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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난 우리 (고전 10: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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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난 우리 (고전 10:31~33)


폴 트루니에 ‘고독으로 부터의 도피’ 의 내용.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 복지기관에서 일하는 어느 독신 여성의 이야기인데 이 여성은 특이한 습관이 있다.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갈 때 방송의 마감을 말하는 아나운서의 인사말을 들어야 잠자리에 든다는 것. 
‘여러분 편안한 밤 되십시오’라는 멘트.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마음이 아픈 것이 하루에 수십명의 사람들을 만나지만 전부 사무적인 얘기만 하지 따뜻한 이야기는 일절 없었다. 일과 시간에도 그렇고, 퇴근 후에도 자신과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는 일들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너무 고독해서 상투적인 인사말이지만 방송마감 시 아나운서의 부드러운 인사말을 들어야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다. 

트루니에는 이런 말을 하면서 오늘날 이런 종류의 병에 걸려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그저 하나님과의 관계만 잘 되어있으면 되는 것으로 말씀하지 않으신다. 서로서로 인정을 베풀고 이해하고 허물을 덮어주고... 

요일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교회 안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야된다. 교(敎)회(會)는 가르칠 교회이기도 하지만 나눌 교(交)이기도 하다. 

이런 말을 들었다. 어느 성도가 교회와서 설교를 듣다가 목사가 설교준비를 제대로 안 한 채 설교를 하는 것이 느껴지면 막 화가 난단다. 그러다가 어떤 때 목사가 설교에 은혜를 끼치면 그래도 화가 난단다. ‘너나 잘해’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의 성도가 교회의 일원이 되기위해선 4가지 단계.

1) 구성원이 되는 단계. 

교회에 등록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교회의 일원이 되기위한 필수조건이다.

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나님의 권속이란 말을 표준 새번역에는... ‘하나님의 가족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설교만 듣고 교회를 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가족으로서 나누고 어울리는 부분이 반드시 있어야한다. 

2)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단계.

등록만 한다고 바로 사랑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여러 가지 은혜를 받고 영적인 도움을 주변성도에게 받고.. 그러다보면 사랑이 생기고..

이렇게 서로 우정과 사랑을 나눌 때 감사와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래 우리를 지으실 때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않게’ 지으셨다.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 수 없는 존재이다. 

불교에선 득도를 하면 할수록 속세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지만, 우리는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세상으로 나온다. 

브릿지드라는 사람이 쓴 ‘진정한 교제’라는 책을 보면..
‘교회 안에는 교제의 위기가 있다. 많은 성도들은 다윗의 이런 부르짖음에 금방 동의할 것이다.’ 

시 142:4 내 우편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 

이런 신음을 하는 성도들이 많다는 것이다. 참으로 슬픈 얘기이다. 
그러나 이런 고립된 신앙생활이 결코 정상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교회는 공동체다. 

은혜를 제대로 받으면 행 2:44처럼 변하게 된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두가지에 주목하라. 은혜가 넘치면 다 함께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것이 물건을 서로 통용하게 된다.

성령충만하면 고립된 신앙생활에서 절로 탈피하게 된다. 그렇게 우린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다. 


3) 함께 동역하는 단계이다. 

모여서 이 땅에 복음의 유익한 일을 하는 단계이다. 


4) 가족과 같은 단계이다. 

마지막 교회의 목표는 성도들 끼리 가족과 같이 사랑하기..이다. 교회가 너무 목표를 크게 잡아서 성도들을 쥐어짜는 것은 옳은 공동체가 아니다. 

먼저 우리 안에 우정과 사랑이 싹트고 믿음생활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교회가 너무 복음의 과업 지향적으로 쥐어짜니깐 교회생활에 피곤을 느끼는 것이다. 
먼저 은혜를 받고 믿음의 행복을 느끼면 십일조도 저절로 하게되고, 선교와 구제도 자발적으로 하게되고..

왜 하나님은 보이는 교회 공동체를 허락하셨을까. 하나님을 우리가 사랑한다고 하는데 사실 보이지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추상적이지 않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이런 것들을 실천해라’하시면서 규범을 주신 것이다.

