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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구라고 하느냐? (마 16: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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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고 하느냐? (마 16:13~16)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여러분, 혹시 예수님께서 ‘개’를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습니까? ‘겁나게’ 못마땅하게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예수님께서 개를 즐겨하셔서 일부러 개 사러 다니셨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그것도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라는데 들어보셨습니까?
   
물론, 사실 무근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말은 오늘 본문 말씀을 장난스럽게 읽은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전 성경에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잘못 읽었는지, 식용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만들어 낸 말인지 예수님이 ‘가이 사러’ 빌립보 지방에 가셨다고 읽었습니다. 충청남도 서산, 경기도 강화, 평안도에서는 개를 ‘가이’라고 한답니다. 그래서 아예 입맛에 따라서 ‘예수님께서 개 사러 빌립보 지방에 가셨다’고 읽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개를 사러 빌립보에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또는 ‘빌립보 가이사랴’는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마을의 이름입니다.
   
빌립보 가이사랴는 갈릴리 호수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헬몬산 기슭에 있는 당시로써는 큰 도시였습니다. 한 때 그 지역을 다스리는 행정부가 있었고, 신전도 세워졌습니다. 이곳은 요단강이 시작되는 곳으로 이스라엘에서는 드물게 물이 풍부하고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지역입니다. 현재는 바니아스라고 불리는 곳으로 고대 유적지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을 기억하는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이곳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곳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이자,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의 기초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하는지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세상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을 자연인이라고 부릅니다. 자연인이란 얼핏 듣기 좋아 보이는 이름 같지만 여기에서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자연인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I. 자연인

13절 말씀입니다.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곳에서 예수님은 이런 중요한 질문을 하셨을까요? 이곳이 예루살렘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유대 광야와는 달리 경치가 뛰어난 곳이기 때문일까요? 그것은 이곳이 바로 ‘빌립보 가이사랴’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선 ‘빌립보’라는 이름에서 시작하겠습니다. 빌립보라는 이름은 갈라디아, 에베소, 골로새와 함께 신약성경의 한 책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빌립보는 바울의 편지를 받았던 소아시아의 빌립보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헤롯 대왕은 죽으면서 자신이 다스리던 지역을 세 아들에게 나누어주어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 중에 이 지역을 맡은 아들의 이름이 빌립이었습니다. 빌립보는 빌립이 다스리는 땅이라는 말입니다. 빌립은 로마 황제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곳을 ‘로마 황제 가이사의 영역’이란 뜻으로 ‘가이사랴(Caesarea)’라고 불렀습니다. 뿐만 아니라 빌립은 벳세다(Bethsaida)에 성을 짓고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딸 율리아(Julia)의 이름을 따 율리아스(Julias)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도시 이름을 ‘가이사랴’나 ‘율리아스’라고 바꾼 것은 로마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권력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연인은
   
1. 권력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절대 권력자가 되려고 하거나, 아니면 권력자를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권력에 철저하게 굴종합니다. 이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마 28:18)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를 존경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숭배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대신 숭배할 것을 찾는 것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다음으로 자연인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가이사랴’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을 포함하여 지중해 지역은 로마 제국에 의하여 지배되었습니다. 로마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주변의 나라를 점령하고 총독을 파견하여 다스렸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준 빌라도도 로마의 총독이었습니다. 가이사랴는 로마 황제 가이사에 특별히 바쳐진 땅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에는 이름에 걸맞게 황제의 신전이 세워졌습니다. 지금도 이곳에는 황제를 숭배하던 신전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배력을 넓히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합니다. 이러한 노력을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인은
   
2. 정치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른 정치가 펼쳐질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과 공의의 정치가 아니라, 야합과 술수를 동원하여 자신들의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배력을 넓히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이 되는 일에 조심하여야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영향력을 더욱 넓혀야 합니다. 

   자연인의 또 다른 특징은 무엇입니까?
   
빌립보 가이사랴는 본래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바알을 섬기던 곳입니다. 이곳에는 가나안 시대 목동들의 신인 ‘판(Pan)’을 섬기던 신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지도에 이곳 지명을 바니아스로 부르는데, 이것은 ‘판’ 신을 숭배하던 지역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가 흠뻑 많아지고 넉넉하게 되는데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인은
   
3. 풍요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권력을 우습게 생각하고 정치에는 무관심하지만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풍요만을 추구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아주 흔한 특징입니다. 반드시 국가 경제와 지역 경제가 살아나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이 그저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신의 배(腹)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 정치와 경제와 문화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것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자신이 중심이 되려는 일차원적인 인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는 자연인의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좀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초월한 존재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이런 사람을 자연인과 비교되는 종교인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II. 종교인

13절입니다.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궁금하셨을까요? 예수님이 단지 궁금증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사명을 감당할 제자들을 특별히 훈련시키시는 중이셨습니다. 이제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치실 때가 되었다고 보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먼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보았습니까?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까?
   
