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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도 속에 들어 있는 축복! (고후 13:13, 민 6: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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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祝禱)속에 들어 있는 축복! (고후 13:13, 민 6:22~27) 

 

섹스피어의 단편집 '오펠로'의 이야깁니다. 옛날 시리아에 오펄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소원은 자기 나라 왕을 한번 모셔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가장 큰 절대자!' 말 한마디면 온 나라가 다 그대로 복종하는 왕을 가까이 모셔보는 것이 그 사람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노력해서 오펠로는 왕의 심복이 될 수 있었답니다. 그는 왕을 가까이 하면서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 했습니다. 왕은 이 나라의 신이요 절대자로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있던 왕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왕이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보게 되었답니다. 불안해하고, 긴장하고, 잠을 못 자고, 염려를 하고 불안에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하루는 왕을 모시고 길을 가는데 왕이 마귀에게 눌려 헛소리를 해 대는 것입니다. 오펠로는 크게 실망하고 '내가 모시고 있는 왕보다는 사단이 더 강하고 힘이 있구나!' 생각하고 즉시 그 자리를 떠나서 사단을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단에 사로잡혀 악령에 충만한 일만 골라가며 했습니다. 그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고, 모든 일이 잘 되어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교회 옆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발걸음이 움직여지지 않고 벌벌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순간 무엇을 깨달았겠습니까? 사단보다 더 힘있고 능력 있는 것이 십자가임을 깨닫고, 사단의 길에서 벗어 나와 교회 안에 들어가 주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살게 되었다는 '섹스피어'의 고전 소설의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는 전당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곳을 백악관이라고 합니다. 백악관에 가보면 실망할 정도로 규모가 작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고, 볼 수 있도록 설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에 같다 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세계를 움직이는 대통령이 있는 곳이 어떻게 이렇게 허술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집이 커서 세계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권력으로 다스리기 때문에 집이 작아도 그 안에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세계의 모든 정치, 경제가 거기서 다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우리는 세상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절대자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왔습니다. 교회란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장 큰 일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큰 일은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복을 주십니다. 요4:23절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배란 인간이 하나님께 '사랑과 존경과 경외와 순종과 복종으로 드리는 최고의 가치 있는 행위'입니다. 영어로 예배를 '워-삽'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가치를 돌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히'어의 '카보드'는 '영광을 돌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카보드'란 '무거움'이란 뜻도 있는데, '중심, 심장'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생명 가운데 가장 귀한 곳이 심장입니다. 심장이 없으면 죽습니다. 예배란 인간생명의 가장 귀중한 심장을 드리는 시간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저는 예배의 순서 중에 가장 끝 순서인 축도에 대해서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마치고 축도를 받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 본문으로 읽은 고후13:13절의 내용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신약의 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또 구약 민6:22-27절을 본문으로 읽었는데 이 말씀을 일반적으로 '구약의 축도'라고 합니다. 
  
예배순서의 마지막에 나오는 '축도'라는 순서는 한문으로 '빌 축'자인 祝(축)과 기도라는 禱(도)가 합쳐진 것으로 '복을 비는 기도'입니다. 예배 학에서 축도라는 것은 강복선언으로 구약에서부터 시작된 오랜 역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로 아브라함을 선택한 순간부터 자신이 사랑하고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창12: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축복에 대한 기사로는 처음으로 언급하신 말씀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종들이 복을 비는 시간은 제사장들의 고유 권한 중의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아와 예배하고 돌아가는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복을 내려주라고 제사장(목사)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축도는 예배드리는 시간 중에 지금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시고 있다고 선언하는 예배의 절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축복 권'은 남에게 복을 빌어주는 권리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다른 민족들과 달리, 축복의 말을 사모하고 복 받기를 사모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은 부모로서 자녀에게 축복을 선언하기도 하고, 랍비나 제사장에게 축복의 말씀을 듣기도 하는데, 성경에는 축복 권에 대한 말씀이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32:26절에 야곱이 하나님께 축복 받기 원하여, 밤새 씨름했던 천사가 떠나려고 하자 그 천사를 붙들고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하며 끈질기게 간구했습니다. 결국 천사가 축복을 하자, 야곱은 그 축복의 말을 듣고 천사를 가게 했습니다. 야곱은 하늘의 복을 그렇게 탐냈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축복을 받기 위해 끈질기게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소개!▶ 

예배 순서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 찬양, 헌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우리의 찬양이 올라갑니다. 우리의 헌물이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제 하나님께서 내려오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대언 자를 통하여 말씀을 주십니다. 오늘 설교가 그런 형태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축복이 내려옵니다. 예배 맨 끝 부분의 축도를 통하여 축복이 내려옵니다. 
  
