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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 (마 27: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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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 (마 27:45~53)


마27: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마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27: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마27:48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마27:49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마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마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마27: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마27: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고린도전서 11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찬을 행하여 예수님을 기념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명에 따라서, 오늘 우리는 성찬을 행합니다. 우리는 이 성찬을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기념하고자 합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예수님만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좌편과 우편에도 두 강도가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또한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땅에만 대략 삼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로마 군병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 모두가 똑같이 고통스럽게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수님 이외의 사람들은 기념하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단지 우리는 성찬을 행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만 생각하며, 오로지 예수님만 기념합니다. 

그러면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는데, 왜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을 기념합니까? 도대체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기 때문입니까? 당연히 우리는 여기에 대한 대답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나님은 여섯 가지의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들, 곧 기적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친히 우리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왜 바울이 이와 같은 말씀을 했겠습니까?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전해야 하겠다고 작정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여섯 가지의 기적들을 차례대로 살펴보면서, 우리 모두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의미를 밝히 깨닫기 바랍니다. 그리해서 오늘의 성찬을 통하여, 예수님을 바르게 기념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45절). 

마27: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막15:25에 의하면, 예수님은 제삼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유대인의 시간으로 제삼시는 우리 시간으로는 오전 9시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은 제구시에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 이 때가 우리 시간으로는 오후 3시입니다.  

예수님은 제삼시부터 제구시까지, 그러니까 우리 시간으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처음 세 시간 동안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밝히 바라보는 가운데 온갖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이 동안에 예수님은 세 번 말씀을 하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제자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눅23:34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43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요19:26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요19:27 ....보라 네 어머니라....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모두 일곱 마디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 중 처음 세 말씀이 제삼시부터 제육시 사이에 주어졌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심한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사람들에게는 자비와 긍휼의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 의하면,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우리 시간으로는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입니다. 이 때는 하루 가운데 가장 밝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환한 대낮에 갑작스러운 어둠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 때의 어둠은 “온 땅에” 임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어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는 구름이 태양을 가리어서 생긴 어둠도 아니었고, 황사와 같은 먼지에 의해서 그 곳의 하늘이 어두워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이 어둠은 일식에 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일식은 달이 해를 가리우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이 때는 유월절입니다. 이 때는 한 달의 중간이기에, 보름달이 떠오릅니다. 이 때 달은 해의 정반대 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일식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눅23:44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이와 같이 온 땅에 어둠이 임한 이유는 해가 빛을 잃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빛을 창조하시고, 해를 창조하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얼마든지 해가 그 빛을 잃게 만드실 수가 있으십니다. 

예컨대 여호수아 10장에서, 하나님은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 거의 종일토록 내려가지 않게 하셨습니다. 열왕기하 20장에서, 하나님은 해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하나님은 세 시간 동안 해가 빛을 잃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이 때 어둠이 임하게 하셨습니까? 성경에서 빛은 언제나 구원을 의미하며, 어둠은 언제나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러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들은 바깥 어두운 데 내던짐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져 내린 자리입니다. 그러면 이 때 하나님은 무엇을 심판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바로 죄입니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어, 우리의 몸을 죄의 병기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사용하면서, 하나님께 헌신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으셨습니다(46~49절). 

마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두 번째 기적은 제구시쯤 일어났습니다. 우리 시간으로는 오후 세시쯤이었습니다. 온 땅에 임했던 어둠이 물러갈 무렵이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크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셨습니다. 앞에 나오는 “엘리 엘리”는 히브리어이고, 뒤에 나오는 “라마 사박다니”는 아람어입니다. 전체 말씀의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 때의 말씀은 십자가상의 네 번째 말씀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두 번째 기적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으신 것, 곧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신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예수님은 영원히 하나이십니다. 게다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신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적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버리셨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네 번째로 외치신 말씀은 구약성경 시22:1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리신 이유를 그 바로 뒤에 나오는 말씀인 시22:3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죄를 차마 보지 못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고후5:21의 말씀과 같이 죄 자체가 되셨습니다. 그러니 이 때 거룩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등을 돌리시며, 예수님을 버리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그러면 이 두 번째 기적, 곧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단절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거룩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 보이셨던 것입니다. 

