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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히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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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히 11:1~2) 


(히 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어떤 부인이 남편과 아들 3형제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직업은 선장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바다에서 폭풍우에 휘말려 배와 함께 최후를 마쳤다는 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세월은 흘러갔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렸건만 큰아들도 남편의 뒤를 이어 배를 탔다가 바다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또한 둘째 아들도 한사코 말리는 어머니 몰래 선원이 되었다가 얼마 후 바다에서 역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얼마 뒤 이 아들마저도 바다에서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남은 막내아들조차 배를 타겠다고 나섰습니다. 

어머니는 물론 모든 친척들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를 않았습니다. 도대체, 네 부자가 바다에 미친 까닭을 몰라 이 어머니는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웃에 사는 목사님께 그 원인을 알아보아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한참 집안을 살펴보던 목사님은 방에 걸려 있는 그림과 사진을 당장 떼어내고 대신 다른 것을 걸도록 권했습니다. 가슴을 설레게 만들 정도로 시원한 바다 그림과 선장 차림의 멋있는 아버지 사진이 아들들의 마음을 바다로 향하게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바다 그림 대신 산과 농촌의 평화로운 모습을 그린 그림을 걸었습니다. 얼마 후, 막내아들은 선원이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대신 농부가 되어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여러 반응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합니다.
인류 역사 초기에는 인구 증가가 급속히 이루어져 나갔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람들이 장수하였으며 많은 자녀를 가졌기 때문입니다(창5:3-32).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의(창1:28) 성취로 초기의 인간들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막강한 생식력을 가지고 다산함으로써 땅 위에 사람이 번성케 된 것입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하자 사악한 세상의 많은 죄악도 번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번 타락한 인간들은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급속도로 부패하여 갔으며 죄악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활 속에 흐르고 있는 심각한 죄악의 흐름을 감찰하셨습니다. 인간들의 죄악은 자꾸 영역을 넓혀서 선이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무질서와 혼돈의 세상이 된 것입니다. 죄악이 관영하는 세상을 보시고 하나님은 한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탄하셨다는 것은 인간들의 죄악이 얼마나 극에 달하였는가를 보여 줍니다.

인간들의 죄악의 관영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실 뿐만 아니라 창조하신 사람과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패륜과 죄악을 미워하십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롬8:8).

하나님은 사랑하는 인간의 죄악을 도외시하지 않으시고 그 죄악을 벌함으로써 새로운 질서 체계와 새 생명을 주시고자 심판을 작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삼라 만상에 미치는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에게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심판 가운데서도 노아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로 엄청난 새 질서와 새로운 시작의 첫 시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경외하고 섬기는 사람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엄정한 심판을 작정하신 가운데 노아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은혜는 죄인 된 우리에게 확실한 산 소망의 증거입니다.

의인이란 '곧다'라는 뜻으로 흠 없고 무죄하다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고 경건하게 살고자 노력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아는 믿음으로써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노아는 타락한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믿음의 신념을 지킨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를 가리켜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노아의 의로운 삶을 보신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시겠다는 자신의 뜻을 노아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예고하셨고 깊은 비밀을 그 사랑하는 자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의인에게는 악의 종국을 예고해 주시나 악인은 그 멸망을 깨닫지 못합니다.

노아에게 심판을 알려 주신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삶을 살았던 그에게 방주를 짓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노아를 구원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하나님에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끝까지 은혜를 베푸시는 분임을 노아의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노아는 전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노아는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를 받고 이를 믿었습니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약속을 확증도 없이 믿음으로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했습니다. 우리는 노아의 행적을 통하여 다시 한번 인간의 사악함과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상과는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노아의 경건한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로 하여금 타락한 현대 사회 속에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아에 대하여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고 합니다

이처럼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과 및 하나님의 능력과 하늘에 있는 것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일들(롬 1:20)은 모든 만물의 회복(행 3:21) 영적인 일들(롬 8:5) 장차 오게 될 일들(롬 8:38) 예언된 일들(고전 2:9)  영원한 일들(고후 4:18) 하늘에 있는 일들(빌 2:10) 미래에 일들(빌 3:13)  위에 있는 것들(골 3:1)  최종적인 구원(롬 8:24)등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하나님이 우리 마음 속에 주신 믿음이 그 증거가 됩니다. 
(요 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고 도마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어느 눈먼 소년이 연을 날리고 있는데 한 사람이 "너의 연이 어디 있는지 모르지?" "공중에 높이 떠 있지요". "어떻게 알지" "이 줄이 팽팽히 댕기는 것을 봐서 알지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의 줄 믿음의 줄이 기도의 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양심의 증거가 있습니다 

