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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단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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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단 2:1~24)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유명한 속담이 있습니다.
자기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인 줄 알고 그 안에서 최고라고 으스대는 것을 풍자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물 밖'에 있는 사람만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지 평생을 '우물 안'에서만 살고 있는 개구리 자신은 결코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옛날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이야말로 대표적인 '우물 안의 개구리' 인생이었습니다.
물론 잘 아시다시피 바벨론은 당대 최고의 지식과 힘을 자랑하던 대제국이었습니다.
또한 그 대제국의 최고 통치권자였던 느부갓네살 왕은 모든 권력과 부귀와 영화를 한 몸에 지니고 있었으며, 그의 수하에 있던 측근들 역시 당대 최고의 모사들이요 학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바벨론의 권력자와 수뇌들은 '바벨론 밖'의 세상, 아니 '세상 밖'에 있는 존재세계를 알지 못했으며 물론 그 모든 영역을 다 통치하시는 절대주권자를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세계의 제1인자'로만 보였던 느부갓네살은 실제로는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했던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그 바벨론 제국 안에서도 '우물 밖'의 세계를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세계의 주권자와 '줄이 닿는' 인물이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유다가 망할 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서 느부갓네살의 신하가 되어 있었던 다니엘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전개되는 사건은 느부갓네살과 다니엘 사이에 있었던 그 차이가 결국 엄청나게 대조적인 결말들로 나타나게 된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자기만 최고인 줄 아는 사람'과 '하나님과 그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는 세계와 역사를 아는 신자'가 과연 그 얼마나 극단적으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지를 주어진 말씀을 통하여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인간의 지혜와 능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본주의자는 결국 '자신의 유한성 안에서 자멸하는 인생'이 됩니다.

본문 1절로 3절에 기록하기를 "1느부갓네살이 위에 있은 지 이년에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 2왕이 그 꿈을 자기에게 고하게 하려고 명하여 박수와 술객과 점장이와 갈대아 술사를 부르매 그들이 들어와서 왕의 앞에 선지라 3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알고자 하여 마음이 번민하도다"라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그야말로 온 세상이 그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수밖에 없었던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우리는 그 인간 느부갓네살의 너무나도 나약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든 것을 다 한 손아귀에 쥐고 아무 부러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어 보였던 그 느부갓네살 왕이 한갓 꿈을 인하여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짐작과는 정반대로, 그는 오히려 그 대제국의 통치자가 된 까닭에 보통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더 많은 걱정거리나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을 것이고 그 때문에 자주 밤잠을 설쳤을 것입니다.

문제는 느부갓네살 자신이 자기가 간밤에 꾸었던 꿈을 잊어 버렸다는 데에 가서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동방 사회에서는 자기의 꿈을 다음날 아침에 기억해 내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불길한 징조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바벨론의 한 점술가의 기록에 보면 "어떤 사람이 자기가 본 꿈을 기억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의 신이 그에게 노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대 최고의 힘과 부를 다 가지고 있던 느부갓네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 하나 때문에 그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고 만 것이었습니다.

이어지는 4절로 13절까지의 말씀에 "4갈대아 술사들이 아람 방언으로 왕에게 말하되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은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5왕이 갈대아 술사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 것이요 6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보이면 너희가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내게서 얻으리라 그런즉 꿈과 그 해석을 내게 보이라 

7그들이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청컨대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8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분명히 아노라 너희가 나의 명령이 내렸음을 보았으므로 시간을 천연하려 함이로다 9너희가 만일 이 꿈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를 처치할 법이 오직 하나이니 이는 너희가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 내 앞에서 꾸며 말하여 때가 변하기를 기다리려 함이니라 이제 그 꿈을 내게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해석도 보일 줄을 내가 알리라 

10갈대아 술사들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세상에는 왕의 그 일을 보일 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크고 권력 있는 왕이 이런 것으로 박수에게나 술객에게나 갈대아 술사에게 물은 자가 절대로 있지 아니하였나이다 11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라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한지라 12왕이 이로 인하여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 모든 박사를 다 멸하라 명하니라 13왕의 명령이 내리매 박사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 동무도 죽이려고 찾았더라"고 기록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박수와 술객과 점장이와 갈대아 술사"들을 불러서 물어 보았다고 2절에 기록했습니다.
이들은 제사도 지내고 점도 치고 하늘의 별도 보고 예언도 하는 등 그 기능이 다양했지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 당시 최고의 수뇌들이었습니다.
  
