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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께서 주신 영광의 약속 (요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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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주신 영광의 약속 (요 14:1~6)
 

입추와 말복이 지났는데도 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어제 광주의 기온이 섭씨 33도나 되었습니다. 어제 한재골에서 침례를 베풀었는데, 피서를 위해서 쉼 없이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더위도 일주일 후에 처서가 되면 완전히 한풀 꺾일 것입니다. 

연중 덥거나 추우면 살 수가 없고, 연중 봄철이거나 가을철만 계속되어도 곡식을 재배할 수 없을 텐데, 하나님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골고루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사실이지, 여름철의 무더위가 견디기 어렵긴 하지만 벼가 익으려면 고온다습한 것이 필수적입니다. 더위도 다 필요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우리는 무더운 날씨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할 줄 압니다. 

매년 여름이 되면, 전국적으로 교회마다 아동들을 위한 성경학교와 청소년과 대학청년들을 위한 수련회를 개최하는데, 정말로 바람직한 한국교회의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더운 시기를 마냥 더위와 씨름하면서 보내지 않고, 천국 잔치를 준비하고 은혜 받는 일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니 얼마나 멋집니까! 덥다고 예배 모임을 멀리하고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면 좋을 것 같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더위를 피해 다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위를 피해 다닐 것이 아니라, 주의 일에 열심 냄으로써 더위를 이겨야 합니다. 여름철을 은혜 받는 계절로 삼아야 합니다. 바로 이런 것이 그리스도인의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8절에 보면, 극심한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신앙을 지켜낸 성도들을 일컬어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고 했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주의 일에 열심을 냄으로써 더위가 감당치 못할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석상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만찬석상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몇 시간 후면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손에 잡혀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며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주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불과 닷세 전에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수많은 백성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흔들면서 “호산나!”를 외치며 열광하였고, 제자들은 이번에 예수님께서 유대 나라의 임금이 되실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예수님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고 하시니, 세상에 이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자들은 할 말을 잃고 큰 근심에 빠졌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다정한 음성으로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시고,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영영 제자들을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처소를 예비하시면 다시 와서 아버지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때에 제자 도마가 묻기를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간 저는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믿는 우리에게 주신 영광의 약속이 무엇인지 말씀해 드림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심으로 영원한 천국의 거처를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가끔 서울에 갈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느끼는 것이 서울에 저렇게 집이 많은데 마땅히 들어가 쉴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휴식을 취하려고 찻집이나 음식점에 들어가더라도 조금 오래 앉아 있으면 눈치가 보입니다. 하루 종일 서서 지내다 보면 여간 피로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집에 돌아오면 이 세상에 낙원이 달리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은 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간섭 없이 마음껏 안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소중한 것입니다. 

집 또는 거처는 이 세상에서뿐 아니라, 내세에서도 소중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데, 그 때 그 영혼이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우리 주위에는 인생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해 왔으나 아직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 생명을 우연의 산물로 믿고 각자가 원하는 대로, 좋은 대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주어진 생은 어떻게 살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너무나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세상 종교들이 말하는 죽음 이후의 삶은 단순한 권선징악의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너무나 막연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세상 종교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람들이 고안해 낸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친히 세우신 생명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에 관해서 분명한 답을 줍니다. 전도서 12장 7절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은 흙으로 지음 받았으므로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영혼은 물질이 아니므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 영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사후에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동일시하면 안 됩니다. 이 구절은, 사후에 모든 영혼이 심판을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악인은 영벌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갑니다(마 25:46).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에 들어가는 성도들의 거처에 대하여 구체적인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천국을 단순히 어떤 영적인 상태가 아니라 영혼이 들어가서 사는 장소로 표현합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은 실재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말씀시기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킹 제임스역(譯)에 보면, 내 아버지 집에는 맨션 곧 저택이 많다고 번역하였고, NIV 성경에는 “내 아버지 집에는 많은 방이 있다”고 번역했습니다. 저택이 많다는 것이나, 방이 많다는 것은, 천국에 성도들이 거주할 곳이 충분하게 예비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이유가 우리를 위해 처소를 준비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소를 예비하신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천국에 가셔서 우리를 위해 집을 짓고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천국,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처소를 예비하신다 함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믿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천국의 처소에 들어가 살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행하신 조치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도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성도들의 속죄와 칭의와 영생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죽음을 당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속죄 받을 길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우리는 의롭다는 인정 곧 칭의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가실 것이라고 하셨을 때 제자들이 마음에 근심한 것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실 은혜로운 결과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는 자들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대속의 제물로 아낌없이 희생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그 누가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겠는가를 말입니다. 부모 자식 간인들, 형제간인들 서로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지나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알지도 못할 그 때에 죄인인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5장에 이르기를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이 같은 불가사의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라도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 집에 거처를 준비하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재림과 주와 함께 하는 영원한 삶을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내가 다시 와서”라는 구절은 주의 강림에 대한 약속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가실 것이지만, 그것은 영원한 작별이 아니며, 그들을 위해 천국의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강림에 대한 약속이 확실한 근거는 강림의 당사자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의 강림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떠나가심을 인해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다시 올 것이라”고 약속하셨을 뿐 아니라, 공회에서 주님을 심문하는 자들 앞에서도 당신의 재림을 선포하셨습니다. 

