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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마 10: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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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마 10:28~33)


오늘은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철학자들은 생명이란 것, 곧 살아있다는 것을 죽음의 대립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죽음의 대립개념으로, 죽지 않은 것입니다.  생명은 죽음의 반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흙으로 육신을 만드시고 그 코에 호흡을 불어넣어주셨기에 살아있는 존재, 생령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창2:7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요, 생기가 떠나면 죽음입니다. 

성경에서 죽음이란 ‘영과 육이 분리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떠났다고 하면 그는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영혼을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혼은 건강한 육신을 거처로 삼고 살아갑니다.  영혼이 떠나면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영혼의 떠남과 육신의 죽음은 동시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해주시는 생명이 있는 동안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까?  우리의 남은 생애를 어떻게 보내야할 것입니까?  

1.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인식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나를 감찰하시고 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신실하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살 것입니까?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살 것입니까?    그리고 나를 진정 기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이번 우리 총회의 주제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시69:30-31에는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하는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찬양과 감사의 삶을 더욱 기쁘게 받으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을 무서워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두려워하라, 경외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람으로 죄에 빠뜨리고 시험하는 사탄의 역사가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큰 힘을 지녔다고 하지만, 영혼과 육신을 살리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 인간의 본분이 있다고 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잠9:10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면서 예배하는 사람만이 창조의 질서 속에서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약하여 쉽게 타락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이 없다보니 자기 밖에는 모릅니다. 자기의 의, 자신의 이익, 자신이 신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을 봅니다.  

사탄이나 악하고 무자비한 사람들은 우리의 육신을 멸하거나 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함께 살리고 멸하실 수 있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뿐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두려워하다”는 말은 ‘포베오’라고 합니다. 이 말은 놀라다, 존경하다, 경외하다, 무서워하다는 말입니다.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존경하고 경외하는데, 예배한다는 말로도 쓰여 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야, 인생을 신실하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 앞에 가서 서야하는 존재입니다.  히9:27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고후5:9-10에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나보내야 할 이전 것들을 붙잡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주님만 바라보면서 앞을 향하여,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바울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4:2-3입니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육체의 남은 때를 말씀하고, 지나간 때를 말씀합니다.  우리는 지나간 때를 생각만 해도 부끄럽고 죄송할 뿐입니다. 이제는 지나간 때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남은 때만 바라보고 달려가야겠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잘라 말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고 했습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세계 위인이라고 하는 영국의 정치가 글래드 스톤(1809-1898) 경이 있었습니다. 그는 총리를 네 번이나 연임하신 분입니다.  “내가 정사에 바빠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시간 가는 줄 몰라, 때로는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별조차 못한 적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주일에 드리는 예배 시간을 잊어버려 주일예배에 빠진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나라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힘은 주일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공급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입니다. 

2.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29-30에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에게 달려 있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이 말이 자기 몸을 전혀 돌아보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참새 두 마리가 1앗사리온에 팔리고 2앗사리온을 가져가면 한 마리 더 주어 다섯 마리를 살 수 있지만, 그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머리칼이 20만개 정도 된다고 하고, 하루에도 알지 못하는 시간에 50여 개씩 빠지고 새롭게 나고 있는데, 그런 모든 것도 하나님은 알고 계시고, 헤아리고 계십니다.  사람이 염려한다고 하여 그 키를 한 자라도 키울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 2006년에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었습니다.  사람의 몸은 약60조가 되는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세포의 핵 속에는 44개의 상염색체와 2개의 성염색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염색체가 쌍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22개의 쌍염색체와 1개의 성염색체가 있다고 말합니다.  염색체를 구성하고 있는 8만 여개의 DNA는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이라는 4개의 염기가 수소결합으로 수없이 반복되는 나선의 구조로 되어 있어 이 염기서열에 유전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러한 염기쌍들이 약30억 개가 있어 유전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루하루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의도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주시는 생명을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생명이라고 하니 다 같은 생명이 아닙니다.  허송세월하는 생명은 무가치합니다.  죄에 매여 살아가는 죄의 노예는 무가치합니다.  사람으로 살아가야 사람입니다.  동물로 살아가면 동물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감옥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감옥에도 심방을 가보았는데, 면회소에서 창문을 통하여 보고 오는 것이지만, 교도소를 보면서 사람이 죄를 짓지 말아야지, 죄 지으면 저렇게 자유가 없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목사가 감옥에 심방가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감옥에 있으면 죄수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보람과 기쁨과 감격이 있어야 하는데 감옥에 있으니, 자유가 없습니다.  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의 일이 없습니다.  자기가 입고 싶은 것을 입지 못합니다.  그것이 어디 사람입니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만나지 못합니다.  사람답게 살아가야 사람입니다. 