슈바이쳐박사의 어린 시절의 하나의 간증 거리가 있어 소개합니다. 
슈바이쳐 박사의 아버지는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 목사님이 농촌 목회를 하면서 꿀벌을 좀 키웠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이 목사님이 벌통을 열어 놓고 꿀벌의 상태를 살펴보는 중이었는데 그때 마침 웃통을 벗고 놀고 있던 슈바이처는 그만 벌에 쏘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어린 슈바이쳐는 아프다며 엉엉 울게 되었고, 아들의 울음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놀라서 달려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어머니가 나와서 보니 아들은 잘못한 것이 없는지라 남편을 향하여 "당신이 정신이 있소, 없소? 아이가 웃통을 벗고 노는데 벌통은 왜 만지는거요?"라며 야단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아버지가 내가 잘못했다며 그야말로 쩔쩔매게 된 것인데, 슈바이쳐의 기록에 의하면 그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욕을 먹는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큰 소리로 울었고 그럴 때면 아버지를 향하여 나무라는 어머니의 음성도 더 커져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슈바이쳐가 이렇게 한참 동안 소리를 지르며 울다가 보니 사실 나중에는 아프지도 않은 것을 울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마음 속에서 양심이 하는 말이 "야, 이 녀석아 그만 울어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이 일을 기록한 슈바이쳐 박사는 "이것은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말은 하지 않지만 다들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양심은 하나님이 주시는 판단력이요, 지성이며, 인간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믿음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의 실재를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와 그 계시의 각 부분에 대한 우리 영혼의 확고한 동의입니다. 또한 이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은 참 되시다고 도장을 꽉 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거룩함과 의와 선하심으로 계시하신 모든 것에 대한 전적인 시인입니다. 또한 믿음은 믿는 자들에게 영혼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영국의 트렌취 감독은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만 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취어도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삶이란 왜 이렇게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작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것이 믿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유명한 화가가 벽화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걸작으로 만들 셈이었습니다. 그가 벽화를 그리고 있는 동안 그의 친구가 스튜디오 뒤에서 그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화가는 짙은 청색과 회색으로 벽화의 배경을 깔고 있었습니다. 화가는 좀 더 좋은 각도에서 그림을 보기 위해서 사다리에서 내려와 친구를 향해서 몇 걸음 다가갔습니다. 화가는 흥분한 상태에서 “이것은 내 일생 일대의 걸작이 될 것일세 !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하고 친구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 때 친구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크기는 하지만 멋이 없이 권태로운 그림 뿐인 걸.” 하고 대꾸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화가는 금방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아, 내가 잊었군. 자네가 그림을 볼 때는 그림의 현재 상태만 볼 뿐이지. 내가 그림을 볼 때는 그림의 완성될 상태를 본다고 !” 

우리는 현재 상태의 시련만 보고 실망하고 낙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련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상급이라는 완성된 작품을 향해 진행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완성된 작품을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에서 점점 더 아름다워져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영혼의 눈이 뜨인 사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제하고 나오는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김홍선 권사임의 간증입니다.  경상도의 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고 그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과 결혼을 하였다. 집이 위치한 곳은 산자락을 끼고 있는 후미진 마을이었는데 그 풍경은 아름답기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그때는 예수님을 모르고 지극 정성을 들여 우상숭배를 하며 살았었다. 우상에게 정성을 들인 만큼 건강과 물질의 복을 받을 줄 알았는데 물질의 복은 커녕 몸조차 건강하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눈도 아파서 뜰 수가 없고, 가슴은 마치 예리한 칼날로 베이는 것 같이 쓰리고 아팠다. 밥도 넘기지 못하고 몹시 앓고 있으니 사람들은 죽을병이 들었다고 수군거렸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도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고 늘 걱정을 했다. 자식들에게 잘 해준 거 없이 근심만 주는 부모가 되었다. 그때 마을에 전도를 하러 온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시오. 앉은뱅이도 일어나고, 귀신도 떠나가고, 죽을병도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말에 바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렇지만 몇 달을 교회를 다녀도 약간의 차도가 있는 듯하다가 늘 그대로였다. 게다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아픈 중에도 몸을 추슬러 일을 해야 했다. 농사지을 땅도 변변치 않은 형편이라 더 이상 그 산골에서 아이들과 살 수가 없어 상주로 이사를 나왔다. 상주에서도 교회를 다니기는 했지만 병도 낫지 않는 것 같아 곧 그만 두었다. 신앙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대전에 살던 시동생이 볼일이 있어 집에 들렀는데 나는 시동생을 따라 대전으로 가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대전으로 이사해서 교회를 다니면 꼭 병이 나을 것 같았고 매우 힘든 물질의 어려움 또한 해결 받을 것 같았다. 시동생과 남편은 반대를 했지만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려 결국 가게 되었다. 시골에 있던 약간의 땅과 집을 모두 팔아 정리했지만, 1,500만원 밖에는 손에 쥘 수가 없었다. 그렇게 대전으로 이사하고 난 후 지금의 교회를 정하여 다니게 되었고, 시골서 가지고 온 돈으로 식품가게를 인수했는데,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상당한 빚을 안고 있는 가게였다. 