4절 이하에 보면 그 중에서도 특히 "갈대아 술사"들이 대표자 격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그 방면에 있어서는 문자 그대로 '당대 최고의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지식이라는 것은 오늘날의 현대인들이 볼 때에는 미신에 불과한 것들도 많이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상당히 과학적인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회에서 이 '갈대아 술사'란 적어도 '사람의 머리를 쓰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두뇌 집단'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처럼 바벨론 제국에서 최고로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박사'들이 다 모였지만 느부갓네살 왕의 요구, 즉 '자기가 꾼 꿈과 그에 대한 해몽'을 동시에 알게 해 달라는 이 어처구니없는 요구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소위 '해몽 전문가'로 자처하는 그들이었지만 꿈을 풀어 주기 위해서는 일단 그 꿈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꿈만 말해 주면, 그 다음에는 소위 그들의 '해몽법'을 따라서 해석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그 '해몽법'이란 먼저 과거에 사람들이 꾸었던 유명하고도 중요한 꿈들을 다 집대성한 후에 그 꿈을 꾼 직후에 그 당사자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또한 총망라해 둔 것이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이 어떤 꿈을 꾼 다음에는 어떤 일이 있어났다.'라는 식으로 일종의 법칙들을 정리해 둔 것이 바로 그들의 '해몽서'였으며, 누가 꿈을 꾸게 되면 그 과거의 '해몽 사례'들에 있는 것과 가장 비슷한 꿈을 찾아서 그 해석을 유추해 내는 것이 바로 그들의 해몽법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현재에까지 발견된 지식과 정보들을 종합한 후에 거기서 파생되는 원리나 규칙'을 세워 놓고서 마치 자신이 최고의 진리를 통달한 사람인양 '박사, 술사'운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바벨론의 수뇌들조차 이 느부갓네살의 고민에 대해서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손들고 고백한 그대로 그것은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알 수도, 알려 줄 수도 없는 불가지(不可知)의 세계요 불가능의 문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4절로부터 11절까지 나타나 있는 대화의 내용은 피차 답답하기 그지없는 상태에서 문제는 점점 더 악화일로에 빠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끝내 12절에 가서는 "왕이 이로 인하여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 모든 박사를 다 멸하라 명하니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바벨론의 그 현명하다는 박사들은 그처럼 말도 되지 않을 억지 명령 앞에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고, 느부갓네살 왕 역시 적어도 지식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자기 신하들의 무지와 무능에 대하여 크게 실망하여 "다 죽여 버려!"라는 지극히 말초신경적인 명령을 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입니까?
그래도 사람들 중에서 '제일 높은 지도자'와 '제일 지혜로운 학자'들이 만나서 정보를 나누고 중지(衆智)를 모으면 무언가 최상의 결과가 나와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과 갈대아 술사들이 보여 준 것처럼 아무 문제 해결은커녕 오히려 상황은 점점 악화되기만 하고 급기야 피를 흘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물 안의 개구리'들에게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영적 악순환'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경우를 두고 일컫는 '빈곤의 악순환'이라는 말은 영적으로 무지하면서도 교만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즉 사람이 자신의 세계 안에서만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 하고 인간의 지식과 능력의 범주 안에서만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 하면 필연적인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사람이 안다고 하는 것들은 사실상 옛날 '갈대아 술사'들이 썼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자연과학이란 많은 실험을 반복하여 종합한 결과를 가지고 어떤 이론을 세워 놓은 후에 그 짧은 기간에 관찰된 것을 가지고 소위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라는 것을 제멋대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회과학 역시 많은 '사례'(case)들을 잔뜩 모아 놓고 그 중에서 지금 발생한 문제와 가장 비슷한 것을 찾아서 그 어떤 가까운 해답을 추론하고자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제한된 지식 세계' 바깥에 속한 문제에 대하여 질문을 하면 노벨상을 받은 학자라 할지라도 "빅뱅(big bang)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대답밖에 들을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아무리 명문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심리학자라 할지라도 바로 내 집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정문제 하나에 대해서도 속 시원한 해답을 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람을 통하여 자신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결국에 가서는 '잘 아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의 무지(無知)와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의 무능(無能)에 도달하게 될 뿐이며, 그것이 바로 필연적인 '느부갓네살의 혼란과 절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본주의의 환상'은 세계사가 진행될수록 더욱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최고 존재요 그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최고의 철학과 최고의 과학과 최고의 기술이 사람을 더욱 높아지게 만들 것이라는 이 '현대판 느부갓네살 병'은 사실상 신종 인플루엔자보다 더 빠르게 전 인류에게 퍼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최고의 종교'가 마치 사람을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까지 승화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은 가장 치명적인 병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사람 중심'의 모든 사상이나 활동은 그저 인류를 더욱 불안과 공포에 빠지게 만들 뿐이며 끝내는 서로 죽이는 싸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최고'인 줄로 여기고 자랑하고 있는 인본주의적인 지식과 능력이라는 것은 사실상 '유한'이요 '최저'이며 결국 사람을 '극악'의 결과와 '멸망'의 종말로 이끌어갈 뿐이라는 사실을, 당대 최고를 자랑했지만 그처럼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느부갓네살의 역사적 교훈을 통하여 분명히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간구하는 신전인격자는 그 전지전능의 도우심을 받아 '구속사의 주역으로 쓰이는 리더'가 됩니다.

