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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 인생(4) (마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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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인생(4) (마 10:1~4)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오직 예수의 삶을 살아갑시다.”

오늘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도마와 마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둘은 다른 제자들에 비해 인생의 전환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의심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도마와 당시 만민의 비판 대상인 세리 출신의 마태는 자신의 모습과 수준을 넘어 시대적 전도자로 복음 사역의 한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했습니다.
 
마태는 마태복음에서 자신을 언급할 때 ‘세리 마태’라 하였는데, 그가 굳이 세리 출신임을 밝힌 것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떤 신분이나 환경 속에서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말씀을 듣는 누구나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지금 모습과 환경에 매이지 말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빙산의 모습은 사실 물속에 잠긴 부분의 1/10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드러난 여러분의 모습은 실제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속에 무한한 잠재력을 심어 놓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능력을 믿지 않는 것도 불신앙이지만 자신을 자꾸만 제한하려 하는 것도 큰 불신앙입니다. 자신을 넘어 변화된 인생을 살았던 도마와 마태처럼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삶에 참된 변화가 일어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의심 많았던 도마
 
도마의 별명은 ‘의심 많은 제자’입니다. 그는 용감하기도 했지만 감정에 치우치기도 하는 등 기복이 심한 병적 성격이었습니다. 일종의 우울증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요 20:24를 보면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에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자 그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결코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8일이 지나 제자들이 다시 모였을 때 도마도 함께 있었는데 그때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며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야 도마는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이런 도마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다 (고후 5:7)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다보면 “내가 직접 보지 않고는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무언가 보여야만 비로소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 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선진국이나 미개한 부족이나 너나 할 것이 없습니다. 사단은 유일하게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 가장 존귀한 인간을 추한 모습으로 살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사단의 계략에 빠진 사람들은 삶은 돼지 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거나 형형색색의 형상물을 만들어 소원을 빕니다. 
 
이제 곧 추석 명절이 다가옵니다. 때문에 제사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제사가 무엇입니까. 조상을 섬긴다는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 귀신을 섬기는 일입니다.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고전 10:20) 인간은 죽으면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어 육신은 흙이 되고 영혼은 천국과 지옥 가운데 하나로 가게 됩니다. 영혼이 다시 제삿밥을 먹기 위해 올 수 없습니다. 제사는 귀신과 교제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마귀의 자식이 아닙니다. 더 이상 사단 종노릇하지 말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습니다. 내 힘과 내 의지가 아닌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시간이 되도록 집중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복음 진리가 무엇인지 헷갈리도록 공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 함께의 축복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고 흔들렸던 것도 다른 제자와 함께 있지 않고 제자공동체를 떠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공동체 속에서 영적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항상 예배가 최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성도 간의 교제와 포럼 역시 빼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독교 초창기의 청교도들은 단 한 번도 교회의 모임에 빠지지를 않았습니다. 이에 불신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빠짐없이 모일 수 있느냐?”고 묻자 그들은 “주님이 언제 공동체 안에 놀라운 역사를 행하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역사의 때에 내가 빠지지 않기를 원한다”고 답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영적 중심을 가져야 합니다. 함께의 축복을 누리는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도마는 이 사건 이후로 항상 제자들과 함께했습니다. 요 21:2, 행 1:12~14를 보면 도마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전도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도마는 페르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고 더 나아가 인도에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마침내 순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함께해야 할 시간표가 있고 홀로 쓰임받는 시간표가 있습니다. 지금은 분명히 함께해야하는 시간표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함께 동역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고 oneness의 축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완전 헌신한 마태
 
눅 5:27 이후를 보면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원래 레위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던 그는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실 때 세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세리는 유대사회의 배척 대상이었습니다. 조국을 배반하고 로마를 위해 일하며 세금을 착취하여 백성들의 미움을 받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그들은 상당한 실력을 갖춘 자들이었습니다. 로마에 고용되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아람어, 히브리어, 헬라어는 물론 라틴어까지 네 가지 언어는 필수였습니다. 
 
이렇게 실력을 갖추고 세관에서 일하고 있던 마태는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주저 없이 따라나섰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눅 5:27~28) 마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완전 헌신의 결단을 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대부분의 제자들은 갈릴리 어부 출신으로 가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리 출신의 마태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평생 풍요롭게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걸 수 있는 분, 인생의 해답이 되시는 생명의 주를 만난 기쁨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며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는 사실을 확신할 때 우리도 마태처럼 생명 건 헌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 생명의 축복을 누리는 만큼 삶을 드릴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복음적인 교회이며, 후대를 위하고 세계복음화를 위해 렘넌트 문화센터와 성전을 건축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믿을 때 비로소 이를 위해 헌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전 세계 교회의 모델로 세우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 교회를 통해 전국과 세계에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실 것이라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렘넌트 문화센터와 성전을 세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를 믿고 주님 앞에 헌신의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여러분 인생의 모든 것이 되시는 분이 맞습니까! 이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 있어야 모든 염려·근심·불안·시기·질투와 같은 불신앙에서 참 자유함을 얻고 영적 비상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마태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라가는 참 제자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초대교회 전도 역사를 말하는 한 문헌을 보면 “기독교의 위대한 선교 활동이 실제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비공식 선교사들 즉 평신도들 덕분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역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평신도 제자들의 역할이 컸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보면 바울과 베드로라는 대표적 사역자가 나오지만 복음이 확산되는 현장에서는 평신도 제자, 평신도 중직자들이 불을 일으켰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적 평신도 중직자였던 스데반과 빌립이 바로 그 증인입니다.
 
스데반은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고 순교를 당했으며 그것이 바로 행 1:8 성취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예루살렘에 핍박이 시작되었고 그에 모든 평신도 제자들이 흩어지면서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예수 생명, 예수 능력, 예수 축복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중직자 빌립은 에티오피아 재무장관에게 가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이처럼 초대교회 역사의 이면에는 평신도 제자, 평신도 중직자의 놀라운 역할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사역을 끝내면서 롬 16장에 평생의 동역자들을 일일이 언급합니다. 나의 동역자, 나의 보호자, 나의 식주인, 나를 위해 목숨을 건 자, 정말 수고한 자, 친척, 사랑받는 자, 인정받는 자 등으로 표현한 모든 이들이 평신도였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이 현장에서 사람, 가정, 지역을 살려내야 하는 평신도 선교사라는 사명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복음의 영향력 입혀 나가는 전도자로 사용하실 줄로 확신합니다. 성도 여러분 안에 있는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성령의 능력으로 일으켜 RUTC 시대, OMC 시대, 중직자 시대에 현장 전도 제자로 쓰임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복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임하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날마다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새 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도마와 마태가 변화되어 제자로 쓰임을 받게 된 것처럼 우리도 복음 증거에 쓰임받는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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