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칼빈의 신앙유산 (롬 11:36)

  • 잡초 잡초
  • 333
  • 0

첨부 1


칼빈의 신앙유산 (롬 11:36) 
 
 
오늘은 492주년 종교개혁기념주일입니다. 기독교는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교회당 정문에 95개 조항으로 된 로마 천주교에 대한 반박문을 내건 사건을 본격적인 종교개혁의 시발점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 기독교는 10월 31일 직전의 주일을 종교개혁기념주일로 지켜왔습니다. 오늘이 바로 종교개혁기념주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금년은 칼빈 탄생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칼빈은 루터보다 약 20년 뒤에 종교개혁에 뛰어들었습니다. 1536년부터 종교개혁에 헌신하면서 제네바 종교개혁을 완수했고, 수많은 저술과 강연과 편지로 종교개혁의 신학적 토대와 체계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루터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이를 완성한 것은 칼빈이라고 평가하기까지 합니다.

이 칼빈의 종교개혁은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영국 등 전 유럽으로 퍼져갔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미국, 호주로 나아가 우리 한국과 전 세계로 하나의 거대한 운동이 되어 확산되어갔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소위 “개혁교회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전 세계에 이 개혁교회 전통에 서있는 교회는 107개국에 224개 교단에 무려 8000여 만 명의 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장로교회는 이 개혁교회 운동의 중심입니다. 칼빈의 신학사상은 물론이고 칼빈의 종교개혁을 그대로 계승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형성된 교단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장로교인들은 칼빈의 후예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칼빈 탄생 500주년을 즈음하여 칼빈을 되돌아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할 것입니다. 특히 종교개혁기념주일에 칼빈의 남긴 종교개혁의 신앙유산을 다시금 성찰해 보는 것은 무척이나 뜻 깊다 하겠습니다.

칼빈의 종교개혁

칼빈이 우선적으로 개혁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로마 천주교입니다. 

칼빈은 로마 천주교의 구원론을 가장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로마 천주교는 구원의 조건으로 믿음을 말하면서도 인간의 공적이나 행위를 함께 강조했습니다. 인간 구원에서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루터처럼 이점을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성경에 근거해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칼빈은 로마 천주교의 미사를 비판했습니다. 로마 천주교는 성만찬에서 화체설을 주장합니다. 떡과 포도즙이 실제로 성만찬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영원한 그리스도의 몸을 지상의 물질 속에 가두어 놓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천주교는 미사의 희생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제사가 미사를 통해 매번 되풀이 된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되고 유일한 죽음을 인간의 종교적 사건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칼빈은 로마 천주교의 교황제도를 비판했습니다. 로마 천주교는 교황이 당대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없는 참 많은 우상 숭배적 요소를 만들어 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면죄부입니다. 돈 내고 면죄부를 사면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 외에 마리아 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기도를 한다든지 묵주를 사용하여 기도하는 것과 같은 비성경적인 종교행위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칼빈은 이런 교황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최고의 권위는 오직 성경에만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칼빈은 루터와 달리 또 하나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재세례파와 같은 소종파 운동입니다. 이들은 로마 천주교를 개혁한다고 하면서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는 종파들을 말합니다. 로마 천주교를 개혁하고자 할 때 폭력으로 혁명을 이루고자 하는 극단적인 모습을 띠기도 합니다. 또한 신비적 경향으로 흘러서 성령이 자신들에게 직접 역사하시기 때문에 성경도 필요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칼빈은 이런 극단적 성향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교회를 말씀 위에 지켜가고자 했습니다. 특히 “사랑의 원리”를 강조하면서 교회의 질서와 평화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내적 증거”를 강조하면서 성령의 역사는 성경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오직 성경이라는 개혁교회의 전통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칼빈의 종교개혁은 건강한 개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혁할 것을 정확하게 비판하면서 확실한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개혁이 혁명으로 흘러 모두를 파괴하는 것은 철저하게 경계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중심의 교회를 세움으로써 초대교회의 참된 교회 모습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칼빈의 신앙유산

그러면 우리가 오늘도 여전히 칼빈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칼빈이 남긴 신앙유산 때문입니다.

