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광복절]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갈 5:1)

  • 잡초 잡초
  • 500
  • 0

첨부 1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갈 5:1)


어제는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 된지 64주년이 되는 광복절이었습니다. 해방 된지 5년 만에 6.25전쟁으로 나라는 초토화 되었고, 국토는 분단되고, 부전자원도 없는 지구상의 최 극빈 국이 우리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어제 아침 신문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대한민국 파워 세계 13위”라고 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자유의 힘입니다. 

지난 7월 18일“(사)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 사업회”주관으로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 제44주기 추모식이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설교한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난 10년간 북한을 6번 다녀왔다.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이승만 대통령께 세 가지 측면에서 고마운 마음을 느끼곤 한다.

첫째, 1948년 8월 15일에 건국하지 못하고 6.25전쟁을 맞았더라면 공산화가 되었을 것이다.
둘째, 자유민주주의를 대한민국의 체제로 선택한 것.
셋째, 북한이 남침하였을 때에 최상의 외교력을 발휘하여 미국과 유엔을 움직이고 국민들의 단합을 이루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신생독립국 150여 개국 대부분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을 따라갔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선견지명으로 대한민국을 공산독재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도입하였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하나님을 섬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하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사람들 따라 여러 가지 대답이 있겠습니다만 가장 간결하고 포괄적인 뜻을 담고 있는 답은“자유함을 누리기 위함입니다.”라는 대답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이 오셨습니까? 자유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본문인 갈라디아서 5장 1절에“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도“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에도“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모신 목적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자유가 없으면 그것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닙니다. 나라 잃은 유태인들이 독일의 히틀러에게 당한 고통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히틀러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유대인 400만 명을 학살했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는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아우슈비츠가 양적인 면에서 잔악함을 보여주는 곳이라면 중국 하얼빈시 근처에 위치한 일본 관동군 세균전 부대인 731부대(일명 이시이 부대)에서 저질러진 잔악함은 질적인 면에서 인간이 인간에 대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가는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일본은 1932년 육군 관동군 소속으로 생화학전 연구를 위해 731부대를 하얼빈에 설립해 1945년 패망할 때까지 치명적인 대량 살상 생화학 무기를 연구하면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극악한 인간 생체실험을 했습니다. 암호명“마루타(통나무)”특별계획은 중국, 한국, 러시아 등 인근 국가 민간인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고, 잔인하게 영아, 노인, 임산부까지 실험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 부대를“이시이 부대”라고 하는 이유는 교토제국대학 의과대 출신 군의관 이시이 시로 중장이 초대 사령관으로 부임해 부대를 운영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대에서 한국인을 포함한 1만 명 이상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처참하게 죽어갔습니다. 

일본군은 이 부대에서 살아있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해부, 동상 실험, 전염병 실험 등 30여 가지 생체실험을 했습니다. 마취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기를 적출하고, 출혈 연구를 위해 팔다리를 절단하고, 그 잘라낸 것을 다른 쪽에 붙여보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뇌, 폐, 간 등을 자라내기도 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화염방사기를 사용하기도 했고, 각종 세균을 주사하고, 벼룩을 이용해 세균을 대량으로 감염시키기도 했습니다. 

팔다리를 몽둥이로 내리쳐 골절시킨 후 얼마나 견디는가를 보기도 했고, 영하 50도의 추위에 발가벗겨 밖에서 걷게 했고, 인체 부위마다 피부를 도려내고 콜레라균, 탄저균, 매독균을 집어넣기도 했습니다. 또한 목을 매달아 죽기까지의 시간을 쟀고, 신장에 말 소변을 집어넣기도 했고, 극저온과 고압의 방에 마루타를 넣어 관찰하고, 온도와 화상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불이나 뜨거운 물에 넣기도 했습니다. 원심불리기에 사람을 넣어 죽을 때까지 돌리기도 했습니다. 

바닷물을 혈액에 직접 주사하여 반응을 살피기도 했습니다. 영하 40~50도의 추위에 발가벗긴 다음 일렬로 세워놓고 총을 쏘아 몇 명까지 죽는가를 관찰하는 실험도 했습니다. 이러한 생체실험을 위해 베이징, 장충, 난징, 광저우를 비롯해 싱가포르까지 생체실험부대를 만든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731부대에서 배양한 세균을 가지고 세균폭탄을 만들어 하얼빈 근처 마을을 대상으로 생체 피폭실험을 한 뒤, 저장성 닝보, 산시성 허베이, 산동성, 허난성 등에 투하해 많은 피해를 입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균탄이 미군을 대상으로 실전에 활용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마루타로 희생된 사람의 숫자는 1만 여명으로 추정되는데 중국의 노력으로 명단이 밝혀진 희생자는 1463명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한국인 희생자는 심득룡, 이청천, 이기수, 한성진, 김성서, 고창율 씨등 6명입니다. 