14절 이하 18절에 기록하기를 "14왕의 시위대 장관 아리옥이 바벨론 박사들을 죽이러 나가매 다니엘이 명철하고 슬기로가매말로 15왕의 장관 아리옥에게 물어 가로되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뇨 아리옥이 그 일을 다니엘에게 고하매 16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기한하여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보여 드리겠다 하니라 17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동무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고하고 18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니엘이 자기긍휼히 여기사 자기 다니엘과 동무들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구하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정말 '아닌 밤중에 홍두깨'와 같은 일을 당한 다니엘은 실로 침착하고도 현명하게 처신했습니다.
그는 이 무분별하고도 성급한 처사의 내막을 자세히 들은 후 느부갓네살 왕에게 직접 나아가서 "기한만 주시면 해석을 보여 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했습니다.
이미 자제력을 잃고 있는 느부갓네살에게 무슨 다른 말로는 도저히 통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다니엘은 지혜롭게 판단했던 것입니다.
또 누구보다도 그 꿈을 알고 싶어서 안달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느부갓네살이니 그것을 알려 주겠다고 하면 지금 막 내린 '박사 몰살 명령'도 연기할 것이라고 사려 깊은 계산까지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그 무엇보다도 다니엘이 그런 약속을 한 이유는 한 가지 믿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 보고 판단해도 도무지 빠져나갈 길 없어 보이는 그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다니엘만큼은 해결의 길을 찾아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도만이 이 얽히고설킨, 이 불가능한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라고, 아니 기도하면 반드시 풀릴 수 있을 줄로 믿고 있었던 까닭에 아예 느부갓네살에게 공언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돌아오자마자 자기 친구들에게도 합심하여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응답해 주실 것을 다 함께 간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19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에 "19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이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20다니엘이 말하여 가로되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21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22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23나의 열조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바 일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 24이에 다니엘이 왕이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라 명한 아리옥에게로 가서 이르매 그에게 이같이 이르되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지 말고 나를 왕의 앞으로 인도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 해석을 왕께 보여 드리리라"고 기록했습니다.

