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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에 원하는 자, 마음이 지혜로운 자 (출 35:4~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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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원하는 자, 마음이 지혜로운 자 (출 35:4~36:7)


요즘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는 외래어 중에 '노하우'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의 영어로 하자면 'know-how'이니까 직역해서 풀자면 '어떻게 할지는 아는 것'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만, 사전에 보면 '특허되지 아니한, 그러나 기술 경쟁의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기술 정보나 기술 경험' 등을 뜻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외래어는 우리나라에서 원래는 주로 산업 분야에서 쓰이던 것이었다가 점차 다른 일상생활의 경우들에도 확대되면서, 이제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실제적인 지식이나 기능, 요령이나 비결' 등의 뜻으로 폭넓게 사용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만들 때에도 난생 처음으로 해 보는 그 대공사에 대한 '노하우'가 필요했습니다. 
출애굽기 25장 8절과 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8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9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성막 건축을 위한 '두 가지 노하우'를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이고' 계시는 장면인 것입니다.

우선 35장 4절로 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 성막 건축을 위하여 어떤 재료들을 바쳐야 할 것인지를 조목조목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 10절로 1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마음이 지혜로운 자"들이 만들어야 할 성막 그 자체와 그에 따른 부속기구들과 의복들을 구체적으로 자세히 지시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4절에서 19절까지 기록된 말씀은 이미 출애굽기 25장으로부터 28장에 걸쳐 자세히 설명된 것들을 간추려서 재차 언급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처럼 같은 말씀을 반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신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성막을 건축함에 있어서 그 어떤 다른 방법이 전혀 필요 없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만 하면 될 뿐인 것을 강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 '노하우' 즉 성막을 세우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와 요령'은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바로 이 말씀을 통하여, 오늘날의 성도들이 주님의 몸 되신 교회를 섬김에 있어서 항상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두 가지 '노하우'가 과연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원하는 마음으로 물질을 바치는 것'이 교회를 섬기는 노하우입니다.

본문 35장 20절로 29절에 기록하기를 "20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갔더니 21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으니 22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가슴 핀과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 왔으되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23무릇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 왔으며 24무릇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자는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 무릇 섬기는 일에 소용되는 조각목이 있는 자는 가져 왔으며 25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낳고 그 낳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을 가져 왔으며 

26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털로 실을 낳았으며 27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 왔으며 28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 왔으니 29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빙자하여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 이러하였더라"고 기록했습니다. 

그 성막 건축을 위하여 온갖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리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강조하신 사실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5절에서 하셨던 "마음에 원하는 자"라는 말씀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제 그 명령이 수행되는 과정에 있어서 여러 번 반복되어 나타나는 말씀 또한 "마음이 감동된 자", "자원하는 자", "마음에 원하는 자", "즐거이 드림"이라는 표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막을 위한 예물을 드림에 있어서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발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리고" 싶어 하는 그들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원하는 마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였습니까?
그것은 우선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여기 그들이 드리고 있는 물품의 종목들이란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당시 사회에서는 정말 최고의 귀중품들이었습니다.
금, 은, 동의 귀금속들은 말할 것 없고, 물감 들인 천들과 가죽들 역시 그때로서는 고가품에 해당되었습니다.

특히 22절에 보면 "가슴 핀과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 등 "여러 가지 금품" 즉 온갖 금장식들을 바쳤다고 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에 보여 주었던 것과는 아주 딴판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2절과 3절에 보면 이전에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귀고리'만을 가져왔었습니다.
  
즉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많은 금장식들 중에 단 한 가지 종류만 사용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성막을 위해 드릴 때에는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종류의 금품들을 다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느라고 그들의 금귀고리를 바쳤던 일을 상기하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것들을 바쳤지 않았겠습니까?
우상을 위해 그 정도였다면 하나님의 성막을 위해서는 귀고리뿐 아니라 목걸이고 반지고 무엇이고 할 것 없이 다 드려야 마땅하다는 심정에서 그 '여러 가지 금품'들을 바쳤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외에도 본문 25절과 26절에 보면 "여인"들이 여러 종류의 "실"들을 가져왔다고 했는데, 이것은 집에서 여자들이 직접 실을 잣고 천을 짜서 사용하던 당시로서는 오직 여자들만 바칠 수 있는 특별한 예물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27절과 28절에서는 "모든 족장"들이 드린 예물이 나오는데, 그것들은 특별히 귀한 보석과 향품들로서 아마 적어도 족장 정도의 재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드릴 수 있는 예물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그 당시는 성별의 차별이나 지위 고하의 차이가 많은 사회였지만 이처럼 성막을 위하여 각자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물을 바침에 있어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원하는 마음'과 '즐거이 드리는 손'들로써 하나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처럼 정성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린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36장 2절로 7절 말씀에 보면 "2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3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 오는 고로 

4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정지하고 와서 5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 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6모세가 명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가로되 무론 남녀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정지하니 7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고 기록했습니다.

