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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둥이 되게하리니... (계 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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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이 되게하리니... (계 3:7~12)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하고 있던 당시 소아시아에 대표적인 일곱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였습니다. 일곱 교회 가운데 오직 두 곳만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만 받았습니다.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관한 말씀입니다. 

‘빌라델비아’라는 말의 뜻은 “형제사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버가모의 왕 아탈루스 2세(Attalus II, B.C. 159∼138)가 자신에게 왕위를 양보해준 형 ‘유메네스’ 에게 감사한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이 도시를 건설하고 도시의 이름을 헬라어로 ‘필라 델포스’ 즉 “형제를 사랑하는 자” 라고 명명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빌라델비아는 포도 농사를 많이 지었고 포도주가 유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시의 수호신으로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Dionysus)를 섬겼고 그 외 수많은 각종 우상과 귀신을 섬기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언제 어떻게 복음이 전파되어 빌라델비아 교회가 세워졌는지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지만 성도들의 신앙의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만능키 예수 그리스도
본문 7절에 보면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계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게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린 문을 두셨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열쇠란 왕의 열쇠를 의미합니다. 왕은 주권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으로서 모든 주권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즉 예수님은 모든 것을 열 수 있는 만능키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열쇠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BC 2천년 경이었다고 합니다. 이집트 사원 벽화에 칫솔모양의 열쇠가 그려져 있는데 주전 2천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경우 중국에서는 주나라와 한나라 문헌에 이미 열쇠가 사용됐음이 드러났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미 삼국시대 이전에 열쇠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현재는 열쇠의 기능이 최첨단화하고 있습니다. 지문인식, 음성인식, 얼굴인식 등으로 문이 열리고 잠기는 열쇠 기술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최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해 열쇠를 만든다 해도 그 열쇠는 열 수 있는 문이 있고 열지 못하는 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지신 열쇠는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만능 열쇠라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시면 열자가 없습니다. 
구약은 이스라엘의 민족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 들어간 이야기에서 출애굽한 이야기,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 광야 40년을 거친 이야기, 가나안 땅에 들어가 나라를 세우고 발전시킨 이야기, 그리고 나라가 멸망한 이야기 등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나긴 역사를 꿰뚫고 있는 하나의 선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라도 왕권도 건강했고 부흥했지만 하나님이 외면하시면 왕조도 국가도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이 공식은 우리들의 경우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가 인간의 흥망성쇠의 열쇠를 가지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하시면 안 되는 일이 없고 안 열릴 문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열쇠입니다. 예수님만이 인생에게 참 행복의 열쇠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열 수 없을 때 하나님이 열어주셔야 합니다. 기도문도 축복의 하늘문도 구원의 천국문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열려집니다. 그 외에는 길이 없고 문도 없고 열쇠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밖에는 구원이 없으면 예수 밖에는 열쇠도 없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복 받은 교회입니다. 왜냐면 만능키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열린 문을 주셨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문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축복의 하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늘의 보물창고를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칭찬의 내용과 이유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함게 책망 없이 칭찬만 들은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박해받는 교회였습니다. 율법주의적 유대인들로부터 엄청난 핍박과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보실 때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였습니다. 사단의 공격 때문에 주님을 위해서 엄청난 박해를 받고 순교하는 이들에게 주께서 무슨 책망을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빌라델피아 교회의 경우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이 부분을 보면 빌라델비아 교회가 칭찬만 받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예수님의 말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지켰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어떤 말을 지켰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마지막 명령인 선교 명령입니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말씀인 선교 명령을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심정을 감동시키는 시키는 두 가지 사건은 “순교”와 “선교”라고 할 것입니다. 내가 아직 순교하지 않고 살아있거든 선교하십시오. 
당시 빌라델피아 교회는 규모 상으로는 아주 작은 교회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교회의 사이즈가 아니라 순종의 여부입니다. 

선교는 돈 많은 사람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 있고 능력 있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능력밖에 없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드렸던 작은 자의 순종이 5천명의 굶주림을 배불리 먹이고 남는 역사를 이뤄냈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능력이라도 순종하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오늘이 우리교회 설립 23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금년엔 특별한 기념행사가 없지만 23년 동안 작은 능력을 주님께 바쳤습니다. 1986년 10월 5일 날 첫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교회는 개척교회 아니고 선교하는 교회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작지만 주님의 약속을 믿고 걸어왔습니다. 교회의 모든 역량을 선교에 쏟았습니다. 
작지만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주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부흥되게 하셨고 교회 부지도 건축도 주님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작은 능력을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바치기를 원합니다. 

