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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 : 귀신을 쫓아내는 자 (눅 11: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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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 귀신을 쫓아내는 자 (눅 11:14~26)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받고 나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항상 옛 모습 그대로인 것을 봐왔다. 구체적으로 예언 은사를 받은 자가 영적 형편과 죄악 및 미래의 삶을 꼬집어 주어도 변하지 못하고 그대로인 것을 봐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고후4:4 말씀에 답이 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렇다. 이 세상 신이 사람의 마음을 혼미케 하기 때문이다. 복음의 열매 없음은 원수들의 방해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 삼는 목적을 말씀하실 때 세 가지를 언급하셨는데 그 중의 한 가지는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시려고 부르신 것이다. 귀신을 쫓아내지 않으면 믿으려는 마음을 어지럽게 하여 복음의 빛이 비춰지지 못한다. 주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아무 뜻없이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전도가 열매 맺고 복음이 복음으로 드러나려면 귀신이 하는 일을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귀신을 쫓아야 마음이 혼미치 않아서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난다.

귀신은 악한 영이다. 「Demon」이라 부르는 이 악령은 사탄의 조직도인 정사, 권세, 어두움의 주관자 다음에 해당하는 네 번째 조직이다. 그러므로 demon의 우두머리는 사탄이다. 사탄은 바알세불로 불리고 하나님의 원수, 거역자, 반대자란 뜻이다. 사탄의 이름은 옛뱀, 또는 마귀라고도 하는데 사탄은 본래 하나님 보좌 앞에 있었다. 그런데 계12:9을 보면 그 사탄은 이 땅으로 내어쫓긴다. 그 때 그의 사자들도 사탄과 함께 내어쫓겼다.

눅10:18을 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창세 전에 계신 주님이시기에 떨어지는 사탄을 보았던 것이다. 

사14:12을 보면 사탄은 땅을 쫓겨 떨어진 계명성, 루시퍼다. 

겔28:13 이하에서는 하나님의 동산에 완전한 미를 자랑하던 아름다움의 천사장으로 묘사된다. 하나님이 되려는 교만에 빠진 루시퍼는 군대 천사 미가엘에게 밀려 쫓겨났다. 그래서 이 궁창 있는 땅으로 내려와서 두루 다닌다. (욥1:7) 이는 사람을 살피고 거처지를 삼기 위해서다. 결국 에덴 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했을 때 거짓말로 사람을 미혹하고 자기 종, 죄의 종으로 삼았다. 악령이 사람의 마음을 거처지로 삼았다. 그래서 예수님이 둘째 아담으로 오셨을 때 사탄을 멸하러 오셨다. (요일3:8)

창2:15의 예언대로 사탄의 머리를 밟으시고 승리하러 오셨다. 사탄과 귀신의 지배를 벗어나게 하려고 오셨다. 그러나 사탄의 부하들은 아직도 사람 속에 머물며 사람을 거처지로 삼는다. 귀신은 사람 속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귀신이 거주하는 집이 되어버린 사람은 거짓의 아비를 좇아 산다. 살인하고 거짓말을 하고 산다. 그래서 사람의 삶은 황폐하고 되고 사망으로 달리게 한다. 귀신은 하늘에서 쫓겨난 자들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무저갱에 들어가 영구히 가두어 지기 전에까지 발악을 하며 사람의 마음에 어두움의 소굴을 만들고 거한다. 

여기서 예수님이 제자 삼은 목적의 하나가 왜 귀신을 쫓아내기 인지를 다시 하나 더 배우게 된다.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고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려면 귀신을 그냥 두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셨다. 그 귀신을 쫓겨나갈 때 사람의 중심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라고 하셨다. 

마12:28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귀신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자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귀신을 쫓는 권세까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귀신을 쫓아내는 제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방법은 이미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신뢰하고 언제 어디서든지 귀신을 두려워하지 말고 축사하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귀신 들린 여인이 나타났는데 무섭다고 도망가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가 있는 제자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1. 귀신을 쫓겨가면 구원의 회복이 온다. (눅11:14)

성경 속 인물들을 볼 때 귀신이 자리 잡은 사람들은 어떠했는가? 

사울 왕은 그의 사위를 죽이려 하였다. 막7:25의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은 고통을 받는다. 마17:18의 아비의 아들은 거꾸러지고 넘어지고 경련을 일으킨다. 막5:2의 더러운 귀신들린 자는 무덤 사이에 벌거벗고 소리를 지른다. 돌로 자기 몸을 상해한다. 

귀신은 사람을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행복의 모습이 없다. 눅11:14을 보라. 말 못하게 하는 귀신 들린 자가 demon, 즉 귀신에서 놓여질 때 말하는 회복이 주어지고 무리들이 놀라게 된다. 이와 같이 사람 속에 거주지를 마련한 악한 귀신이 쫓겨가면 입이 열리듯 모든 것이 회복된다. 그 구원의 감격이 얼마나 클 것인가? 