1.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칼빈이 남긴 신앙유산 가운데 첫 번째는 바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입니다. 이 문구가 우리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신앙생활의 가장 근원적인 기초를 나타냅니다. 

칼빈이 이 문구를 강조하게 된 것은 당시 로마 천주교의 우상숭배적 현상을 비판하기 위해서입니다. 로마 천주교는 인물들을 신격화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거룩할 “성”(聖)자를 붙여 “성모”라 추앙했습니다. 그리고 영웅적 신앙인들을 역시 “성인”(聖人)으로 추앙하여 “성 베드로”, “성 요한”, “성 바울”, “성 어거스틴” 등으로 불렀습니다. 심지어 이 성인들의 유골 앞에서 기도하고, 그 이름으로 축복하기까지 했습니다.

칼빈이 볼 때 비성경적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것과 인간적인 것을 혼합시키고 중복시키는 일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칼빈은 이런 잘못된 우상숭배적 현상을 바로 잡기 위해 외쳤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늘도 이와 유사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통일교를 보면 문선명은 거의 하나님처럼 절대화되었습니다. 저 북한에도 김일성 부자는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상화입니다. 

한국 교계에서 이와 유사한 현상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특정인이 지나치게 주목을 받는다든지 그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져서 마치 교주처럼 행세를 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우상화입니다. 

칼빈은 55년 생애를 마감하고 1564년 5월 27일 사랑하는 제자인 베자 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검소하게 치러졌고 제네바 시내에 있는 플랭 팔리에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어떤 비문이나 묘표도 세우지 않았습니다. 바로 칼빈의 유언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처럼 “오늘날까지 아무도 그의 무덤을 아는 자가 없도록”했습니다. 

현재 제네바에 가면 존 칼빈의 앞 글자 J.C.라고 묘표를 새겨놓은 무덤이 있습니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것이 칼빈의 무덤이라 생각하고 참배하곤 합니다. 그러나 칼빈 연구가 두메르고에 의하면 이것은 관광업자들이 만들어 놓은 가짜 묘라는 것입니다.

칼빈은 “사람이 무슨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고 무덤에까지 업적을 새겨두겠는가? 단지 높임을 받아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라고 유언하고 가르쳤습니다. 철저하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생의 목표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의 목표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어야 합니다. 

우선 우리의 신앙생활의 동기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어야 하겠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동기가 사람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서나 사업상 유익을 얻기 위해서여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초보 때는 그럴 수 있어도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신앙생활의 결과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죽도록 충성하며 봉사해서 큰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내가 남보다 크게 헌금하여 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럴 때 내 이름을 특별히 대우해 달라고 요구해서는 안됩니다. 남들이 내 이름을 특별히 높이는 것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그렇게 봉사할 수 있었고, 기여할 수 있었던 것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칼빈이 이것을 강조하게 된 것 역시 로마 천주교의 잘못된 신앙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서입니다. 

로마 천주교도 성경의 권위와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또 하나의 권위를 주장했습니다. 때로는 두 개의 권위를 병렬로 배치했습니다. 또 때로는 교회의 권위 아래 성경의 권위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경과 별도로 나름대로의 칙령을 만들어 지키는 일이 생기게 됐습니다. 때로는 그 칙령의 내용이 성경과 일치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칙령의 내용이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것도 있었습니다. 

더더욱 당시 로마 천주교는 철저하게 성경을 사제들이 독점했습니다. 일반 신자들은 성경이 없을 뿐 아니라 성경은 오직 라틴어로만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있어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성경 없이 신앙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온통 신앙생활이 미신적인 것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칼빈은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를 갖는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교회는 성경의 권위에 복종하여 성경말씀대로 가르치고 성경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정신으로 그가 외쳤습니다. “오직 성경으로”

독일의 시인 괴테는 이렇게 말한 일이 있습니다. “독일이 위대한 나라가 된 것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전 독일 사람들에게 독일어로 번역된 성경을 읽고 배우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이 최고의 민족이 되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독일 사람들이 유럽에서 제일 먼저 자기말로 된 성경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국민들이 성경을 읽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독일 국민들이 제일 먼저 눈이 띄게 됐습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역동적인 삶을 살게 됐습니다. 그래서 독일이 유럽에서 가장 앞선 나라 앞선 민족이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우리를 올바른 신앙에 눈을 뜨게 합니다. 성경이 우리를 올바른 삶을 살게 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귀하게 여기거 성경을 열심히 일고 공부해야 합니다.