축복의 약속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
적은 능력을 가지고 믿음을 지키고 선교 명령에 순종했던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님은 “하나님 성전에서 기둥이 되게 하리라." 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이 오늘날 우리 교회 성도들의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기둥이 되게 하겠다는 의미는 하늘나라에서나 세상의 교회에서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요긴한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어디에서나 중요하고 요긴한 인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실제적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같이 여기는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갈 2:9절에 보면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라고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 이렇게 세 사람이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 날도 교회에서 각 분야에서 기둥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성도들은 모두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기둥같이 여김을 받고 실제로 기둥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선교에 있어서 기둥같이 여기는 인물, 목회사역에서 기둥처럼 여길 수 있는 인물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성전의 기둥이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정직

기둥은 곧아야 합니다. 집을 짓는데 있어서 꾸불꾸불하게 비틀어진 나무는 재목으로 쓰지 못하듯이 하나님의 교회 기둥이 되기 위해서는 곧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향하여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가리켜 거룩하고 진실하신 이라고 했습니다. 
(계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이것은 주님의 마음에 맞아 성전의 기둥이 될 만한 자도 역시 거룩하고 진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거룩하고 진실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욕심에 끌리고 세상 죄에 빠져서 의와 진리에서 어긋난 비뚤어진 삶을 산다면 그는 성전의 기둥이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말하기를 '거짓이 많은 국민으로 망하지 않은 국민이 어디 있으며, 거짓이 많은데 부흥된 국민이 어디 있느냐?'고 했습니다.
톨스토이는 '모른다는 것은 별로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닌 동시에 또 해로운 것도 아니다. 무엇이나 다 안다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다만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일을 아는 척 하는 것, 이것이 두려워해야 될 일이고, 해로운 일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진실을 가장한 거짓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언제나 진리에 입각한 바르고 의로운 삶과 정직과 진실을 지켜 나가시기 바랍니다. 시편 84:11에 보면 "여호와께서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래된 전래 동화 중 어느 나뭇꾼이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그만 도끼가 연못에 빠져 들어간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가난한 나뭇꾼이 연못가에 앉아서 울고 있노라니까 그 산의 진령이 나타나서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에 이 나뭇꾼은 사정을 다 이야기 했습니다. 그랬더니 신령이 연못 속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후에 금도끼를 가지고 나와 서는 주면서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나뭇꾼은 자기 것이 아니라고 받지를 아니 했습니다.

이 신령은 또 다시 들어가더니 이번에는 은도끼 하나를 들고 나와서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나뭇꾼은 그것도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 신령은 다시 들어가더니 이제는 무쇠로 만든 헌 도끼를 갖고 나와서 주었는데 그제서야 이 나뭇꾼은 좋아서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산신령은 너무나 이 나뭇꾼이 정직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먼저 건져온 금도끼와 은도끼를 다 주고 사라졌다는 이야기 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대에는 진정으로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찾아 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 가운데도 이 정직과 진실을 잃고 사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성전에서 중요하게 쓰임 받는 기둥이 될 수 있습니다. 

2) 견고함 

우리가 집을 지을 때에 기둥으로 쓰는 것은 곧기도 해야 하지만 또 견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세워진 기둥 가운데 '야긴'이라는 기둥은 그 의미가 견고하다는 뜻입니다. 밭에 심은 옥수수나 참대나무가 아무리 굵고 곧아도 기둥으로는 쓰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견고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8절 하반절에 보면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라고 했고 10절에도 보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26:3에 보면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고 했습니다.

신앙을 지켜 나가려면 굳센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견고한 신앙의 사람이 하나님 성전의 기둥으로 쓰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어떠한 고난과 핍박이 와도 굳센 의지로 신앙을 지켜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흔들림 없는 견고함은 기둥의 기본적인 덕목입니다. 
다른 것들은 움직여도 일단 세워진 기둥은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기둥은 제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정한 신앙을 갖고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려면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도 보면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우리 앞에 이단사설이 나돌고 우리를 미혹케 하는 것이 많아도 움직이지 않는 신앙을 소유하시길 바랍니다.

너무 쉽게 이단사설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최근 이단들의 활동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신천지가 타겟으로 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벧후 3: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눅 21:8)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미혹하는 사람들입니다. 
절대로 불신자에게로 사람을 보내지 않고 교회로 보내어 순진한 사람들 성경을 알고 싶어하는 순수한 사람들을 꾀어다가 성경을 잘못해석하고 오해하게 하여 자신들 교리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소유합시다.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미혹하는 영들을 분별하여 하나님 교회의 견고한 기둥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어덯습니까?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처럼 작은 능력밖에 없어서 낙심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이미 열려진 문을 우리앞에 두셨습니다. 견고한 만능키 되신 예수님이 우리 앞에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주님오실 때 까지 하나님목전에서 기둥으로 삽시다. 이 시대에 기둥같은 존재로 쓰임 받다가 우리 주님 오시는 날에 하나님 성전의 기둥으로 서게 되시기를 주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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