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밖에 나가서 삶의 자리에서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삶이든, 어떤 인생이든 그 삶이 아름답고 행복하고 승리하는 것이 되려면 반드시 기도의 손이 올라가야 합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아말렉과 싸워라고 명령하러 보낼 때는 그만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자신감은 바로 기도의 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실망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겐 실망이란 없습니다. 아무리 앞길이 캄캄해도,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고, 나날이 더 힘들어지기만 해도, 기도하면 길이 열립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면 하나님이 결코 내버려두시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KBS1텔레비전에서는 매주 토요일 저녁 8시에 스페셜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방송합니다. 어제는 아주 감동적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67세된 테레사 챈 포린 여사의 이야기로서 이 여사는 꿈많은 열두살 때 청각을 잃고 그 후 얼마 안되어 시력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매일 울면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저에게 이런 형벌을 주십니까? 나는 영원한 형벌을 받을 만한 죄를 짓지 않았어요” 

이렇게 살아가던 그녀의 삶은 맹인학교 원장이던 엘리자베스 초이를 만나면서 부터 급선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들려준 헬렌 켈러의 이야기는 어린 챈에게 생의 영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했습니다. 중국어밖에 할 수 없었던 챈은 완전히 낯선 언어인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의 영민함과 왕성한 배움의 욕구로 인해 챈은 헬렌켈러가 배웠던 미국의 퍼킨스 학교로의 유학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영어를 완전히 마스터하고 라틴어 등 5개 국어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춤과 스케이트, 승마 등도 해내었습니다. 고국에 돌아와서는 싱가포르 맹인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사흘만 볼 수 있게 해 주신다면 보고 싶은 세 가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 사랑하던 사이로 지내다가 갑자기 죽어버린 남자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고,
둘째, 예수님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고 싶고,
셋째, 정원에 놀라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챈 여사는 스페셜 취재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왕과 왕비, 귀족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삶이란 평탄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당신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기도하면 어떨까요? 

하나님,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말로만이 아닌 정말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무릎 꿇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성도가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보다 먼저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증거물입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진실임을 드러낸 것이 매일 세 번씩 자기 방에 가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문을 열어놓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사자굴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기도의 사람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사자굴에 들어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죽었습니까? 하나님은 그를 살리셨습니다. 사자와 친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만능입니다. 그렇다면 하루의 승리를 위해 아니 평생 복 된 삶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새벽을 깨웁시다. 잠을 깨웁시다. 나의 게으름을 깨웁시다. 나의 의식을 깨웁시다. 나의 연약한 믿음을 깨웁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많이 잡습니다.'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는 성도가 성공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기도해야 참된 성공적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분을 능력을 나에게로 끌어들이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 길은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할 때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승리와 형통과 위기와 실패를 이기고 복된 인생을 만드는 기도입니다. 기도로 사단을 물리치고, 문제를 해결하며 기적을 만드시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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