모든 순서가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축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모든 예배의 복이 축도에서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믿/ 그러므로 축도가 끝나기 전에 한 사람도 나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큰 교회에 가보면 설교가 끝나기도 전에 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배를 헛 드린 것입니다. 
  
지금은 원로이신 이만신 목사님이 군산에서 목회를 하실 때, 군산 비행장 옆에서 했다고 합니다. 6.25 사변 후라 목사님들이 부족할 때인데 예배가 끝날 때가 되면 미 8군 비행장에 근무하는 미군들이 목사님의 축도를 받으려고 이만신 목사님의 교회까지 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군부대 내에서 예배를 드리고 축도를 받으러 차를 타고 몰려왔다고 합니다. 그만큼 미국 사람들은 축도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1. 구약의 축도 속에 축복 형식의 특징이 나옵니다(민6:22-27). 

 ①'여호와'라는 명칭이 세 번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 번씩이나 사용한 것은 축복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증하기 위한 강조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안에 성 삼위 하나님이 계심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②축복의 대상은 2인칭 '너'입니다. 즉 나를 가리킵니다. 사실은 우리 각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③복의 의지가 강하십니다. '원하고, 원하고,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잘하여 주려는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107:9절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④복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복 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산과 바다에 가서 나무 또는 돌로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고 복을 빌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상이 복을 줄 수 있는가? 없습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합니다. 
  
여기에서 '복'은 히브리어 '바라크'로, 하나님의 축복에서 오는 행복한 인간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축복뿐만 아니라 성공, 번영, 풍요, 건강, 장수, 자손, 그리고 힘과 지혜를 포함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롬15:29절에도 보면 사도 바울이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를 방문하기에 앞서 축복 권을 가지고 그의 성도들에게 갈 것이라고 편지한 것입니다. 
  
⑤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셔야 합니다(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완전합니다. 시127:1절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즉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절대적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안전하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도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121:4)고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보호하여 주시기만 하면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시91:7) 간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눈동자 같이 지켜 주셨다고(신32:10) 표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에 올라가면서 노래했다는 시121편을 보면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고 노래했습니다. 
  
본문에서 '지킨다'는 말은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의 보호뿐 아니라 가난과 재앙과 각종 질병과 전쟁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합니다. 가시로 담장을 친다는 말은 어떤 대적도 막아주신다는 철저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화염검으로 지키십니다. 
  
우리가 애국가를 늘 부릅니다만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니면 안전할 수 없음을 실감합니다. 
  
또 '지켜주신다'는 말씀 속에는 우리에게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미숙하고, 죄를 짓기 쉬우며,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하며 완전하신 보호자이십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지키심을 받는 것도 큰복입니다. 재산이 줄어들지 않게 지켜주시고, 건강하게 지켜주시고, 가정과 직장과 나라를 지켜주시고, 전쟁과 위험에서 안전하게 해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지켜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사나운 짐승에게서 보호하시고 적군에게서 보호하신 것같이, '하나님이여 이 나라와 이 민족도 지키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신32:10절에서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다"고 했습니다. 
  
시험 당하지 않도록, 병들지 않도록, 저주받지 않도록, 마귀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늘 지키고 보호해 주셔야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위를 세 번이나 수술한 남자가 링거를 맞고 누워서 아픔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그를 간호하다가 그만 졸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졸아도 링거가 잘못되어서 남편은 아픔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보, 제발 잠 좀 졸지 말고, 날 좀 잘 지켜 줘'라고 했습니다. 
  
