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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긍정적인 삶 (민 13:1~2, 17~20, 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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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삶 (민 13:1~2, 17~20, 25~31)
  

시작하는 말

오늘의 본문 말씀은 가나안 정탐꾼이야기입니다. 그 내막은 이렇습니다. 오래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고통을 받던 이스라엘 백성을 측은히 여기신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 그들을 구해 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도에 따라 애굽땅에서 나와 광야에서 한 동안 고생하다가 드디어 약속의 땅 가나안 근처에 도달합니다. 하나님의 명에 따라 모세는 열 두 지파에 각각 한 사람씩 12명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그 땅에 사는 백성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 그 땅이 좋은지 나쁜지, 토지는 기름진지 메마른지 살펴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40일만에 12명의 정탐꾼이 돌아왔습니다. 모세 앞에 나와서 보고를 하는데,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곳이라는 점에서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으로 진출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정복이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땅의 백성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 땅 백성은 두려월할 것이 아니라고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똑같이 가서 똑같이 보고 왔건만,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종류의 사람, 두 종류의 생각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희망적인 사람, 다른 하나는 절망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는 긍정적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면 삶에 있어서는 어떤 생각과 태도가 바람직한 것일까요? 물론 희망적이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물에 대하여, 타인에 대하여, 자신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안될꺼야. 힘들꺼야, 어림없어, 불가능해, 이런 생각을 자주 갖습니다. 틀렸어, 망했어, 희망없어, 이런 결론을 자주 내립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이고 절망적이고 소극적인 삶의 방식이나 태도가 바람직한 것일까? 

미국에 있는 한 유명한 신발회사에서 아프리카의 어떤 미개한 나라를 상대로 신발 수출계획을 세웠습니다. 회사에서는 일차적인 시장 조사를 위해서 두 조사원을 각각 아프리카로 보냈습니다. 먼저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이 보고했습니다. “그 나라에 신발을 수출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 사람들은 아무도 신발을 신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높은 사람들은 수출계획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같이 조사를 나갔던 또 다른 사람이 도착했습니다. 그 사람은 희망에 부푼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 나라에 신발을 수출한다는 것은 기가 막히게 좋은 생각입니다. 그 곳의 신발시장은 무궁무진합니다. 왜냐하면 그곳 사람들은 아무도 신발을 신고 있지 않게 때문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신발을 신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상품은 날개 돋힌듯 팔릴 것입니다.” 회사의 높은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큰 박수로 그 사람을 칭찬했습니다. 물론 절망적인 보고를 했던 직원은 얼마 못가 짤렸고, 희망적인 보고를 했던 직원은 승진하며 아프리카 현지 사장이 되었으며, 그 신발회사는 크게 성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맨발 벗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똑같이 본 두사람인데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한 사람은 절망을 보았고, 다른 사람은 희망을 본 것입니다. 절망은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희망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을 되게 하는 것,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입니다. 장미에서 가시만 보는 사람에게 장미는 가시나무에 불과하지만, 장미의 꽃을 보는 사람에게 장미는 꽃의 여왕일 수 있는 것입니다. 

매사에 있어서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삶은 믿음에서 유래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돌보심, 하나님의 지켜주심,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몸 말

민수기 14장에는 한심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세의 명에 따라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보고를 한 10명의 정탐꾼들의 얘기를 들은 백성은 아우성치고 통곡하고 모세를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노예생활을 하던 애굽으로 차라리 되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 본 그 땅은 매우 좋은 땅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그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그러나 회중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강대한 나라 애굽에서 구해내시고, 바로왕의 추격을 물리치시고,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주신 위대하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불신에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입구까지 왔다가 거기 들어가지 못하고 40년간을 광야에서 헤매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애굽에서 나온 자들 가운데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사고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그들도 가나안 사람들이 장대하고 힘이 세며, 성읍이 견고하다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 두려움의 힘보다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힘이 더 강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었기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강하고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니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따라서 불안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좌절하고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어쩔수 없다. 어쩔수 없다 하는 사람은 나도 어쩔 수 없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복, 상황을 절망적으로만 보는 사람, 그에게 행복이란, 기쁨이란, 만족이란 영원히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불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긍정적으로 사물을 보며, 매사에 있어 희망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롬 8:37-39)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 분을 힘잉ㅂ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어둡게, 비관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시니 어떤 경우라도 긍정적으로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탄이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하는 작업은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고 의식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태양을 마주 보면 그림자는 뒤에 숨어버립니다. 그러나 태양을 등지면 내 앞에 그림자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근심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광명과 희망이 보이지만, 하나님을 등지면 우리 앞에는 항상 그림자와 절망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삶은 즐겁고 보람되고 희망이 넘치는 것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은총을 믿는 사람에게는 승리와 축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긍정적인 삶을 살아야 할까? 