모든 백성이 가장 좋은 것들을 원하는 마음으로 바쳤을 때 실로 놀라운 결과가 일어났습니다.
모세는 이미 모인 재료들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그것들을 일하는 사람들에게 내어 주고 일을 시작하도록 했는데, 그 이후에도 백성들은 그 일꾼들에게까지 "아침마다" 찾아가서 "연하여" 예물들을 드렸던 것입니다.
  
얼마나 많았는고 하니 일하던 사람들이 일을 중단하고 모세에게 찾아와서 사정을 고할 정도였으며, 모세는 그 말을 듣고서 결국 성막 건축을 위한 예물을 더 이상 가져오지 말도록 정지를 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예물이 너무 많아서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던 경우는 아마 이때 외에는 전무후무한 일일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처럼 성막 건축을 위하여 특별예물을 바쳤던 때는 그들로서는 물질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그들의 광야생활이란 그야말로 발붙일 곳도 정해지지 못한 떠돌이 인생이었으니 그저 싸서 들고 다닐 수 있는 짐이 그들의 전 재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처지에서는 정말 금붙이 하나, 좋은 옷감 한쪽이란 얼마나 아쉽고도 요긴한 것이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같이 자기네의 제한된 소유물들 중에서 가장 귀한 것들을 아낌없이 바쳤으며 그것도 오히려 남아넘칠 정도로 풍성히 바쳤던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 전에 금송아지 사건으로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혼이 났었습니다.
보통 생각으로는 그야말로 '기분을 잡친' 분위기일 수밖에 없으니 그런 상태에서 무슨 특별헌금을 바친다는 것은 도저히 안 될 일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이제 성막을 짓게 되니 놀랍게도 그들은 이토록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이' 드렸던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이제 '용서 받은 기쁨'으로만 충만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금송아지 우상을 위해 바치던 것을 이제 하나님의 성막을 위해 바치게 되자 그들의 마음은 너무나도 '뿌듯한 감격'으로 가득 차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바로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마 되지도 않는 액수까지도 돈이 아까워서 발발 떠는 손으로 겨우 내는 헌금, 온갖 계산을 다 해 보면서 복잡한 머리를 가지고 그저 사람 눈앞에서 체면치레로 내는 헌금 - 실제로 이 지상교회에서는 주일마다 이런 '외식적인 마음'만 가지고 헌금이랍시고 내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그런 교인들에게는 그 헌금이 결코 '은혜의 방편'이 아니라 '시험의 고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은혜를 받은' 성도는 전혀 다릅니다.
이전에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숭배하고 의지하고 목적으로 삼고 살던 삶을 생각할 때에는 당장 진노를 받아 죽어도 마땅할 뿐인데, 그 모든 과거의 죄악을 깨끗이 씻어 주시고 완전히 용서해 주신 은혜를 내가 지금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게 된 성도는 정말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일단 그처럼 자신의 마음이 받은 은혜 때문에 움직이게 되면 그 마음은 절로 '바치기를 원하게' 되고 '즐거이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자신의 재물을 오로지 자기 욕심을 따라 악한 일에만 허비했던 것을 진심으로 회개하면서,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한 일에 쓰이게 된 것을 진정 뜨겁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원하는 예물'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 받지 못한 교인'은 아무리 부자라도, 아니 오히려 부자일수록 절대로 헌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교인들만 모인 교회의 헌금이란 마치 무슨 '적선(積善)'을 하는 것 같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며 사실상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은혜 받은 교인'은 남녀노소 빈부고하를 막론하고 자기의 가진 것 중에 '최고의 것'을 주님 앞으로 기꺼이 가져오고 '전부의 것'까지도 그 몸 되신 교회를 위해 아낌없이 바치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헌금을 그처럼 진정 '기쁨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도 그 예물을 틀림없이 '기쁘시게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죄 용서의 감격과 구원의 확신이라는 큰 은혜를 분명히 받은 자라면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바치는 풍성한 헌금'으로써 주님의 교회를 늘 '쓰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풍성히 채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성령의 감동을 받아 '지혜로운 마음으로 몸을 바치는 것'이 교회를 섬기는 노하우입니다.

