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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라 (딤후 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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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라 (딤후 2:14~26)


들어가는 말 

2주 동안 디모데후서의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1장을 통해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고 
복음의 바른 교훈을 지킬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2장 전반부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중심 사역은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충성된 사람을 키우는 것이며  
이것을 위해 철저히 헌신하고 훈련되어지며 부지런히 수고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2장 후반부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I. 거짓된 가르침에 고통당하는 교회 (17,18절)  

본문을 보면 당시 교회는 잘못된 가르침을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17,18절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후메내오와 빌레도라는 사람들이 나타나 
'부활은 이미 일어났다'라고 주장하며 복음의 핵심인 육체의 부활을 부정했습니다. 

이들의 가르침이 왜 파괴적이었는지를 알려면 당시 헬라철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헬라 철학의 핵심은 이원론입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있는데 영혼은 선하지만 
육체는 죄악 덩어리이며 영혼을 속박하는 감옥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재림 때 가져올 육체적 부활과 심판은 믿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누리게 될 부활은 미래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영의 부활이며 이것은 예수님을 믿을 때 이미 일어난 것이라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믿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쉽게 믿을 수 있고 믿고 싶은 대로 성경을 왜곡해서 믿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이 가지는 파괴력을 엄청났습니다. 
바울은 17절에서 그들의 말은 온 몸에 퍼져나가는 악성 종양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성도들의 믿음과 경건을 철저히 파괴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각이 잘못된 가르침에 영향을 받게 되면 거룩한 삶은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등 많은 이단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이단까지는 아니라도 교회 속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성경이 가르침을 배워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믿기보다는 
자신들의 편리대로 성경을 왜곡해서 믿으려고 합니다. 

이들의 특징은 하나님 말씀을 배우려 노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려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나는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겠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어떻게 하면 우리들 자신과 우리 교회가 잘못된 가르침의 영향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귀히 쓰는 그릇, 하나님이 귀히 사용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바울은 본문을 통해 세 가지로 권면을 합니다.
 
II. 하나님께서 귀히 쓰는 그릇이 되는 길 

1. 진리의 말씀에 숙련공이 되십시오.(14-21절) 

첫 번째, 우리는 불필요한 말다툼과 논쟁을 피하고 진리의 말씀에 숙련공이 되어야 합니다. 
14절은 보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그들은' 2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할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할 '충성된 사람들'은 
무엇보다 불필요한 말다툼과 논쟁을 피해야 한다고 바울은 강하게 권면을 합니다. 
이것은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바울은 15절에서 디모데를 향해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한 일꾼이 되도록 헌신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에 '옳게 분별'한다는 것은 '여행자를 위해 곧은길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이 두 구절을 종합하면 다른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사람들은 
무엇보다 '말다툼'에서 벗어나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익히는 일에 집중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곧은길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잘 표현하고 있는 말씀이 저는 야고보서 3:13절이라 생각합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교회 속에 참된 선생과 지도자는 자기주장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속에 지혜를 얻어 곧은길을 발견하고 
그 행함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 무엇보다 직분 자들이 바로 이런 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앞으로 교회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변화와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때 자신의 입장만을 주장하며 소모적 말다툼이 난무한다면 교회는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곧은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겸손히 걸어가는 사람들이 나아온다면 
우리 교회는 그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태도를 강조하기 위해 20절에서 교회 속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첫 번째는 금 그릇과 은그릇 같이 귀하게 쓰이는 그릇입니다. 
또 하나는 나무 그릇과 질그릇처럼 천하게 쓰이는 그릇입니다. 
21절을 보면 우리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이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가르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 구절을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이 구절이 강조하는 것은 
금 그릇이든 나무 그릇이든 그 속을 깨끗이 하면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좋은 말이지만 이것이 본문의 정확한 뜻은 아닙니다. 

20,21절이 가르치는 것은 이것입니다. 
교회 속에는 큰 집처럼 귀한 그릇, 천한 그릇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문맥을 통해 보면 지도자들 중에 "귀한 그릇" "천한 그릇"이 있습니다.  
귀한 그릇이 되려면 언제나 자신을 천한 그릇이 되는 길에서 깨끗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귀한 그릇"의 길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자기주장과 소모적인 말다툼 대신에  
하나님 말씀 속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곧은길을 발견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 자신이 "거룩하고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을 위해 준비된" 
하나님의 귀한 그릇이 되는 길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자기 고집과 소모적 말다툼에 빠지는 천한 그릇의 길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대신 하나님 말씀에 집중해서 곧은길을 찾고 걸어가는 귀한 그릇의 길을 선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을 추구하라 (22-23절) 

두 번째, 하나님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되려면 우리는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되려면 무엇보다 말씀의 숙련공이 되어야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거룩한 삶이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하나님이 보실 때 선한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22절에서 바울이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어느 누구도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서로 격려하고 붙들어주어야만 
우리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이 땅 가운데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요번 금요일 여자 연합 예친을 시작으로 다음 주부터 예친 모임이 시작합니다. 
성도님, 예친 모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예친 모임을 참석하는데 시간, 거리, 관계적 어려움 등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귀한 그릇이 되려면 반드시 참석해야 합니다. 

바쁘지만 시간을 쪼개 함께 모여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며 사랑의 교제를 나눌 때 
우리는 세상의 헛된 욕심을 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불의한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의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의심과 두려움을 내어 놓고 믿음의 길을 택합니다. 
원망과 미움을 버리고 사랑과 화평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예친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성도님들 계신다면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진심으로 권면합니다. 
후 반기부터는 '주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의 모임인 예친에 참석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시는 귀한 그릇이 되는 길입니다. 

3.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하라 (24-26)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귀한 그릇이 되려면, 세 번째, 자신을 반대하고 하나님을 향해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24절에서 거역하는 자들에 둘러싸인 주의 종들이 갖추어야 할 인격에 대해 가르칩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다투지 않아야 합니다. 
대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고 참아야 합니다. 
사실 이것은 이사야 42:1-4절에 기록되었고 마태복음 12:18-21절에 인용된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예수님은 다투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으며 
대신 온유하셔서 잘 가르치시며 끝까지 참으시면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의 인격이 점점 예수님을 닮아 가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경상도 사람들은 온유하기가 참 힘이 듭니다. 
참는 대신 쉽게 분노합니다.  

가르치기를 잘 하는 대신에 감정에 지배되어 다툴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인간적인 면에서 능력이 있어도 예수님을 닮은 인격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불행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직분 자들, 순장과 교사들이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 부모님들이 가정에서 이런 인격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이러한 인격자로 나타나시기를 원합니다. 

나아가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은 인격을 가지고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25,26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옵소서.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저는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거역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합니다. 
마귀의 올무에 잡혔던 자들이 하나님께 사로잡혀 하나님을 뜻을 따르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또한 내일 개발 과정과 예친 모임을 통해서도 동일한 일들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나아가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을 통해 
하나님을 거역하고 마귀의 올무에 잡힌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사로잡혀 회개하고 진리를 알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되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이 대구 땅에 일어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결론  

거짓된 가르침이 난무하는 현실가운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되겠습니까? 
자기주장과 소모적 말다툼 대신에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는 말씀의 숙련공이 되십시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교제를 통해 정욕대신 하나님 앞에 선한 것을 추구하십시오. 
주의 종으로 마땅한 인격을 갖추고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바로 잡아주십시오. 

이러한 바울의 권면에 온전히 순종하셔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고 
나아가 우리 성도님들을 통해 하나님을 거역하며 마귀에 사로잡힌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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