막 12:30-33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 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죠지 오웰이 말한 ‘이중언어’

북한에서는 이중언어를 구사한다.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김정일을 찬양하지만, 마음으로는 뻔히 아니다. 이중언어가 교회에서도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교회에서는 은혜로운 말을 해야하니까 ‘집사님, 사랑해요’ 하면서 뒤에서는...

이런 이중언어가 있으니까 신앙생활이 즐겁지가 않다. 예배 중간에 왔다가 끝나기 전에 도망가듯이 간다. 교회 안의 권속들은 가족이다. 가족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 자체가 목적이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허물을 덮어주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염려하고..

교회에 오면 긴장이 풀리고 영적으로 넥타이 풀고 ‘여기서는 날 이해해 줄거야’하면서 안전함을 느끼는 은혜가 교회 안에서 흘러야하지 않겠는가. 만남의 축복을 누리는 은혜가 있어야 하지않겠는가. 

고전 10:31에서 바울은 인생의 목적을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인생의 삶의 목표라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목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직장생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것이 항상 우리 안에 있어야겠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두가지 지침을 준다. 그런데 이 두가지 지침이 놀랍게도 대인관계와 관련이 있다. 

1) 먼저 소극적으로는.. 

32절에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의 목표를 갖고있는 성숙한 성도는 교회 안에서 다른 성도들에게 거침돌이 되지않는 사람이라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

그러면서 이 설명을 보며 내게 이렇게 적용이 된다. 교회 안에서는 나와 같은 유대인같은 혈통의 사람이 있다. 기질이 맞고 말이 잘 통한다. 신앙적으로도 잘 통한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헬라인도 있다. 다양한 사람이 교회 안에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그를 향해 틀렸다고 하면 안된다. 나와 다른 것은 그냥 다른 것이다. 


2) 적극적으로는..

33절에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소극적으로 ‘내가 이 교회에 해나 안 끼치면 되지’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는 중심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전에 어느 집사님이 어느 수련회를 가려고 하는데 자녀 때문에 고민을 하는데, 같은 순원이 ‘나한테 맡기고 가라’고. 사실 남의 자식 하루 맡아서 재우고 먹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기에’ 이 중심이 있는 것이다. 

월드 비젼의 한비야씨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세계인이 될 수 있는 길은 거창하게 난민촌에 들어가 구호활동을 하지않아도 집에서 칫솔질을 할 때 그냥 수도꼭지를 틀고 양치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컵에 물을 담아서 하는 작은 일, 남의 나라 사람이 재난을 당해서 고통을 당할 때 그런 뉴스를 보며 가슴 아파하는 마음.

그런 작은 부분에서부터 이 지구는 정화가 되어간다는 말을 들으며 참 공감을 했다. 
우린 이렇게 자그마한 부분에서부터 성도 간에 서로 기쁘게 하고자 하는 마음 씀씀이가 필요한다. 
사실 우리 성도들은 말이 많다. 내가 여러분의 말을 뒤에서 들어보면 서로 자기 말만 하려고 할 때가 있다. 

뻔히 앞의 사람이 무언가 자기 생각을 말하는데, 그것 진지하게 듣기 보다는 중간에 말을 꾾고 자기 말을 할 때가 많다.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하려고 하는 중심에는 자기 말보다는 상대의 말을 경청해 주려고 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우린 은근히 상대를 지적하려고 하는 부분이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목사를 닮아서 그런 것 같다. 목사가 먼저 말이 많다. 그래서 설교도 길게 하고...

남을 지적하는 부분도 나에게 있는 것 같다. 남을 가르치고 이끄는 목사로서 태생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나는 늘 가슴아프게 생각한다. 누구를 지적하더라도 상처안받게 부드러움으로, 온유함으로, 지혜롭게..

겸손함으로, 상대가 잘 받아드릴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여러분은 나를 닮지말라. 남의 자식 이야기 하지말라. 무언가 맘에 안드는 부분이 있어도 뒤에서 쑥덕거리지 말라. 