그러나 장사가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시작했는데 하루에 음료수 2~3병 정도 파는 것이 고작이었다. 머리는 계속 아프고 온 육체는 병들었고 가게마저 안되니 정말 살길이 막막했다. 나중에야 사단에게 눌려 있었던 것을 알았지만 그 때는 알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니 오직 하나님께 떼쓰며 기도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기에 저녁식사 후엔 무조건 교회로 달려가 밤새도록 기도하고 울며 매달렸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너무 없었다. 그래서 설교를 들어도 깨달을 수 없었고,  구하는 것 역시 영혼의 구원과는 상관없는 육에 속한 것뿐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밤마다 울부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마침내 만나주셨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건강 주시고 물질 주셔서 잘 살게 해 주세요’라고 한참을 부르짖어 기도하는데 공중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음성이 들렸다.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구에게 물어봐야하는지 고민하다 이웃에 신학교가 있는 것이 생각나 그곳에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물어보았더니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구하면 잘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뒤 새벽예배까지 드리고 돌아오는데 하나님께서 “너는 이리 가서 묻지도 말고 저리 가서 묻지도 말고 나만 따르라 그러면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복음을 이해 할 수도, 깨닫지도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오로지 가정과 자녀와 물질의 축복만을 구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기도해도 생활이 나아질 기미는 없었다. 지칠 때도 되었지만 중도에 그만 둘 수는 없었다. 

기도를 시작한지 3년이 다되어 갈 무렵, 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는데, 그 날은 새롭게 태어나는 날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회개의 영을 부어주셨는데 마치 필름이 돌아가듯 과거의 잘못 살아온 삶이 눈앞에 영화처럼 그대로 펼쳐졌다. 거기엔 작은 것,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일들도 죄인 것을 알게 하셨고, 가슴을 치며 회개하도록 역사하셨다. 한참을 통곡하며 회개를 한 후 성령이 충만하게 부은바 되었다. 3년 가까이 밤마다 기도하면서도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큰 기쁨과 평강이 흘러 넘쳤고,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혼자 남아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 날 새벽 3시가 넘도록 기도하는 중에 “주의 종을 괴롭히는 자는 괴로움을 당하나 주의 종을 잘 섬기는 자는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주의 종을 잘 섬겨 하나님께 복을 받으리라 다짐하였고 순종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성령을 받은 후, 예배를 드리고 나올 때마다 절제하기 힘들 정도로 기뻐 절로 춤이 추어졌다. 몸은 언제 나았는지 아주 깨끗하게 회복되었고 젊은 사람보다 더 건강해졌다. 생활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기쁘고 즐겁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철야기도를 하는 중에 한 가지 환상을 보았다. 거리에 바람이 부는데, 성령의 바람이었다. 그 바람은 마치 흰 눈이 휘날리듯이 다른 가게에서 불어왔고,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서 가게로 들어갔다. 그 환상을 보며 마음에 담대함과 감사가 넘쳤다. 그 뒤부터는 음료수 2~3병이 고작이던 가게의 하루 매상이 10만원, 30만원, 50만원으로 계속 올라갔다. 할렐루야! 

구원받고, 성령도 충만히 받고, 생활에 필요한 물질의 복까지 받게 된 것이다. 그 동안 장사가 안되고 생활이 어려워 다른 직장도 나가보았지만 주일을 지킬 수 없어 그만 두었고 집안의 행사가 있어도 예배를 드린 다음으로 미루었다. 그렇게 언제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와 교회의 일을 우선으로 하려고 힘쓰다보니 자녀들이 잘되는 복까지 주셨다. 이렇게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뒤로는 모든 일이 잘 풀렸다. 

그리고 신유의 은사도 선물로 주셔서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해주면 병이 낫게 해주셨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마음에 원하고 구하는 데로 하나도 빠짐없이 응답을 받았다. 무엇보다 글을 전혀 몰랐었다. 아라비아 숫자 조차도 모를 정도로 무식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성경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살기를 원한다며 성경을 펴놓고 부르짖어 기도한 결과 찾는 것은 물론, 읽고 쓰기도 잘한다. 은혜가 많은 만큼 공부도 해야 된다고 하셔서 교회에서 운영하는 성서학원 2년 과정을 수료하였다.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기도원에서 예배드리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나면 새 힘과 능력을 받게 된다. 

이번에 간증을 하게 된 것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안산의 친정에 갔다가 기도원을 그냥 지나 칠 수 없어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역시 은혜가 넘치고 너무 좋아 계획보다 이틀을 더 있었더니 은혜를 함께 나눌 시간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어 또한 감사를 드린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임을 확신하고 사명 감당하며 영광돌리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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