첫째,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참으로 시련과 고통을 많이 겪은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00회가 넘는 외족의 침략을 당했고, 일제의 끔찍한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남북이 분단되었고, 6.25전쟁을 겪으며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땅은 좁고, 자원도 없고,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힘겹게 생존해 왔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맞대고 있고 국민끼리 갈라지고 싸우고 반목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행하고 불쌍하기도 한 민족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도 어둡고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몇가지 통계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도시 생계비와 아파트 임대료 세계 3위, 부패지수 세계 40위, 국가 만족도 및 경제 만족도 47개국 가운데 최하위권, 자살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국 중 1위, 교통사고 사망률 OECD국가 중 3위, 나라별 행복지수 102위, 삶의 만족도 OECD국가 중 최하위 권, 인구 100만명당 사기사건 일본의 7배, 중산층 10년 전보다 10% 감소, 상휘 10%의 평균 소득이 하위 10%의 45배로 빈부격차 심화, 한국 면적의 100배인 캐나다를 두 번 사고도 남을 한국 땅값 등 끝이 없습니다. 

그러면 정말 한국 역사는 일부 좌파가 주장하듯 ‘정의가 패배한 부끄러운 역사’일까?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우리의 역사는 기적의 연속이었고, 우리 민족은 그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그렇게 당하고도 망하지 않았고, 북한의 침략에도 공산화 되지 않았습니다. 가진건 인적 자원뿐인데, 오늘 우리나라가 이토록 잘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이 안됩니다. 

2차대전 후 지구상에 수많은 신생국가가 출현했지만,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미국 언어학자 노만 홉스키도 MIT에서 행한 강연에서 ‘지구상에서 바람직한 발전의 모델을 이룬 나라는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이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놀라운 발전을 이루어낸 한국, 한국인의 모습을 통계로 알아보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60년 80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2만달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GDP 국내 총생산은 1972년 100억 달러였는데, 이제는 1조 달러를 넘어서 세계 14위입니다. 이는 아프리카 53개국 GDP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것입니다. 한국의 수출액은 4천억 달러에 달하고 있는데, 이것은 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 34개국 수출액 전체보다도 많은 것입니다. 아프리카 경제 대국인 알제리의GDPsms 삼성 그룹 1년 매출액의 65%, 나이지리아의 GDP는 LG그룹의 1년 매출액보다 적습니다. 삼성의 매출액은 세계 36위 국가 수준입니다. LG는 세계 48위 국가, 현대자동차는 세계 51위 국가, SK는 세계 55위 국가 수준입니다. 

TV,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휴대전화는 삼성과 LG제품이 세계 최고입니다. 삼성전자 TV는 3년째 세계 1위, LG전자 에어컨은 10년째 세계 1위입니다. 조선업은 세계 1위에서 6위까지를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선박과 스틸렌 수출액이 세계 1위, 인조섬유 수출은 세계 2위입니다. 교육투자비율 세계 1위,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95%로 세계 1위,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 전자, 조선 제철, 자동차 산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비스도 세계 1위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것, 교통카드 하나로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택시도 타고 환승도 되는 것은 우리나라뿐이라 외국인들은 이것이 마냥 신기하다고 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집으로 배달해 주는 나라도 우리나라뿐, TV, 냉장고, 자장면, 피자, 족발, 보쌈, 치킨 할 것없이 다 배달 과연 배달민족입니다. 