33절을 다시 세심히 살펴보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위해선..

첫째,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면 

둘째, (무엇보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말을 줄여야한다. 그래야

셋째,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일이 나타난다.

이렇게 은혜를 끼칠 수 있는 일들을 우린 활용해야 한다. 우린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럴만한 힘이 있다. 
이번에 나로호가 첫 번째 발사실패를 했을 때 그 실패 원인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나로호가 우주로 날아가기 위해선 로켓의 무게를 능가하여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로호는 그런 추진력이 발사대에서 이미 축적이 되어있는데 그만 로켓에 탐재되어있는 소프트웨어가 오류를 범해 추진력이 없는 것으로 착각을 해서 발사가 안 되었다는 것이다. 큰 오류이다. 

마찬가지로 우린 이미 주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자꾸 사탄이 우리 속에서 그것을 방해한다. ‘비판해. 미워해. 저 사람 잘난 척 하는 것 봐. 꼴 불견이야.’

우린 처음에 말한 그 여인처럼 모두가 외로움이 있고 황량함이 있지않은가. 그런 것을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교회를 주시고 각 순을 세우셨다. 

우린 서로 너무 잘 알고 편하게 느껴서 그런지 서로의 말에 너무 부담이 없다. 잘 알수록 예의를 차리자. 

약 3:1-2 (후반)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약 3:1(표준새번역) 여러분은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가르치는 사람인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서로 선생님이 되려하지 말라. 

약 3:8-12 (표준새번역) 그러나 사람의 혀는 누구도 길들일 수 없습니다. 혀는 겉잡을 수 없는 악이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찬 것입니다. 우리는 이 혀로 주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또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이래서는 안 됩니다. 샘이 한 구멍에서 단물과 쓴 물을 낼 수 있겠습니까?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짠 샘이 단물을 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 없다고 성경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린 늘 조심해서 말해야 한다. 툭툭 말을 던지지말라. 반드시.. 100% 실수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중심에는 겸손과 순종이 있다. 서로 겸손하고 서로 순종하자. 

약 3:18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소극적으로 서로 거치는 자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든, 적극적으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든지..

결론은 너무 아름답다. 
33절에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교회 안에서의 모든 봉사와 섬김은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다. 봉사와 섬김과 구제를 통해 구원을 받게 하는 것.
목회자와 순장이 열심히 섬겨서 칭찬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열심을 통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주의 복음이 활성화 되는 것. 이 중심이 흔들리지 않아야한다. 
우리의 섬김과 새벽의 모든 부르짖음의 결론은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바램은

1. 요일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2.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과대광고를 보면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서 포장을 뜯어 보았더니 가짜일 때의 배신감과 허탈함..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부르짖으면서 다른 나라에 재난이 일어나서 사람이 죽고 산불에 집이 잿더미가 되는데도 하나도 마음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없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 마음은 불량제품이다. 과대광고다. 자기는 신앙이 좋고 하나님을 분명히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그건 포장에 불과하다. 과대광고다.

성경엔 분명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네 옆의 사람을 사랑하고 배려하고 섬기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그 허물을 덮어주라...는 것이다. 

영아실의 어린 딸아이 은혜가 더운 여름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땟국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어느 찌는 듯 더운 여름날 전도사님과 권사님이 그 집에 가서 청소해주고 빨래해주고 애들 목욕해주고...

그 모습을 보면서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이 먹을 갈아주니까 내가 붓을 드는구나’

말로만 더럽다, 냄새난다.. 하지말고 직접 하라.. 는 것이다. 

3. 요일 3: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사망의 자리에서 벗어나길 원하는가. 사랑을 회복하라. 관용하라. 

한비야씨가 말한 것 처럼 자그마한 것에서부터 배려하고 관용하는 것에서 부터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 앉게된다. 교회 입구에 휴지가 떨어져 있으면 주으라. 교회 시설을 아끼라. 전기 절약하라. 그러면 생명의 자리로 어느덧 옮겨 앉아있는 나 자신을 발견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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