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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말씀의 능력 (히 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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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의 능력 (히 4:12~16)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 주일 아침 열다섯 살 소년 챨스 스펄전은 교회에 가기 위해서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폭설 때문에 평소 다니던 교회까지 도저히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들어간 교회는 원래 아침 일찍 문을 열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하여간 예배 시작 시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극히 적은 수가 모였고 목사는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쏟아지는 폭설 때문에 오지 못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할 수 없이 평신도 한 명이 강단으로 올라갔습니다. 강단에 선 그 신도는 이사야서 45장 22절 말씀을 읽고 즉흥적으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그 말씀을 풀이하며 나름대로 설교를 10분 정도 했습니다. 그 때 그는 2층에 앉아 있는 십대 소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에게 한 마디 건넸습니다.
"젊은이, 오늘의 이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앞으로 자네는 힘들 거야. 그러나 말씀대로 순종하면 지금 바로 구원을 받을 거야!"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또 다시 주님을 믿고 의지하라고 힘을 주어 말했습니다.

훗날 스펄전은 그 당시의 극적인 심경의 변화를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그 때 그 곳에서 나를 에워싸고 있던 먹구름이 걷히고 어둠이 물러갔다."
과연 그 일이 있은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스무 살에는 런던의 유명한 뉴파크 스트리트 교회의 목회자로 청빙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부임한 지 일 년이 채 안 되어 예배당을 확장해야 했습니다. 그가 스물일곱 살이던 1861년에는 육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로 예배 장소를 옮겼습니다. 그는 또 오백 명의 고아를 수용할 수 있는 고아원도 세웠습니다. 그가 평생 쓴 글은 어림잡아 스물일곱 권의 백과 사전 분량쯤 될 것입니다. 스펄전은 삼십사 년 동안 목회자로 사역하면서 약 천만 명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과연 무엇이 스펄전을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폭설이 쏟아지는 어느 주일 아침 집에서 가까운 한 작은 교회에서 평신도 설교자로부터 어설픈 설교를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자 그는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바로 그 말씀이 그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를 그렇게 변화시킨 것은 어설픈 설교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하나님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은 잠든 영혼을 깨워 일으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이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첫째,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3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기 때문에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창세기의 말씀을 읽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흑암과 혼돈의 세계가 끝나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흑암의 세계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 하나님께서 한 마디 말씀하시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말씀하옵소서. 주님이 제게 한 마디만 말씀하시면 제 안에 있는 모든 혼돈이 끝납니다. 제 안에 있는 어둠은 사라집니다."
성경에 문자로 써 있는 하나님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으로 그의 영혼을 두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 말씀은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활력이란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일어나는 말씀의 역동성과 그 역동성으로 인한 영향력을 뜻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은 예리하게 날선 검과 같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종종 검으로 비유됩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에베소서 6장 17절 말씀입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검은 물체를 자르고 그 속을 볼 수 있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마음의 생각이 악한지 선한지 명백히 드러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 숨겨진 부분, 우리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부분까지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게 합니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가 전한 하나님 말씀에 청중들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마음에 찔림을 받아서 "우리가 어찌 할꼬?"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독일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쓴 것이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바짝 나지 않는다면 그 책을 왜 읽는단 말인가? 한 권의 책, 그것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쪼개는 도끼가 되어야 하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도전과 충격을 받고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지, 내 안에 있는 이 죄악을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아야지, 이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야지.'라고 결단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 말씀은 감추인 것을 드러나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바리새인들의 은밀한 죄를 들추어냈습니다.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 말씀은 다윗의 은밀한 죄를 드러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감추어질 수 없고 벌거벗은 것 같이 다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살아 있는 하나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은 들려지고 그 말 속에 담긴 뜻이 전달되어야 비로소 그 말의 영향력이 발생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능력 있는 하나님 말씀일지라도 누군가의 귀에 들려지지 않을 것 같으면, 그래서 그 하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할 것 같으면 아무 효력이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자루 속에 담겨 있는 쌀은 분명히 양식입니다. 그러나 자루 속의 쌀을 꺼내어 식탁 위에 놓고 아이들에게 와서 밥을 먹으라고 부르는 어리석은 엄마는 없을 것입니다. 

자루 속의 쌀이 양식이 되기 위해서는 쌀을 꺼내 솥에 넣고 밥을 해야 비로소 양식이 되고 그 양식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성령을 통해서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과연 어떤 것이 있습니까? 먼저, 시간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바쁘고 분주해서 말씀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말씀을 대하는 시간이 너무 적습니다. 우리는 일 주일에 한 시간 예배드리러 나옵니다. 일 주일은 일백육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 일백육 시간 중에 한 시간 예배드리러 나옵니다. 물론 새벽기도회나 삼일기도회, 금요 심야기도회가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직접 읽고 듣는 시간은 사실 몇 분밖에 안 됩니다. 그것으로 하나님 말씀의 깊은 뜻을 다 음미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씀 하나를 붙잡고 살아 역사하는 말씀의 능력을 매일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어려운 일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읽는 일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세상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점점 더 세상 것으로 우리가 물들어가지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이 아닌 다른 것들로 배가 부른 줄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돈 버는 재미, 쇼핑하는 재미, 텔레비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아니면 전화기를 들고 늘 수다를 떨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영혼이 황폐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헛된 것들로 가득 채우고 배가 부른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 이론들이나 지식들이 우리를 더 살찌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영학, 리더십, 심리학, 과학, 의학, 자기 개발에 관한 책들이 수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과 대치하라는 유혹을 끊임없이 받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계속해서 우리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멋대로 살아도 괜찮습니까? 우리의 판단만 믿고 이대로 살다가 영원히 망해도 좋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말씀을 철저히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영생 복락을 누릴 것입니까? 복 있는 자의 길은 날마다 말씀을 듣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교회를 향해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임과 동시에 의무입니다.
말씀은 그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에 살아 역사하는 활력이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과 충격을 줍니다. 말씀이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합니다. 또한 말씀은 인간적인 생각을 멈추게 합니다. 믿음의 특징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삶의 전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일찍이 시인이 분명히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시편 1편의 말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말씀의 능력을 날마다의 삶 속에서 풍성하게 체험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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