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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 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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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 7:13~14)
   

하나님의 은혜와 교회의 따뜻한 배려로 2차 안식년을 가질 수 있었음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금번 안식년에 제가 둘러본 나라는 일본과 뉴질랜드 그리고 호주 세 나라였습니다. 일본을 택한 이유는 가장 가까운 나라인데, 그동안 한 번도 가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가 하면, 도꾜와 교또를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도꾜는 일본의 수도 東京이고, 교또는 동경으로부터 500km 이상 떨어진 京都인것을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항상 듣기로는 일본에 비하여 우리나라가 30년 뒤떨어졌느니 20년 뒤떨어졌느니 하는 말들이어서 열등감이 컸는데, 금번 일본에 다녀오면서 그러한 열등감을 깨끗이 떨쳐버릴 수가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 증거로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한 면세점에 안내를 받았는데, 종업원들이 권하는 상품이 고작해야 건강식품이나 화장품 정도이니 그만하면 짐작해볼만 하지 않습니까? 

한편으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일예를 들면, 일본의 교또 인구가 150만인데, 그 도시에 神祠 400을 포함하여 절이 2000 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 광주의 140만 인구, 1300 교회에 비하여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일본은 800만 귀신을 섬기는 나라로 이미 알려져 있는데, 금번 일본 방문을 통해서 저들이 얼마나 우상숭배에 찌든 민족인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뉴질랜드를 택한 이유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해서, 하나님의 가장 탁월한 피조 세계를 꼭 한 번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뉴질랜드는 스위스처럼 아름다운 나라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여기 사진은 남섬에서도 가장 뛰어난 절경으로 알려져 있는 ‘밀포드’라는 곳입니다.(사진-0273) 그리고 이 사진은 뉴질랜드의 널따란 초원이고,(사진-0150) 이 사진은 세계 3대 미항으로 알려져 있는 호주의 ‘시드니’항 모습입니다.(사진-0423) 그런데 여러분, 뉴질랜드의 그 절경이라는 ‘밀포드’도 돌아오는 길에는 그만 심상해져서 사람들이 잠을 자고요. 

그리고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네.”라고 노래한 그런 초원도, 실상은 양과 소의 똥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거기다가 또 하루에도 날씨가 얼마나 변덕이 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뉴질랜드도 호주도 결코 낙원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소망하는 하늘나라가 어찌 지상낙원이라고 하는 뉴질랜드에다 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불가능한 그 아름답고 찬란한 하늘나라를 소망하면서 신앙생활에 계속 정진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지드’의 작품 가운데 ‘좁은 문’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아마 제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쓰인 순정 소설 가운데, 가장 감명 깊은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제목이 바로 오늘 봉독한 본문 가운데서 택한 것인데, 여주인공 ‘알릿사’라는 소녀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보띠에’ 목사의 설교에 깊은 감동을 받아서, 세상의 향락을 멀리하고, 외롭고 쓸쓸하긴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결한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철학자 ‘키엘케에골’은 인생을 가리켜서 “불안이라는 기차를 타고, 절망이라는 터널을 지나,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이르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사람은 두 가지 ‘기’를 가지고 산다고 하는 얘길 들었습니다. 곧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것입니다. ‘기’라는 글자를 ‘氣’라는 의미로 해석할 때에는, 생존 경쟁에 악착스런 현대인을 뜻하고, Flag 곧 깃발로 해석할 때에는, 살 깃발을 들고 생명의 길을 달려가는 사람과, 죽을 깃발을 들고 멸망의 길을 달려가는 사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는 너무도 대조적인 두 가지 말들이 있습니다. 곧 <좁은 문과 넓은 문>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좁은 길과 넓은 길>이라고 하는 말들입니다. 

우리들의 인생행로에는 여러 갈래 많은 길이 있습니다. 오솔길, 골목길, 사람이 다니는 인도, 차량이 다니는 차도, 순환도로, 고속도로, 철도, 배가 다니는 길, 비행기가 다니는 항공로, 인공위성이 다니는 궤도가 있으며, 달과 지구도 궤도가 있어 달은 지구를, 지구는 태양을 돌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는 가르침의 길도 많습니다. 

공맹의 길이라 하여 유교가 있고, 부처님의 길이라 하여 불교가 있는가하면, 코란경의 가르침을 따라 모하멧을 섬기는 이슬람교가 있고, 인도에는 소를 신으로 섬기는 힌두교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따르는 철학의 길도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와 철학의 가르침이 있어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정신적이고 영적인 길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또 우리 학생들 같으면 법학을 전공해서 판. 검사로 나가는 길도 있고, 의학을 전공해서 의사로 나가는 길도 있고, 군인으로 가는 길도 있고, 정치 방면으로, 혹은 상업 방면으로 나가는 길도 있을 것입니다. 길이 하나뿐이라면 망설일 필요도 없고, 방황할 필요도 없을 것이나, 많은 길이 있어서 때로는 그 선택하는 일에 몹시 힘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길만 있을 뿐입니다. 

