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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역경의 은혜(VI) (출 2:23~ 출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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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은혜(VI) (출 2:23~ 출 3:10)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애굽기 2:23-3:10)

제가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3년 만에 석사를 마쳤더니 곧바로 미국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저를 초빙했습니다. 저는 전도사나 부목사를 한 경험도 없고, 목회가 아니라 공부를 하러 미국에 왔고, 한국 사람이라서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는데, 영어도 완벽하지 않고 ‘어떻게 한국 사람이 미국 사람들을 목회하나’하는 생각으로 불안했습니다. 1960년대 당시의 한국은 아주 가난하고 불쌍한 나라였잖아요. 미국 사람들을 목회하려니 문화적인 차이도 있고,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가 지나자 저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사람도 ‘사람’이더라고요. 저는 미국 사람은 한국 사람과 아주 다르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우리보다 키도 크고 얼굴도 희고 코도 높고 언어도 다르고 선진국가이고 문화도 다릅니다. 그러나 속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인 것을 보게되었습니다. 우리가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것들을 그들도 다 겪고 있더군요. 그 때 저는 한국 목사가 미국 사람들을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가 사람들과 함께 목회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겉은 달라도 인간의 내면은 같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안심이 되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일본이 우리보다 여러 가지 여건 좋고 잘 살지만 일본 사람 역시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느꼈습니다. 그동안 제가 일본을 여러 번 왕래하면서 큰 대회에서 설교하고, 목회자 수련회에서 강의도 하고, 학자들을 만나기도 토론도 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설교와 강의도 했지만 일본의 보통 사람들이 저를 개인적으로 만나 대화하고 싶어 했습니다. 한 사람이 저에게 다가오자 금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장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모두가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어요. 한 명, 두 명,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아픔, 슬픔, 갈등, 역경, 눈물, 한숨, 해결하지 못하는 갈등들이 그 가슴 속에 있는 것입니다. ‘아, 한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나 다 인간이구나!’ 인생은 모두 사는 것이 힘들고 고통, 슬픔, 아픔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사람의 내면은 똑같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 중에 60세쯤 된 여자 분이 일생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저에게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기 피의 절반이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아버지가 강제노역자로 일본에 끌려 와서 많은 고생을 하면서 그 속에 엄청난 분노를 품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일본 사람으로서 부모에게서 쫓겨난 분이었답니다. 자기 속에 한국 피가 섞여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일본 사회에서 소외와 멸시를 당할 것이기 때문에 일평생 숨기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분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주루룩 흘렸습니다. 그분에게는 일생동안 자기를 자기로 들어내지 못하고 순수 일본 사람처럼 살면서 겪은 아픔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비밀을 갖고 있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이건 집사님에게만 말하는 비밀인데요,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세요.” 이런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비밀은 지키기가 힘들지요. 만약 여러분이 1년이라도 비밀을 지키려 한다면 1년 동안 매일 그것을 생각해야 하고 극히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그 비밀이 입에서 튀어나올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 여자 분은 60년 동안 비밀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얼마나 긴장하고 두렵고 불안한 삶이었겠습니까. 인생이 재미없지요. 긴장 속에서 잠도 못자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교사로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힘든 인생을 살았습니다. 가슴 속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 하나님에게는 한국 피냐 일본 피냐가 전혀 무관하다고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 드리고 그분을 끌어안고, 하나님의 평화와 나를 나 되게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 안타까운 눈물입니다.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2:23). 여기서 ‘탄식하다’라는 말은 ‘신음한다’는 뜻입니다. 속으로 끙끙 앓는 것입니다. 속으로만 앓다보면 병이 납니다. 혈압이 오르고 오장육부가 터져버립니다. 우울증에 빠지고 인생이 재미가 없어집니다. 또한 ‘부르짖다’는 영어로 'cry out'인데, 흐느껴 우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어 우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요셉 덕택에 흉년을 피하여 애굽으로 이주했었는데, 세월이 흘러 요셉도 죽고 요셉을 알던 왕도 죽으니, 이제 요셉을 모르는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삼아 핍박하고 강제노동을 시켰던 것입니다. 

다행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병만 하지 않고 밖으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소리 질러 표현했습니다. 속에 아픔이 있으면 겉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갈등, 아픔, 슬픔, 분노, 걱정, 불안, 두려움을 속으로만 앓고 부르짖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영혼이 죽고, 관계도 다 죽습니다. 인생에 아픔과 힘든 일이 없을 수 없습니다. 온갖 고난이 시시때때로 닥칩니다. 역경은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건강하게 살려면 반드시 내 속의 고통과 슬픔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아야 합니다. 소리를 내어 부르짖을수록 빨리 회복되고 여건과 환경이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희망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탄식하며 부르짖었더니 그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그 부르짖음은 반드시 하나님 귀에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듣고 보십니다. 우리 인생에 어떤 어려움과 도전, 난관, 슬픔이 있어도 혼자서 방황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 앞에 와서 부르짖으십시오. 거기에 희망이 있고 대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眷念)하셨더라”(24절). 이스라엘 자손의 형편을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3:7). 여러분의 눈에는 하나님이 안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는 여러분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음성을 듣고 마음을 아십니다.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9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르짖음을 보고 듣고 그 아픔을 아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10절). 해결의 길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사야 시대에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권력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정의를 위해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우리 한국 땅에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장자권을 뺏기는 사기를 당하고 “목을 놓고 소리 질러 울었다”고 했습니다. 억울해서 우는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악을 규탄하는 소리가 하늘을 찔러 하나님께서 그 소리를 듣고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켰습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고리대금업자들 때문에 가난해진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노동을 했는데도 임금을 받지 못한 경우에 그들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주인을 책망하고 처벌하셨습니다. 우리가 일일이 원수를 갚지 못해도 우리가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해결해주십니다. 