아파트에서는 밖에 나오지 않고 세탁할 수 있고, 안방에서 인터넷으로 주민등록 등본을 뗄수도 있고, 전화 한 통화로 24시간 콜 센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나라, 산 속에서도 지하에서도 휴대폰이 터지는 나라, 신용카드 하나로 10초만에 모든 결재, 이체가 가능한 나라, 알고보니 세상에서 제일 편리하게 사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대한민국, 대단한 나라입니다. 우리 민족, 대단한 민족입니다. 실수는 있었지만 실패하지는 않았습니다. 부끄러움이 있었지만, 자랑거리도 많은 나라입니다. 빈곤의 악순환을 끊었습니다. 군사 독재정권을 끝냈습니다. 절망과 위기에 대한 대처능력도 있습니다. 1997년 IMF 때는 금모으기 운동까지 하며 그 위기를 이겨냈습니다. 지난해 서해 선박사고로 기름이 유출되었을 때는 130만 명이 몰려와서 기름때를 닦아냈습니다. 

작년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 불황 가운데 한국이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국내외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통신사 블룸버그의 칼럼니스트 윌리엄페식은 얼마전 칼럼에서 “한국은 긴 침체 후 회복이 아니라 급반등 회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 경제의 빠른 회복세가 아시아 경제 회복의 기대를 늘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에 모자를 벗어 경외를 표한다.”고 썼습니다. 물론 문제도 있습니다. 

정치 수준이 낮고, 바르고 착하게 사는 도덕성 수준도 낮으며, 법과 질서도 잘 안지켜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살기보다는 다투고 싸우기를 좋아하며 북한의 전쟁 위협이 항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나라 상황의 좋은 점, 긍정적인 점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커다란 축복을 내리셨는가 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북한과 대치하며 항상 위협이 도사리고 있지만, 북한이 쉽게 넘보지 못하는 5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는 거리에 총알택시가 너무 많습니다. 또한 골목마다 대포집이 너무 많습니다. 어느 곳은 왕대포집도 있습니다. 그리고 길가에 부대찌개가 많이 있고, 술집에는 폭탄주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가정이 핵가족으로 무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천만명의 기독교인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어련히 지켜주지 않으실까? 우리는 우리 국가와 민족, 사회와 경제 상황을 이제는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 잘될 것이라고, 왜냐하면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선함도 악용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악함까지도 선하게 이용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모든 환경, 상황, 형편은 결국 하나님의 은총가운데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우리의 상황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긍정적인 삶의 방식은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대개 다른 사람에게서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기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발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의 좋은 점을 말하기보다는 나쁜 점을 말하기 좋아합니다. 남을 칭찬하기보다는 험담하기를 좋아합니다. 

시인 고진하의 명상 에세이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공원에 별로 할 일 없는 노인이 매일 나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노인은 앉아서 뭐든지 수를 헤아리기를 좋아했다. 공원에 나온 사람 수, 나무 수, 꽃의 수도 헤아렸다. 하루는 10개월쯤 된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30대 초반의 남자 하나가 노인의 눈에 들어 왔다. 그는 어린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쳤다. 그러나 아이는 아직 다리에 힘이 없어 자주 넘어지곤 했다. 

이 때마다 그 사람은 말했다. ‘아가야 넌 할 수 있어. 다시 한번 걸어 보렴.’ 이렇게 한시간 이상을 했다. 그러다가 자기를 복 있는 노인에게 말했다. ‘보셨어요? 도와주지 않았는데도 제 아이는 세 걸음이나 걸었다구요.’ 노인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런데 내가 보니 그 애는 오늘 마흔 여덟 번이나 넘어지더군.’사내는 놀란 눈치였다. ‘그걸 세셨군요. 저는 넘어지는 것은 몰랐는데.’ 아이 아빠는 아이가 걸은 걸음수를 세고 있었고, 노인은 아이가 넘어진 횟수를 세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어떤 모습을 헤아리고 있는가? 다른 사람이 실패한 횟수를 세고 있는가? 성공한 회수를 세고 있는가? 잘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가, 잘못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가? 잘난 점을 얘기해 주는가, 못난 점을 얘기해 주는가?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다. 좋은점, 나쁜점이 있다. 