시121:4절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그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⑥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 합니다(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기 '얼굴로 네게 비취사'라는 말은 '자비를 베푸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어느 한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얼굴'이란 표현은 그분의 성품과 전인격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가리거나 감춘다는 것은 인간 편에서는 절망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진리의 광채로 비추어주신다고 하는 것은 생명이요, 구원입니다. /할/
  
우리 하나님은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고 있습니다. 엡2:4-5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은혜'는 히브리어로 '하난'인데, 이것은 '사랑과 호의, 불쌍히 여기고, 동정과 자비를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은 죄악으로 죽을 수밖에 없고 저주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대가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시103:8절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풀기를 원하시는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베풀기 원하는 것에 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고 당하고 위험 당하고 가난과 질병, 저주 가운데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죄 값으로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행복하게 잘살고, 풍족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며, 은혜로우시며, 인자가 풍부하신 분이십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 미술가였던 '미켈란젤로'에게 한 제자가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예술은 영원하다고 했으니 최대의 예술가이신 선생님의 이름이야말로 영원히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제자의 말에 미켈란젤로는 정색을 하며 '이 사람아,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영원하지 사람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아멘!/
  
세상의 재물, 영화와 권세는 잠시 우리 곁에 머물다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없어졌다가 다시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십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풍족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⑦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평안도 주셔야 합니다(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라는 말은 마치 어머니가 젖 먹는 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빠는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계속하여 지켜보는 모습을 말합니다. 본문에서 '평강'은 '살롬'을 말합니다. 
  
이 '살롬'은 '안전, 행복, 번창, 평안'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고 '기쁨과 생의 환희가 샘솟는 듯한 역동적인 평화'를 의미합니다. 
  
사55:12절의 말씀과 같이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라고 노래하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평강의 복은 인간이 가장 원하는 복일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가 있어도 평강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평강'은 하나님이 임재 하셔서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 완전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평강의 축복이란 '전쟁이 없는 평화, 죄악이 없는 마음의 평안, 분쟁과 갈등과 다툼이 없는 화목한 관계'를 가리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평강의 축복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마음에 평강이 없으면, 아무리 높은 권력을 가졌어도 평화가 없으면, 최고의 인기를 누려도 평화가 없으면 그런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술·담배를 떠나지 못하고, 마약을 떠나지 못하고, 도박을 떠나지 못하고 불안과 두려움, 공포 속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선한 사람에게는 평강이 있지만 악한 사람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 그는 늘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공포 속에 떱니다. 
 
 ▶카놀 산도스씨는 나이 60세 파산을 했습니다. 그는 수백만 달러의 빚을 지고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나이도 먹고, 파산해서 빚도 졌으니 이제 갈 곳은 딱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때 어디에선가 찬송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 걱정 근심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그는 찬송소리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병원의 뒷문을 열고 가보니 조그마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몇 사람이 모여 찬송을 부르고 있었는데, 산도스씨도 조용히 뒷자리에 앉아서 그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교만하여 세상의 돈 명예 권세만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을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여태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평안함을 못 보았습니다. 평안만 온 것이 아니라 기쁨도 왔습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혼자 살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옵소서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그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돈이 좀 모아지자 통닭 집을 운영하였는데, 그것이 맛도 있고 정성을 들이니까 잘 팔려서 전국에 체인점까지 낼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산도스 치킨'의 출발이었습니다. 
  
나이 60세가 넘어서 파산하고 빚 가운데서 자살을 결심한 그에게 하나님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다시 시작했을 때 그는 백만장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과거에는 자기 노력으로, 자기 경험으로 살았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하나님과 더불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동업할 때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적과 축복이 나타날 것입니다. 
  
⑧제사장의 축복 권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성도가 되자!(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제사장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할 때, 그것은 제사장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여받은 하나님의 권위로 축복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축도 권을 통하여 주시는 복은, 첫째 여호와가 복을 주시고, 둘째 지켜주시고, 셋째 은혜를 베푸시고, 넷째 평강을 주십니다. 이복이 머리 숙인 귀한 성도들에게 임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 신약의 축도에서 우리는 축복의 3대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입니다. 차례대로 이 말씀들을 알아보겠습니다. 

