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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의 노래 (시 1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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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광복의 노래 (God Can Do It Again)
성경 : 시 126:1-6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 된지 벌써 64년이 흘렀습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가 숨겨둔 태극기를 꺼내어 흔들며 광복의 기쁨을 노래했을 때의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의 비참한 형편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방직후의 혼란과 갈등, 6.25 동란과 회복, 7,80년대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험난한 과정을 거쳐 오늘 종합 국력 세계 제 13위의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해방의 기쁨과 감격은 대단했습니다. 우리의 선배들이 남긴 문화 유산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때의 환희의 모습을 생생히 보고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와 유사한 감격의 장면이 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표현하는 장면이 그것입니다. 이 모든 역사 뒤에는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의 손길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우리나라는 UN과 미국의 힘으로 일본 군국주의 세력에서 벗어나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말씀의 본문으로 삼은 시편 126편은 바벨론 포로 귀환 직후의 상황을 회상하는 시입니다. 전반부는 고국으로 돌아올 때의 감격을 회상하며 기쁨을 노래하는 부분이고, 후반부는 아직 예루살렘 공동체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복을 간구하며 확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도 시인처럼 역사를 주관하시며 자기 백성을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저들처럼 감격과 기쁨이 충만한 광복의 노래를 불러야겠습니다.

1. 포로 귀환의 기쁨을 노래함 (적용적해석: 해방의 기쁨, 구원의 기쁨)
  
1절=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시인은 먼저 포로 귀환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과거 시온(=예루살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우상 숭배와 각종 음행과 패역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에 포로되어 잡혀가게 하셨고, 거기서 수십 년 동안 정련되고 정화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유일신 신앙을 회복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해방시켜 고토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시인이 노래한 포로귀환의 기쁨은 영적으로 보면 우리 성도들에게는 사탄의 세력으로부터의 해방의 기쁨이요 구원의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나라를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 그리고 지금까지 이끌어 오신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올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기쁨의 찬송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시인은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시는 분이 여호와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표면적으로 보면 포로 귀환은 고레스 왕이 한 일입니다. 즉 B.C. 538년 바사왕 고레스가 포로귀환 칙령을 내렸고(스 1:1-4) 그 이듬해에 스룹바벨의 영도로 제1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스 2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이 일을 이루신 분을 여호와로 제시하는 것은 고레스의 배후에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는 신본주의적 역사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렘 25:11,12).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렘 25:11-12=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사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놀라운 일입니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나라를 잃고 먼 타국에서 포로생활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은 귀환자들로서는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노래합니다.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절=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우리말 성경에는 두 개의 절로 번역하고 있지만, 실제 원문은 동사가 ‘가득하고‘ 에 해당하는 ’임말레‘ 하나입니다. 이것은 ’채우다‘(말레) 동사의 수동 미완료형으로서, 이러한 일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이며, 이로 인해 그들에게 웃음과 찬양이 지속적으로 가득찼음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께서 포로를 돌리신 것은 단회적인 사건이었지만 그들이 느낀 감동과 기쁨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는 의미입니다(사 44:23, 48:20).

  여러분, 본 시편을 통하여 시온의 백성들이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같은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귀환길에 오르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습니까? 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시온의 성곽을 세우며 성전재건에 힘쓰는 모습, 그리고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선배들도 그러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구식 라디오 앞에서 일왕의 무조건 항복 선언을 숨을 죽이며 듣고 있던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일제히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하얀 두루마기를 펄럭이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교회당마다 감사의 예배와 찬송, 그리고 끝없는 눈물의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그때 우리 모두는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위하여 행하신 큰 일을 노래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의 경우는 주위 열방들까지 관심을 가지고 놀라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2절하). 
  많은 이방인들의 반응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기적적으로 구원하기 위하여 위대하게 행동하셨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국제정치 상황을 보면, 바사왕 고레스는 애굽을 정복할 목적을 품고 있었고, 그 발판을 마련할 의도로 이스라엘 포로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어 예루살렘을 재건케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방인들인 그들조차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포로귀환에 대하여 배후에 하나님이 일하셨음을 고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도 여러분!  광복절 기간에 해방의 기쁨을 노래합시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섭리하시고 이끌어 오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드립시다. 
  동시에 우리 개인의 광복(=죄로부터의 해방)의 날도 기념하고, 첫사랑의 감격을 회복합시다. 우리는 우리 주위 삶들이 깜짝 놀랄만큼 큰 은혜를 받은 복된 자들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3절). 하나님께서 행하신 가장 큰 일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일입니다. 예수님 오셔서 구속의 일을 완수하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우주를 합친 것보다 더 귀한 독생자의 피값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이 기쁨이 성도 여러분에게 지속적으로 넘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남은 포로의 귀환을 간구함 (적용적해석: 포로된 자들 위한 기도)
  