마27: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들었기 때문에 했던 말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크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예수님의 말씀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분명 그들은 예수님이 시22:1 말씀을 인용하셨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이 엘리야를 부르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한 말이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말라기가 예언한 말씀대로,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오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와 같이 조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저가 엘리야를 부르고 있구나. 저가 엘리야를 불러서 우리에게 자기를 메시야라고 증언해달라고 요청하는 모양이다. 정말 돌아도 단단히 돌았구먼. 하하하.”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그들은 온 땅에 어둠이 임한 것을 보면서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예수님을 비웃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19:28을 보면, 바로 이 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섯 번째 말씀으로, “내가 목마르다”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마27:48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신 포도주는 포도주에 많은 물을 타서 만든 값싼 음료수를 가리킵니다. 그 당시 더운 지방에서는 로마의 군인들이 이것을 음료수로 사용했습니다. 그러기에 여기의 한 사람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병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내가 목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얼른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셨습니다. 해면은 바다 동물의 뼈로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스폰지처럼, 다량의 액체를 빨아들여서 그 속에 간직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갈대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지만, 요19:29에서는 우슬초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갈대나 우슬초나 그다지 크지 않은 식물들입니다. 기껏해야 40~50cm 정도가 될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는 그 당시의 십자가가 별반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9장을 보면, 십자가의 높이는 쇠방망이로 십자가에 달린 죄수의 다리를 쳐서 꺾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의 십자가는 지상에서 발이 약간 떨어질 정도로 나지막했을 것입니다. 

마27:49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막15:36에 의하면, 예수님에게 신 포도주를 주었던 사람도 똑같은 말로 빈정거렸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했던 행동은 선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생명을 좀더 연장시켜서, 과연 엘리야가 와서 예수님을 구원하는지를 보려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아직도 초자연적인 어둠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어찌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처럼 끝까지 조롱할 수 있었는지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그들의 양심이 화인 맞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일어났던 두 번째 기적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기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으심으로, 영원히 하나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이 분리가 되신 것입니다. 

이 두 번째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의 거룩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생각하면서, 날마다 죄를 멀리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셨습니다(50절). 

마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오늘 본문 46절에서, 예수님은 이미 한번 크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크게 소리를 지르시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십자가상의 네 번째 말씀이었습니다. 

그 이후 예수님은 다섯 번째 말씀으로 “내가 목마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오늘 본문 50절에서, 예수님은 다시 한번 크게 소리 지르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크게 소리 지르시면서, 십자가상의 마지막 두 말씀 곧 여섯째와 일곱째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요19:30 ....다 이루었다.... 
눅23:46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이 내리신 모든 진노를 우리를 대신하여 그대로 다 받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이 맡기신 구속의 모든 사역을 “다 이루었다”고 크게 외치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또한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이 다시금 예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드시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아주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크게 외치시면서, 평안하게 숨지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때 예수님의 목소리는 다 죽어 가는 사람의 가냘픈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크게 소리 지르시면서, 마지막 두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때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은 예수님의 기운이 다했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면, 2~3일 정도 있다가 죽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섯 시간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몸이 약하시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죄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시기에, 예수님의 몸은 아주 튼튼하셨을 것입니다. 

막15: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이와 같이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예수님이 여섯 시간만에 돌아가신 것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영혼이 떠나시니라.” 예수님의 영혼이 스스로 떠나셨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때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던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 버릴 권세가 없습니다. 독약을 먹거나 목을 매달아 죽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독약이나 목을 매단 줄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그가 원하는 때에, 자신의 의지로, 그의 목숨을 스스로 버리신 것입니다.   

요10: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요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실 권세도 있으시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십니다. “영혼이 떠나시니라.”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위에서 일어난 세 번째 기적입니다. 그러면 이 세 번째 기적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더욱 본받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하여 더욱 기쁨으로 헌신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51절 상반부). 

마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우리말 성경에는 빠져있습니다만, 본시 헬라어 성경에는 여기에 “보라”는 감탄사가 덧붙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 결과로 “보라, behold”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 안에는 성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쪽을 지성소라고 불렀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 휘장은 높이가 55 규빗, 약 26m 정도가 되는 거대한 크기였습니다. 

이 휘장의 안쪽, 곧 지성소에는 증거궤가 놓여 있었습니다. 때로는 이것이 언약궤라고 불리기도 했고, 때로는 법궤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그러기에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한 곳이었으며, 그 안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대제사장만 일년에 단 한 차례, 곧 속죄일에만 그 곳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휘장 한쪽을 들치고서, 조심스럽게 지성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증거궤 위, 곧 속죄소라고 불리는 곳에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리고는 얼른 다시 나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대속물로 하나님께 드리셨을 때, 지성소를 가리고 있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것도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휘장이 완전히 찢어졌다는 뜻입니다. 