그 기도의 결과 "이 은밀한 것이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게" 되었습니다.
온 바벨론이 알지 못하여 난리를 치고 불안과 답답함과 공포와 죽음에 빠지게 만들었던 그 '은밀한 것'이 다니엘이 기도한 결과 바로 그에게만 보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지극히 간단한 한 가지였습니다.
바로 다니엘은 하나님께 그것을 보여 달라고 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0절 이하에 기록된 다니엘의 감사기도에 보면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내용이 여러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구한 바 일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라고, 그 "은밀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것'임을 누차 강조하면서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기도의 제일 첫 부분인 20절에 보면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라고 다니엘은 고백했습니다.
그는 지금 그 시간 그 상황에서 꼭 필요한 '지혜와 능력'을 바로 '전지(全知)와 전능(全能)'을 소유하고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얻고자 기도할 줄 알았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 '은밀한 것'을 그에게 밝히 보여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바벨론의 박사들은 '사람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을 때에 '이것은 신만이 아는 일이다'라고 하면서도 그 신께 구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다니엘은 그 문제에 대하여 직접 하나님께 구할 생각을 할 줄 알았던 것이고 바로 그것이 결정적인 갈림길이 되었습니다.
전자는 여전히 '무지와 무능' 가운데 사로잡혀 답답함과 공포에 빠져 들어갔지만, 후자는 '지혜와 능력'을 얻게 되었고 환희와 감사가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다니엘은 한갓 바벨론의 신민(臣民)이 아니라 오히려 느부갓네살 왕과 바벨론의 박사들에 대하여 영적 주도권을 잡게 되었으며, 세계사가 바벨론 제국을 중심으로 진행된다고 자만하고 있던 그들에게 전 세계 역사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하여 '한 수 가르쳐 주는' 위치로 격상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자신의 '개구리의 우물 속'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람이 '사람 안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그야말로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영원한 악순환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저 하늘의 하나님께 의지하고 간구하는 성도는 온 세상 사람들이 얻지 못하여 답답해하고 찾지 못하여 안달하는 그 모든 '은밀한 것'에 대하여 응답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원래 하나님께 속해 있던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깨닫고 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기도는 성도가 하나님께 속한 것을 자기의 것으로 얻을 수 있는 놀라운 통로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최고 부자, 최고 권력자, 최고 학자들이 가지지 못하여 끝까지 불만과 의문 중에서 죽어 가는 동안에도, 그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은밀한 것'을 받은 성도는 그 기도 안에서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기독신자들은 진정 이 세상을 향하여 영적으로 '왕 노릇'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이 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진짜 통치자는 아닙니다.
그 대통령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 대통령이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지혜를 받고 모세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성도들이 진정 이 조국의 참된 리더들인 것입니다.
  
학자나 언론인이 이 조국의 문제를 해결할 진정한 현자들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대한민국을 당신의 구속사의 마지막 시대를 위하여 어떻게 쓰고자 하시는지 그 '은밀한 것'을 통달하고 있는 성도들이야말로 이 나라의 실질적인 '최고 두뇌(brain)'들인 것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나라의 궁극적인 주인과 통치자는 결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실 뿐임을 믿으면서 늘 그 하늘의 절대주권자께 '지혜'와 '능력' 내려주실 것을 기도드림으로써, 세상에 끌려 다니는 '바벨론의 신민'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성취해 나가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자기네들이 살고 있던 '우물'이 전부 다인 줄로만 알았던 '갈대아 술사'들과 그 안에서 '개구리' 노릇하는 것을 최고인 줄로만 알았던 '느부갓네살 왕'은 그들에게 닥친 문제에 대하여 아무 해결책도 찾지 못했으며 서로 불신만 깊어갔고 상황은 악화되어 결국 죽음까지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벨론적 종교'가 필연적으로 내포하게 되는 악순환입니다.
'사람의 종교, 사람에 의한 종교, 사람을 위한 종교'라는 이 '인본주의적 자율종교'는 사람을 구원하기는커녕 본래 사람에게 있는 '완전타락'의 본성 안에서 맴돌다가 그 우물 안에서 썩어 죽는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처럼 당대 최고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오히려 최악의 무지와 무능의 악순환에 빠져 있을 때에 그 해결책은 어디로부터 오게 되었습니까?
바로 '우물 밖' 아니 '우주 바깥'에 계시는 절대자와 그 분께서 다스리시는 영원무궁하고도 광대무한한 세계를 알고 있었던 신앙인 다니엘 한 사람을 통하여 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기독교' 즉 '하나님의 절대주권만을 높이고 의지하는 타율종교'만을 통해서 누릴 수 있는 구원의 은혜요 새 생명의 축복인 것입니다.

역사와 우주에 관한 궁금증을 세상의 대학 교수들이 잘 설명해 줄 것이라고, 정치와 경제의 산적한 문제들을 그저 대통령 한 사람만 잘 뽑으면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결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존경해 마지않던 '높고 똑똑한 사람들'의 무지와 무능에 더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고 결국 나중에 가서는 자기 인생 전체에 대한 방황과 불안과 절망에 빠지게 되고야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의존하다가 둘 다 지옥 구덩이에 빠지는'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지혜와 권능이 무궁하신 하늘의 하나님께 구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구하는 자에는 주실 것이요 찾는 이는 얻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는 꼭 열리게 될 것'이며, 이것을 믿고 응답을 받는 성도는 문자 그대로 '세계를 이끌어가는 구속사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인간 본연의 무지와 무능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절망이 찾아올 때마다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기억하면서 기도함으로써 그 전지와 전능의 도우심을 받아 온 세상을 향하여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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