4절=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이제 시인은 아직도 포로되어 고생하는 자들의 귀환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자유를 찾았지만, 아직도 자유치 못한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남방 시내들같이 돌려 보내소서.’ 
  당시 남방(네게브)지방은 비가 오면 흐를 수 있는 개천이 있었는데, 건기에는 메말라 있다가 우기에는 순식간에 물이 찼습니다. 본절의 기도는 이와 같은 사실을 반영하는 표현입니다.

  지금은 포로생활에서 돌아오는 행렬이 보이지 않아 끊어진 듯이 보이는 귀환길이지만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그 길이 고토로 돌아오는 포로들로 가득 채워지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이는 거룩한 땅에 인구가 증가해야 할 것을 간구하는 것이고, 동시에 포로상태에서 계속적으로 귀환하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시온의 영광이 완전히 회복되기를 기원하는 간구입니다.

  당시에 페르시아 땅에 거주하면서 귀환을 거부하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수십 년 그 땅에 살면서 이루어 놓았던 많은 것들을 잃기 싫었고, 굳이 폐허와 잿더미만 남아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과 성전을 짓는 어려운 일을 감당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처럼 거룩한 꿈을 잃어버리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수많은 동족들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마치 우기에 네게브 지역의 강들을 가득 채우고 세차게 흘러가는 물줄기처럼 시온 땅에 하나님의 백성이 가득 채워지게 되기를 간구했습니다.  

  “여호와여, 주님은 다시 구원 사역에 개입하소서. 남은 포로를 돌리실 때 모든 반대자들과 원수들을 쓸어버리시고 우리의 포로들을 귀환케 하소서.”

  성도 여러분!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우리 주위에 아직 사탄의 포로된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는 죄악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그들을 주님의 몸된 교회로 인도하여 풍성한 꼴을 먹일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속박과 고난에 처한 북한의 동포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책임을 갖습니다. 그들 중 지하 성도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며 지금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여기 ‘돌려보내소서’(슈바) 는 강세명령형(Emphatic Imperative) 입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해 달라고 매우 강력히 청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은 시인이 선지자들의 표현을 따라한 것으로, 이전에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시온의 포로들을 돌리실 것을 간구하였고, 그러한 회복의 역사를 여러 번 예언하였습니다(렘 29:14, 암 9:14, 습 2:7). 
  시인의 이런 청원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이미 약속하신 언약에 근거한 것입니다. 시인은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여호와’ 라는 신명(神名)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주변에 아직 포로된 자들을 위하여 이 시간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비전도 꿈도 상실하고 그저 현실에만 매여 첫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을 위하여 주님께 호소합시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호소하는 간구는 반드시 응답을 받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3. 기쁨으로 귀환할 것을 약속하심 (적용적해석: 해방의 약속)
  
5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이제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4절에서 시온을 예전과 같이 온전하고 충만한 형태로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간구한 시인은 5절, 6절에서 그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어려운 상황을 초극하는 신앙적 노력을 다짐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확신을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해방의 약속을 발견합니다.  