거짓 증인들이 나와서 예수님께 죄를 뒤집어씌우는 데도 잠잠하시자, 대제사장이 말하기를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마 26:63)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 26:64)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짓 증인들이 나와서 거짓증거를 말해도 잠잠하셨지만,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요구하자 침묵을 깨시고 당당하고 분명하게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밝혔습니다. 그것도 장차 하늘 구름을 타고 강림하시는 것을 보게 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말하기를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하였습니다. 그리고 공회원들에게 묻기를 “생각이 어떠하뇨” 하자, 모두 대답하기를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고 했습니다. 유대교의 최고재판소인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을 죽일 빌미를 찾던 중에, 예수님께서 재림에 대해 말씀하시자, 이것은 신성모독죄를 범한 것이라고 하면서 사형을 선고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은 천사들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비롯한 성도들을 감람산으로 모이게 하신 후에 분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저들이 예수님께 묻기를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대답하시기를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하늘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예수님을 가리워 보이지 않게 했습니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흰옷 입은 두 사람’은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이 외에도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예수님의 강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 이르기를 “9)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고 하였고,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보니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시록에도 주님의 강림에 대한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1장 7절에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하였고, 계시록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주님의 약속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외에도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의 강림에 대한 언급이 빈번히 나옵니다. 이는 초대교회 당시에 사도들과 성도들이 주님의 강림을 얼마나 열렬히 사모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주님께서 강림하시는 이유는, 단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라기보다 약속하신 대로 우리 믿는 자들을 하나님 나라로 데려 가시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데리러 오십니다. 

승천하신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이 믿음은 초대교회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온갖 무서운 박해를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위로를 주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한 약속이 있었기에 교회는 지금까지 모진 박해를 이기고 굳건히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사실인즉 주의 강림에 대한 기대는 초대교회 성도들 뿐 아니라 오늘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과연, 나는 얼마나 주의 강림을 사모하는가?’ 자문자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거세게 밀려드는 세속과 돈의 유혹을 이기고 진실한 믿음을 지켜나가기를 원하십니까? 강림에 대한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그 날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강림에 대한 믿음이 성도님들을 굳건하게 만들어주어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되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친히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고 하셨을 때, 제자들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그들은 차분하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묻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바로 그 때, 도마가 입을 열어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도마의 이 말은 ‘방금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시려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라가신다고 하셨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느 길로 아버지의 집으로 가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저희가 알아듣도록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한 것과 같습니다. 

간혹 보면, 이 같은 도마를 가리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우둔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마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올바로 알기를 열망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진리에 대하여 잘 모르면서도 묻지 않는 것은 성도로서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도마처럼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시인하고 바로 알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도마가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라고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우둔한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원의 도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헬라어 원문에 보면, 길과 진리와 생명 앞에는 “그”라는 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이라고,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심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그 분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생의 진리가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종교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원의 길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길 가운데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혼합주의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종교관은 마치 중병에 든 환자가 의사의 처방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여기저기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들은 대로 온갖 잡다한 약을 만들어 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병을 고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시키고 말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으로만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 구원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어떤 위대한 인물이 인생들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본질상 죄인이요 진노의 자식에 불과합니다.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만민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인생들을 창조하시고 생사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만 인생들을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대속의 죽음을 당케 하시고 삼일 만에 일으키셔서 만민의 구주로 세우시고, 이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에게나 구원을 선물로 주시기로 정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 3장에 보니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18)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여러 종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터득했더라도, 아무리 도를 통달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종교들은 사람의 눈에는 진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비진리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보기에는 생명의 길처럼 보여도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이는 세상 종교들은 불완전한 인간들이 고안해 낸 종교사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람들의 깨달음에 근거한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구원의 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도리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죄 사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같은 구원의 도리를 알았으므로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담대히 선포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벌써 믿는 자들을 위해 처소를 예비해 놓으셨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믿는 우리를 데리러 오시기 위해 하늘 구름을 타시고 영광중에 강림하실 것입니다. 

그 날, 우리는 부활의 몸으로 영광중에 주님을 맞이할 것이고 주님의 영접을 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즉 이처럼 영광스러운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어떤 형편에서도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 강림하시는 그 날까지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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