소월의 시에 ‘길’이라고 하는 다음과 같은 시가 있습니다. 어제도 하룻밤 나그네 길에/까마귀 까악 까악 울며 세웠소/오늘은 또 몇 십리 어디로 갈까/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여보소 공중의 저 기러기/공중에 길이 있어 잘 가는가/열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갈래갈래 갈린 길이라도/내가 바이 갈 길은 하나도 없소. 갈래갈래 갈린 많은 길 때문에, 어느 곳으로 가야 할 줄을 몰랐던 그도, 결국은 어느 한 길로 가버리고 지금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가리켜 ‘나그네와 행인’같은 인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한 자리에 언제까지 계속하여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쉼 없이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길이 퍽이나 많은 것 같지만, 사실 인간이 가고 있는 길은 두 길 밖에 없습니다. 곧 생명으로 통하는 좁은 문, 좁은 길이 있고, 멸망으로 통하는 넓은 문, 넓은 길이 있습니다. 

천국을 싫어할 사람, 영생복락을 싫어할 사람이 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습니까? 살인강도에게 물어보고, 김정일이에게 물어보십시오. 만일 내세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누구나 다 천국을 원하고 영생복락을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천국을 원하고 영생복락을 원한다면, 왜 그 길을 찾는 사람이 적을까요? 오직 한 가지 이유가 있는데,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싫어하고, 그래서 기피합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어떠합니까? 

1. 문이 좁습니다. 

1)그 때문에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머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겸손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머리를 쳐들고서, 교만한 자세로는 절대로 들어갈 없습니다. 성지순례를 할 때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님의 탄생 교회의 작고 좁은 문을 보고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사진-탄생교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려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이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겸손하게 의지해야 합니다. 무슨 남 못할 일 안 시켰다느니, 법 없어도 살 사람이니 하면서, 자기의 義를 믿는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들어갈 수가 없는 문입니다. 

2)통과하기가 불편합니다. 그러므로 거추장스런 죄 짐을 벗어 던져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천국은 죄의 침범, 마귀의 침범이 결코 허용되지 않습니다. 검문소의 검문검색에도 불구하고 범인이나 간첩이 얼마든지 몰래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도 죄가 침범하고, 죄인이 몰래 끼어 들 수 있다면, 그곳을 어찌 천국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바윗덩어리와 같은 죄 짐,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위험천만한 죄를 가지고는 그 누구도 통과할 수 없고, 또 허용되지도 않습니다. 오직 예수 믿고 죄 문제 해결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2. 길이 협착합니다. 

1)그 때문에 걸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푸른 잔디밭과 같이 부드러운 길이 아닙니다. 곳곳에 땅가시 같은 가시가 널려있는 험한 길입니다. 무서운 핍박이 있는가 하면, 견딜 수 없는 조롱도 있습니다. 때로는 사랑의 채찍도 있고, 아픈 징계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각오해야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2)좌우로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마치 등에다 화약을 지고서 불꽃이 널름거리는 좁은 통로를 지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한 눈 팔고, 세상을 바라보고, 기웃거리며 갈 수 없습니다. 똑 바로 앞만을 바라보고, 십자가만을 바라보고, 하늘나라만을 바라보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걸어가야 합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는 자유주의와 같은 좌로 치우치지 않고, 신비주의와 같은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오직 성경 말씀에만 기초한 정통 보수 신앙의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3. 찾는 이가 적습니다. 

1)그 때문에 길 가기가 고독합니다. 인간은 군중 속에서도 고독을 느낀다고 하지만, 믿음으로 참되게 살려면 정말로 고독할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울면서 흐느끼면서 주님과만 동행해야 하는 고독한 길입니다. 

2)친구들이 많지 않습니다. 참 신자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입을 삐쭉거리면서 이리 저리 따돌림 당하게 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편에서라도 멀리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기를,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길이니 우리는 반드시 그 길로 가야만 합니다. 

그러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어떠합니까? 

1. 문이 큽니다. 

1)그 때문에 들어가기가 쉽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하도 커서 어중이떠중이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고, 힘쓰고 애쓰지 않아도 누구나 저절로 다 들어갈 수 있습니다. 

2)통과하기 쉽습니다. 이 문은 검문검색도 없습니다. 그래서 도적도, 깡패도, 노름꾼도, 술꾼도, 간첩도, 살인마도 쓱쓱 다 통과할 수 있는 문입니다. 

2. 길이 넓습니다. 

1)그래서 걸어가기가 쉽습니다. 조금도 힘들지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짓 뭐든지 자유자재로 하면서 갈수 있는 길입니다. 요즘 천주교가 왜 그렇게 급성장 하는지 아십니까? 천주교에서는 술 먹지 말라. 담배 피우지 말라. 제사 지내지 말라. 금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아주 넓기 때문에 주일을 지켜라. 죄짓지 말라. 의롭게 살아라. 순결하게 살아라 하는 명령들을 다 무시하며 살아도 얼마든지 쉽게 걸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3.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습니다. 