  본절의 ‘씨를 뿌리는 자’ 라는 표현은 포로 귀환 공동체에 속한 모든 이들이 씨를 뿌리는 농부와 같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포로 귀환’ 이라는 열매를 주셨지만 그들은 또한 미래의 열매를 준비하는 ‘씨 뿌리는 자’ 여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 라고 한 것은 ’비가 내릴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씨를 뿌리는 자의 탄식‘을 의미합니다. 당시 농부들은 늘 비가 와서 씨앗이 발아될 것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씨를 뿌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전혀 비올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비를 기다리다 못해 미래에 관한 확신도 없이 씨앗을 뿌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당시 추가적 포로 석방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시인은 이방에서 포로를 돌리시던 때와 같이 하나님의 전격적인 도움을 바라보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1차 포로귀환이 B.C. 537년에 이루어졌고, 2차와 3차 포로 귀환은 많은 세월이 흐른 후인 B.C. 458년과 444년에 각각 이루어졌던 것을 보면,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암울했었는가를 짐작케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농부의 마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6절에는 이런 시인의 마음이 더욱 잘 나타납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본절이 묘사하고 있는 농부는 어떤 모습입니까? 비가 오지 않아 씨앗을 뿌려도 결실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에서도 집안에 머물지 않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밭에 뿌릴 씨앗을 메고 나가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고난의 현실 가운데서도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일념으로 인내하고 노력할 것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나아가서 이것은 오늘의 교회에 주시는 격려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비록 지금의 교회는 탈현대주의의 거대한 물결 아래 상대주의(relativism)와 자기애(self-love)에 빠진 현대인들 사이에서 헐떡이고 있는 상황이지만,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6절에서 농부가 추수단을 지고 함박 웃음을 지으며 돌아오는 영상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힘든 가운데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반드시 기쁨을 거두게 하십니다. 해방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를 위해 울며 씨를 뿌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유대 전통에는 씨뿌림(sowing)과 죽음(death)의 상관 관계를 보여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나안 풍속 중에서 울며 씨를 뿌리는 것은 지방신의 죽음을 상징하는 의식이라 합니다. 예수님도 이와 유사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스라엘은 죽음의 포로생활로 씨뿌려졌습니다. 이것은 징계의 상징입니다. 이 때문에 이제 기쁨의 수확을 거두게 될 차례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우리를 못 박을 때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씨 뿌려집니다. 여기에 ‘기쁨의 수확’ 약속이 있습니다. 놀라운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 후에는 엄청난 부활의 영광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6절=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이스라엘은 시온으로 귀환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단호한 결단이 필요했고, 희생에 대한 각오가 뒷받침 되어야 했습니다. 본절은 아직도 약한 마음, 의심의 마음을 가진 이스라엘 자손들을 향해 격려합니다. ‘여러분의 앞에 비록 절망과 불안과 두려움이 기다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잃지 않고 나아간다면 주님은 반드시 그 땀과 눈물을 외면치 않으시고 예루살렘의 재건, 성전의 재건이라는 꿈을 성취케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거기로부터 메시야께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자원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세상의 구주요,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셨습니다.
   
  1904년 웨일즈 부흥운동의 핵심이었던 이반 로버츠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이반 로버츠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영국 웨일즈 지방에서 기도운동이 일어났고 이 부흥운동은 인도를 거쳐 1907년 동양의 작은 나라 조선의 평양 대부흥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반 로버츠의 형제들 모두는 이 부흥운동을 경험한 후 전세계에 부흥운동을 전파하기 위해 선교사로 자원했습니다.
   
1866년 토마스목사가 순교 당할 때 그 곁에 있던 12살짜리 최치량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뿌려진 수많은 성경 중에 세 권을 주워 보관하던 중 박영식이라는 사람에게 한 권을 줍니다.  하지만 박영식은 이 성경을 가지고 도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박영식의 집에 나중에 ‘널다리골’ 교회가 세워지고 널다리골 교회는 장대현교회로 이름을 바꿉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 웨일즈 지방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은 대부흥운동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이반 로버츠의 눈물의 기도를 이곳 조선 땅에서도 꽃피우게 하셨습니다. 
  눈물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이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눈물의 기도를 심으므로 이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이 포로 귀환의 감격을 맛본 것과 같이 우리도 8.15 광복의 귀한 선물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우리는 일제의 탄압을 이기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 선배들의 공로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궁극적 귀환은 바벨론 포로 귀환도 아니고, 일제 탄압으로부터의 해방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으로부터, 죄로부터,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광복을 주신 하나님의 큰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지금 이 위대한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사용되어지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우리에게 왜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정치적으로는 남북이 분단되어 무신론자들의 위협이 지금도 계속되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가치관 정립이 안 된 채 표류하고 있습니다. 사이비 신앙집단, 신흥 이단 종교들의 발흥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매달려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마른 들판에 성령의 단비를 쏟아부으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비 온 뒤에 남방시내들이 힘차게 흐르는 것같이 우리 교회위에 은혜의 물줄기를 흐르게 하소서.


  박순오 목사, 대구서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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