본문 35장 30절에서 36장 1절에 "30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31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32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일하게 하시며 33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공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34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35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공교로운 일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로 수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공교로운 일을 연구하게 하셨나니 1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심을 입은 자들은 여호와의 무릇 명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 "마음이 지혜로운 자"라는 말을 어떤 영어 성경에서는 "손재주 좋은 사람" 등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원문으로는 'wise-hearted'라는 뜻으로서 우리나라말 번역이 원문에 더 가깝습니다.
사실 성막을 만드는 기술자라면 그저 '손재주 좋은 장인'이 더 적격일 것 같은데, 왜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표현을 강조하시는 것이겠습니까?

본문에서 두 가지 뜻을 찾아 볼 수 있는데, 그 첫째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가운데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30절과 3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라는 말씀들이 나타납니다.
  
이어지는 구절들에도 "일하게 하시며"라든지 "지혜로운 마음을 충만케 하사", "일을 연구하게 하셨나니", "일을 할 줄 알게 하심을 입은 자"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말씀들은, 아무리 사람의 재주와 기술이 좋다 해도 그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특별한 은사이며, 무엇보다도 성령의 감동하시는 지혜가 없이는 아무리 최고의 전문가라 하더라도 교회를 섬기는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하는 말씀들입니다.
  
즉 교회를 섬기는 자들은 자기에게 내려 주신 능력이 오로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한 일에 쓰라고 주신 것인 줄로 깨닫는 가운데, 또한 그 능력을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항상 성령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기도를 겸손히 드리면서 섬겨야 할 뿐인 것입니다.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의미는 둘째로, '성막을 위해 바쳐진 예물들이 얼마나 귀중한 것임을 깨닫고 아껴서 잘 사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아까 36장에서 읽은 말씀에서 보았던 대로, 일단 공사가 시작되자 백성들은 이제 더 이상 '모세 앞으로'가 아니라 '그 일하는 자들에게' 직접 예물들을 가져왔습니다. 만약 그들이 조금이라도 마음을 나쁘게 먹었더라면 얼마나 치부하기에 좋은 기회였겠습니까?
  
모세가 세어 보고 보낸 것도 아니고 그냥 백성들이 아침마다 찾아와서 자기들의 일터에 뭉텅뭉텅 쌓아 놓고 가니 그 남아도는 것들을 조금씩 떼어 먹기란 정말 '누워서 떡먹기'와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지혜로운" 그들은 그 예물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다시 말해서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바쳐진 예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에 즉시 일까지 중단하고 와서 모세에게 고했던 것이었습니다.
  
꼭 마찬가지로 교회 일을 섬기면서 교회 재정을 통하여 지출되는 공금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에 바로 그와 같은 지혜가 반드시 발휘되어야만 합니다.
한 푼이라도 낭비되지 않도록, 정말 단 한 푼이라도 사사로운 일에 잘못 쓰이지 않도록 극히 조심할 줄 아는 것은 바로 '마음이 지혜로운 자'로서 교회를 섬기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에 불과한 것입니다.

건축 사업을 좀 한다고 해서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의 성전 건축이나 수리 공사를 자동적으로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회계학을 전공했다는 조건 하나만 가지고서 절로 교회의 재정부장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있는 특별한 재주가 어떤 교회의 일을 위해 쓰이게 될 때, '하나님께서 이번 기회에 이 선한 일에 봉사하라고 나에게 이런 기술을 미리 준비시켜 주셨구나.'라고, 그런 '여호와이레'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아는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라야만이 그 일을 맡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전문지식으로 교회 일에 섬기게 되었을 때에, "내가 돈을 안 받고 자원봉사하는 일이라고 해서 이 일 하는데 드는 비용을 혹시라도 함부로 쓰면 안 되지."하고 더욱 극히 조심할 줄 아는 '지혜로운 마음'이 있어야 그런 직분과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강호동의 무르팍 도사'에서 본 것인데, 지금은 세계적인 성악가가 된 조수미 씨가 유학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정기적으로 교수를 만나서 연주 연습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조수미 씨는 악보를 읽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처음으로 배우게 된 새 노래도 한 5분 내지 10분 정도만 준비하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조수미 씨의 연주가 끝난 후에 갑자기 교수님께서 악보를 바닥에 내리쳤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스스로는 아주 정확하게 잘 불렀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당황스러워하는 조수미 씨에게 "당신이 이 수업시간마다 겨우 10분만 준비해서 오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라고 야단을 쳤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을 회상하면서 조수미 씨는 "백 명의 사람들은 속일 수 있어도 한 명의 전문가의 눈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분발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영적 공동체인 까닭에 성령의 감동을 받은 교인과 그렇지 못한 교인이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 없이 그저 자신의 '지식과 능력'만을 뽐내는 교인, 그러면서 속으로는 '내가 없으면 이 교회에서 이 일은 안 될 텐데.'라고 교만해 하고 있는 교인은 적어도 목사의 눈에는 반드시 보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목사로서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웃기는 일'일 뿐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바로 예수님이신데 그런 교인 한 사람이 없다고 해서 '교회가 안 될 것' 같습니까?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도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이 주님의 몸 되신 교회를 섬기는 여러 가지 '공교한 일'들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자체가 그저 한없이 감격스러울 따름입니다.
'여호와께서 부어 주신 지혜와 총명'을 받은 성도는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집', 이 '아름다운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위하여 자신의 전문지식을 동원하여 '연구하며' 섬기게 된 것이 그저 황공무지한 특권일 뿐인 것입니다.
  