 저는 조용남씨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선 이분의 노래가 참 좋습니다. 가창력이 뛰어나고 또 어떤 경지를 느끼게 해 줍니다. 그래서 가수로서 존경하고 참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분의 삶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이혼하고 별거하고... 가정생활이 편치 않습니다. 노래 부르다 그림 그리다 방송하다 뭐 하나 정돈되지 못합니다. 특히 신앙이 더 문제입니다. 한 때는 빌리그래함 목사님과 함께 하면서 찬양가수로 활동했습니다. 신학 공부하며 예수에 관한 책도 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조차 다니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한번은 이분이 TV 토크쇼에 나와서 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머니가 교회 권사인데 평생을 조청으로 가짜 꿀을 만들어 팔았답니다. 늘 새벽기도 다녀와서 조청을 다렸답니다. 새벽 기도에서 돌아와 가마솥에 불을 지펴놓고 조청을 다리며 찬송을 했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이분이 이렇게 혼란스러운 삶을 사는 이유가 어머니 영향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으면서 그 말씀대로 살지 않으니 자식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오직 성경으로”라는 말은 우선 성경을 귀하게 여기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성경대로 살아야 합니다.

3. 끊임없는 자기 개혁

칼빈은 로마 천주교가 왜 저렇게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까를 깊이 성찰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바로 인간 내면에 있는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죄의 지배를 받는 한 그가 교황이고, 그가 사제일지라도 결코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철저하게 자기를 부정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우선 우리는 죄인으로서 유한한 피조물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더더욱 죄로 인해 더럽혀 져 있는 왜곡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유한하고 왜곡된 우리가 늘 욕망의 노예가 되어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철저하게 인정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칼빈은 겸손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분의 은혜로 죄를 사함 받으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계속해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욕망을 물리치라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칼빈은 이런 자기 개혁을 끊임없이 계속해 가라고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이 개혁의 필요성에는 어렵지 않게 공감합니다. 그래서 개혁하자고 쉽게 의기투합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개혁을 이루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 이유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개혁의 대상에서 자기를 제외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늘 개혁의 주체가 되어 남을 개혁하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개혁하다가 중단하기 때문입니다. 개혁을 하다가 이만하면 됐다고 물러섭니다. 그리고 개혁 피로감에 휩싸여서 철저한 개혁을 이루기도 전에 중도에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우리 자신을 개혁해 가야 합니다. 먼저 내 눈의 들보부터 빼 내야하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근원이 나여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개혁하되 지속적으로 개혁해 가야 합니다. 욕망은 끝없이 내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솔개는 조류 중에 가장 장수하는 새 가운데 하나입니다. 약 70년을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솔개가 40살이 될 때 큰 위기가 온다고 합니다. 발톱은 갈라지고 힘이 빠져서 먹이감을  잡지 못하게 되고, 부리는 늘어져서 고기를 뜯지도 못하고, 깃털은 노화 돼서 제대로 날기 힘이 든답니다. 이 때 솔개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대로 죽음을 기다리던지 아니면 갱신의 길로 가던지 하는 것입니다. 

많은 솔개들이 이 때 갱신을 길을 선택한답니다. 높은 산으로 날아가 둥지를 튼답니다. 그리고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댄답니다. 그러면 부리가 깨지고 빠진 연후 새로운 부리가 나온답니다. 이제 새로운 부리로 발톱을 쫀답니다. 발톱이 다 빠지고 새로운 발톱이 나온답니다. 그리고 그 발톱으로 자기 털을 뜯는 답니다. 새로운 털이 나온답니다.

솔개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자기 갱신의 과정을 거친 뒤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온답니다. 그 후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더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개혁을 하지 않으면 도태됩니다. 그대로 끝이 나 버립니다. 그러나 자기 개혁을 하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더 큰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기 개혁은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자기 개혁은 꼭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종교개혁기념주일입니다. 특히 칼빈 탄생 500주년입니다. 그분의 신앙유산을 잘 지켜 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