때로는 재앙을 당해서 소리 질러 울고, 전쟁에 패배해서 울고, 위험을 당해서 울고, 몸이 아파서 웁니다. 우리 인생에는 수많은 울음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역경이 닥칠 때 혼자 끌어안고 고민하고 근심하고 괴로워해서는 건강하게 살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역경이 있으면 하나님께 부르짖을 기회가 온 것인 줄 알고 부르짖으라.”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께 나와 부르짖으라고 말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시34:17). 의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역경과 시련이 닥치고 아픔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모든 환란에서 건지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2장에는 여자가 위험을 당하면 소리를 지르라고 합니다. 소리를 지르지 않아서 욕을 당하는 것은 여자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직장, 교회, 나라와 민족, 어디에든 고통과 슬픔이 있을 때 하나님께 소리내어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손길이 이 땅과 여러분과 저에게 있을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매일 모이는 조직은 교회밖에 없었습니다. 교회들은 모일 때마다 우리 민족을 살려 달라고, 독립시켜 달라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독립한 것은 교회가 하나님께 부르짖은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 백성에게도 해방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위해서도 많이 부르짖어야 됩니다. 남과 북이 같은 피, 같은 백성인데 이제 북한은 너무 피폐하여 불쌍한 내 민족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계속 부르짖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북한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22장에서 고통 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기만 하면 분명히 그 소리를 듣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58장 9절에도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하셨고, 사무엘상 9장 16절에, 지도자를 달라고 부르짖으면 베냐민 지파 가운데 한 명을 보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성경 곳곳에서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시고 부르짖으면 그 목소리를 듣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의로운 자, 하나님의 사람들이 부르짖을 때 들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 도다”(시34:15).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고 의지하고 하나님을 아는 여러분의 기도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눈물로 부르짖었습니다. 산에 가서 나무를 붙들고 밤새 부르짖고, 새벽에 교회에 나와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 땅을 축복하셨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하나님 앞에 이 민족과 국가, 그리고 우리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계속 부르짖어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심지어 어린 독수리가 먹을 것이 없어서 소리를 지를 때도 먹을 것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부르짖을 때는 어떻겠습니까! 

성경에는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내게 응답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조용히 계시지 마시고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옵소서.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시옵소서. 내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시옵소서. 내 부르짖는 소리가 당신께 열납되기를 간구하나이다. 내가 동굴에 숨어서도 내 목소리를 높여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신앙의 선조들은 혼자서 속으로 고민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왜? 기도를 들으시고 보시고 구원의 손길을 펴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역경이 올 때 지체하지 말고 반드시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제 인생도 그랬습니다. 사람에게 하소연하면 한 두 번이지 세 번째는 “나도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왜 또 그런 소리냐!”하며 듣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들어줄 사람도 없고 들어줄 훈련이 된 사람도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상담아카데미’ 훈련을 하는 것도 최소한 듣는 훈련이라도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언제 불러도 대답하시고 들으시고 은혜의 손길을 펴십니다. 

성경에는 이런 간증들이 참 많습니다. 다윗의 시에는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다윗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다”고 간증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부르짖어 본 사람만 아는 이야기입니다. 부르짖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경험을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직접 부르짖을 때, 내 부르짖음을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분께서 그 부르짖음을 들으셨다는 것을 나의 실제 생활에서 보여 주십니다. 여러분 일생에 이런 간증이 꼭 있기를 원합니다. 

욥기 34장에 “가난한 자의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을 가난하게 출발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사람은 가난에서 벗어납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다니던 교회에 아주 작은 어린 아이를 데리고 사는 젊은 과부가 있었습니다. 이분은 너무 가난해서 교회 담벼락에 천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새벽기도를 가면 그 부인이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어린 학생이지만 뒤에 앉아서 그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통곡소리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부르짖는 소리 들어주십시오.” 그분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가난한 자의 목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기 때문에 분명히 잘 되었을 것입니다. 

연약한 자도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1부 예배를 마치고 어느 젊은이가 저에게 왔습니다. 대학을 가야 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제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젊은이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주시옵소서.” 분명히 대학생이 하나님께서 부르짖음을 들어주셨다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그 누이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들었거든요. 경제적으로 공부할 수 없는 형편인데 엄마가 부르짖고, 딸이 부르짖어서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현대그룹에 직장을 얻었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을 때도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내 마음과 내 온 몸으로 종일 부르짖으리이다.” 다윗의 기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인생에 역경과 슬픔과 아픔이 있고 분노가 일 때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여러분을 향하여 구원의 손길을 펴실 것입니다. 

언제 부르짖어야 하나?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시119:147). 새벽, 아침, 낮, 저녁, 밤 또 하루 종일 부르짖는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면 하루 종일 부르짖습니까. 그러나 하루 종일이라도 부르짖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보십니다. 아십니다. 구원의 손길을 펴십니다. 역경은 하나님께 부르짖을 동기를 부여합니다. 부르짖을 기회입니다. 

이번 한 주 동안 우리는 “기도로 열매 맺어 나누어주며 살자”라는 주제로 특별저녁기도회를 열어 하나님께 함께 부르짖으려고 합니다. 기도하면 기도의 열매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부르짖지 않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어서 그 열매를 이웃을 위해 나누며 살 수 있는 축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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