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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의 순종 (히 1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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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순종  (히 11:8~19) 
 
 
아브라함은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이자 모든 믿는 자의 조상입니다(갈 3:7).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실을 본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요 8:39). 아브라함의 믿음은 지식이나 이론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제적인 삶이었습니다. 신약의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침으로써 그의 믿음을 증명해 보였다고 하였습니다(약 3:21). 본문 성경의 기자도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순종하여 나갔다고 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의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받게 된 축복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23에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1)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본문 말씀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이나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맨 처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하였을 때 그는 두말 하지 않고 그대로 행동했습니다. 

본문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어디로 가라는 것인지, 그곳의 지리, 풍토, 기후 등 환경과 조건이 어떠한 지, 거기 가서 무엇을 하고 살아야 될 지 궁금한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은데도 하나님께서 갈 길을 인도해 주실 것만 믿었습니다. 

2)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여호와 이레’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으로 아브라함에 의해서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그는 백세에 얻은 외아들을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때 영문도 모르고 따라가던 이삭이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했습니다(창 22:7-8). 이후 ‘여호와 이레’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나타내는 특수용어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머뭇거림이 없습니다. 무슨 일에나 하나님께서 먼저 준비해 놓는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3) 선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나 신뢰하였고, 또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이삭을 결혼시키기 위하여 자기의 늙은 종을 밧단 아람으로 보낼 때도 “하나님이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창 24:7). 인간이 저지른 실수나 과오로 인하여 일이 잘못되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결과를 이루어 주십니다(창 50:20). 선지자 예레미야는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가 우리에게 일을 하도록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리이라”고 하였습니다(렘 33:2-3). 

2. 헌신자의 삶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인생을 하나님께 바쳐진 것으로 알고 헌신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의 삶도 역시 하나님께 산제사로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롬 12:1).

1)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아브라함은 최초로 십일조를 바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의 군대를 쳐부수고 돌아오다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창 14:20). 구약시대 십일조는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한 것입니다. 레위기 27:30에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 중에 십일조 제도가 모세 이후에 제정된 율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율법이 오기 훨씬 이전에 아브라함이 먼저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도 자기 스스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기로 서약하였습니다(창 28:22).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것 외에도 제게 있는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헌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잠 3:9).

2) 아들을 바쳤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린 것은 하나님께 대한 최상의 헌신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22:2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청천벽력같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도 아브라함은 어떤 불평이나 원망도 없이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번제에 쓸 나무를 짐승에게 실어 아들과 함께 삼일 길이나 걸려서 하나님이 지정하신 산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결박해서 제단 위에 올려놓고 칼을 치켜들었습니다(창 22:10). 인간적으로는 차마 할 수 없는 이 일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그의 헌신이 있었기에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약 2:23).

3) 그의 인생을 바쳤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인생을 하나님께 바친 사람입니다. 본문 말씀 8절에 보면 그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방향이나 목적도 없이 어디든지 발길 닿는 대로 가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확실한 목적의식과 분명한 방향감각을 가지고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저의 인생을 좌우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가 처음 가나안 땅에 온 후 조카 롯으로 말미암아 분쟁이 생겼을 때도 그에게 요단 온 들을 다 내어주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헤브론으로 내려갔습니다(창 13:18). 그는 평생 동안 유랑생활을 하면서 어디든지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가고 머물게 하는 곳에 장막을 쳤습니다(히 11:13).

3. 큰 꿈과 소망이 있었습니다.

본문 말씀 15-16절에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땅에 있는 어떤 것보다도 더 좋은 하늘의 것과 신령한 것을 추구했던 사람입니다.

1) 약속에 근거하는 소망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현세적이고 육신적인 것들에 소망을 두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보이지 않는 하늘의 것을 소망합니다(롬 8:24-25). 아브라함은 자기에게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였습니다. 본문 말씀 11절에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75세에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라고 하셨으며 그 후손이 역사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창 12:2).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나안 땅 전역을 그의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창 13:15). 그는 한평생 편한 날을 보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의 주신 언약에 따라 자기보다 후손들에게, 그리고 오늘보다 더 나은 미래를 소망하였습니다.

2) 본향을 소망하였습니다.

본문 말씀 15절에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아브라함의 소망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하늘에 한 성을 예비해 주셨습니다(11:16).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처소를 예비하고 우리를 거기로 인도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요 14:1-4). 바울도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고 하였습니다(고후 5:1). 이는 천당을 의미합니다. 잠시잠깐 지나가는 세상을 살면서 천당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3) 메시야 시대의 소망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훼방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 8:56).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창 22:18). 여기서 말하는 ‘네 씨’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일컫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했다는 것은 장차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전개될 메시아 시대의 비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복음서 기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는 말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소개하였습니다(마 1:1). 결국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전무후무한 축복의 결과를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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