때는 유월절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토록 신비스럽게 여겨지던 지성소가 바로 그들의 눈앞에서 환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 때 성소의 휘장은 누구에 의해서 찢어졌습니까? 사람의 손으로는 이 거대한 휘장을 도저히 찢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셔서, 이 거대한 휘장을 친히 찢어버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신 네 번째 기적입니다.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히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유월절 어린 양으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그리함으로써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소의 휘장이 완전히 찢어진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네 번째로 의미하는 바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놀라운 은혜에 늘 깊이 감사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섯째로,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졌습니다(51절 하반부). 

마27:51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땅이 진동하며.” 이것은 지진을 의미합니다. “바위가 터지고.” 이것은 이 때 엄청나게 큰 지진이 발생한 것을 뜻합니다.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바로 이 지진 때문에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이스라엘 땅에는 지진이 매우 흔했습니다. 그러면 땅에 지진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본시 에덴 동산에서는 지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서, 땅이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땅에는 수많은 지진들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때도 사람들은 늘 있는 지진이 또다시 일어난 것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이 친히 지진을 일으키실 때도 있습니다. 이 때의 지진은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에 속합니다. 

예컨대 출19:18에서 하나님이 시내 산에 나타나실 때, 온 산이 크게 진동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지진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또한 왕하19:11에서 하나님이 엘리야 앞을 지나가실 때, 그 곳에 지진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지진도 역시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입니다.  

그러면 이 다섯 번째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다시 말해서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는 이 큰 지진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해답을 히브리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히12: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히12: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장차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은 또 한번 큰 지진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때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입니다. 

여기에 “경고”가 나오고 “약속”이 나옵니다. 경고는 무엇입니까?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질 때,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모두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못에 던짐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면 약속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영원토록 왕 노릇을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불신자에게는 하나님의 경고가 되며,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하나님이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실 그 날을 바라보면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섯째로,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습니다(52~53절). 

마27: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무덤들이 열리며.”  

이는 바로 앞의 기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질 때, 무덤들이 열린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굴을 파서 무덤을 만들고, 그 입구를 돌로 막아 놓습니다. 그런데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입구를 막았던 돌들이 굴러가고 무덤들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것은 기적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덤들이 열린 것은 지진이라는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서 일어난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지진이 기적이었던 것처럼, 이것도 역시 기적인 이유가 다음에 나옵니다.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우선 여기에 “자던 성도”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성도는 구원받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성경은 성도의 죽음을 가리켜서 잠을 잔다고 표현합니다. 예컨대 행7:60에서 스데반이 순교할 때,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덤들이 열릴 때, 그 안에서 일어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자던 성도들의 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영은 이미 하늘 나라에 가있습니다. 이 때 무덤 안에서 일어난 것은 자던 성도들의 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때 육체의 부활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때 자던 성도들의 몸들이 전부 다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때 자던 성도들 가운데서 그 일부만 대표적으로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 때 그들의 영은 하늘에서 내려와, 신령하게 된 그들의 몸과 합쳐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는 참으로 놀라운 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27: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기까지, 그대로 무덤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비로소 그들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전15:20 말씀과 같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셔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그들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거룩한 성, 곧 예루살렘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였습니다. 물론 그들은 믿는 자들에게만 자신들을 보였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언제나 믿는 자들에게만 자신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이 때 부활한 성도들이 자신들을 보이면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분명 그들은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사실을 증언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사셨기에,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도 다시 살 것이며, 자기들이 바로 그 사실의 산 증인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마지막 여섯 번째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마지막으로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 곧 부활의 소망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하나님은 친히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의미를 여섯 가지로 말씀해주셨습니다: 1) 하나님의 심판, 2) 하나님의 거룩, 3) 하나님의 사랑, 4) 하나님의 은혜, 5) 하나님의 경고와 약속, 6) 하나님이 주신 부활의 소망.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십니다. 장차 우리는 그 곳에서 부활의 몸으로 영생하며 왕 노릇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이 시간 깊이 묵상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오늘의 성찬을 통하여, 예수님을 바르게 기념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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