1)세상 친구가 많습니다. 술친구, 노름 친구, 사업 친구, 직장 친구, 동창 친구, 계 친구, 남편 친구, 아내 친구, 이성 친구 등등 많고도 많습니다. 

2)고독하지 않습니다. 세상사는 재미가 있고, 쾌락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처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 문이 넓고, 그 길이 또한 넓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넓고 쉽고 편하고 재미있는 길을 택하여 구름 떼처럼 몰려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라.” 제가 시골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을 때 목격했던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 가정 문서 선교회에서 어려운 시골 교회에 전도지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복도를 사이에 두고, 한편에는 가정 문서 선교회가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탁주 도매 협회가 있어서, 막걸리 통을 실은 수많은 자전거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기이하게 생각되는 대조적인 광경이었습니다.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피부 빛깔, 옷차림, 생김새 모두가 거의 비슷하지만, 너무너무 대조적이었습니다. 그 하는 일들이 대조적이고, 미치는 영향이며, 거두어들이는 결과가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가정 문서 선교회에서 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회개케 하고, 영혼을 살리고, 그래서 구원을 얻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탁주 도매 협회에서 하는 일은, 사람으로 하여금 취하게 하고, 병들게 하고, 가정을 파탄시키고, 죄짓게 하고, 망하고 죽게 하는 일이 아닙니까? 

죤 F. 케네디 대통령 가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막내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며칠 전 세상을 떠났지요? 케네디의 아버지 죠셉 케네디는 양조장을 경영해서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후에 아들 하나는 중풍이 들고, 또 한 아들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고, 케네디와 동생 로버트 케네디는 모두 암살을 당하였습니다. 그때 죠셉 케네디는 가슴을 치며 “내가 수 십 년간 술을 만들어 많은 가정을 파괴했더니, 이제 와서 그 보응을 받았노라”고 하면서 후회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도 이와 흡사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생김새가 비슷하고, 꼭 같이 땅에 발을 딛고 살고, 꼭 같이 하루 세끼 밥 먹고 사는 것 같지만, 꼭 같은 신자인 것 같고, 꼭 같이 교회에 다니는 것 같지만, 분명히 한 사람은 생명의 길을 가고 있고, 한 사람은 멸망의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공처가에 대한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처가인 어느 사장이 남들도 공처가인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사원들에게 “마누라가 무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 내 편으로 모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저 쪽으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사원 전원이 사장 편으로 몰려왔는데, 신통하게도 한 명만이 저쪽에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장이 “자네는 정말 마누라가 무섭지 않나?” 하고 물으니까, 이렇게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오늘 아침 출근할 때 집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이 많이 모인 데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만의 다른 쪽을 택했습니다.” 

이 공처가의 아내와 비슷한 말씀을 예수님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밀려가는 넓은 길로는 가지 말라. 사람들이 너도나도 밀려가는 넓은 문으로도 들어가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요, 파멸의 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왜냐하면 좁은 문은 비록 찾는 이가 적지만, 그 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기 때문이다.” ♪1)세상에는 두 길이 있네/넓은 길 좁은 길/넓은 길은 평탄하지만/그 길은 멸망의 길/어떤 길로 갈까/어떤 길로 갈까/좁은 길로 가면/예수님 만나리. 2)세상에는 두 길이 있네/넓은 길 좁은 길/좁은 길은 험난하지만/그 길은 구원의 길/어떤 길로 갈까/어떤 길로 갈까/좁은 길로 가면/예수님 만나리 

오늘 우리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길을 가는데, 어느 교회의 주일 학생들이 “할아버지 예수 믿으세요.”라고 전도했습니다. 불신자였던 교장 선생은 “필요 없다. 너희들이나 잘 믿어라”고 했더니, 그 꼬마들이 “할아버지! 그 길로 계속 가다간 지옥으로 퐁당”하고 달아났습니다. 꼬마들하고 헤어진 교장 선생님에게 “할아버지, 그 길로 계속 가다간 지옥으로 퐁당!” 하는 말이 귀에 쟁쟁하였습니다. 

밥을 먹으려고 해도 “할아버지, 그 길로 계속 가다간 지옥으로 퐁당!” 잠을 자려고 해도 “할아버지 그 길로 계속 가다간 지옥으로 퐁당!” 하는 말이 계속 들려서 결국 예수님을 믿었다고 합니다. 혹 우리 가운데도 아직 까지 마음 중심에 예수를 믿지 않고 끝까지 계속 그 길로 가다가, 필경에는 지옥으로 퐁당 빠지고 말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참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권면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후손이 영원히 살기 위하여, 비록 문이 좁고 길이 협착하여, 비록 찾는 이가 적더라도, 반드시 생명의 길이신 예수님을 택하고, 생명의 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저 영화로운 나라에 다 들어가는 복되고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생명의 길이 되시고, 생명의 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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