인간백정 이시이 시로가 전후 도쿄 국제군사법정에서 밝힌 마루타는 총 3850명으로 그 가운데 중국인 3034명, 러시아인 562명, 한국인 254명이라고 했습니다. 
더욱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731부대에 근무했던 많은 사람들은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며 눈물로 용서를 빌었지만, 정작 책임을 져야할 왕이나 일본총리는 이 부대의 존재와 만행에 대해“그런 일 없다.”는 말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 없는 나라, 자유 없는 인간의 처지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생명입니다. 자유 없는 삶은 삶이 아닙니다. 이 자유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一. 육신의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

오늘 설교제목“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것은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기념 공원에 새겨진 문구입니다. 이 공원에는 한국전 참전 군인들이 판초 우의를 입고 행군하는 군인들의 동상이 있고, 비문에는“우리 미합중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나라의 자유를 위해 달려갔던 자랑스러운 우리의 딸과 아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는 글과 함께“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The freedom is not free).”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자유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독립투사들이 피를 흘렸습니까?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습니까?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을 대항하여 싸우다 죽은 연합군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우리들이 누리는 자유가 있기까지 독재와 싸우다 피를 흘린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이처럼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피를 먹고 자란 오늘의 자유를 길이길이 누리며 후손들에게 값진 유산으로 남겨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려면 역사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날 역사를 잊으면 아니 됩니다. 같은 일이 되풀이 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염려스러운 것은 우리는 역사를 너무 쉽게 잊는 것 같습니다. 행정안전부 등 각종 여론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56.6%가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답했고, 중,고생의 절반 이상이 북한의 남침인 것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심지어 육군사관학교 신입생도의 34%가 우리의 주적이 미국이라고 답한 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몇 년 전에 인천 자유공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6.25동란에서 우리나라를 건진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야단한 적이 있습니다. 맥아더 장군이 통일의 방해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의식을 유태인에게 배워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에게 600만 동포가 희생당한 비극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까지 종려나무 600만 구루를 가로수로 심어놓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바드야샘이라는 600만 동포의 희생자 추모관을 세워 놓고 해마다 유치원 어린이들부터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그곳을 찾도록 하여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에 대한 최후의 항전지인 사해가 내려다보이는 요새 마사다에 중학생 이상의 학생들은 1년에 한 차래씩 반드시 그곳을 찾도록 하여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우리 역시 잊으면 아니 됩니다. 

二. 영적 자유도 공짜가 아닙니다.

자유의 소중함을 말씀드렸습니다. 자유를 빼앗기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자유는 누리거나 잃든지 하더라도 그 자유는 이 세상에서의 한정된 자유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자유는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원한 자유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영혼의 자유를 얽어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탄의 미혹으로 범한 죄악입니다. 이 죄악이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이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시고자 즉 영원한 자유를 주시고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거룩한 피가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있어야할 영적 자유란 어떠한 것입니까?

1. 탐심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모든 죄악의 뿌리에는 탐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탐욕입니다. 죄의 근원에 대해 야고보서 1장 15절에 말씀하시기를“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탐욕을 부리지 않고 하나님의 마씀을 따라 살아가도 풍성하게 누리는 축복이 있습니다. 신명기 28장 1절~7절에 말씀하시기를“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하셨습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충동이 있습니다. 소유에 대한 충동, 향락에 대한 충동, 창조에 대한 충동이 그것입니다. 대개 우리가 자유를 얻으면 소유에 대한 충동을 느끼게 되고 향락을 누리고자 하는 충동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소유와 향락에 대한 탐심 때문에 자유를 잃어버리고 스스로 죄의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지갑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스스로 절제하고 자제하는 삶입니다. 탐심에 눈이 어두운 사람은 성공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바를 모두 소유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우상숭배의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누리던 자유마저도 빼앗기고 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하셨습니다. 