사람은 실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겉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를 거창한 존재로 보지 말고,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 작은 존재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란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입니다.   죽으면 그만이 아닙니다. 죽으면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야만 복된 생명이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사람입니다.  

이영덕 장로님은 국무총리를 지내신 분입니다.   6.25 때에 이북에서 월남하는데, 통행증명을 가지러 집에 가는데 자기를 부르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중고등학교에서 이영덕과 함께 5년 동안 공부하였고 김일성대학에 들어간 수재였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너 서울 가려고 하지”라고 묻더랍니다.  그렇다고 하니, “너는 지주의 아들이고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죽여야 하는데, 네가 워낙 정직하고 진실하니까 살려주마.  

오늘 내가 너와 함께 집에 갈테니 그 다음에는 네가 알아서 넘어가라”고 해서 살려주더라고 합니다.  공산당 골수분자가 살려주었습니다.  서울대학 3학년에 다닐 때에 인민군에게 70명의 학생들이 붙잡혔습니다.    그 자리에서 즉결 재판하여 죽이는데, 70명을 한 사람, 한 사람 대검으로 찔러 죽은 것을 확인하면서 죽이는데 이제 8명이 남았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도 하도 힘이 드는지 내일 죽이겠다고 미루더랍니다.   다음 날 죽기를 기다리는데, 그래도 주먹밥을 주면서 죽기 전에 먹으라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한 노인이 들어오더랍니다.  그는 공산당의 원로였습니다.  할아버지가 하는 말, “이 아이들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인민군이 말합니다. “이 놈들은 사상이 좋지 않아 죽이려고 합니다.  다 죽이고 8명만 남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그 분이 “우리가 전쟁을 하는 것이 젊은이들 죽이려고 하는 줄 아느냐 ?  왜 이리 새파란 애들을 죽이느냐?  이 아이들을 설득해서 쓸 생각을 해야지 왜 죽이려고 해” 하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그들은 그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즉시 풀어주어 살아나왔습니다.  그래서 서울대생 3학년 70명이 잡혀가서 8명이 살아남았습니다.  

장로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님이 당신의 생명을 살려주셨다고 합니다.   이영덕은 그 후에 열심히 공부하였고, 정말 최선을 다하여 살았고, 정직하게  살았고, 나라를 위하여, 후진 양성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살아갔습니다.  죽다 살아난 생명입니다.  여러분 꼭 죽어야 했는데, 살아나왔다고 하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입니까?   사선을 넘어서 살아난 사람들은 딴눈 팔 시간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갈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이었는데, 우리 주님이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습니다.  

생명이 있어야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으니, 교회도 오지요, 죽었으면 어디를 다닐 것입니까?    인간의 값어치는 참새보다 귀합니다.  이 말은 참새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생명을 더욱 소중하게 여겨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는데 하나님이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당신의 피로 값 주고 산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지금 형편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사람답게 살려고 힘쓰면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에게 붙잡혀 사는 사람, 신들린 사람, 신명나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3.  주님을 전파하여야 합니다.  

32-33에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국회의장이 간증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러시아에서 구 소련이 왜 망했는지에 대하여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과학자, 군사전문가, 경제인 정치인, 교육가, 사상가 등 여러 분야에서 권위 있는 100명이 모여서 연구를 했는데, 소련은 지하자원도 많고, 우수한 두뇌도 많고, 철저한 공산주의자들도 많았는데, 철저하게 망한 이유는 별로 없어보였습니다. 3년 동안 연구하고 발표하였는데 첫째 원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망했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니, 인생에 대하여 회의에 빠지고, 의욕이 없어지고 허무주의에 빠지고 사람들이 피동적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니 살의와 시기가 가득하게 되고, 다툼과 강퍅한 마음이 생겨서 남을 해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여 망했다고 결론을 내었습니다.  

이 민족이 잘 사는 길은 오직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돌아오지만, 우리가 전파하지 않으면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듣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믿음이 생길 것입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들음은 전파할 때에 들을 수 있습니다.  “함께 예수 믿자”는 한 마디에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믿기로 작정된 영혼들이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행복합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예수 믿으면 축복받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라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 앞에 주님을 시인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도 알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나의 생명은 천하보다 더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갚아드리는 신실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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