①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축복 중에 큰 축복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란 '히'어로 '카리스'이고, '헬'어로는 '헤세드'이며, 영어로는 '그레이스'입니다. 미국 사람들의 이름 중에 그레이스란 이름이 많다고 합니다. ▶은혜가 무엇인가? 은혜란 '거저 준다. 값없이 준다, 용서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란 '자격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은혜란 무엇입니까? '구원의 은혜, 믿음의 은혜 평강의 은혜 생활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구원받은 것에 대하여 크게 실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와 여러분을 구원시키려고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려고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힘이 없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하나님과 만나게 하기 위하여 가난한 우리를 부유하게 하기 위하여 온갖 상처투성이인 우리를 깨끗하고 건강하고 자유롭게 해 주시기 위해 우리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희생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그 십자가를 이렇게 증거 했습니다. 고전1: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구원이란 건져내는 것입니다. 지옥으로 갈 영혼은 천국으로 건져낸 것이 제일 큰 구원의 의미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구원이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구원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지옥이 있고 천국이 있습니다. 성경이 있다고 하면 있는 것입니다. 눅16장에서 보면 부자는 지옥에 갔고, 나사로는 천국에 갔습니다. 
  
그런데 주님 안에서 이 구원은 생활 속에서도 일어납니다. 질병에서 건져주시고, 실패에서, 좌절에서, 낙심에서, 건져주시는 것이 생활 속에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는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가는 은혜인줄 믿습니다. 여러분 구원의 감격 속에 사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주님의 은혜 가운데 큰 은혜는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권세가 어떤 권세냐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보호받는 권세입니다. 부모는 자기 자녀들을 특별히 보호해 주십니다.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특별히 보호받을 특권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특별히 보호해 주십니다. 성경에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하는 말씀이 대단히 많습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권세가 있습니다. 롬8:17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후사란 말은 상속자란 뜻입니다. 그 다음 믿음 안에서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사도바울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심지어 손수건으로 병든 자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의 고백을 보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졌다고 합니다. 고전15:10절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성도의 삶은 은혜를 받아야 되고, 은혜를 주신 분을 만나야 되고 은혜를 가정과 삶 속에서 늘 경험해야 합니다. 갈릴리의 한 어부 베드로가 위대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는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쓰셨던 것은 인간적으로 베드로가 잘 났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그가 크게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그 다음 주님의 은혜 가운데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평안입니다.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평안을 누리고 사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평안이 없는 소유는 축복이 아닙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도 평안이 없다면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은 평안이 없고, 만족이 없고, 늘 불안합니다. 근본 문제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젖 먹는 어린아이가 언제 행복합니까? 어린 어이는 엄마 품에서 젖을 빨 때 가장 행복합니다. 
  
그런데 엄마의 품속을 떠난 어린아이는 어찌할까요? 손가락을 빨고, 종이를 빨고 닥치는 대로 빱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의지할 것이 없어서입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도 그와 같습니다.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나무에도 절하고, 돌에도 절하고, 돼지 머리에도 절을 합니다. 부적도 붙이고 사주팔자, 토정비결도 보고, 무당도 불러 굿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고통만 더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영적인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 받은 자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입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의 은혜 중에 최고의 은혜가 바로 평안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은혜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이 자리가 은혜를 받는 자리입니다. 
  
행8장을 보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드리러 예루살렘에 올라왔습니다. 이 사람은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먼 길을 예배드리러 왔습니다. 그 사람에게 예배는 그렇게 소중하고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예배는 은혜의 길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성도는 은혜의 길에 들어선 사람입니다.
 