1716년, 웨슬리는 일찍이 14살 때 목사관에 나타난 귀신을 체험하였다. 33세에 세상을 떠난 한국의 이용도 목사, 그는 밤새도록 귀신과 대면하여 싸우고 귀신을 쫓아내었다.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면 억눌림을 받는다. 구원과 해방을 위해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2. 귀신을 쫓겨갔을 뿐이지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 (눅11:24)

눅11: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귀신을 축사하였으면 그 승리가 완전한 것이 아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복음서 전체를 세밀히 살펴보아도 귀신을 꾸짖고 쫓아냈다라고 되어있지 귀신이 멸하여졌다는 표현은 없다. 귀신은 쫓겨간 것 뿐이다. 나에게 들어와 거처지를 삼고 살고 싶은데 예수님의 이름 앞에 달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마8:31을 보면 귀신들이 예수님께 간구한다.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그래서 돼지에게로 귀신이 들어간다. 이렇게 보면 귀신을 쫓겨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엔가 또는 어떤 짐승에든지 거처지를 삼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귀신은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이것을 주의하라.

왜 귀신을 멸하지 아니하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천년 동안 무저갱에 갇히는 사탄과 그의 부하들은 다시 천년 왕국 이후 놓여서 사람들을 시험한다. 귀신은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의 경륜 속에 사용당하고 있는 존재다.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도 시험을 실패한 후 예수님 곁을 떠나간 것이지 다시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고 나서는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복음을 전했다. 구원이 임했다. 새 삶을 다짐했다. 교회에 올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승리에 도취하면 금방 실망하기 쉽다.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교회에 오기로 약속한 그 사람이 주저 앉는다.

  
3. 귀신이 쫓겨간 마음의 방에 거룩한 영으로 채우도록 하자. (눅11:26)

있을 곳을 찾아 헤매던 귀신이 자기가 나온 사람에게 와서 본다. 집이 수리되었다. 그 때 귀신은 그 빈 집에 들어온다. 눅11: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라고 하였다. 

비어 있는 집이 문제다. 아무 것도 채워놓지 않는 집이 문제다. 우리의 마음의 방에 머물던 더러운 귀신이 쫓겨나갔으면 무엇인가 채워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은 비움의 영성이지만 거기에서 머물면 안된다. 비움이 이루어지면 그 즉시 채워야 한다. 성령의 거룩함으로 채워야 한다. 죄를 희게 하고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았으면 거룩한 것으로 충만하게 채워야 한다. 그래서 성령 충만이 절대 필수의 길이다.

성령의 충만함은 다른 것이 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성령 충만하려면 ①회개하라. ②쉬지 말고 기도하라. ③계속해서 말씀을 읽으라. ④신령한 은혜를 기대하라. ⑤믿고 구한 것을 받은 줄로 알라. ⑥하나님께 맡겨 드려라. 이렇게 하면 성령이 충만하고 내 마음의 집에 악한 것이 들어올 수가 없다. 오랫동안 교회 생활을 해서 그리스도인 인줄 알았는데 귀신이 쫓겨가지 아니한 사람은 불행하다. 허나 쫓겨간 귀신이 다시 들어온 사람의 삶은 훨씬 더 비참하고 7배나 불행하다. 
  
오늘, 예수님의 그 십자가를 바라보라. 사탄의 머리를 밟은 승리자를 보라. 위로와 평안의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받으라. 고후10:4을 보면 사탄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느니라.”라고 한 것처럼 이 능력은 교만의 진,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려는 진을 무너뜨린다. 또 사상의 진, 생각의 진을 무너뜨려 그리스도께 복종케 한다. 성령님께 지속적으로 순종하며 성령님을 의지하자. 분명코 다시 빈 집으로 돌아오는 귀신은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서 거하므로 그 사람의 형편이 전보다 더 나빠지게 된다고 하였다. 성령으로 나를 채우자. 어찌 귀신에게 나의 마음의 방을 허용한단 말인가? 성령이 충만하면 귀신도 충만한 나를 알아본다. 들어오려다가 도망간다. 달아난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시험 삼아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흉내낸다.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 놓아도 병이 떠나고 더러운 귀신이 나가는 것을 보고 흉내낸다. 행19:15에서 그 때 더러운 귀신이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그래서 그 일곱 아들은 뛰어든 귀신 들린 자에게 놀라 벗은 몸으로 도망한다. 악귀는 알았다. 무장되지 않은 사람이 흉내내는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음부의 대적이 이길 수 없는 자가 예수요, 바울임을 알았다. 지옥의 문을 깨뜨리는 유명 인사를 귀신들이 알았다. 성령 충만하여 권세를 가진 자가 되어 우리도 지옥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옥의 사탄에게 귀신들이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보고하는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귀신을 쫓는 권세가 없어서 “너는 누구냐?”라며 귀신 들린 자가 뛰어올라 눌러 밟아버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제 제자의 사명은 귀신을 쫓아내므로 구원을 받게 하고 사람답게 살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중심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자. 귀신에 사로잡혀 일어나지도 않는 일에 두려워하고 떨면 안된다. 걱정하고 근심하며 어둠의 나라에 속한 삶이 되어서는 안된다. 

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제자의 사명 중의 사명이다. 나 같은 사람도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할 수 있음을 믿고 그 권세를 선포하라. 나 같은 사람도 영적 전쟁의 중심에서 복음의 전령이 되고 권세 있는 제자가 될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거룩한 성령으로 충만히 채우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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