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제자 인생(3) (마 10:1~4)

  • 잡초 잡초
  • 240
  • 0

첨부 1


제자 인생(3) (마 10:1~4)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참 제자의 모델이 됩시다.”

얼마 전 북한이 황강 댐의 물을 사전 통보 없이 방류하는 바람에 임진강변의 야영객 여섯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안타까운 일이 일어난 데에는 북한의 잘못도 있지만 우리 당국의 재난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났던 탓이 큽니다. 무인경보 시스템을 관리하는 직원이 통신 불량이라는 문자메시지를 26차례나 받고도 이를 묵살했고, 수자원공사 직원은 근무지를 이탈했으며, 군청 직원을 CCTV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사결과 드러났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일이 없었으니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라 여긴 무감각한 습관이 사고의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이 같은 상황은 우리의 영적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어느 순간 어떻게 우리를 공격해 올지 모릅니다. 이는 마치 북한이 다량의 물을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방류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무감각해지는 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제자의 삶은 특히나 더 그렇습니다. 제자는 생명 살리는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자신도 죽고 남도 죽이게 됩니다. 여러분, 평상시 영적인 삶이 형식화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예수님의 제자는 빌립과 바돌로매입니다. 이 둘은 제자로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부터 평상시 삶 속에서 하나님 말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묵상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이 예언하고 있는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가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고는 즉시로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들처럼 평상시 삶에서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기도·전도가 생활화되고 체질화됨으로 하늘·땅·바다·열방을 진동시키는 참 제자 의 모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결단력의 소유자 빌립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세다 사람이라 (요 1:43~44) 이 말씀은 빌립이 예수님의 선택을 받는 장면입니다. 빌립은 베드로, 안드레와 같은 어부였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다음날 빌립도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한마디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이러한 단순한 부르심에 주저함 없이 아멘으로 따랐습니다.

이는 그의 결단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제자의 길은 복잡하고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예수님 말씀에 “아멘”이라 답하고 따르는 것이 신앙생활이요 제자의 길입니다.

요 1:45 이후를 보면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 1:45) 

빌립은 평상시에 성경에 기록된 메시야를 기다려왔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이 메시야이심을 깨달은 빌립은 주저함 없이 믿음의 결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실을 친구 나다나엘에게 증거한 것입니다. 하지만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며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러자 빌립은 “와서 보라”며 재차 강하게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빌립의 모습을 통해 참된 진리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그 진리를 증거하는 열정이 있어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전도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받은 은혜, 체험한 축복을 증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어렵다고 여겨지면 빌립과 같이 “우리 교회에 와서 한번 보라”고 말해도 됩니다. 우리 교회만큼 예수 생명의 축복을 정확히 전달하는 교회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영접메시지부터 시작하여 기초메시지를 통해 하나님 만나는 길, 하나님 자녀 된 신분과 권세를 분명히 깨닫고 실제로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우리 교회가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왜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신앙생활을 해야 속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과의 영적 싸움이기 때문에 영적 진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됩니다.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영적으로 무감각하게 만들고 종교화시키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막 4:21)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은 감추어두는 것이 아닙니다. 등경 위에 두어 모든 이가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빌립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선교했던 빌립은 생명을 다해 복음 전파에 헌신하며 순교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여러분도 빌립이 걸었던 길처럼 복음의 등불을 밝히 드러내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갈수록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파트, 빌라, 다세대 주택의 공용 계단이나 복도에 들어가는 것도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습니다. 또 모르는 아이에게 가까이 가면 유괴범으로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관계 전도입니다.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 전도의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바로 왕에게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증거한 것처럼, 다니엘과 세 친구가 다리오 왕에게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증거한 것처럼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고 계신다는 증거를 보이면 됩니다. 성도 여러분이 자신의 직장·사업장·지역·학교가 선교지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현장 선교사의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진실했던 제자 바돌로매
 
바돌로매는 공관복음서인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의 열두 제자 명단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유독 요한복음에서만 바돌로매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공관복음서에 등장하지 않는 이름 하나가 요한복음에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빌립이 전도한 나다나엘입니다. 즉 바돌로매와 나다나엘은 동일한 인물인 것입니다. 본래 이름이 나다나엘이었던 그는 돌로매의 아들이라 하여 바돌로매로 불렸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바돌로매는 친구 빌립의 전도를 통해 예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빌립으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며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를 향해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 1:47)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의 진실한 중심을 보신 것입니다. 그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아니,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라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 보았다”고 답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는 더울 때 큰 그늘을 만들어 주는 좋은 쉼터 역할을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성경을 읽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빌립과 마찬가지로 평소에 하나님 말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그늘에서 자주 성경을 읽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그는 예수님께서 평범한 인간이 아닌 전지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에 나다나엘은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요 1:49)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 고백은 메시야를 나타내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당시에 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영적 사실을 정확하게 깨닫지는 못한 상태였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의 구세주라는 사실만은 발견할 수 있었기에 그런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씀에 의지하여 예수님을 따라 나서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붙들린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이 이처럼 24시간 말씀의 인도를 받는 진실한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성경 속의 빌립과 바돌로매는 늘 함께 등장합니다. 그만큼 둘은 짝을 이루어 복음 사역을 함께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기록을 보면 바돌로매는 빌립이 순교했던 히에라폴리스 지역에서 함께 사역했던 내용이 나옵니다. 그 둘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붙잡고 평생의 동역자가 되어 함께 사역했던 것입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잠 27:17) 사역의 동반자 사이에서는 철과 철이 서로를 연단시켜 강하게 만들듯, 믿음의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게 됩니다. 동반자는 이처럼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짝이 되어 함께하는 이를 일컫습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존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파송하실 때 서로 짝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런 영적 동반자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생의 목표를 향해 함께 항해하는 동반자는 힘들고 외로울 때 옆에 있기만 해도 위로가 되고 큰 힘이 됩니다. 이러한 영적 동반자 역할을 서로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이 복음공동체 안에서 oneness를 이루어 사랑공동체, 믿음공동체를 만들어가며 하늘·땅·바다·열방을 진동시키는 참된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빌립과 바돌로매처럼 제자 인생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결단력 있는 신앙인, 복음 속에 진실한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이를 통하여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