잘하는 일, 못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에게 약점, 단점, 문제점을 주로 보는 경향이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그러면 그렇지, 아니면 달라, 역시 그렇군 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지는 않는가? 남이 실수하는 것 고소해하고, 남이 실패하는 것 은근히 즐기고, 남에게 문제 생기는 것 은근히 좋아하지는 않는가?”

타인을 긍정적으로 보아주는 것은 나의 삶도 풍족하게 만듭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다른 사람을 좋아보이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반에서 10등 쯤 했다고 치면, 10등 밖에 못했다고 생각하는 부모에게 그 아이는 못마땅하기 짝이 없습니다. 누굴 닮아 공부를 그것밖에 못하나, 왜 다른 애들처럼 열심히 하지 않나, 저 아이는 머리가 안 좋은가, 공부 방법이 틀렸나, 딴 생각을 하고 있나, 등등의 생각이 나기 시작하면 밉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10등씩이나 했다고 생각하는 부모에게 그 아이는 대견하기까지 합니다. 

부모보다 나은 애, 뒷바라지도 못했는데 신통한 애, 쟤가 머리는 있나봐, 열심히 노력했나봐 등등의 생각이 나기 시작하면 아주 예뻐보입니다. 똑같은 성적이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칭찬을 하든지 구박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칭찬하면 더 잘할 가능성이 월등히 높지만, 구박을 하면 반항하거나 포기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을 긍정적으로 보면 미움도 사라집니다. 미움이란 딴 사람의 부정적인 면만을 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약점이 많고 부족한 사람이라도 찾아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찾아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면 사랑할 이유가 생깁니다. 주변에 보면 자기 남편이나 아내를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됩니다. 이때 거의 틀림없는 사실은 그들이 남편이나 아내의 약점만을 생각하고 단점만을 불평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번 찾아보십시오. 상대방의 장점, 긍정적인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바로 이점을 칭찬하고, 이것에 감사를 표해보십시오. 싸울 일, 싫어할 일이 생겨날까요? 모든 사람이 장점과 단점의 양면성을 가지고 잇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보며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그가 미워지고 싫어집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를 긍정적으로 보게 되면 그가 좋아지고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높은 벼슬을 했던 관중이란 사람과 포숙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절친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관중은 가난하여 자주 포숙을 속였지만 포숙은 변함없이 그를 친구로 대해 주었습니다. 이에 관중이 말했습니다. “일찍이 내가 가난할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몫을 더 많이 가졌지만, 포숙은 나를 욕심 많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언젠가는 내가 어떤 일을 하다가 실패해 매우 어렵게 되었는데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일이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세 번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임금에게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지만,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전쟁에서 세 번을 싸워 세 번 모두 패하여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으신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주는 이는 포숙이다.” 포숙은 관중의 좋은 점만 보며, 그의 약점까지도 좋게 이해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관중과 포숙의 우정을 빗대어, 둘도 없는 친구사이의 우정을 ‘관포지교’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긍정적인 생각은 사람을 다시 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생각은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가족, 친구, 친척, 이웃의 좋은 점을 장점을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칭찬하고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바라보십시오. 사랑스러운 관계, 돈독한 우애가 생겨날 것입니다. 

셋째로, 긍정적인 삶의 태도는 나 자신에게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에게서는 행복과 행운을 보려고 하고, 나에게서는 불행과 불운을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왜이래, 아이구 내 팔자야, 웬 복에, 그러면 그렇지 라는 따위의 말을 자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평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는 좋은 것을 모두 주시고, 다른 사람에게는 나쁜 것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문제 없는집, 걱정없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돈이 많으면 자식들이 불화하고, 출세하고 나면 건강이 나빠지고, 권세를 잡으면 비난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업이 잘되면 친구들과 틀어지고, 부부가 화목하면 자식들이 속썩이고, 자녀가 똑똑하면 집안이 가난한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A라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부유함, B라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출세, C라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자녀의 복, D라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건강 등을 모두 버무려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윤택하고 잘나가고 화목하고 건강하고 자손 복이 잇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다 잘되는데 나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며 한탄하고 속상해 합니다.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Joel Osteen “Become a Better You”(행복해지세요, 보다 나은 당신이 되세요)에서 객관적으로 보면 부족한 것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자신은 삶이 재미가 없고 의미도 없고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는 어떤 남자가 목사님께 찾아와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 신나게 살아갈 이유가 제게는 없어요. 