14절 말씀입니다.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제자들의 대답은 예수님에 대하여 “세례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에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 같은 분이라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백성에게 세례를 베풀며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처럼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활동을 보면서 죽은 세례요한이 되살아난 것은 아닌가하였습니다(마 14:2).
하지만 예수님은 세례 요한 같은 분이 아니라, 세례 요한에 의하여 세상에 소개되신 분이십니다.

   2. 어떤 사람은 엘리야 같은 분이라고 합니다.
   
엘리야는 기도하여 하늘에서 물을 내리기도 하고 불을 내리기도 하였던 기적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엘리야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 기적 그 자체이신 분입니다.

   3.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 같은 분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던 선지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함께 아파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예레미야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분이 사람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거두어 주실 바로 그 분이라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4. 어떤 사람은 선지자 같은 분이라고 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딱히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 또는 예레미야와 같다고 하지 못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어 줄 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 영웅, 슈퍼스타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이 바로 그 분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자연인에 비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의 한계는 그것이 딱히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인은 무엇인가 고상하고 이상적이고 신비한 것을 추구하지만 여전히 안개 속에서 더듬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것에 비길 수 없는 바로 그 분이십니다. 어떤 것에 비교하여 설명하여야 한다면 아직 그 분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정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예수님을 석가모니, 공자, 마호메트 또는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세계 4대 성인으로 부릅니다. 이것은 종교적 차원이거나 인류의 정신사적 차원에서 말하는 것에 불과 합니다. 이러한 설명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지만 사람들의 평가에 전혀 대응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대답할 가치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녕 그 이상이셨습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III. 신앙인

15절 말씀입니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은 들으신 예수님은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온전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어떤 존재로 알고 있는가?’라고 제자들 자신의 대답을 요구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물으신 것입니다. 이 질문은 우리도 피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이 없으면 교양인은 될 수 있지만 신앙인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누구라고 대답하느냐에 따라 종교인과 신앙인은 구별됩니다. 신앙인은
   
1.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지식으로만 아는 정도가 아니라 감정과 의지와 삶으로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어라고 하더라고 앵무새처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아멘! 그렇습니다.’고 해야 합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말하고 삶으로 따르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선생님께 찾아와 말합니다.
   “선생님, 저는 바보입니다. 어떻게 하면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안다면 이미 자넨 바보가 아니라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일세!”
   “하지만 남들이 저더러 바보, 바보 하지 않습니까요.”
   “남들이 자네더러 바보라고 한다고 해서 자네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넨 역시 바볼세!”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자신의 말처럼 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분명히 고백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누구이신가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시라고 말하십니까?
   
16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6a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여기에서 ‘주’는 단순히 2인칭 대명사인 ‘당신’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당신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그리스어로 ‘그리스도’, 히브리어로 ‘메시아’는 ‘기름부음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2.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입니다.
   
권력을 해바라기처럼 쫓았던 ‘빌립 헤롯’처럼 권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입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로마 황제 가이사의 ‘정치’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것을 낮추시고 낮은 것을 높이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넉넉하고 풍요롭게 하는 ‘경제’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바로 보고 바로 가게 하는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이것이 저의 신앙입니다. 
   
어느 할머니가 며느리의 권면에 이끌리어 교회를 다니다가 드디어 세례받기 위하여 문답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할머니? 천국에 누가 계시지요?” 하자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천국에야 우리 바깥사돈이 있지! 우리 며느리가 가르쳐 줬는걸. 목사님이 천국에 누가 있냐고 물으며 아버지가 계신다고 그러라고. 며느리 아버지면 나에게 사돈이지 뭐!”
   
기가 막힌 목사님 다시 질문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지요?”
   “그야 우리 며느리의 죄지! 며느리가 늘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고 했거든!”
   
신앙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로 고백되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시라고 말하십니까?

16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16b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 내재적 생명이 충만하시고 영원히 생존하시는 하나님이 사람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 그 이상 하나님이십니다. 신앙인
   
3.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이 참 사람이실 뿐만 아니라 참 하나님이시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유일하신 분이시자, 어떤 사람과도 비교할 수 없는 초월성을 가지신 분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단지 인간의 아들로만 보는 것은 예수님을 육체로만 아는 것으로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시간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에 대한 말씀을 더 깊이 나눌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있는가를 자신에게 물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로 믿으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의 공통점은 예수님!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믿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서로 많은 차이점이 있을지라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공통점이 있으면 우리는 한 몸의 교회입니다. 그러나 많은 공통점이 있을지라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고 여전히 ‘돈’, ‘명예’, ‘권력’, ‘인기’, ‘정치’ 등등을 그리스도라고 믿는다면 다른 몸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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