'이 분야에 있어서는 이 교회에서 내가 최고' 혹은 '내가 전문가인데도 수고비도 없이 하는 선행'이라고 은근한 교만 중에 하는 봉사가 아니라, 주님께서 이 지상 최고의 단체인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를 위하여 섬길 수 있는 달란트를 내게 내려주셨음을 감사하면서 많이 그리고 크게 봉사하면 할수록 더욱 조심하고 겸손할 줄 아는 '지혜로운 마음'과 함께 자신의 몸을 거룩한 도구로 온전히 바칠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제가 언젠가 어떤 교인으로부터 "교회 일을 하는 데에 무슨 노하우가 필요하겠습니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은 교회에 정말 필요한 일꾼은 '그저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 해내는 교인'이지 '어떻게 일을 해야 한다고 말만 잘하는 교인'이 결코 아니라는 의미였습니다.
저는 정말 옳고도 훌륭한 말이라고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세상 단체들에서는 '노하우'를 잘 아는 사람들이 꼭 필요합니다.
  
국회에 그런 인물이 없으면 나라꼴이 아니 될 터이고, 중역회의에 그런 사람이 없으면 회사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이 교회 안에서만큼은 '교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며 각자가 무슨 일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에 대하여 잘 아는 교인'이란 단 한 명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께 속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노하우'를 친히 당신의 입으로 명하시고 이 성경에 명백히 기록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그 어떤 영감 있는 목사가, 그 어떤 세상 사리 밝은 장로가 감히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고 예수님보다 더 교회 일을 잘 알 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이 교회에 단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사람은 오로지 '그 명하신 말씀대로 마음이 움직이고 몸이 따라가는' 성도일 뿐인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아름답고 멋진 집에 살고 싶어는 하지만 그게 저절로 되지는 않습니다.
돈을 들여서 고치고 증축하든지 혹은 손수 할 수 있는 작업이라면 스스로 시간을 내어서 꾸며야 됩니다.
그리고 그처럼 자신의 돈이나 노력을 동원해서 더 아름답게 새로 단장한 집일수록 더욱 정이 가게 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교인에게 어떻게 이 교회가 사랑스럽게 여겨질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교회는 여러분이 이 교회를 위해서 정성껏 헌금을 드리고 또한 자신의 달란트를 활용하여 섬겨야만 더욱 '아름다운 여호와의 집'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이 교회를 두고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자랑스러움과 사랑'은 여러분 자신이 이 교회를 위하여 흘린 땀과 눈물, 바친 희생과 충성에 정확하게 비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경향교회가 이런 영광스러운 교회가 된 것도 수많은 성도들의 눈물과 땀이 그 이면에 젖어 있는 것이며 또한 그런 희생적인 봉사와 충성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신 기적들이 연이어진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진짜로 복 받은 교회는 정말이지 '은혜 받고 성령 충만한' 성도들만이 지을 수가 있으며 더 아름답게 세워나갈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여러분이 '섬기는 만큼 더 아름답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를 섬기는 '노하우'는 딱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즐거이 바치는 자'와 '성령의 지혜로써 충성되이 일하는 자'를 사랑하시며 교회는 바로 그처럼 섬기는 일꾼들만 필요로 할 뿐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명하시는 선한 일을 위해서라면 항상 기쁘게 물질을 바치는 '마음에 원하는 자'와 교회를 통해 맡기신 모든 직분과 사명에 겸손히 몸을 바치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로서 이 영광스러운 '주님의 몸 되신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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