 영국의 총리를 세 번이나 했던 유명한 '글래드 스팅'은 세계 3대 위인 가운데 한 명에 들어갑니다. 그 사람은 '내가 국사에 바빠 눈코 뜰 새 없지만 나라 일을 바로 감당할 수 있는 힘은 주일 예배에 나와 은혜를 공급받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고후9:8절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지금 우리는 심히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어렵고 위기라 해도 주의 은혜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손에는 없어도 주님 손에는 무엇이든 다 있습니다. 나는 못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아멘!/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산행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는데 올라가는 길이 있고,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인생 길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올라가고 있습니다. 힘이 듭니다. 그러나 곧 내려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인공위성을 올리는 미국 항공 우주국 박사들이 95%가 크리스천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 9시 30분에 반드시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똑같이 외우는 기도가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끝났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축도는 주님의 은혜가 내려오는 시간입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시험이 올지라도 주님의 은혜가 나와 함께 하시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깊이 빠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②하나님의 사랑이 내려옵니다. 
  
본문은 이렇게 나누어 읽을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또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의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지금 이 시간이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뭐니, 뭐니 해도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사랑입니다. 요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 부모가 자식에게 필요를 채워주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용서하는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희생하면서도 기쁨을 느끼는 사랑입니다. 자신은 못 먹어도, 못 입어도, 자식이 먹는 것보고, 입는 것보고 기분 좋다고 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 때문에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 한 번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짓고 바로 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큰사랑으로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우
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를 끊은 자가 없습니다. 롬8: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8-39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으리라" 그러면서 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사는 자는 환란도 이깁니다. 곤고도 이깁니다. 핍박도 이깁니다. 기근도, 수치도, 어떤 위험도 이깁니다. 칼 권세에게서도 이깁니다. 이 사랑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롬5:5절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부었다는 것은 넘치게 부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음으로서 우리도 이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요일5:3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모든 계명은 사랑에 근거한 것입니다. 요일4:20절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한 자매님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노년에 병석에 오래 누워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대소변을 받아야하고 어딜 가지도 못하고 아무 낙이 없습니다. 한 번은 약을 달이는데 짜증이 나서 '빨리 죽었으면 속이 시원하겠다.'고 불평을 했는데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눈에 보이는 네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느냐?' 깜짝 놀라 무릎 꿇고 하나님께 회개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의 부모, 형제를 사랑하고 교회 안에서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잠8:17-18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사랑 속에 부귀영화도, 재물도, 의로움도 있습니다. 


  ③축도의 마지막의 원리는 성령의 교통하심입니다. 
  
교통은 '교제, 사귐, 나눔, 코이노니아'입니다. 성도가 주의 성령님과 교제가 없으면 그 영혼은 죽은 영혼입니다. 지금은 성령이 일하는 시대입니다. 성령님이 다스려 주어야 합니다.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다스릴 수 있습니까? 못 다스립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 주신다면 아무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해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슥4:6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모세에게 성령이 임하니 애굽에 내려가 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면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냈습니다. 성령이 엘리야에게 임하니 갈멜산에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능력을 행하였고, 성령이 여호수아에게 임하니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성령의 교통이 이루어지는 자리임을 믿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 마음 속에 성령의 불이 있어야 바깥세상, 죄악의 불을 막을 수 있습니다. 옛날 어느 전장에서 아군이 패전을 하고 몇몇 많은 군인들은 산 속에서 숨어 다녔습니다. 이때 적병들이 아군을 죽이기 위해 산 사방마다 불을 질렀는데 이때 아군들이 그대로 있으면 타 죽을 것 같아서 맞불을 놓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은 성신의 불이 있어야 세상적인 죄악의 불, 자신 속에 들어있는 정욕의 불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님을 인정하고 내 안에 모셔들여야 합니다. '성령이여, 내 안에 오시옵소서!'    ▶성령의 교통이 이루어지면 ⑴성령님은 우리와 끝까지 함께 해주십니다. 
  
요14:16절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⑵성령님의 보호하심과 ⑶성령님의 인도하심이 분명히 있습니다. 롬8: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은 위로 자이시고 늘 옆에 같이 있는 보호자이십니다. 

⑴성령은 성도의 모든 상한 마음을 치료해 주시고, 온갖 어려운 마음을 달래주시는 위로자이십니다. 
  
⑵성령은 믿음의 격려를 주시고, 강하고 담대한 용기를 주십니다. 성령의 교제 속에서 살아야 이 험한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성령의 교통이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갈6:8절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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