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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안 (요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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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  (요 14:27)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모두 마음 속에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이 사회를 불안의 시대라고 일컫습니다. 특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더 많은 불안감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시달리는 다양한 형태의 두려움과 불안감에 침묵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우리들이 자주 시달리는 근심과 두려움을 극복하며 살 수 있는 해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가 근심과 두려움에 눌리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길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이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릅니다.
  
평화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로마사람들이 말하는 평화입니다. 이것은 팍스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Peace라고 하는 평화입니다. 사람들은 평화는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다른 나라보다 강해야 평화가 주어진다고 여깁니다. 다른 사람보다 강해야 평화가 임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강력한 군대를 양성하고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굴복시켰습니다. 오늘의 미국은 많은 돈을 들여 가공할만한 무기를 계속 개발하고 군사력을 과시합니다. 우리나라도 힘이 없어서 오천년 동안 침략을 당하고 보물을 약탈당하고 사람들이 능욕을 당하고 짓밟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힘을 기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사람들이 출세하고 돈벌고 성공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도 불안함을 극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출세하고 돈벌고 성공해야 거기에 평화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되고 싸움에서 이기고 로마식으로  힘이 있어야 평화가 있다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평화를 찾습니다. 누구보다도 앞서고 제일 좋은 것을 가질 때 평화가 온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몸이 약하여져서 병들고 일찍 죽을까 불안해하며 건강을 챙기려고 지나치게 관심을 보입니다. 권력에 줄을 대려고, 무언가 힘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으면 붙잡아 보려고 집착합니다.  
  
그러나  평화는 그렇게 한다고 찾아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가지면 더 많은 근심이 있고 더 많은 불안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되면 될수록 더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것이고 또 이 세상의 평화는 아침에 있다가도 저녁에 평화가 떠나갑니다. 늘 환경에 의해서 이 평화는 깨어지고 떠나가는 평화입니다. 영원한 평화가 아닙니다. 참 평안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참 평화는 성경에 기록된 히브리인들이 늘 찾았던, 히브리인들이 누리는 우리 성도들이 누렸던 살롬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주신 평화는 팍스가 아닙니다. 살롬은 힘을 길러 싸워서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변화된 삶입니다. 하나님은 무기 없이, 힘 없이도 가장 힘있게 살아가는 이 평화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여러분, 세상은 평화가 군사적인 힘으로 핵무기나 인간의 힘으로 평화가 주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여파로 가정에서도 힘겨루기를 합니다. 부부간에도 관계가 깨어지고 가정의 평화가 깨어지는 것은 힘 때문에 깨어집니다.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고 힘을 과시하면 가정도, 직장도, 사회도 위기에 처할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서로 잘났다는 힘, 내가 최고라는 힘, 교만한 힘을 앞세우다가 평화가 깨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가정이 평화가 깨어지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많은 회사가 노사간에 갈등으로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내가 더 잘났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서로 자신의 부족함을 앞세울 때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입에도 무기가 없어야 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무기가 없어야 합니다. 악수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야 둘이 친구가 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서로가 무기를 내려놓고 손에 손을 잡을 때 가정에 평화가 있고 우리 삶에 평화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2. 예수님이 주는 평안은 예수님이 누린 평안입니다.

예수님의 평안은 네 가지 특성을 갖습니다. 
첫째, 순간적이지 않고 영원한 평안입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건이 좋을 때 생기고 나쁠 때 사라지는 평안이 아닙니다.
둘째, 영적 평안입니다. 
셋째, 내면적 평안입니다.
넷째, 완전한 평안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나의 평안'에 반해, 세상이 주는 평안도 네 가지 특징을 갖습니다. 첫째는 짧고 순간적인 것입니다. 둘째는 물질적이고 육적인 것입니다. 셋째는 외면적인 것입니다. 넷째는 불완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끼치시는 '평안'은 영원하고 영적이며 내면적이고 완전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평안을 경험하고 소유해야겠습니다. 인생에 위기가 닥쳐도 주님의 평안을 유지하고 있어야겠습니다. 

주님이 누린 평안은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서도 누리는 평안입니다.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평안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평안했습니다. 제자들이 수천 명을 먹여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초조해할 때도 예수님은 평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풍랑을 맞아 두려워하며 소리를 지를 때에도 예수님은 평온하셨습니다. 