북한의 공산당 치하에서 고생했던 김선도 목사님의 경험담입니다. “그 당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의 자유였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니까 밤에는 캄캄한 지하실에서 모여 서로 아는 찬송가를 부르고, 아는 성 구절을 외우연서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고 부르짖으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유엔군의 참전으로 자유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그때 너무나 감격하여 흰옷을 입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백화점과 소비조합의 관리를 맡았던 공산당원들이 모두 철수하자 기독 청년들이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유를 얻고 나니까 사람들의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이 좋아보였던 어떤 사람은‘오늘 저녁에는 예배를 드리지 말고 백화점에 가서 쓸 만한 물건들을 가져옵시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님이 그 말을 듣고‘우리가 자유롭게 예배드리기 위해 그토록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는데, 이제 와서 예배는 안보고 물건을 가져오자니 도대체 이게 웬말입니까? 우리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기어코 백화점으로 가서 물건들을 잔뜩 가 져다가 쌓아 놓았습니다. 그 후에 저는 그들의 생활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탐심의 노예가 되어서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 아니하고 재산도 모으지 못하고 자식도 잘못되어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야고보서 4장 2절에“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하셨습니다. 탐심으로부터 자유하게 될 때에 우리는 내적인 참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탐을 낸다고 하여 얻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탐욕이 아니라 도리어“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하셨습니다. 

2. 두려움과 절망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늘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믿을 때에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두려움에서부터 자유를 얻어야만 참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로버트 앤드류라는 사람이 말하기를“인간이 불안하고 불만족해 하는 것은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데서 기인 한다. 삶의 목적과 의미를 알지 못했을 때는 언제나 불만족스럽게 살아가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인도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고 의지할 때에 우리의 두려움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8장 32절에도“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하셨습니다. 참 진리를 마음에 가진 사람은 참으로 자유한 사람이요, 진리 안에서 두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8.15 해방 직후, 일본 헌병들이 귀국하자 북한 어느 동네에 청년들이 치안대를 조직하여 마을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갑자기 중국의 마적 떼가 몰려오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 다 두려워서 산으로 도망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마적 떼가 아니라 신의주에 갇혀 있던 우리의 애국지사들이 고향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두려운 마음이 있으면 조그만 일에도 두려워 떨면서 용기와 의지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1930년대, 미국에 경제 공황이 일어났을 때에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불황에 대한 두려움보다 두려움에 대한 생각이 더욱 두려운 존재이다.”외적으로 닥치는 불안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속에 불안한 공포심을 갖는 그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참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역사를 주관하시고 내 생명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나를 위탁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을 믿게 될 때에 두려움에서의 참된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3. 절망의 위기에서 얻는 자유입니다. 
삶의 위기에 처할지라도 인내와 투지를 가지고 쉽게 포기하지 않을 때에 참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최대의 전략은 우리 스스로가 낙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포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월남은 무기나 군인이 부족해서 패배한 것이 아닙니다. 월남 국민들 마음속에 이젠 그만 포기하자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유를 잃고 보트 피플(boat people)이 되어서 이리저리 표류하는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고통스럽지만 눈물로 씨를 뿌린 사람은 때가 되면 기쁨으로 단을 거둘 때가 오는 것입니다. 소망을 굳게 잡고 인내하며 쉽게 낙심하지 아니하고 노력할 때에 축복의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자유의 날이 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빅토르 프랭클린이라는 유태인 정신과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독일군 게슈타포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다 빼앗긴 채 동족들이 가스실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말하기를“어떤 핍박이라도 그것에 항거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을 수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나치들이 자기를 박해한다 할지라도 그 박해에 항거하는 자신들의 자유만은 빼앗지 못한다고 하면서 끝까지 그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어느 가정에 소아마비로 허리 아래를 전혀 쓰지 못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그를 어디든지 업고 다녔습니다. 교회에도 늘 업고 다니며 열심히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교회 목사님을 찾아와서 아들의 장래에 대해서 의논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권면하기를 “그 어머니에게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 아들로 인해 집사님 댁이 복을 받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아들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공부하여 마침내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휠체어가 아니면 한 발자국도 갈 수없는 아들은 미국 버지니아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가 고희동 교수입니다. 그는 결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절망하지 아니하고 끝내 자유함을 얻은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자유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자유는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오늘의 자유를 우리들은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지난날 우리민족이 겪었던 수난의 역사를 잊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자유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잘 받들어 섬기는 것입니다. 
탐심의 유혹을 이기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풍성함의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두려움과 절망을 이기고 승리의 자유함을 누리기시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