사는게 재미없고 짜증나고 불만스러워요. 왜 그럴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목사님의 대답, “그래요? 당신이 얼마나 불행한지 한 번 알아봅시다.” 그러면서 종이를 한 장 꺼내 가운데 줄을 긋고 왼쪽에는 좋은 일, 오른쪽에는 나쁜 일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말을이었다. “이렇게 합시다. 이제부터 당신을 싫증나고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오른쪽에, 당신에게 기쁘고 좋은 일은 왼쪽에 적어 봅시다.” 그 남자 냉소적으로 대답합니다. “좋아요. 아마 왼쪽에 적으 일은 거의 없을거에요.”목사님이 묻습니다. 

“최근에 당신의 아내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참 되었네요.” 남자, “뭐라구요? 내 아내는 죽지 않았어요. 살아 있을 뿐아니라 건강해요.” 목사, “오, 그래요? 좋은 일이네요. 종이 왼쪽에 ‘아내 있고 건강함’이라고 적으세요”이어 목사님이 다시 묻습니다. “당신의 집이 얼마전 불 났다고 하던데 참 안되었네요.” 남자,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에요? 우리 집은 불 안났어요. 난 멋있는 집을 가지고 있다구요.” 목사, “오, 그래요? 종이 왼쪽에 ‘좋은 집을 가지고 있음’이라고 적으세요.” 그 다음에 “당신이 직장을 잃어 쫓겨났다는 얘기가 있던데 참 안되었네요.

” 남자, “도대체, 누가 그 따위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까? 나는 괜찮은 직장을 가지고 있어요.” 목사, “오, 그래요? 종이 왼쪽에 ‘좋은 직장 있음’이라고 적으세요.”그러자 이 남자는 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로부터 기록하는 종이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건네 받은 그 남자는 종이 왼쪽에 수십가지 사항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목사님과 헤어졌습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 남자의 생각, 태도가 달라진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긍정적으로 보니, 감사한 일, 만족할 일이 수없이 많았던 것입니다. 다만 깨닫지 못했을 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나는 결코 실패작이 아닙니다. 나는 결코 부족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합당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찾아보면 자신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이 얼마나 크고 많은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만한 가족, 이만한 살림살이, 이만한 친구와 친척, 이만한 여유, 이만한 환경과 조건, 긍정적으로 보면 감사할 일 아닐까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 행복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나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 불행하게 살 것입니다. 나의 삶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는 사람은 스스로 축복받은 삶을 누릴 수 있지만, 자신에게서 감사의 조건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불만과 좌절 가운데 살아갈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얼마나 더 필요합니까? 긍정적으로 우리의 삶을 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내 인생에 충만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긍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보는 사람은 다윗의 고백인 시편 23편을 신앙으로 고백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마무리하는 말

참으로 긍정적인 눈을 가진 사람은 나의 잔이 넘치게 축복해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하는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너스가 있습니다. 의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가진 사람은 심장질환, 폐질환, 당뇨병, 고혈압, 감기 및 기관지염 등과 같은 질환에 걸릴 확률이 낮다고 합니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삶은 자신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건강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삶에 만족하게 만듭니다.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나 태도를 보면, 패배주의, 절망, 불신, 불만, 불안이 팽재해 있습니다. 그 근원은 부정적인 사고, 부정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 대하여, 남들에 대하여, 자신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불안할 이유도 없습니다. 절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여호수아와 갈렙이 하나님께 의지함으로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리고 축복받은 이유입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잇는 사람은 타인과 자신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긍정적으로 살 수 있다 하는 것은 하나님의 크나 큰 축복입니다. 세상만사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모든 것을 그 분께 맡깁시다. 그리항 세상, 다른 사람들의 삶, 그리고 나의 삶 전체를 적극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바라봅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마음의 평화와 삶의 평화를 함께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세상을, 다른 사람들을,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는 눈.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내게 넘치고 있음을 아시고, 긍정적인 삶을 삶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시고,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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