오히려 풍랑 속에서 잠을 청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군사들과 싸우기 위해 칼을 뽑았지만, 예수님은 말고의 귀를 치료하시기 위해 손을 드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언제나 평안하셨습니다.  위기앞에서도 그 평안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위험앞에서도 예수님은 마음의 평안을 빼앗기지 않으셨습니다. 위협앞에서도 예수님은 평안을 잃고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완벽한 평안을 소유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좋은 평안을 예수님께서는 누리셨고 오늘 우리들이 똑같이 누리도록 선물로 주십니다. 

에이미 카마이클 선교사는 "예수님의 평안은 모든 종류의 시험과 모든 시련을 견디게 했고 그것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주노라'고 하신 그분 자신의 평안 그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시련이 얼마나 크든지 작든지 간에 우리는 그 가운데서도 예수께서 그분 자신의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믿고 의지할수 있습니다.

어제 제 사무실에 예수 믿은지 한달된 새 가족 한 분이 다녀가셨습니다. 그분이 "마음이 평온해졌어요."라고 여러번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가장 대표적인 변화가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난 후에 여전히 문제가 남아있지만 마음이 예전처럼 불안하고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고 평안이라는 선물이 위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강력한 힘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도 평안함이 충만하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안에 있던 완전한 평안을 선물로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폭풍우치는 바다 한 가운데서도 안심하고 주무실 수 있게한 평안을 선물로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이 주는 평안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27)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믿으면 평안이 밀려옵니다. 새가족은 평안함에 사로잡혀 너무 감격해하는데 오래 믿은 이들중에 평안을 빼앗기고 근심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원수 마귀가 평안을 훔쳐가려고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시시때때로 다가와 근심과 염려의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도록 겁을 줍니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평안을 훔쳐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안은 아주 귀한 선물이기 때문에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잘 간직하고 날마다 누려야 됩니다. 

미국 교회 부흥 역사에서 윌리엄 퀘일(1860∼1925)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감리교 목사였던 그는 능력있는 설교, 설득력있는 설교로 주목받았습니다. 얼마나 유연하게 설교했던지 사람들은 그를 '감리교의 종달새'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존경했습니다.
  
그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밤중이 되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침대 아래로 내려가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적막한 한밤중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베고 있었던 베개를 끌어 안고 "주님,이 고통스러운 문제를 제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라며 울부짖었습니다. 그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문제를 끌어 안고 고통당하고 있구나. 그러나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할 일이다. 너는 자라. 남은 밤 시간 나 혼자 깨어 있으마." 
  
케일 목사님은 감사하며 평안히 잤습니다. 이후 문제는 해결됐습니다. 그는 증거했습니다. "주님께서 깨어 계시니 여러분은 평안히 주무십시오."

요한복음 14장의 핵심 메시지는 보혜사 성령에 관한 것입니다.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말슴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자꾸 생각나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기를 쓰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냅니다. 설교 시간에 목사님이 뭐라고 했는지, 성경 말씀을 읽긴 했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한편 어떤 사람은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만은 항사 샘솟듯 생각해 냅니다. 그것은 아이큐나 기억력이나 추리력과도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이 줄줄이 생각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광풍으로 인해 배가 파선당할 위기에 처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살게 됩니다.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서 가정과 회사가 풍비박산이 나고 이리저리 쫓겨 다녀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면 살게 됩니다.
  
암에 걸려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게 되더라도 근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예수님께 의지한다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자식들이 위기 상태에 빠져 있고 부부 사이는 이혼 직전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한다면 모든 문제들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힘들지 않으며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아픔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전쟁 중이나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한다면 곧 평안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성령께서 염려와 근심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평안을 누리며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당신이 누리던 평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마음의 평안, 얼굴의 평안, 언어의 평안, 입술의 평안, 생각의 평안, 내 영혼의 평안이 길이길이 넘쳐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것을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동차를 사면 타려고 사는 것이 아니에요? 옷을 사면 입으려고 사는 것처럼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 것은 우리가 평안을 마음껏 누리라고 주신 거예요. 이제는 우리의 평안을 늘 누리며 백 배나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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